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있는 자신의 경선캠프격인 자치경영연구회에서 만난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의외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침 이날 모 석간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경선의 경쟁상대인 이인제 최고위원과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것으로 나왔음에 불구하고 여유 있고,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측근들이 모습도 의외로 차분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치과 치료 관계로 인터뷰시간에 늦어지자 황급히 들어와 정중히 사과하는 모습은 친근한 이웃과 같은 노 상임고문 특유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정관용 에디터가 진행한 이날 인터뷰는 1시간30분동안 계속됐다.
프레시안 : 부산에서 경선출마를 공식선언하셨는데.
노무현 : 공식선언은 아니고 내가 늘 하던 말을 했는데 언론에 공식선언이라고 보도됐다. 사실은 일종의 출정식이었고 그때 출마하겠다고 새삼 밝힌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최근 선거에 계속 낙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결심했고,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노무현 : 한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은 오래됐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느냐’는 문제 때문에 결심을 못했다. 그 가능성이 상당히 확인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번 총선 과정에서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그때 내가 부산에 내려간 이유는 ‘더 이상 동서가 분열돼서는 안 된다’, ‘정치의 동서통합을 꼭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호남당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한 인간으로서는 영남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나의 특수한 위치 때문이다. 비록 세 번 떨어졌지만 중요한 시대적인 과제를 수행하는데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부산 시민들에게도 총선 도전의 의미를 대선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대선 도전의 꿈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떨어진 다음 날부터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내가 부산에서 출마하고 떨어진 것에 대한 여러 가지 긍정적 평가들이 나왔다. 이를 보면서 내가 정치인으로서 배제되지 않고 계속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지난 총선 부산에 나서며 대권뜻 밝혀**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로 전당대회와 입각이 있었다. 두 가지 선택을 놓고 어차피 최고위원은 한번 했기 때문에 행정 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당내 (최고위원) 경선에 불출마하면서 사실상 (대선출마) 희망을 표시한 것이다. 금년 초 한겨레신문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내가 1위를 했다. 이것이 구체적인 계기가 됐다.
프레시안 : 동서통합 외에 대통령이 되기 위한 목표는?
노무현 : 나는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 주어진 과제가 바로 다음 대통령이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고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오늘의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걸어온 길과 정치적 기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하자없이 이어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 시기에 많은 과제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동서통합이 가장 중요하다. 동서통합 없이 개혁없고, 개혁 없이 진보도 없다. 동서통합은 합리적 정치가 가능하도록 만들 토대다. 합리적 사고와 행동양식이 보편화돼야만 개혁과 진보가 자리잡을 수 있다.
나는 영.호남에 함께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전국 어디에서나 지역적 거부감을 갖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 당장 한 두건의 정치적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십년 넘게 똑같은 정치적 과제를 가지고 투쟁해 온 결과다.
***이인제-이회창 대결은 극심한 동서대결**
그저 부산에서 세 번 떨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역 분열구도에 도전하면서, 또는 당내에서 계속 비주류 대우를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야당을 고수하고 내 고향에 정치적 뿌리를 박기 위해서 도전했다. 부산에서도 당선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자신이 동서통합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사람이며 민주당내 다른 경선주자 후보들 가운데는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노무현 : 그렇다. 터놓고 이야기 하자. 이인제씨와 이회창씨의 대결로 가면 다음 대선은 극심한 동서 대결로 갈 수 밖에 없다. 쌍방에서 지역갈등을 부추길 것이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전국적 대통령으로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 어떤 정치적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누가 더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를 넘어선 문제다. 이렇게 되면 한국 정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프레시안 : 내년 대선과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분리될 수 없지 않느냐. 지금 민심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노무현 : 반드시 이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다음 대선 결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통령을) 과거에 대한 평가로서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선택할 것이냐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야간에 상당히 안정된 정치를 하고 있고, 여야간에 정책적 차이만 있지 그들이 그려내는 미래가 특별히 다르지 않다면 과거에 대한 책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양당에서 그려내는 미래의 성격이 현저히 다를 때는 과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고 선택할 것이다. 이 다음 대선에서는 과거에 대한 평가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프레시안 : 그 말은 만약 민주당의 후보로 나가서 대통령이 된다면 그 정부는 지금의 김대중 정부를 그대로 계승하는 정권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노무현 : 그렇지는 않다. 나는 오늘날 민주당이 추구해온 철학, 노선, 정책 때문에 민심이 이반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책적 방향은 민주당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만 그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너무 많았다. 또한 정치운영의 리더십 스타일, 정치문화를 구성하는 정치운영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으며, 개혁과정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피해의식과 저항이 또 하나의 전선을 형성했다.
