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자민련 공동정부 붕괴에 이은 신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차기 대권을 놓고 고난도의 권력게임에 돌입했다. 먼저 YS, JP회동을 계기로 두 사람의 대권연대가 모색되고, 소수세력으로 전락한 DJ 역시 난국타개를 위한 음모에 들어갔다.
이들 3김은 김윤환 민국당 대표를 사이에 두고 끈끈하게, 또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공동 목표는 한나라당 ‘이회창총재 물먹이기’에 맞춰져 있다. 아울러 만만한 대권후보를 내세워 자신들의 정치적 수명과 영향력을 연장, 확대하려는 계산과도 직결되어 있다.
수십년 한국정치를 주물러 온 3김씨, 스스로 킹메이커를 자임해 온 허주, 부동의 야권 후보 자리를 장악한 이총재. 4金1李다. 1년 3개월 남은 대선까지 계속될 고난도 정치게임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속마음을 따라가 보자.
***DJP 결별, 다시 살펴 보면...**
DJP 결별의 표면적인 이유는 임동원 전통일장관 해임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차기 대권을 둘러싼 두 사람 간의 신경전이 도사리고 있다. JP는 공조를 깨겠다는 생각이 전무했지만, DJ는 임장관 해임을 요구하는 JP의 진짜 속셈은 여권을 무력화시켜 통합여당 대권후보를 쟁취하겠다는 저의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JP의 생각은 이랬다. 임장관을 ‘좌파’로 몰아 자진 사퇴시키면 방황하는 보수, 우익의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나아가 레임덕에 들어간 DJ를 설득해 민주, 자민련을 합당하고 통합당 총재는 물론 대권후보로 나선다는 것이다.
‘JP대망론’은 이 내용이 골자다. 자신이 여권 후보만 되면 구강유치 나는 이인제씨 등 민주당 소룡들을 충분히 제압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JP는 YS의 지지만 얻으면 이회창 무력화에 부심하는 DJ도 자신을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YS와의 회동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그러나 DJ는 JP의 이런 구상을 간파하고 임장관해임안 국회통과를 계기로 먼저 ‘공조파기’를 선택함으로써 그의 ‘대망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과정에서 YS는 JP에게 임장관 해임에 찬성하면 협조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흔적이 발견된다. 임장관 해임안이 자민련 지지 속에 통과되자 “JP가 역사에 남을 일을 했다”고 극찬 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동상이몽, JP와 YS**
JP의 계산은 DJ의 외면으로 불발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밥 먹듯 하는 DJP가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특히 그가 YS를 만나 ‘정치풍토쇄신’등 5개 항에 합의하고, 반(反)DJ 비(非)이회창 노선을 분명히 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JP로서는 ‘대망론’이 일단 탄력을 잃었지만 아직도 각 정파를 묶어 주도적으로 대권을 창출해보겠다는 생각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JP의 구상이 무엇이건 YS가 현실정치 참여와 영향력 행사에 앙앙불락해 온 처지에서 대권창출에 공동전선을 제의하는 JP를 마다할 리 없다. 더구나 두 사람이 이회창총재 배제에 의기투합한 상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동보조가 언제까지 그리고 어느 시점까지 계속 갈 것인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차기후보를 간택하는 문제에서 이견이 크다. YS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이인제씨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이씨가 김대통령을 압박해 후보를 쟁취하고, DJ와의 결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분명한 차별화’를 꾀한다면 그를 밀겠다는 생각이 있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이씨가 영남지역에서 배척당하고 있지만 자기가 나서면 어느 정도 만회도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반면 JP는 다르다. 일단 자신의 대권후보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 DJ와 막판 공조 부활의 희망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민련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을 다시 장악하고 DJ가 호남에서만 단체장을 배출하는 참패를 당하면, DJ는 결국 자신에게 손을 내밀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럴 때 YS와의 관계가 훌륭한 재산이 될 뿐 아니라 DJ와 YS의 관계개선까지 도모해 볼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JP가 임동원 장관 해임 이후에도 청와대를 향해 끝까지 공조파기를 선언하지 않은 것은 이런 심려 때문이다.
***허주(虛舟)가 요즘 바쁘다는데...**
3김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인물이 허주다. 요즘 그의 최대 정치적 목표는 ‘이회창 대통령 저지’에 있는 듯 하다. DJP 공조회복을 위해 청와대 핵심 인사를 빈번히 접촉하는가 하면 3김이 모두 동의하는 제3의 후보를 창출하기 위해 YS를 설득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는 최근 JP를 만난데 이어 그의 양해 아래 청와대 인사와 DJP 재결합을 타진했다고 한다. 여권이 분열되면 이총재에게 대권을 넘겨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디자인은 매우 대담하다. JP와 YS가 동의하고 DJ가 묵인하는 통합신당을 내년 지방선거에 앞서 2월쯤 창당해 전혀 새로운 인물을 대권후보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국정당’, ‘화합정당’을 내세우며, 민주당내 DJ 친위세력, 자민련은 물론 한나라당의 구 민정계, 민주계 출신들도 참여시킬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요즘 전두환, 노태우 두 전대통령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이회창 대통령’ 아래서의 구질서 대청산에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작업이 포함돼 있다는 설도 있다.
그가 구상하는 대안은 다름 아닌 한나라당 박근혜의원이다. YS와 JP에게 박의원을 천거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부분적으로는 공감을 얻었다는 얘기다. 허주가 박의원에게 YS를 만나도록 종용했고 실제로 박의원은 상도동 YS 집을 방문하고 상당히 고무된 표정으로 귀가 했다는 얘기도 떠 돌고,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허주와 YS는 아시아에서 여성정치지도자 출현현상을 박의원에게 설명하고 격려했다는 설도 있다.
