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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아랍권 전체 원망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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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라크 파병, 아랍권 전체 원망살 것"

[대화] <4> 오수연 vs 정욱식, '이라크, 미국, 한반도'

***오수연 이야기**

"나는 포식자보다는 피식자가 되고 싶어. 음식이 되고 싶어. 순순히 먹혀들고 싶어."

소설가 오수연(40)씨는 소설 <부엌>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살기 위해 남을 잡아먹기 보다는 순순히 먹혀들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그가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전투기 위가 아닌 포탄이 떨어지는 땅 위에서, 폭격에 쓰러지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전쟁을 기록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사건이었다.

그는 명쾌하다. 지난해 3월 '이라크 반전평화팀' 일원으로 팔레스타인과 바그다드을 다녀온 오수연씨는 "정당한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전쟁이란 미사일이 쿵쿵 떨어지는 순간만이 아니다"라며 "전쟁 때문에 삶이 비틀리고 질식당하는 모든 과정이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한국도 전쟁국가며 우리도 전쟁 중"이라고 말했다.

반전집회에서 이라크로 떠나는 평화활동가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돌아온 날, 잠자리에 누워 떠오른 "넌 왜 안가냐"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이라크까지 다녀왔지만, 실상 그의 본업은 '소설쓰기'다.

오수연씨는 지난 1994년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현대문학 펴냄)이 현대문학 장편공모에 당선, 등단한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특히 1997년부터 2년간 인도에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먹는 행위를 통해 인간을 성찰한 연작 소설집 <부엌>(이룸 펴냄)을 출간했으며, 이중 중편 <땅 위의 영광>으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전쟁 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아부알리, 죽지마>(향연 펴냄)란 산문집을 낸 그는 정작 이라크에서 경험을 소재로 소설을 쓸 생각은 없다. 이라크에서 경험은 이미 그에게 삶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대신 그에게 '평화'는 그녀의 작품 활동에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그는 이미 평화를 향한 여정의 맨 앞에 서서 우리를 다그치고 있는 '평화운동가'이다.

***정욱식 이야기**

정욱식(32)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당황하곤 한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젊은 탓이다. 정욱식 대표와 대화가 진행되면서 처음의 당황스러움은 곧 놀라움으로 바뀐다. 국제 정치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냉철한 분석에 우선 놀라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대한 그의 열정에 다시 한번 놀란다.

정욱식 대표는 분단국이라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 평화운동을 확산시킨 몇 안 되는 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감을 변화시키고, 북한과 평화와 통일에 대해 기존의 통일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더욱더 도드라진다.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반이던 1998~1999년 북한 식량난과 지원 활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평화운동 단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결국 그는 1999년 9월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5년째 꾸려오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적 평화운동 단체로서 평화네트워크가 이뤄낸 성과는 눈부시다. 평화네트워크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가 가진 문제를 2000년 초부터 최초로 공론화하는 등 미 부시 정권의 등장 이후 한미관계,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급변하는 속에서 평화를 향한 지혜를 벼리고 실천을 이끌어 왔다.

특히 남북 화해 협력ㆍ탈냉전 시대에 맞는 외교ㆍ안보 전문가를 찾아보기 드문 현실 속에서 정욱식 대표는 평화운동가이자 '시민 전문가'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운동가는 곧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그는 평화네트워크 활동과 언론 기고를 병행해 왔고, <2003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 부시의 예방전쟁과 노무현의 예방외교>,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이상 이후 펴냄), <한반도의 선택 : 부시의 MD 구상 무엇을 노리나>, <전쟁과 평화, 21세기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이상 삼인 펴냄), <MD 미사일 방어체제>, <한반도 시나리오>(이상 살림 펴냄) 등의 책을 펴냈다.

