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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의 '소녀가장' 방문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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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의 '소녀가장' 방문 소식을 듣고

<기자의 눈> 앞으로 '민생현장 암행' 본격화해야

16대 대선이 있었던 2002년, 당시 민주당 후보 경선 레이스가 막 시작된 1월초 노무현 당시 후보 24시간 동안 밀착 취재한 적이 있다.

본격적인 경선 유세가 시작돼 '노풍(盧風)'이 불기 전, 이인제 후보에 밀리는 2위 후보로 인식되던 당시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노 후보는 그날 저녁 한 인터넷 카페에서 네티즌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이 행사를 위해 한 참모가 정호승 시인의 시 3-4편을 들고와 노 후보가 그 자리에서 마치 자신의 애송시인양 낭독하기를 주문했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낭만적인 시를 낭독하는 노무현'의 모습을 연출하려는 의도였다.

잠시 생각하던 노 후보는 "꼭 해야 되느냐. 그냥 촌놈은 촌놈답게 하자"며 이를 거부했다. 국내 최초로 팬클럽을 가진 그야말로 '대중 정치인'인 노 후보였지만, 정작 당사자는 '쇼맨십'을 싫어했다.

***'쇼맨십'을 싫어하는 노 대통령**

노 후보의 이같은 성격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최대한 피해왔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나 대통령이 된 이후에나 태풍, 수해 등 현장을 즉각 찾을 것을 건의하는 참모들의 의견에 노 대통령은 "내가 현장을 찾으면 한시라도 빨리 복구 작업을 해야할 공무원들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한 템포' 늦춰 현장을 찾곤 했다.

지난해 9월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상륙하던 날 밤, 사전에 잡힌 일정대로 뮤지컬 공연을 보러간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이로 인해 비난여론이 쏟아지자 노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지만,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은 당시 "대통령이 저녁 시간에 관저에 대기하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나, 상황 파악과 지시를 체계적으로 하면서 청와대 지근거리에서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나 실제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해 노대통령 생각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 찍기 위한, 또는 쏟아지는 원망을 모면하기 위한 현장 방문은 하지 않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고집스런 지론인 것이다.

***성탄절 밤, TV 출연하는 대통령**

이런 노 대통령이 성탄절인 오는 25일 밤 TV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매주 주말 밤 우리사회 어려운 이웃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는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인 KBS <사랑의 리퀘스트>다. 노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을 위해 지난 22일 권양숙 여사와 서울 신림동 소녀가장 이혜진(18)양의 집을 직접 방문해 격려와 위로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는 성탄절 밤,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TV 출연은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특히 극심한 '부의 양극화'로 외형적인 성장률과는 무관하게 지난 3년간 극심한 고통을 받아온 서민들을 대통령이 직접 만난다는 사실은 서민의 고통을 대통령이 직접 '생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같은 민생 탐방이 일회성에 그친다면, 노 대통령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쇼맨십'에 그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있었던 대구 4세 어린이 아사 사건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하면서 사회안전망과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재검토를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러나 뒤집어 보면, 다수 서민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그동안 정부가 제대로 인지하고 못했었다는 역설적 얘기가 되기도 한다.

***노무현과 루즈벨트**

탄핵국면을 뚫고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복귀한 후 보수언론등과 가장 먼저 발발한 논쟁이 '경제위기' 논쟁이었다. 청와대는 보수언론이 경제위기를 사실이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고 판단했고, 보수언론은 대통령이 실정을 모른다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두가지 측면을 다 띄고 있었던 게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다수 서민은 이 논란을 지켜보며 청와대쪽에 보다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정말 하루하루가 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서민이 이처럼 냉소한 또다른 이유는 "청와대가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냐?"는 것이었다. 대통령 취임후 서민과의 '스킨십'이 너무 부족했던 탓이다.

따라서 추운 겨울, 노 대통령의 TV 출연 소식을 듣고 가난한 국민들이 감동하기를 기대한다면 이는 '과욕'일 것이다. 도리어 다수는 '냉소적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민심'은 꽁꽁 얼어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서민들의 고통의 현장을 계속 찾아야 한다.

'쇼맨십' 차원의 일회성 민생방문은 대통령의 지론대로 '무의미'하고 도리어 역반응만 낳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번처럼 카메라를 대동하지 않고 '암행'을 계속해야 한다. 새벽 인력시장에도 가봐야 하고, 재래시장에도 가봐야 한다. 그 과정에 다수 서민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고 그들이 지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요즘 우리경제의 최대 문제를 '양극화'라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지난 몇년간 정권은 잇따른 정치일정에 발목잡혀 건설경기부양책을 취한 결과, 아파트값 폭등 등을 초래하면서 극심한 부의 쏠림을 초래했고 그 결과 다수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과 구매력 소멸에 고통받게 됐다. 내수경기의 장기침체도 이같은 양극화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렇게 부의 쏠림이 극화된 상황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어느 편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과거 1930년대 대공황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처했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당시 루즈벨트는 기득권층으로부터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공황의 수혜자 대신 피해자 편에 섰다. 노대통령의 향후 선택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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