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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불가능한 개혁,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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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역전 불가능한 개혁, 가능한가"

[대화] <3> 김동춘 vs 하승창, '시민운동 미래'(하)

앞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와 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지난 1990년대 이래 우리 사회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해온 시민운동의 성과와 앞으로 전망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대담 후반부에서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등 구체적 개혁 과제로 대화의 초점을 옮겼다.

두 사람은 그간 시민운동 등 사회운동의 성과로 민주주의의 틀을 갖춰왔다면 이제는 그 틀거리에 맞는 내용을 채워가는데 시민운동을 비롯한 개혁 세력의 관심이 이동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 총선을 거쳐 행정부와 의회 권력의 중심이 자유주의 개혁을 표방한 세력에게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지지부진한 원인에 대해 이들은 "중앙 권력만 바뀌었지 그 권력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권력과 지역 권력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 두 영역이 바뀌어야 그 동안 일군 개혁의 성과들이 허사가 되지 않는 '역전 불가능한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각각의 개혁 과제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 있어 시민운동, 노동운동, 민중운동이 각자의 틀에서 벗어나 개별 사안을 매개로 적극적 연대를 모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노동운동이 이제 작업장과 같은 생산의 영역에서 재생산의 영역으로 한발을 내딛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승창 처장은 "생산의 영역에서도 환경, 소비자 안전, 보건의료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시민운동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자기 힘으로 민주화를 이룬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는 미국의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의 얘기에 공감한 두 사람은 "한국 사회는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시민운동이 쌓아온 성과를 기반으로 풍성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앞으로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로부터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그 다양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데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 고 김선일씨 피살 사건으로 또다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듯한 한국 사회의를 추수리는 데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대담은 지난 8일 저녁 성공회대 한 세미나실에서 1시간40분가량 진행됐고,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도 함께했다.

다음은 대담 후반부 전문이다.

***"모든 시민운동이 언론개혁운동에 나서야"**

프레시안 : '시민운동의 미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얘기들이 많았다. 이제 '시민운동의 미래'를 우리 사회의 개혁과 연결해 고민해보자. 우리 사회 전체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 개혁을 넘어서 교육, 언론 개혁 또 지역 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단 그 순서나 방법을 놓고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많다.

먼저 언론 개혁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한다. 김 교수도 언론 개혁을 사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해 왔다.

김동춘 : 언론은 (사회적 소통에 있어서) 혈관 역할을 한다. 어떤 좋은 취지의 운동이 있을 때, 그 운동이 전달되는 과정, 대중들과 만나는 과정, 소통하는 과정을 언론이 매개한다. 이런 매개 과정이 막히면 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왜곡ㆍ굴절된다. 따라서 언론 개혁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개혁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인프라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것도 안 된다.

이 언론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것 같은데, 정치 개혁에 비해 그 속도가 매우 늦다. 정치권력에는 일부 '자유주의 세력'이 들어가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신문 시장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권력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탓일 테다. 보수ㆍ진보의 기준으로 이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판단해봐야 한다. 즉 사회적 소통의 기능을 언론이 제대로 하는 데 있어 소유 구조 분산과 같은 게 필요한지, 아니면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데 그쳐야 하는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이게 바로 논쟁의 축이다.

프레시안 : 방금 지적했듯이 언론 개혁이 매우 지지부진하다. 국내 언론의 상황도 부정적이고.

김동춘 : 상대적으로 미국과 비교해 봤을 때 한국의 언론 상황이 좋다고 본다.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직접 언론을 접해보니 아주 절망적이었다. 미국의 언론 시장은 이제 역전 불가능할 정도로 확실하게 상업 언론이 장악했다. 최근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을 계기로 <뉴욕타임스>가 반성한다는 얘길 했는데, 내가 보기엔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한국에 <프레시안>이나 <한겨레>,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미국보다 언론 상황이 더 나은 거다. 문제는 과점 보수신문들인데... 보수신문 자체를 없애는 게 목표가 아니라 그들의 부당한 시장 지배를 막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소유 구조 분산과 같은 소유권 문제는 민감한 문제니까 쉽지 않을 것이다.