***현정권 노선은 계승, 정치문화는 극복**
나는 민주당의 철학과 노선은 확실하게 계승한다. 그러나 양김시대의 정치문화는 극복의 대상이지 계승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정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문화의 문제이다.
프레시안 : 현 정권과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다? 표현이 추상적이어서 국민들이 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가.
노무현 : 오히려 국민들이 좀더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읽어나간다면 ‘이대로만 해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국민들에게 공허감과 실망감을 주는 것은 정치문화 때문이다. 예를 들어 권위적이라든가, 어떤 인사문제에 있어 폐쇄적이라든가, 수직적인 정치운영과 의사결정 과정 등이 문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분권적, 수평적, 개방적 리더십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다. 나는 민주당의 정책과 노선을 개선, 발전시키고 기존의 정치문화를 극복해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프레시안 : DJP 공조가 깨진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노무현 : 담담하게 현실로 받아들인다. DJP 공조가 좋은가, 따로 서기가 좋은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문화, 소위 ‘거래의 정치문화’는 공조를 해도 엄청난 역기능이 있고, 공조를 안 해도 여소야대 정국을 꾸려나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정치문화의 수준은 어디로 가나 순탄하게 운영되기 어려운 수준에 있다.
프레시안 : ‘거래의 정치문화’가 어떤 의미인가.
노무현 : 모든 정치 행위가 이해관계로 결정되지 않느냐. 적어도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모든 정치적 행동은 대의명분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오늘날 대의명분, 즉 옳고 그름, 국익 등으로 정치적 흐름을 설명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당연히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사람이고 이상주의자로 따돌림 당한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대의명분이 없다.
***현정권 레임덕현상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이해관계만 있는 정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인들이 행동하는 것에 대해 대중적인 분노가 없는 나라이다. 여기에 ‘DJP가 공조하면 어떻고, 안하면 어떠냐’ 이렇게 냉소적으로 말하고 싶을 만큼 한국의 정치문화와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은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DJP공조가 왜 나쁜가? 다 그렇게 했다. YS가 그렇게 해서 대통령되지 않았는가? YS가 명분을 버리고 대통령 되기 쉬운 권력의 길을 선택해 대통령이 됐지만 한때 국민적 지지가 90%로 올라갔던 그런 나라 아니냐. 그러니까 DJP가 나오는 거고, 이회창씨의 신한국당 입당이 나오는 것 아닌가. 어떻게 이회창이 신한국당에 입당할 수 있나. 그는 김영삼 정권의 초법적인 권력행사에 반기를 들어 인기를 모은 사람이지 않은가. 국민들이 이회창씨를 지지해줬던 것은 묵시적이나마 법치주의에 대한 강한 희망이었다. 근데 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현실적 세력을 쫓아간 것이 아니냐.
프레시안 : 김대중 정부의 임기가 1년 반 가까이 남아있다. 노 고문이 평가하기에 레임덕 현상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노무현 : 심각하다. 지금 대통령 국정평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잘 한다’는 의견이 20% 미만이다. 또한 절반 넘는 사람들이 ‘다음 대통령은 이회창 총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공직사회 문화가 법과 원칙, 소신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아왔던 습관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없을 땐 비록 불법적인 일이라도 기꺼이 승복하는 등 무한대로 충성을 바쳐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달라진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와 의식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공직자들이 권력의 풍향에 민감하다. 따라서 지금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권력에 줄을 대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이런 저런 정권의 약점이나 문제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아무 제한 없이 흘러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런 구조의 소산이다.