지난 연말 한 신문사가 뽑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나갈 1백인'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한반도에서 또 세계에서 반평화의 상태가 지속되는 한 더욱 강력한 반전ㆍ평화운동을 벌여 모두가 평화를 만드는 당당한 주체가 되길 소망한다"고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이 가끔 큰 어려움이라는 정욱식 대표의 일손을 덜어주는 일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오수연-정욱식 이야기**

6월18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추가 파병 결정이 공식 발표된 다음날 진행된 대담은 서로 절망감을 공유하는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됐다. 그들은 시종일관 파병이 한반도와 우리 국민에게 큰 불행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욱식 대표는 "우리 정부의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이 궁지에 몰린 부시의 재선을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해 관심을 모았다. 정욱식 대표는 "현재 부시가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은 일방주의 외교 때문에 이라크 전쟁을 미국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파병은 부시에게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부여해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부시를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욱식 대표는 "현재 '한미동맹'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부시에게 있다"면서 "원활한 한미관계를 위해서는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는 것인데, 이번 '추가 파병'으로 부시의 입지만 살려줬다"고 지적했다. 정욱식 대표는 또 "현재 '한미동맹'은 사실상 '노무현-부시 동맹'"이라며 "이제 부시 이후 '한미관계'에 대해서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오수연 씨는 "당장 옆에서 전쟁을 안 하고 있다고 '평화 국가'인 것은 아니다"면서 "파병을 하고 또 그것을 막지 못하는 우리나라야 말로 '전쟁 국가'"라고 지적했다. 오수연 씨는 "이런 '전쟁 국가' 속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와 같은 평화를 위한 노력은 실체 없는 '현실주의'에 극복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라크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도 파병에 반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욱식 씨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전쟁을 준비하는 것, 전쟁을 지지하는 것 모두 평화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현실'이라고 수긍하는 상황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담 내내 계속된 추가 파병 결정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두 사람의 경고는 바로 다음 주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 세력에게 납치돼 살해되는 것으로 현실화되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두 사람은 "'효순이ㆍ미선이 촛불집회',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활동에서 평화를 향한 우리 시민사회의 역량을 확인하게 됐다"며 "희망을 잃지 말고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이것은 평화를 향한 여정의 맨 앞에 선 두 사람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우리 모두의 다짐이 되어야 한다.

이번 대담은 지난 19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1시간30여분에 걸쳐 진행됐다.

***"파병 결정, 절망스럽다"**

프레시안 : 어제(18일) '추가 파병 결정'이 내려졌다. 오수연 선생은 이라크에 직접 방문해 그 참혹한 실상을 증언했고, 정욱식 선생은 평화운동을 펼치면서 '추가 파병'에 반대해 왔는데, 참담한 심정일 것 같다.

오수연 : 2003년에 이라크에 직접 가서 보니까 너무 끔찍했다. 희망을 유지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파병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스럽다, 이런 게 아니라 절망스럽다. 누구나 다 안다. 이 전쟁이 아무런 명분도 없었고, 더구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포로 학대 사건도 있었고. 그런데도 그 실체도 불명확한 '국익'이라는 말로 파병을 강행했다. 이제 어떻게 희망을 유지하나. 살아야 하니까 희망을 유지하기는 해야 할 텐데.

정욱식 : 우리는 지난 세기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한국전쟁이라는 소위 '동족상잔의 비극'을 몸소 체험했다. 20세기 제국주의 시대, 전쟁의 시대, 분단의 시대를 겪으면서 가장 고통을 받아왔던 나라로서 이번 파병 결정과 관련해 얼마나 근본적인 성찰이 있었는가 안타깝다. 지난 세기 우리가 직면했던 반 평화의 상태, 지금 현재 평화의 소중함 이런 걸 염두에 둘 때 평화를 국가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역사적, 지정학적, 내부적 조건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편협한 국가주의나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 쉽게 굴복하는 현실이 많이 안타깝다.

가장 근본적으로 이라크에 파병을 하면서 정작 '이라크'는 사라지고 한미 동맹, 국내 정치 정쟁의 수준에서 파병이 결정됐다. 좀 다를 것이라던 정부는 계속 파병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평화개혁세력을 자임하던 열린우리당은 일개 거수기로 전락하고. 실망하고 절망하는 것을 넘어서 전쟁을 기획하고 강행하는 사람들보다 더 끈질기게 그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런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국익' 이유 파병, 아랍권 전체의 원성 살 것"**

프레시안 :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정작 이라크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에 동감한다. 오수연 선생이 현지 분위기를 좀 말해 달라.