신문은 정치적 성격을 가진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상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에게 "소비를 하자 말자"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굉장히 높은 정치적 자각 없이는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공동배달제 등의 제도를 도입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신문 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방송 개혁도 중요한 문제이다. 방송이 지금은 전향적이지만 정권이 바뀌면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이참에 아예 사장 선임 등을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시민운동이 언론 개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김동춘 : 시민단체가 공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기본적으로 모든 시민운동은 언론 개혁 운동을 자기 일로 생각하고 나서야 한다. 해당 분야에서 보도가 나올 때마다 각 신문의 보도를 모니터링하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신문 바로보기 운동'도 일상적으로 전개해야 하고. 그렇게 서서히 바꿔 나가야 한다. 지금 한국의 언론의 문제점은 기성세대, 즉 40대 이상의 사람들이 언론을 비판적으로 보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는 데서도 기인한다.

***"개인이 미디어, 스스로 생산자 돼야"**

프레시안 : 흔히들 언론 개혁이라고 하면 제도권 언론의 개혁을 떠올리는데 하 처장 얘기를 듣고 보니 벌써 새로운 언론, 운동으로서 언론을 강조하는 것 같다.

하승창 : 분명히 그렇다.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까페와 그것에 딸린 게시판, 요즘 유행하는 블로그, 이런 것도 다 언론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다른 토론회 자리에서 새로운 언론운동을 얘기하면서 '개인이 미디어'란 표현을 썼다. 방금 김 교수께서 말씀하신 데서 조금 더 나가 보자는 거다. 언론을 보는 비판적 훈련이 안 돼 있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이다.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창조해 나가는 훈련도 잘 안 됐다는 점이다. '개인이 미디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스스로 그런 능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기존의 보수언론을 보는 시각이 상당히 달라질 거라고 본다. 그냥 피동적 수용자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프레시안 : 스스로가 발신자가 되는 것인가?

하승창 : 그렇다. 스스로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이 얼마든지 돼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런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을 활성화시켜 소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 나는 이런 것이 우리가 한발 더 나아간 방식으로 언론 개혁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동춘 : 훨씬 미래지향적인 관점 같다. 인터넷을 통한 상호작용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이제 '문자의 물신화'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신문에서 글자로 인쇄돼 나온 것이 모두 진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단단한 머리를 물렁물렁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 보면 한국은 미친 사회"**

프레시안 : 그런 경향은 많이 없어졌다. 지금은 신문도 틀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많이 생긴 것 같다. 하 처장이 좀더 미래지향적인 언론운동의 방향을 제시해 줬다. 아까 김 교수께서도 언론 개혁의 중요한 고리로 '교육'을 얘기했다. 우리 사회 개혁을 위해서 교육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데 모두 공감할 것이다.

김 교수께서 직접 대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대학 교육도 문제지만 중ㆍ고등학교 교육은 아주 문제가 많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가 교육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전교조만으로는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 교육 개혁은 언론 개혁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께서는 교육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김동춘 : 그렇다.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단 내가 학부모다. 현재 정치권력은 바뀌었지만 사회권력은 그대로다. 사회권력을 어떻게 바꾸느냐, 사회를 어떻게 바꾸느냐, 여기에 시민운동의 과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 바로 교육과 언론이다. 그것을 바꾸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사실 절망감 같은 것을 많이 느낀다. 학부모로서도 그렇고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우선 중ㆍ고등학교 교육을 보면 한국사회는 거의 반 '미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애들을 12시까지 학원에서 붙잡아 놓고, 중1한테 고등학교 가르치는 이런 사회는 미쳤다. 이대로 가다간 다 죽는다. 그렇게 애들을 잡아서 21세기를 이끌어갈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 수 있겠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돈 들여서 애들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을 고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 관련 시민운동 단체, 관료, 국회의원들 등 모두가 한 한달 정도 모여서 '끝장 토론'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절박한 심정이 있다.

