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1일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노무현대통령은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일각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헌재 결정을 둘러싸고 앞으로 강한 정치적-법리적 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상당한 논란을 몰고올 게 확실한 이날 헌재의 결정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행정수도 이전 법안은 단순히 행정기관의 이전 수준이 아닌 국가의 수도를 이전하는 법률이다.
둘째, 현재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국민들의 의식 속에 확립돼 있는 관습 헌법에 해당한다.
셋째, 관습헌법이라 할지라도 개정이나 신설을 위해서는 정당한 헌법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넷째, 헌법개정 사안을 국민투표 등의 헌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서의 입법 절차를 거친 것은 위헌이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한다.
***1. 행정수도 이전은 사실상 '천도'**
첫째, 헌재는 '수도'라는 개념에 대해 "국가권력의 핵심적 사항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해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실현하고 대외적으로 그 국가를 상징하는 곳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헌재는 "특별법 제2조 1호,2호에서 규정한 '신행정수도'는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 행정기관들의 소재지로서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가 돼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특별법은 이전되는 주요 국가기관의 범위를 개별적으로 확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 이전 범위는 국가의 정치.행정 중추기능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정도가 돼야 함을 요구하고 있어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의 수도 이전을 의미한다"고 명시했다.
요컨대 현재 과천 및 대전에 제2, 제3 정부청사가 존재하고 국가기관은 필요에 따라 법률에 의해 이전할 수 있지만, '신행정수도특별법'은 단순한 행정기관의 이전 수준이 아닌 '천도'를 의미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정치.사회.문화.경제.역사적 '관습헌법'**
첫째 해석에 기초해 헌재는 둘째 '수도'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이는 '관습헌법'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헌재는 우선 관습헌법(불문헌법)에 대해 "우리나라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이나 성문헌법이라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불가능하고 또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식적 헌법전에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이라도 이를 불문헌법이 내지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소지가 있다"고 전제했다.
헌재는 이에 따라 '수도'에 대해 "수도를 정하는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의 하나"라며 "수도를 설정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국회.대통령 등 최고 헌법기관들의 위치를 설정해 국가조직의 근간을 장소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서, 국가생활에 관한 국민의 근본적 결단임과 동시에 국가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는 핵심적 헌법사항에 속한다"고 헌법적 개념을 정의했다.
헌재는 또한 '서울'에 대해서도 "헌법전상으로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의 조항이 존재하지 아니하나 서울은 사전적 의미로 바로 '수도'의 의미를 갖고 있고, 1392년 조선왕조가 창건돼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진 이래 6백여년간 전통적으로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해 불러온 것"이라며 "대한민국 성립 이전부터 국민들이 이미 역사적.전통적 사실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어 "대한민국 건국에 즈음해서도 국가의 기본구성에 관한 당연한 전제사실 내지 자명한 사실로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될 수 없었고, 그 후 수차례 헌법 개정이 있었지만, 서울이 수도인 것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로서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수도 서울'의 헌법적 의미를 부여했다.
헌재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해방과 건국 이후 현재까지의 서울의 역사적 수도성 유지에 대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많은 설명을 하기도 했다.
***3. '수도 서울' 관습헌법 폐지 위해선 헌법개정 절차 따라야**
셋째, 헌재는 이렇게 '수도 서울'이 관습헌법 사안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뒤,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못 박았다.
헌재는 "헌법규범으로 정립된 관습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흐름과 헌법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에 대한 침범이 발생하고 나아가 그 위반이 일반화 되어 그 법적 효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상실되기에 이른 경우에는 관습헌법은 자연히 사멸된다"면서도 "사멸을 인정키 위해선 국민에 대한 종합적 의사 확인이 있어야 하나, 이 사건의 경우 사멸의 사정이 확인되지 않아 이를 폐지키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개정 절차에 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4. 국민투표 실시해야**
마지막 넷째, 이같은 논거에 기초해 헌재는 사실상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해 '천도'임을 인정하고, 지금의 '수도 서울'에 대해 관습헌법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한편, 효력이 상실되지 않은 관습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성문헌법과 같은 헌법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곧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수도이전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헌재는 "수도의 설정과 이전의 의사결정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결단해야 할 사항이고,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라며 "헌법개정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수도를 충청권 일부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개정사항을 헌법보다 하위의 일반 법률에 의해 개정한 것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결국 "헌법의 개정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하므로 국민은 헌법개정에 관하여는 찬반투표를 통해 그 의견을 표명한 권리를 가진다"며 "'신행정수도 특별법'은 헌법개정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의 행사를 배제한 것으로 국민투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행정수도 이전에 관해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청구인측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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