오수연 : 이번 추가 파병 결정과 파병지를 보면 황당하기만 하다. 쿠르드 민족은 사담 후세인한테 혹독하게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미군과 같이 진격을 했었다. 쿠르드 민족은 이라크뿐만 아니라 인근 터키, 이란, 시리아에 다 퍼져있다. 자기 나라가 없는 민족이기 때문에 아랍권에서는 '불씨'와 같다. 이라크 내에서도 쿠르드 족과 이라크 사람들의 내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것은 그분들의 문제이고, 그분들이 해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라크를 도와주러 간다면서 앞으로 갈등이 예상되는 그런 곳으로 파병을 한다는 것인가? '국익'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아랍권 전체의 원성을 살 것이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 정책 결정권자나 정치인들이 아랍 사정에 무지한 것도 사실이다. 중동의 분위기는 어떤가?

오수연 : 세계 전체가 마찬가지지만 지금 중동에는 두 나라밖에 없다. 미국 편인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미국 편인 나라는 미국이 도와주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전 세계의 적이 된다. 그것은 단지 위협 수준이 아니라 살이 떨리는 실체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이라크로 가려면 요르단을 거쳐야 하는데, 요르단과 이라크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황무지와 현대 국가로 나뉘는 것 같다. 요르단이 특별한 주력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미국으로부터 받는 지원만으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는 미국이란 한 나라밖에 없구나, 이것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미국 말을 잘 들으면, 정부나 정치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북한 핵 문제'를 미국이 해결해 줄까?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한 나라인데. 떡 하나 줬다고 안 잡아먹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파병 결정, 한반도 평화에 도움 안 돼"**

프레시안 : 단기적으로 이번 '추가 파병' 결정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1차 파병' 때는 '경제적 실리' 얘기도 있었다.

정욱식 : 우선 남의 침략 전쟁의 부역자로 나서면서 나의 평화를 도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어이가 없고 부도덕적이다. 이번 결정은 부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아주 잘 못된 결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적 실리'와 같은 여러 가지 얘기를 하다가 '말도 안 된다'는 여론이 빗발치니까 "'경제적 실리'는 없다"고 인정했다. 사실 미국이 전쟁의 목적으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이루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더 많은 군사력으로 일시적으로 이라크 사람들을 억누를 수 있겠지만 '자유선거'를 한다면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한, 반미 정권이 등장할 것이 뻔하다. 그럼 미국이 구상했던 이라크 석유 확보나 친미 정권을 수립해서 중동 전체를 친미 질서로 재편하는 것은 상당 부분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파병이 '경제적 실리'와 무관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럼 한반도 평화에는 도움이 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명하면서부터 북한과 이라크의 상황은 맞물려서 돌아갔다. 미국이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만들어서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번 해 보자'고 나왔다.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라.

후세인 정권은 국제연합(UN) 결의안에 따라 사찰단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자기들 미사일도 폐기하고. 이러는 데도 미국은 '후세인 그 자체가 대량살상무기(WMD)'라면서 계속 침공의 명분을 쌓았다. 그런데 이 때 북한은 있던 사찰단을 추방하고, 미국에게 "우리는 핵을 갖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말 잘 듣는 후세인의 이라크는 침공하려 하고, 대드는 북한에게는 오히려 '평화적 해결' 운운했던 것이다. 부시의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데 대량살상무기가 관계가 없다는 근거를 제시한 게 오히려 북한이었던 셈이다.

***"이라크 사람들이 피 흘린 탓에 한반도 안전 보장된 측면이 있어"**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실 미국이 2003년에 이라크에서 종전을 선언 후 미국의 위세는 어마어마했다. 많은 이들이 한반도 상황을 굉장히 우려했다. 이제 미국의 다음 타격지가 북한이 될 게 뻔하니까.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을 증강하고, 북한에 대해 최후통첩을 던질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했다. 바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한반도를 구해준 것이 바로 이라크 저항세력이었다. 종전 선언 이후에 오히려 이라크 상황이 악화돼, 미군 사망자들이 늘어나면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발을 빼 한반도에 집중할 여건이 안 만들어진 것이다.