하물며 이런 권력 이완의 구도 속에 지역적 정서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역이 딱 갈라져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기회를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고향에 따라 분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시 통제가 얼마나 충실히 이행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더 심각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현 정부에 대한 형편없는 지지율과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노무현 : 여당의 한 사람으로서는 기본적으로 여당의 국정운영에 여러 가지 모자람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번에 이회창 총재가 정권을 잡았더라면 지금 김대통령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라.
***우리가 처한 정치적 환경이 문제의 본질**
앞에서 내가 인용한 똑같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금 이회창 총재가 잘하고 있다는 의견은 한 자리수이다. 야당의 총재로서도 한자리 수인데 그 분이 대통령을 맡았더라면 과연 어떻게 됐을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보다 훨씬 더 일찍, 훨씬 더 바닥에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 현 정권이 심각한 위기라는 사실은 여권도 알지 않는가. DJP 공조도 깨졌고... 때문에 당.정.청 개편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당.정.청 개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노무현 : 나는 당.정.청 개편에 아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인사를 보아왔지만 김영삼 대통령 이래 어떤 인사도 박수를 받은 적이 없다. 이번 인사도 박수를 못 받은, 상당히 폐쇄적인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사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노무현 : 우리가 처해있는 정치적 환경이다. 앞에서 이회창 총재가 맡았을 경우를 비교했었는데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와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에서 가장 무능한 정치인인가. 아니다. 그 나름대로 법조계에서 가장 우수했다고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 이회창 총재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야당에서 가장 우수했다고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그러면 ‘누가 했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인가’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고 여기에서 정치적 환경론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분석해 가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다음 번 대통령에 김대중 대통령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 훨씬 더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니까 조금씩 변하겠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다음에 지도자가 되는 사람도 이 문제에 대해 좀더 깊이 분석하고 대안을 가져야 한다.
프레시안 : 지난번 당.정.청 개편 이후 당내에서 계속적인 분란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김근태 최고위원의 동교동계에 대한 비판이고, 한화갑 최고위원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노무현 : 나는 당내에 지도부의 결정과 그에 대한 비판이 공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반드시 결판을 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대통령과 현실적인 당 지도부가 주도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은 김근태 최고위원이 발언하든, 내가 발언하든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지도부 비판, 초재선 목소리로 족해**
그럼 성과는 없고, 투쟁과정에서 자기 스스로 엄청난 상처를 입거나 당에 부담을 지우는 일이 현명한 것인가. 나는 지금 상황에서는 초.재선 의원들의 비판의 목소리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 시대는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의 리더십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에는 한국의 리더십 스타일이 현저하게 바뀔 것이다.
프레시안 : 민주당 안에서도 정계개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고 새로운 미래를 찾자고 뛰쳐나올 수도 있고 이것이 자극제가 돼서 한나라당의 다른 의원들이 나올 수도 있으며 이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당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는가.
노무현 : 그렇다. 지역주의는 국민들의 정서다. 이 정서를 어떻게 설득해 나가야 하는데 논리적 설득으로 되지 않는다. 아주 복잡한 역사와 정서적 이해관계가 결합되어 있다. 민주당에서 누가 떨어져 나오고 한나라당에서 누가 떨어져 나와서 지역세력과 겨룬다 해도 (떨어져 나갈 가능성도 낮거니와) 성공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호남의 욕구도 영남의 욕구도 충족될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냐. 다음 대통령 선거 개표하는 날, 당선된 한 사람을 놓고 호남에서도 자기가 이긴 기분에 박수치고 만세 부르고, 영남에서도 박수치고 만세 부르는 것이 통합정권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여야 개혁세력의 이탈을 통한 정계개편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데, 그렇다면 JP가 떨어져 나오고 YS를 만나고 그 배경에 허주가 움직이고 있다는 설들이 분분하다. 허주는 영남권의 누군가를 내세워서 새로운 당을 만들 구상이라는 얘기도 있고, 이런 식으로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계 개편의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
노무현 : 나는 뭉쳐지지 않는다고 본다. 과거에 민국당 실험으로 이미 끝난 것이다. 민국당 실험으로 지역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 나와 있지 않은가.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묶어서도 안된다. 우리 역사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민주당 후보되면 정계재개편 제안**
앞으로 정계개편의 방향은 민주세력, 개혁세력이 하나로 뭉쳐서 소위 21세기형의 정책대결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김대중 정부 하에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됐다. 다음 민주당 리더십은 이것을 추구해 가야 한다. 민주당은 이것을 해낼 수 있는 차기 주자를 세워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럼 다음 선거는 민주당, 한나라당 양당 구조로 치러지는 것인가.
