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던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무대응' 전술에 혼란상을 노출하고 있다. 국회 파행이 9일째로 접어들면서 비난여론이 높아가고 있음에도, 여권으로부터 적당한 등원의 명분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한나라당은 5일 노 대통령이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이 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과 국회파행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일단 등원 거부 방침을 재확인하며 강경론으로 맞섰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들과 주요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회의를 소집해 원내대책을 논의한 끝에 "한나라당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 대표는 회의 시작 전 노 대통령의 무대응에 대해 "정부-여당에서 야당을 무시하고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박 대표는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대의정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을 뽑아준 국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민생이 중요하면 국회를 이렇게 파행으로 몰고 가지 말던가, 수습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책임있는 행정부의 모습아니냐"라며 "이렇게 되면 국회의 상임위 활동이며 국정감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도 회의 뒤 브리핑을 갖고 "지금 여권을 향해 계속해서 파면요구와 성의 있는 입장을 촉구했지만 여권은 그간의 자세에서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당분간 등원 거부를 지속해 나갈 방침을 확인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여기에서 밀리면 4대입법 밀어붙이기에서도 밀리는 것 아니냐'는 생각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여당이 4대입법을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싸운다"고 파행 장기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전여옥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이 총리 막말에 대해서 노 대통령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주부들이 듣는 프로그램이라고 얕잡아 본 것이냐"고 가세했다.
***내부혼선에 파행장기화 비난여론 겹쳐 '곤혹'**
한나라당의 이같은 강경론은 주말과 휴일 이틀의 시간적 여유를 감안해 정부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의미가 다분해 보인다. 그러나 이 시간동안 청와대로부터 특별한 대응이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아 파행국회 해법의 공을 다시 넘겨받은 한나라당으로서는 '묘수풀이'가 쉽지않다.
당 내에서도 의견이 제각각으로 나뉘어있다. 보수강경파에선 등원거부와 함께 한발 나아가 노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출국 전에 대규모 장외집회를 갖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반면 소장파 의원들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에선 '해임건의안 제출 후 등원'을 주장하고 있고, 일부 의원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조건없는 등원을 주장하고 있다.
남 부대표는 "등원의 여부나 시기, 해임건의안 제출여부 등에 대해선 전혀 결정된 것이 없다"고 혼란상을 인정했다.
이처럼 내부 논란만 거듭되고 있고, 국회 파행 초반 '이 총리가 잘못했다'는 여론이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지도부로서는 부담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당내 혼란 수습에 실패해 파행이 장기화될 경우 김덕룡 원내대표의 지도력에도 위기의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마냥 강경론만을 고수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에 따라 남 부대표는 물밑협상의 난항을 거론하며 "여당이 변화된 상황에 대한 어떠한 제안도 하고 있지 않다. 상임위 배정 협상 때처럼 어떤 제안이라도 내놓으라"고 적절한 등원 명분 제시를 여당에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의 국회 파행에 대한 대응방침은 주말을 거쳐 8일로 예정된 의총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 "한나라당 없어도 국회연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상대적으로 느긋해졌다. 열린우리당은 주말을 거치며 국회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한나라당의 태도변화가 없을 경우 야3당의 협조를 얻어 8일에는 국회를 열겠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이해찬 총리의 '대국민 유감표명'으로 한나라당의 반발을 무마해 가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전병헌 원내부대표는 "어제 규탄대회 등으로 현재는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올라있는 상태"라며 "오늘, 내일은 냉각기를 갖고 주말을 기해 물밑 접촉을 통해 월요일에는 국회가 정상화되도록 여러 가지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영춘 수석부대표도 "월요일이면 국회 파행이 11일째가 되는데 처리해야할 민생현안이 산적해 있고 급변하는 국제 상황에 의회 차원의 능동적인 변화가 시급하다"며 "한나라당이 무조건 국회로 들어올 것"을 촉구했다.
김 부대표는 이어 "다음주에도 한나라당이 들어오지 않으면 다른 야당과 힘을 합쳐서라도 무조건 국회를 열 수 밖에 없다"고 강경 의지를 밝혔다.
김 부대표는 "양당 대표 차원에서는 물밑에서 얘기가 계속 되고 있다"면서도 "한나라당이 국회로 들어가자는 온건파의 목소리가 강경파에 잔뜩 눌려 있는데 원내대표가 회담에 나와 무슨 얘기 할 수 있겠냐"고 말해 파행 해결을 위한 공식적인 대표회담 등의 가능성은 일축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