결코 우리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이라크 사람들이 부시의 발목을 잡아준 탓에, 이라크 사람들이 흘린 피를 통해 한반도가 그나마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라크 상황이 미국의 뜻대로 풀려 가면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에 대해서 강경 정책 일변도로 나갈게 뻔하다. 이렇게 미국 세계 전략의 맥락을 볼 필요가 있는데 파병을 통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한다는 자체가 대단히 비도덕적이고 또 비전략적인 발상이다.

오수연 : 이라크 사람들이 미국 부시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가? 지금 미군들이 몇 명 죽었다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미군 한 사람 당 이라크 사람은 열 명 이상 죽어가고 있다.

이러다보니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 민병대를 이끌고 있는 시아파 지도자 알 사드르와 같은 가장 극단적인 세력이 이라크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알 사드르는 작년까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알 사드르는 사담 후세인에게 처형당한 일종의 순교자인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등장한 선동 정치인이다. 그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편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 집단은 굉장히 위험한데, 학교 같은 데 들어가 여학생들이 히잡을 안 쓴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이런 그를 이라크 사람들이 다 따라갈 만큼 반미주의와 극단주의가 넓고 깊게 퍼져있다.

***"이라크 파병, 부시 재선 도와주는 꼴"**

프레시안 : 이라크도 그렇지만 미국도 사회 전체가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번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에 성공 못 한다면 대외 정책 전반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정욱식 : 그렇다. 한반도 향후 운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미국의 대선일 것이다. 많은 선거 전문가들이나 여론조사 결과는 일단 부시의 재선이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오수연 : 미국 대선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라크에 있을 때 미군들을 많이 봤다. 그들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큰일 날 나라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온 몸에서 풍기는 엄청난 자긍심, 반(半)장님처럼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 그런 게 미군의 언행이라든가 몰고 다니는 차라든가 이런 데서 드러난다. 꼭 화성을 정벌한 지구 특공대의 분위기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유색인들, 아랍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다른 문화에 무지하기 이를 데 없고 존중심이 전혀 없다. 그런 미군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공통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면, 미국의 여론이 어떻게 뒤집혀 부시가 재선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욱식 : 지금 미국 내에서 부시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비판은 '왜 미국 단독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느냐, 엄청난 인적·물적 비용을 미국이 치러야 하느냐, 부시의 일방주의 때문 아니냐', 이런 것이다. 이럴 때 한국이 '추가 파병' 결정을 했으니 부시 행정부는 이런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호재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한국의 파병 결정이 결과적으로 부시의 재선을 지원하는 꼴이 된 셈이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부시가 원하는 파병을 한국이 해주고, 이 전쟁은 미국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영국, 한국,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과 함께 한다는 식으로 정당화할 때, 이번 파병 결정은 부시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 쓰일 게 뻔하다. 지금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고, '한미 동맹'을 흔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부시 아닌가? 이런 부시의 재선을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꼴이다.

***"파병은 노무현-부시 동맹일 뿐"**

프레시안 : 정부나 정치인들의 파병 결정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드는 것이 '한미동맹'이다. 파병이 '한미동맹'에 기여한다는 논리이다.

정욱식 : 물로 '한미동맹' 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미국은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고, 미국의 눈 밖에 난 나라들이 여러 가지 고통을 겪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 오랫동안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도 사실이고. 이런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한미동맹'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것을 '절대선'처럼 떠받는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정부가 그런 측면에서 '한미동맹'을 현실 국제 정치 세계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한다. 다만 과연 지금의 미국과 친해지는 것이 공동체의 안보를 포함한 우리 이익에 부합할지는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다. 부시 이후,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보기에도 낯선 나라가 되어 버렸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권과 대외정책에서 갖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바로 '대미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3월 한·미 정상회담 때 MD를 거부했다. 우리도 지킬 게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판단한 것이다. 그때 정상회담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몇 번 실신할 뻔 했다고 하더라. 이것을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과 비교해보자.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지 않았느냐.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와 함께 북한 욕 하면서 친해졌다. 이런 식으로 한미관계 좋아지는 게 '국익'과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겠느냐?

더구나 지금 미국인의 50% 이상이 부시에게서 돌아서고 있는 실정이다. 부시 이후의 한미관계, 중장기적인 한미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한미동맹'이 아니라 '노무현-부시동맹'일 뿐이다. 만약 부시가 재선한 뒤 한미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번 '파병 결정'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테고, 그 때는 정말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걸 감수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지 갈림길에 설 것이다.

