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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약자의 절규' 외면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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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약자의 절규' 외면 말아야

<기자의 눈> 비정규직 노동자 자살ㆍ농민들의 읍소를 보고

***농민들의 절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는 28일 아침 8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앞에서 '쌀 전면 재협상'을 주장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열렸다. 정부가 10년간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에 2014년까지 쌀 소비량의 7.9%까지 의무 수입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날 국무회의를 거쳐 30일 최종안을 발표한다는 보도에 따른 것이다.

전국농민회 경남도연맹 소속 농민 1백20여명은 지난 27일 기습적으로 김해시 진영읍 노 대통령 선친 묘소를 찾아 "쌀 개방을 저지해 달라, 쌀협상을 전면 재협상하게 해 달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또 전농 시·군 대표자 30여명은 지난 22일부터 서울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중이다.

지난 27일 새벽엔 한진중공업 마산공장에서 촉탁직 노동자로 근무하던 김춘봉(50)씨가 회사내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고인은 편지지 5장 분량의 유서에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차별과 사측의 회유가 있었는지 상세히 적었다. 그는 유서에서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며 "한진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주겠지"라고 자신의 죽음의 이유를 밝혔다.

올 2월 박일수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노동자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외치며 분신한 이래, 두번째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이다.

***盧대통령의 경제철학, '시장개방' '고용 유연성 증대'**

민생과 직접 관련된 이 커다란 두 현안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일찍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우선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지난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결책으로 "해고 유연성을 늘려야 한다"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게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정규직을 채용 안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28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정규직의 고임금을 깎고 해고 유연성을 늘려야한다는 건 전형적인 재계의 입장"이라며 "위를 깎아 아래를 올리자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특히 "통계가 지표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영국 <포브스>지의 경우 우리나라의 고용 유연성이 세계 2,3 위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고, OECD 조사에서도 OECD 국가 중 중간 정도 수준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해고 경직성'이란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반박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고용도 쉽고, 해고도 쉬운 미국식 채용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는 우리 고용관행이나 채용구조상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쌀시장 추가개방과 관련해선, 노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일관되게 시장 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노 대통령은 쌀협상과 관련 지난 8월 "어떤 선입견도 갖지 말고 포괄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져서 실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관계부처에 당부한 바 있다.

***대통령, '약자의 목소리' 외면 말아야**

고용 유연화나 시장개방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비정규직법안을 오히려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고, "쌀값 직불제로 소득 보전을 해주겠다"는 정부 대안을 농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노동자, 농민들의 억지라고 할 수만은 없는 측면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살하고 농민들이 대통령 선친 묘소에 찾아가 읍소하던 27일 밤 노 대통령은 청소년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 "선량한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소년 특별회의'의 청소년 대표 1백명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대통령의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통령에 도전하는 사람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자기 신념에 충실해야 한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선량한 포부란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라면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일수록 선량한 꿈을 꾸어야 하며, 선량한 꿈이 없는 탁월한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뭐가 되고 싶어서 정치 하면 고난을 이기지 못한다"며 "선량한 포부를 갖고 전력투구하고 인생을 걸라"고 조언했다.

"선량한 포부란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란 노 대통령의 철학은 맞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나 농민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벼랑끝에 몰리고 있는 '인간'들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노 대통령은 27일 한완상 신임적십자사 총재와 접견한 자리에서 내각 중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3D 부처'로 교육부, 농림부, 복지부, 그리고 노동부를 꼽았다. 노 대통령이 내심 비정규직 문제나 농민 문제, 양극화 등으로 얼마나 부심하고 있는가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골치가 지끈거린다고 해서 이들 문제를 외면하려 해선 안된다. 도리어 해법을 찾기 위해 더욱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흔히 '샤일록'에 비유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세익스피어처럼 샤일록을 악덕상인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샤일록 예찬론'을 펴기도 한다. 차가운 정글의 법칙, 이윤의 법칙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논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자유주의 시대라 할지라도 샤일록이 전부일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대통령은 약자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대통령마저 이들의 소리를 외면한다면 이들에게는 '절망'밖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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