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던 여성을 어머니로 둔 다섯 살 배기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가 일하는 밤 동안 길거리에서 놀다 잠이 들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낯선 사내가 그 아이의 속옷을 벗겨 내리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 일은 당시 그 지역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뒤 성매매지역 여성들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용산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혼자 상담활동을 벌이던 이옥정 대표(57)는 국내 첫 성매매피해여성 지원단체인 '막달레나의 집'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이 대표는 미국인 문애현(요안나) 수녀와 함께 1985년 7월22일 '막달레나의 집'을 열었다.
그간 연인원 6천6백여명의 여성들에게 일시 보호 및 자활지원 사업을 제공하고 또 '베론글방'이라는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교육 사업을 벌여온 이 집이 설립 20년을 앞두고 어려움에 처했다.
***용산 뉴타운 개발, 시설 낙후로 이사 불가피**
현재의 집이 용산지역 재개발 정책으로 더 이상 재계약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한 뉴타운 개발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주인이 집을 팔기로 해, 15년 만에 갑작스레 이사를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현재의 집은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되는 낡은 주택으로 더 이상의 개보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비가 새 누전의 위험이 있고 최근에는 건물 지붕의 처마가 갑자기 내려앉는 일도 있을 정도다.
또 막달레나의 집이 자활지원사업을 계속하려면 지난 3월 제정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가 제시한 시설 기준을 갖춰 '일반지원시설'로 등록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반드시 지금보다 훨씬 큰 집으로 이사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집에서 그간 해오던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쉼터, 자활지원사업, 상담활동을 위해선 90평(전체면적 301.95㎡) 정도의 단독 주택으로 옮겨야 한다.
또 이들은 용산을 떠날 수 없다. 명절과 부활절에 떡국과 달걀 등을 돌리고, 건강정보 등이 담긴 소책자를 나눠주고, 성매매 여성들과 같이 휴가가고, 그녀들의 장례식을 치뤄주며 함께 부대끼는 사이, 막달레나의 집은 용산의 성매매 밀집지역 사람들과 친근한 이웃이 됐다. 따라서 용산을 떠나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성과의 상당부분을 포기해야하는 것이다.
***전세금 등 3억2천여만원 필요한데 가진 돈은 5천여만원**
하지만 용산에서 이런 집을 구하기엔 현재 가지고 있는 전세금 5천2백만원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사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용산 지역에 적당한 집을 봐 놓긴 했다. 집 주인의 호의로 5년간 임대할 것을 약속받아 놓았지만 당장 3억원이라는 전세비를 구할 길이 막막하다.
또 전세금 외에도 가구 등 기자재 구입비와 일반 주택을 상담과 교육 등이 가능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시설 보수비 등도 2천만원 가까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에 어려운 사정을 알렸지만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아직까지 나서는 곳이 없다고 한다. 기자가 막달레나의 집을 찾은 지난 16일에도 이옥정 대표는 후원금을 모금하러 지방에 내려갔지만 이 집 식구들의 힘만으로 그것도 빠른 시일 안에 마련하기는 역부족이다.
***아름다운재단과 '새삶터 마련 후원금' 공동 모금**
앞이 캄캄한 상황이지만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의심하던 일들이 지난 20년간 쉽진 않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이뤄졌고, 그러기까진 마음 따뜻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지난 2002년 경기도에 중장년 성매매 여성들의 장기 쉼터인 '시골집'을 지을 때도 그랬다.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이 시골에 장기 쉼터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2001년 서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교외에 2백여평의 부지를 확보해 놓고도 집 지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할 때, '시골집'이 진짜로 만들어질 거라는데 다들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 '시골집'이 만들어지고 2002년 1월에는 김수환 추기경까지 찾아와 막달레나 집 식구들, 또 용산 지역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축하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현재 시골집에선 중.장년 여성, 그리고 장애 여성 5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퍼주기 좋아하는 이집 식구들 성격 때문에 원가보다도 싸게 판 셈이 됐지만 한과, 선식 등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막달레나의 집 가족들이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지난 1일부터 아름다운 재단 홈페이지(www.beautifulfund.org)에서 진행되고 있는 막달레나의 집 이주비용 지원을 위한 긴급 SOS 모금인 '햇살 고운집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7백만원 넘게 모금했다(온라인 모금 4백40여만원, 오프라인 모금 3백여만원).
모금을 시작하자마자 서산여중 3학년 9반 학생들이 "기부하는 금액은 얼마되지 않지만 소중한 곳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한다"며 "햇살고운집 멋있게 만들어 달라"고 용돈을 모은 3만6천4백10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막달레나의 집에서 하는 일은**
최근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이 여성들에 대한 자활지원사업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막달레나의 집이 지난 20년간 활동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 집의 자활지원 프로그램을 거쳐 가는 사람만도 한 해에 1백20여명. 현재 이 집에는 8명의 여성이 머물면서 자활교육을 받고 있고 이중 20대 여성 5명이 집중적으로 일자리 제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검정고시나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와 함께 진행되는 자활교육은 피해 여성이 서로를 지지집단으로 만드는 '동료교육', '경계허물기'등 자기치유와 표현ㆍ소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일자리제공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돼있다. 미래가 막막한 여성들이 자존감 형성을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여성들 간의 불화와 알력이 쉼터와 업소를 들락거리게 한 중요 요인인 만큼, 새로 도입된 '동료교육'은 힘든 공동체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막달레나의 집에선 지난해 이런 초기적응 프로그램을 거친 여성들을 대상으로 '꼴통공주들'이라는 퀄트 판매 프로젝트를 수행해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동료교육을 수행한 여성들에게 '성매매 피해 여성의 전업과 취업에 관한 설문조사'를 기획.작성, 직접 전국의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이 보이는 변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고 백재희 기획팀장(35)이 말했다. 취합된 설문 조사의 코딩 작업을 하며 한 여성은 "언니, 나 사장님 된 것 같다"는 말로 뿌듯한 마음을 대신했다고 한다.
올해 자활교육을 받는 여성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자기경영워크샵을 통해 만난 교수, 여성 CEO들과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4주 동안의 인턴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무역회사, 복지재단, 의상연구소 등에서 인턴과정을 통해 취업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프로그램이다.
백재희 팀장은 그간 막달레나의 집의 사업을 통해 얻어진 자활지원사업의 몇 가지 원칙에 대해 얘기했다.
우선 당장 가시적인 성과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라는 것이다.
백 팀장은 "성매매 여성들은 얼핏 보면 거침이 없지만, 상처가 많고 자존감이 낮아 대화와 협상에 서툴다. 사실 피해 여성들의 취업 전에는 수많은 단계가 필요하다"며 치유와 교육을 함께하는 단계적인 자활지원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성들의 자활노력이 알려져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돼야 한다"며 "성매매 여성들에게 자신이 숨어 지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녀들의 고통이 결국 사회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지, 업소 탈출 후부터 자활지원을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은 새집으로 이사가게 되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자활지원과 상담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퀼트 제작 사업인 '꼴통공주들'과 같은 창업체험 프로젝트를 계기로 자활지원 프로그램을 좀더 다양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등 계획하고 있는 일들도 많다. 이들이 새집을 마련해 지난 20년간 지속된 희망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새 삶터 마련 후원 안내**
후원 계좌 외환은행 119-13-08262-3(예금주 막달레나의집)
후원 문의 02-798-6386 magdalen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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