프레시안 : 파병하는 게 미국에 생색은 좀 나겠는가? 거기에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정욱식 : 맞다. 지금 정부나 정치인들은 파병을 안 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은 이런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잘 모른다. 지금 이라크 상황에서 한국군 파견으로 미국이 의도하는 반전이 이뤄질 리가 없다. 아까 지적했던 미국이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정치적 명분을 쌓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이 가장 크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전투병을 대규모로 보내는 게 아니면, 파병하지 말라',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냐. 미국이 원하는 것은 진짜 '한미동맹' 정신을 발휘해 공동 작전을 펴고 같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의도하는 파병의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 회의적이다.

***"미국에 대한 이중적 인식 극복 필요"**

프레시안 :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실린 <백화나무 숲속의 사냥꾼들>(이세방)이란 소설을 인상깊게 읽었다. 2004년에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뒤 결국 북한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뒤, 폭격을 앞둔 평양 거리를 묘사한 소설이다. 남한의 평화 운동가들과 대학생들이 인간 방패로 평양에 가는 등 지금 상황과 비슷했다. 공교롭게도 예비군 훈련을 가서 읽어 섬뜩했다.

생각해보면 이라크 위기라는 게 미국을 매개로 한반도 문제와 직결돼 있다. 부시 집권 이후 한반도 상황이 굉장히 불안정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은 전쟁에 대한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 평화에 대한 갈망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면 과거에 강박관념처럼 느꼈던 전쟁위협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불감증처럼도 보인다.

정욱식 : 외국 사람들이 아주 신기해한다. '전쟁이 날 수도 있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그렇게 태평하냐', 그럼 농담조로 '한 50년 정도 정전 상태에서 살아봐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자세를 체득한다'고 말하곤 한다. (웃음) 나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끔찍한 전쟁을 치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전쟁에 대해 불감증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게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에 전쟁을 겪었고, 북한의 남침 위협도 실제로 느꼈다. 그런데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남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남북 화해협력을 통해 상호불신도 줄어들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은 어찌됐든 지난 50년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준 존재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근데 지금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됐다. 굉장히 빠르게 상황이 변하면서 인식상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설마 미국에 의해서 전쟁이 일어나겠느냐, 이런 식의 믿음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미국의 실체를 접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이중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인 동시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 미국에 대한 모순된 이중적 인식을 어떻게 풀 것인가가 앞으로 중요한 숙제이다.

***"어떻게 국민들을 정권과 동일시할 수 있나"**

오수연 : 그러고 보니 이라크는 북한과 굉장히 비슷하다. 사담 후세인이 북한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바그다드 거리는 마치 평양 거리 같다. 사담 후세인은 정말 추악한 독재자였지만, 반미항쟁을 기치로 내세워 국민들을 탄압하고 억압했다.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국가, 국민이 바로 자기라며, 바로 자기를 지키는 게 이라크를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국민을 사담 후세인과 동일시했다. 그러니까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폭격을 가한 게 아니겠는가? 어떻게 국민을 그 정권과 동일시하는가? 거기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미관계에서 미국도 큰 문제지만 북한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그 체제가 어떤 체제인가? 김정일 정권,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한반도 전체를 인질 삼아 버티는 게 과연 정당한지, 한번 반문해보고 싶다. 전쟁이 없다고 평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인권을 억압하고 유린하는 일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정욱식 : 말씀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북한 인권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오늘날 이라크 상황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라크 사람들은 전쟁을 반대했지만 후세인 정권 축출은 환영했다. 그러나 정권이 붕괴되고 나서 지금 이라크 사람들은 아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김정일 정권이 좋아서가 절대 아니다. 어찌됐든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악화돼 북한 주민들이 더 고통을 받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얘기할 때 종종 북한을 특수 집단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북한 인권 문제가 상당부분 보편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북한만 가지고 있는 특수한 문제로 보는 착시 현상이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식량을 훔쳤다고 감옥으로 보내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냐.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느냐', 이런 얘기에 나는 '그럼 당신네 나라에서는 배고파서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치다 걸리면 처벌하지 않느냐', 이렇게 답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둑질에 대해서 처벌을 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나, 고문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범을 가두고, 고문을 하는 나라가 북한뿐이냐? 미국이나 남한도 자유롭지 않다.