노무현 : 내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면 국민들에게 정계재개편을 제안할 생각이다. 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여야구도가 호남 대 비호남의 지역구도로 확실하게 고착됐다. 이것을 다시 되돌려야 한다. 그러나 복원해야 한다고 해서 과거의 민주세력만 복원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민주세력과 개혁세력들을 모으고, 통합의 정치를 이뤄 나가야 한다고 결단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와서 민주당이 중심이 되든, 또는 중심을 어떻게 새롭게 건설하든 말하자면 민주와 개혁의 통합 정당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프레시안 : 이 제안을 국민들에게 하겠다는 말씀인데 후보로서의 공약이라는 말이냐.
노무현 : 그렇다. 내가 후보로 됐을 때다.
프레시안 : 그런 재결집의 중심은 그럼 민주당 후보 노무현인가.
노무현 : 그렇다. 노무현이 중심이다.
프레시안 : 경선에서 예상되는 구도가 어떤가.
노무현 : 대체로 노무현, 이인제 양자 구도가 아닐까.
프레시안 : 이인제 최고위원을 동교동계가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노무현 상임고문은 대중적 지지도는 높지만 당내 지지도는 낮다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노무현 : 상식이다. 이인제씨의 독주시대가 일년쯤 계속됐고, ‘그것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대세론이 형성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당이 일시적으로 그렇게 기울어졌던 것일 뿐이지 궁극적으로 당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를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는 않는다. 흔히들 동교동 지원설이 나도는데 동교동이 그렇게 쉽게 결정할 만큼 가볍고 어리석지 않다. 또 동교동이 그럴 만큼 이인제 최고위원에게 발목 잡힌 일도 없다. (기자에게 되물으며) 발목 잡힌 일 없지 않느냐? 지금 현재 자유롭고 또 대단히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라고 본다.
***이회창후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
나는 우리 당이 경쟁력을 위주로 선택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당의 많은 중진과 의원들이 경쟁력을 중심에 놓고 가상 대결 등 끊임없는 조사를 통해 결정하리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엄밀히 분석하면 노무현이 ‘이길 수 있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대세론은 전혀 의미가 없다.
프레시안 : 지금 민주당 안에 어떤 계보가 있다고 보는가.
노무현 : 계보라기보다는 정치적 지향을 달리하는 정파들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프레시안 : 대선 경쟁력에서 노 상임고문이 앞서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누구나 다 노 상임고문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당내에 지향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있고 이 과정에서의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나.
노무현 : 예를 들면 97년 신한국당의 경선 과정에서는 확실히 이기는 구도 속에서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정파적 이해관계가 굉장히 많이 작용할 수 있었다. 우리 민주당도 정파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놓고도 자기가 희망하는 쪽으로 해석하는 편차는 있겠지만 97년 신한국당 경선 때처럼 선택의 여지가 넓지 않다. 지금은 위기상황이다. 이길 수 있는 선택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해석을 다르게 할 수는 있겠지만 선택을 달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경선을 통과한다면 본선은 노무현-이회창 양자 구도인가. 혹시 그 과정에서 민주당이 또 쪼개질 가능성은 없는가.
노무현 : 누구도 쪼갤 수 없다고 본다. 경선 이후에 쪼갠다는 것은 반칙을 의미하는데 국민들이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또다시 그와 같은 파괴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경선결과 승복, 탈당 안한다**
프레시안 : 노 상임고문이 보기에 민주당 내에서 이회창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자신뿐인데 민주당에서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 내려졌다면...
노무현 :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은 아니고 정보의 부족이라든지 정보의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내가 아주 철저히 설명하겠다. 대의원들에게 정확한 분석 자료를 제시하겠다.
프레시안 : 그렇게 하더라도 경선에서 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뛰쳐나가서 혼자 독자 출마하겠는가.
