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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옳은 길 아니면 가지 않는다”

난무하는 정계개편설의 뇌관, 박근혜 부총재 탐구

정치권에는 별의별 소문들이 다 떠돌아 다닌다. 대부분은 밑도 끝도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들이다. 한 두 단계만 거슬러 올라가면 금새 거짓임이 들통난다. 그런데 서너 다리를 건너가도 꼬리를 무는 얘기가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를 둘러싼 얘기다. 대선정국이 본격 도래하면 박부총재가 모종의 역할을 하리란 얘기다. 까놓고 얘기해서 그가 이회창총재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관측이다. 주로 여권 주변에서 그런 소문이 많다.

얼마 전에는 자민련에서 나왔다는 ‘JP대망론’에도 이름이 등장했다. 자민련이 JP후보를 전제로 박부총재를 영입해 차기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시키자는 구절이 있었다. 민주당에서 만들어졌다는 문건에도 그와 비슷한 대목들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당의 핵심임을 자처하는 인사들의 얘기는 보다 구체적이다. 얼마 전에는 김대중대통령이 여당 대권후보의 문호를 개방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바로 박부총재가 영입 대상중 하나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보도됐다. 한나라당 의원임에도 언론에는 그의 실명이 거론됐다.

박부총재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박부총재가 파괴력 높은 인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박부총재의 처신에 문제가 있거나다.

그러나 일단 후자는 아닌 것 같다. 필자는 박부총재만큼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 정치인도 만난 적이 없다. 일단 사람을 대면했을 때 그는 완벽에 가까운 처신을 한다. 몸가짐이나 말 한마디 모두가 그렇다. 웃을 때도 이빨을 보이는 적이 한번도 없다. 무릎에 놓인 내프킨으로 가리거나 그럴 시간적 여유 없이 웃음이 터질 때면 손으로라도 입을 막는다. 그마저도 안되면 아예 웃음을 참는 사람이 바로 박부총재다.

술도 안 마신다. 아마도 술을 입에도 안 대는 유일한 정치인일 것이다. 말 또한 마찬가지다. 한 시간을 얘기해도 뉴스가 될만한 건덕지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문서답을 하거나 선문답을 하는 게 아니다. 입고 있는 옷이 좋아 보여 “어디서 옷을 해 입느냐”고 물은 적 있다. 박부총재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해서 도움이 안될 말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박부총재의 집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삼성동의 단독주택이란 것 밖에는 대부분이 모른다. 본인말로는 스토커가 있어서 집주소를 안 밝힌다는 것이다. 국회수첩에도 대구 지역구 주소만이 명기되어 있다. 이쯤이면 박부총재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인가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박부총재를 여권이 탐내는 이유는 자명해 진다. 그가 지닌 파괴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정치판의 돌아가는 모습은 뭔가 판이 바뀌는 국면이다. 대통령의 여당후보 문호개방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 김윤환 민국당대표가 있다. 의석 두개 짜리 꼬마 정당의 대표지만 최근 그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도 몇 번을 만났고 YS, JP도 만났다. 여권 실세와는 수시로 만나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고 있다. 그의 생각이 옳고 그름과 그의 구상이 성공하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지만 실상이 그렇다. 그는 박부총재의 정치입문을 결정적으로 도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박부총재에 대한 여권의 영입 필요성을 거침 없이 말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한마디로 ‘영남대통령에 호남정권’이다. 민주당이 주축이 되어 영남 출신 대통령을 만들어야 차기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호남표 대부분과 영남표 일부를 묶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대상 인물은 뻔하다. 여권의 김중권, 노무현, 이수성, 야권의 최병렬, 박근혜씨 등이 그가 꼽는 인물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득표력이 높은 사람이 박부총재라는 게 김대표의 주장이다. 그럴 경우 JP가 적극 나설 것이요, YS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미 YS는 박부총재를 상도동 자택에서 만난 적이 있다. 김윤환 대표의 주선에 따른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의 만남을 만족해 했다.
 
김대표는 “DJ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며 “박부총재가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 동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위해 민주당 자민련 한나라당 일부를 포함하는 신당을 만들자는 게 이른바 허주(虛舟) 구상이다.

물론 실제로 신당이 만들어질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김대표 구상대로 신당이 만들어진다 해도 대통령후보가 누가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로 남을 것이다. 엄청난 곡절이 있을 것도 눈에 선하다.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박부총재가 여당으로 실제로 가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부총재 자신의 의사다. 박부총재는 JP 대망론이 나왔을 당시 신당창당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념 같은 것이 도저히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떠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도, 자신의 탈당가능성은 일축했다. 이때만 해도 실은 허주구상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얘기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필자가 직접 만나 좀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여권에서 엄청나게 박부총재를 탐을 내는 것 같은데 어떤 상황이 와도 한나라당을 탈당하지는 않을 것인가요." 박부총재는 직답을 하는 대신 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지도자의 길을 가르치셨어요. 그중 첫 번째가 ‘옳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것이에요. 저는 한번도 그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옳고 그름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일단 자신의 탈당가능성은 일축한 것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박부총재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박부총재가 몇 번에 걸쳐 펴낸 일기형식의 자전적 에세이를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책임을 중요시하고 의리를 중시한다. 책임은 5년에 걸친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통해 배운 그의 기본 생활철학이다. 1974년 9월16일자 일기에는 "책임,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이라 적혀있다. 의리는 박정희 전대통령 사망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느낀 배신감에 대한 반작용의 철학이다.

1989년 11월3일자 일기를 보자. "아첨을 잘하고 간사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얼마나 속기 쉬운가. 그러나 그 달콤한 얘기들은 결국 독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퍼져 멸망을 가져오는 힘을 갖고 있다."

그는 같은 해 한국일보 장명수 당시 부국장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말을 했다. "시류 따라 소신을 바꾸고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정치를 하겠습니까."

장담하긴 어렵지만 박부총재는 여당의 대통령후보나 차기 정권의 국무총리 자리를 준다 해도 한나라당을 떠나진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회창 총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이총재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피한다. 격식과 예의를 갖춰 꼭 필요한 언급만 한다.

박부총재와 관련된 소문을 이총재라고 해서 모를 리 없다. 이총재는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 기회있을 때 물어본 적이 있다. "박부총재가 탈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총재는 정색을 하고 "저는 누가 뭐라고 하든 그들의 말보다는 박부총재를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총재도 항간의 소문을 의식했음인지 추석연휴 기간 중 박정희 전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그것은 박부총재에 대한 믿음의 표시라고 이총재의 핵심 측근은 전했다.

공주병이란 별명을 가진 박근혜 부총재. 그는 필자의 질문에도 굳이 자신이 공주병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주이기에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누구보다도 도리를 지키고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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