다른 중요한 문제는 특정 집단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게 누구냐? 바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다. 틈만 나면 이 문제를 얘기한다. 부시가 정말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가슴 아파서 그럴까? 자기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포장에 불과하다. 이런 부분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민이 필요하다.

***"북한 인권,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문제"**

오수연 :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고민을 하면 된다. 북한 인권 문제가 악용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그렇다고 침묵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정욱식 : 내가 평화운동을 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1990년대 중반에 북한 사람들이 기아로 엄청나게 굶어죽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부터다. 대북 지원활동을 고민하다보니 결국 평화 문제에 천착하게 됐다.

나도 북한 인권에 대해서 진보 진영에서 얘기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동안 침묵했던 게 사실이다. 다만 그 침묵이 고뇌에 찬 침묵이었나, 여기에는 반성할 지점이 있다.

프레시안 : 진보진영이나 지식인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면서, 그것을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 집단이 독점해버린 측면도 있다.

정욱식 : 맞다. 그러다보니 <조선일보> 같은 데서 북한 인권 문제를 왜곡시키고 있다.

오수연 : <조선일보>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북한을 돕는 것은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안 된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엉터리 논리다. 보편적인 시각은 어디나 적용이 돼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그것대로 지적하되, 굶어죽는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

정욱식 : 그렇다고 진보진영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이 반성해야 한다. UN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거나 미국 의회에서 북한자유법안이 통과되는 등의 일이 있을 때만 잠시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발언을 하다 금세 수그러지곤 했다. 그나마 최근에 북한 인권 문제에 꾸준히 토론하고 대화를 모색할 수 있는 모임이 생겼다.

***"이라크 반전평화팀, 그 자체로 놀라운 일"**

프레시안 :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2003년 1차 파병 전의 파병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활동도 있었다. 그런데 2차 파병을 앞둔 지금, 탄핵 정국에서 폭발적으로 표출된 시민들의 힘의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반전․평화운동의 성과와 현황, 또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간단히 짚어봤으면 한다. 특히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활동은 눈에 띄는 실천이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수연 : 가장 큰 의의는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직접 갔다는 것이다. 근데 처음 가보니 가서 뭘 해야 할지 프로그램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 더구나 그것을 실행할 능력도 없었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다보니 평화팀 내부는 전혀 평화롭지 못했고. (웃음) 고생을 많이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행착오를 했는지 기록으로 남겨서 다음 실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직접 반전평화팀 활동을 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철학적 기반이나, 외국 평화운동 사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더 깊은 이해, 이런 데 대해 평소에 실력을 갈고 닦아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욱식 : 개인적으로는 이라크 반전평화팀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다. 반전평화팀을 보고 주변에서 너는 왜 안 가냐. (웃음)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각자 역할이 있는 거라고 자위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라크 반전평화팀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나라밖 분쟁지역에 직접 가는 게 처음 있는 일 아니냐. 또 계속 평화운동을 해왔던 분들도 아니었다. 일반인들이 분노를 느껴서 어려운 길을 개척해 간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놀랍고 부끄러웠다.

만약 오수연 씨를 비롯한 반전평화팀이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이라크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절반도 안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라크 현지 상황을 알려내면서, 나라 밖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던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역할을 했다.

프레시안 : 평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열망, 이런 걸 고려해보면 지지부진한 면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오수연 :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전에 말도 꺼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뿌리가 싶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때는 확 일어났다, 파병을 앞둔 지금은 지지부진하고.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굉장히 무관심한 것 같다. 사실 이라크 문제에 별 관심 없다. 북한도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까 그렇지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당장 내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경제 성장은 계속했으면 좋겠고, 경제 위기 이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스러울 만한 경도도 보인다.