노무현 : 그거 안한다. 안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출전자격 여부에 대해서 시비가 있다면 미리 해야 되는 것이고 나는 이미 출전 자격 시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다면 경기 결과에 승복해야 된다.
프레시안 :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입장에 대해 많이 말했는데, 내년 대선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노무현 : 나는 통합으로 잡을 생각이다. 그러나 본인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과 국민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통합이고 이를 강조하겠지만 국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다고 본다. 그것은 새로운 리더십이다. 원칙의 리더십을 창출해 볼 생각이다.
프레시안 : 정치에 처음 입문한 것은 김영삼 전대통령을 통해서다. 김 전대통령은 언제 마지막 만났는가.
노무현 : 3당 통합 때 헤어지고 난 뒤에 의미 있는 만남은 없었다. 조우도 거의 없었다.
프레시안 : 지금 김영삼 전대통령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구상을 하지 않겠는가. 혹시 대선을 대비해서 김 전대통령의 어떤 지원을 바라는 마음은 없는가.
노무현 : 지원 여부를 떠나서 나는 그분을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중대한 공로자로 자리매김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좀 뒤늦었지만 화해와 연대의 악수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서통합을 위해서 연대의 악수를 했으면 좋겠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잘 안될 것 같지만...
***양김의 화해와 연대, 앞으로 하려는 일의 하나**
그래서 과거에 양김이 함께 했을 때 함께 싸워왔던 민주세력이 하나로 뭉쳐서 지역 구도를 극복하고, 새롭게 등장한 세력들과 함께 새로운 한국을 건설해 가면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싶다. 훗날 두 분이 돌아가시면 위패를 나란히 함께 모셔가는 것이 한국에 역사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지금 당대에 두 사람이 손잡을 수 있도록....
노무현 : 현재는 조건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 중의 하나다.
프레시안 :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만나자고 한 적은 있는가.
노무현 : 지금은 여러 가지 정치적 오해 때문에 말을 안 하고 있다. 그러고 이 분 성미가 워낙 독특해서 잘못 갔다가 뒤통수에 욕이라도 먹고 나올 것 같아서...(웃음). 말하자면 충분히 내 뜻이나 생각이 호의적으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 만나면 오히려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바깥으로부터 많은 오해도 생길 수 있다.
프레시안 : 이제 JP도 또 다른 변수인데 DJP 공조의 복원을 점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노무현 :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DJP 공조는 없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 다시 만난다면 우리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볼 때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이것이 당연한 정치적 현상이라고 우리 국민들이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난 끔찍하다.
나는 JP 개인이 정치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것보다 그런 적나라한 이해관계의 흥정,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서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손잡을 수 있는 정치문화는 이제 단절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DJP공조 복원은 없다**
프레시안 : 집권하시면 헌법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각제 문제라든지. 지금 선거가 매년 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등 말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
노무현 : 헌법 개정은 대통령이 정치적 상황을 무시하고 함부로 발의할 일이 아니다. 헌법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여러 가지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치구조, 권력구조가 그렇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제가 나빠서 우리 정치가 잘 운영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각제냐 대통령제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운영하는 우리 정치문화 수준의 문제다. 한국의 헌법은 내각제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뜻이 있다면 내각제적 실험을 많이 해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프레시안 : 내각제를 해볼 수도 있다?
노무현 : 내각제적 운영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왜 옛날에 의사당에서 명패를 집어던진 적이 있지 않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 (질문을 가로 막으며)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당의 지도자가 되거나 국가적 지도자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문화에도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야바위 같은 상황에 분개해서 명패를 던졌다. 지금 지도자를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생각해 보니까 그러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하고 후회한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은 인터넷 신문인데 인터넷은 평소에 자주 하는지.
노무현 : 관심은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일요일 저녁때 쯤 시간이 나면 한번 들어가 보는 정도다.
프레시안 : 자주 가는 사이트는 어떤...
노무현 : 대체로 내 홈페이지 가보기 바쁘다. 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주로 본다. 나머지는 결국 비서들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바쁜데 시간 내줘서 감사하다.
노무현 : 프레시안이 크게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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