허주가 반 이회창 전선구축에 혈안이 된 이유는 작년 총선에서 자신을 낙선시켜 결국 정치생명에 치명적 타격을 향한 이총재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남은 정치인생을 이회창을 손보는데 걸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구정권에서 저질러진 허주의 비리를 현 정권이 적당히 봐주는 조건으로 반 이회창 활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손가락질이 적지 않다. 수십억원을 공천의 대가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구속하지 않고,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무게를 더하고 있다.
***DJ는 무슨 생각을 할까?**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이회창 대세론이 굳어 가는데 마땅한 후보감은 떠오르지 않고 ‘이용호 게이트’다 뭐다 해서 진흙탕에 빠져 있다. 김정일 카드도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다만 그를 대리하는 권노갑씨의 움직임을 보면 확실히 이인제씨에게 기울 수 밖에 없다는 인상을 준다. 한광옥 대표가 바로 DJ의 이런 구상을 집행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이런 의도를 겉으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몸으로 경험한 그로서는 야당에 정권을 뺐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리라. 따라서 허주의 은근한 제안은 물론 YS, JP의 동향을 주도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허주가 주장하는 박근혜 의원 카드는 약간 일리가 있다고 보는 눈치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와대 실력자가 허주를 그리 자주 만날 이유를 발견하기 힘들다. 민주당이 한때 정.부통령제 개헌을 주장할 때, 부통령 후보에 박의원을 염두에 뒀던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DJ의 속뜻이 ‘호남정권, 영남대통령’이기 때문에 허주의 제안은 입맛이 당길 법하다.
그러나 오리지날 여당 소속이 아닌 야당 소속을 대권 후보로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박의원의 인기에 대해서도 자신 못하고 있다. 박의원을 내세울 때 여당내 소룡들이 수용하느냐의 문제에서부터 박의원이 과연 당선가능성이 있느냐는 본질적인 회의에 이르기까지 결심을 방해하는 요인이 너무 많다.
독자후보를 내세웠다 질 경우 그래도 민주당은 남는다. 하지만 외부 후보를 차입해 패하면 그나마 마지막 은신처도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현 단계에서 DJ는 일단 YS, JP의 동향과 허주의 구상이 현실화 될 수 있는지 지켜보면서 결심을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일단 두어 달은 허주의 구상을 마음껏 펼쳐 보도록 용인했다는 설도 있다.
***이회창의 창과 방패**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98년 8월 야당 총재로 복귀한 그날부터 세풍 대공세를 시작으로 만 3년간 여권의 고사작전에 시달려 왔다. 세풍에 뒤이은 총풍, 안기부 예산 전용 의혹 등 수 없는 스트레이트와 어퍼컷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권의 집요한 공격이 이총재에게 중상을 입히기는커녕 오히려 야당 총재로서의 위상만 높여준 측면이 있다.
게다가 작년 4월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의 위치를 확보한 순간부터는 부동의 야당 대권후보로 등극하게 되었다. 특히 여당의 정계개편 기도가 시도됐지만 단 한명의 야당 의원도 빼가지 못함으로써 이총재 대세론은 적어도 야당 안에서는 완벽히 착근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점점 확산되는 이총재 대세론을 여권이 저지하지 못하는 한 대권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의 위상을 역전시키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이총재로서는 1년 3개월 남은 대권까지의 긴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부자 몸조심’인 셈이다. 그에게는 DJ정권을 향해 가열차게 투쟁해 달라는 여론과 현정권의 소프트 랜딩을 유도해야 하는 두 가지 상호 모순적인 과제가 놓여 있다.
이총재가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대북 쌀 지원을 앞장서 주장하는 것은 정권과 싸워 봐야 지지율이 동반추락할지 모른다는 인식 때문이다. 추석에 느닷 없이 DJ에게 난(蘭)을 보낸 것이야말로 ‘싸우기 싫다’는 이총재의 속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연말부터 여권이 대대적으로 이총재 고사 작업에 착수한다는 설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JP, YS, 그리고 허주가 물밑에서 벌이는 신당 창당과 한나라당 분열시키기도 위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총재는 여권의 야당 파괴가 시작될 경우 한번 빼들었다 집어 넣은 ‘대통령 탄핵 카드’를 꺼내 들고 정권 타도투쟁을 벌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지지도 20% 미만의 정권이 모험을 해서도 안되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국난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인을 계속 여권에 보내고 있다.
DJ가 무리수를 쓰지 않고 공정한 선거 관리만 한다면 정치 보복의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유화적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JP의 경우도 해만 입히지 않는다면 동행할 용의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민련 와해도 불사할지 모른다. 이총재로서는 가장 까다로운 YS에 대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민주계를 이탈시켜 신당을 만들거나 이인제를 지지한다면 ‘3김시대 종료’를 정면으로 치고 나갈 것이다.
***누가 승리할 것인가?**
4金1李. 각자 노리는 바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부분적으로만 일치할 뿐이다. 정치판엔 ‘머리 속에 기와집 짓기’란 표현이 있다. 논리적 구상으론 누구든지 대권을 꿈꾸고, 권좌에 오르는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그림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상식에 맞아 떨어져야만 한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특정 개인이나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 도도히 흐르는 민심의 저류를 뒤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자기가 살아 남기 위해서 무리수를 쓰다 보면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게 정치판이다. 과연 누가, 어떤 전략이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 누가 승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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