반전․평화운동은 이제 시작인데,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것에 대응하는 데만 급급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문제를 천착해 가면서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정욱식 선생 같은 전문가가 필요하고. (웃음)

정욱식 : 지난 3월20일, 낮에는 대학로에서 파병 반대 집회가 있었고, 밤에는 광화문에서 탄핵반대 집회가 있었다. 물론 '머릿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낮에는 4천명 정도 모였는데, 저녁엔 20만명이 모였다. 파병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비해 운동은 제대로 전개가 안 됐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거리 응원,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 등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가 저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 저력이 필요한 상황이 오니까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더라. 많이 안타깝다. 평화운동 한다면서 이런 부분을 끌어내려고 노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도 많이 했다.

한편으로는 국내 평화운동은 지금 갓난아기가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상태인데, 외부에서는 청년 수준의 근력과 스피드를 요구하고 있어 많은 한계도 있다. 지난 50년간 있어왔던 준(准)전시 상태, 한국사회 특히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역동성 등에 비해 평화운동은 왜 지금에서야 시작됐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어쨌든 평화운동이 이제 막 시작되면서, 새로운 평화운동의 전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습관적으로 세대마다 전쟁 치러"**

프레시안 :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개념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우리들은 이미 가해자의 시각으로 이 전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정작 전쟁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수연 :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파병을 찬성한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인터뷰를 듣고 대경실색한 적 있었다. 그 사람은 우리가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서 따라가는 듯한 수동적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가 앞장서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그 근거가 우리는 식민지 경험도 했고, 전쟁도 겪었고, 베트남전에도 파병을 했기 때문에 쌓여진 노하우를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전쟁을 겪었으면 이게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는 습관적으로 세대마다 전쟁을 치른다. 한국전쟁, 베트남전, 이제 이라크전까지. 그만큼 사회가 반성의 능력이 없다.

정욱식 :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가장 큰 의의가 그 지점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 걸프전을 볼 때 전투기 조종사 뒷좌석에 앉아서 전쟁을 보지 않았나. 마치 전자오락 하듯이. 총알을 누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전쟁. 이번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난사되는 쪽에서 바라본 전쟁. 이라크 반전평화팀이 이걸 보여준 것이다.

또 알자지라라는 매체가 생겨서 CNN이 중계하던 전쟁의 한계도 극복하게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고 본다.

프레시안 : 오수연 선생은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뿐만 아니라,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하는 나라도 '전쟁국가'"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전쟁과 평화'와 관해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오수연 : 맞다. 전쟁이 바로 옆에서 안 일어난다고 해서 '전쟁 국가'가 아닌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갔고, 또 보낸다고 한다. 특히 이런 파병 결정은 내부적으로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파병은 할 수밖에 없어', 이런 논리가 사회에 만연되고 '양심적 병역 거부'라든지 이런 평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은 실체 없는 '현실주의'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일종의 '전시 체제'로 살아갈 거라는 얘기다. 파병은 이라크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도 잘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나와 이웃이 안온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도 파병을 막아야 한다.

정욱식 : 전쟁이 부재한다고 해서 평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하는 상황, 전쟁에 동참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수긍되는 상황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평화 위해 전쟁 준비하는 역설 극복해야"**

프레시안 : 정욱식 선생은 계속 평화운동을 하실 테고, 오수연 선생은 문학을 통해 평화를 향한 열망을 표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어떤 평화 국가를 지향해 나가야 할지 얘기를 듣고 싶다.

오수연 : 전쟁은 항상 국가가 싸운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가서 총 들고 싸우는 건 개인들이다. 국가가 개인들에게 목숨을 요구할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전쟁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또 전쟁이란 게 전투 이것만이 아니다. 사회가 전전(前)부터 쫙 쥐어 짜여지고, 전후에는 사회가 붕괴된다. 이 피해를 다 합치면 너무 흔한 표현이긴 하지만 '지옥이 저쪽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막으려면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남을 발로 차면서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스템에서, 아이들한테 평화, 공존을 얘기한다고 나아지겠나? 아주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이대로 편안하게, 우아하게 살려고 하는 한 전쟁은 막을 수가 없다. 여기서 멈춰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정욱식 : 여러 가지 나라 안팎의 반평화적인 모습을 보면서 평화를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평화는 전쟁의 부재와 동일시됐고 그런 맥락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체제에서 살아온 게 아닌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평화의 문제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체제가 공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문제이다. 평화를 지향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하는 이 역설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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