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가 정치권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만큼 민주당 안팎의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민주당내 갈등의 전개양상은 동교동계와 쇄신파 간의 대결→ 이인제 대 반(反)이인제 진영 간의 대결→ 각 대선주자 간의 대결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 왔으며, 앞으로 있게 될 당권-대권경쟁 과정에서는 이 세 가지 측면이 혼재되는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전당대회 일정과 차기 후보 선출 시점에 대한 계파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민주당은 당헌에 규정된 대로 내년 1월 정기전당대회에서 후임 총재를 선출해야 한다. 이 경우 총재 경선은 사실상 대선후보 경선의 전초전이 되기 때문에, 각 대선주자들이 직접 총재경선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내년 3-4월 한차례 전당대회를 통해 총재-후보를 일괄 선출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게다가 총재 부재상황이라는 비정상적 과도기를 조기에 끝내야 한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일단 총재 선출을 위한 1월 전당대회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주당 내분수습 경우 정계개편 가능성**
이 과정에서 가장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민주당의 분당(分黨) 여부이다.
지금 민주당을 휘감고 있는 불안감은 무엇보다 당이 언제 쪼개질지 모른다는 우려에 기인하고 있다. 그동안 당내 접합제 역할을 해주던 김 대통령이 떠나가 버린 지금,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각 계파가 과연 한 지붕 아래에서 공존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민주당 사태가 분당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은 일단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당은 당을 지키는 쪽과 떠나는 쪽 모두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선택이다. 어제까지의 집권당이 지도자 한 사람이 손을 뗐다고 바로 분열되느냐는 여론의 따가운 반응 또한 민주당 구성원들에게는 당을 유지하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여당 프리미엄을 기대하며 대선경쟁에 뛰어들었고 실제로 그 효과를 톡톡히 입어온 대선주자들로서는, 지금까지 누려온 정치적 특혜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당내 쇄신파 역시 분열의 책임 논란, 특히 현시점에서 민주당의 분당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당선을 보장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분당의 선택을 쉽게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분당 쪽보다는 민주당이 어떤 방식으로든 내분을 수습하고 후임 총재와 차기 대통령후보 선출을 정상적으로 마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이 경우 차기 대선 판도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민주당이 갖고 있던 기반과 한계는 공히 ‘민주당=DJ당“이라는 등식 때문이었다. 이제 그 등식이 무너지게 된 지금, 민주당은 ‘이회창 대세론’을 차단할 수 있는 정계개편의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반(反)이회창, 지역적으로는 지역연합적 성격을 갖는 신당의 창당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신(新)3김구도의 출현이 점쳐지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도는 반(反)이회창세력의 결집이라는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쇄신파와 경선에서 패배한 주자들에게 이탈의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과 폭은 매우 유동적이라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출현 가능성은 미지수**
그렇다고 민주당 분당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향후 당권-대권 경쟁에서 동교동계가 판을 주도하려 나설 경우 당내 갈등의 양상은 첨예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동교동계의 해체가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속단이다. 박지원 수석의 전격 사퇴로 동교동계를 겨냥한 인적 쇄신 요구는 급격히 퇴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구나 김 대통령이 당에서 손을 뗀 마당에 이제 누가 누구에게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퇴진을 요구할 상황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동교동계가 자유로운 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동교동계는 일정기간의 근신기를 거친 뒤, 이인제 고문과의 연대를 통해 일차적으로 당권 분점을 노리게 될 것이다. 이때 중도개혁포럼은 쇄신파를 견제하고 동교동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이 동교동계가 다시 당을 주도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경우, 당내 쇄신파로서는 결과가 예측되는 경쟁에 들러리를 서기보다는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민주당의 분당은 개혁신당의 출현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러나 파괴력 있는 개혁신당의 출현가능성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미지수이다. 우선 민주당에서 탈당의 모험을 결행할 숫자가 얼마나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고, 개혁신당의 파트너가 되어야할 한나라당에서도 탈당을 점칠 수 있는 숫자가 지금으로서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내의 갈등이 악화되더라도 분당이 아닌 개별인사들의 탈당 수준에 그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반(反)이회창 정계개편 경계하는 한나라당**
이제 한나라당의 입장을 살펴보자.
김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요구해왔던 바였다. 그러나 정작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는 한나라당의 표정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돌고 있다.
김 대통령의 무장해제는 한나라당에게는 정치적 타깃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동안 김 대통령 측근인물들에 대한 공세를 통해 여권과의 대립각을 세워왔던 한나라당은 이제 ‘전투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이제 반(反)DJ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어나가야 할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되었다.
한나라당이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DJ 대 이회창’ 구도가 ‘이회창 대 반(反) 이회창’ 구도로 변화할 가능성이다.
민주당의 차기 후보와 범동교동계가 손잡고 YS, JP를 비롯한 반(反)이회창 세력을 결집하는 정계개편에 나선다면, 대선 판세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YS와 JP는 변화된 정치적 상황을 자신들의 입지 강화에 최대한 활용하는데 기민함을 보일 것이다.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이들이 자유로운 운신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YS와 JP가 그동안 ‘반(反)DJ’라는 명분 때문에 자신들을 야당의 범주에 묶어두어야 했다면, 앞으로는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운신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YS와 JP는 정치권내 각 세력과의 접촉 범위를 넓히며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할 수 있는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타진해 나갈 것이다.
이처럼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내년 대통령선거를 향한 레이스의 본격적 출발 신호를 의미한다. 내년 대선을 향한 정치권내 각 세력 간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협력과 연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번 사태가 정치권의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말은 그러한 의미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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