프레시안 : 생각하고 있는 교육 개혁의 큰 방향이 있는가?

김동춘 : 나 역시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더 갑갑한 거다. 교육 문제라지만 넓게 보면 이것은 사회적으로 인력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시스템의 문제와 얽혀 있다. 현재는 일류대학의 졸업장이 능력을 인정받는 보증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고리를 완전히 끊기는 어렵겠지만 교육과 취업, 입시와 교육을 분리시켜야 할 것이다.

우선 대학이 변해야 중ㆍ고등학교가 변할 수 있다. 현재 교육 개혁의 방향이 대학의 서열화 문제로 집중되고 있는 것 같은데, 우선 사회적 공감대가 생긴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때이다. '대학 서열화'를 완전히 폐지하지는 못해도 울퉁불퉁하게 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현재처럼 서울대를 정점으로 계속 내려오는 방식에 변화를 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 대학을 지향하는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에 남아있는 권위적인 식민지 유산, 군사주의의 잔재도 큰 문제다. 이제 막 부임한 20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몽둥이를 들이대고, 줄을 세워 번호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저런 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다는 데 또 한번 절망을 느낀다. 40대 중ㆍ후반에 접어든 나도 '아니다'고 느끼는 걸 20대 교사들이 아이들한테 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과연 이런 교육 문제에 대해서 노무현 정부가 마인드가 없는 게 가장 안타깝다. 이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대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 또 대다수 시민들이 느끼는 만큼 정치인, 관료들은 고민이 없어 보인다.

***"교육문제, 교육단체에만 맡길 수 없다"**

하승창 : 교육 개혁을 하자면 백인백색이라고 너무 다양한 의견이 많다. 나도 갑갑하기만 한데, 어쩔 땐 교육부를 없애면 방안이 생길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웃음)

김동춘 : 맞다.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하고, 중종이 조광조의 건의에 따라 현량과를 설치한 게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기존의 제도 속에서는 개혁이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때로는 과격한 조치가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

하승창 : 전에는 유학 보내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내 자식을 키워보니까 이해가 되더라. 어느 학교를 가든 어디를 가든 다 그렇게 끔찍한 현실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는 한 보통의 아이들은 다 그 테두리 안에 살 수밖에 없다. 나는 비교적 내 방식을 고집하면서 살고 있는데, 우리 아이를 보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 저녁에 애를 학원에서 데리고 올 때가 있는데, 그 때 '왜 학원에 다니느냐, 학원 다니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면 오히려 애가 펄쩍펄쩍 뛴다. 이런 현실이 잘 못된 것을 알면서도 부모는 아리를 학원에 보내고 아이는 그런 현실을 인정한다.

프레시안 :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서 교육의 본질, 지향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를 다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1등하기 위해서,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 것 아닌가?

김동춘 : 맞다. 서울대 폐지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를 보면 대개 비슷하다. 대체로 경쟁력이 떨어진다, 엘리트 교육은 어떻게 하느냐, 하향 평준화할 것이다, 서울대에 못 가는 이들이 갖는 시기심과 콤플렉스다, 이런 식의 얘기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온다. 이제 경쟁력이 도대체 뭐냐, 엘리트 교육은 도대체 뭐냐, 그럼 서울대가 과연 엘리트 교육 기관이냐, 애들을 길러서 앞으로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이냐, 여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전교조나 학부모는 당사자이기는 하지만 시야가 좁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런 것 때문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 문제를 계급 문제나 이런 것과 견주어 봐야 하는데, 자꾸 교육 자체의 문제로 시야를 좁히다보니 자꾸 겉에서만 맴도는 것 같다.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이미 교육의 영역을 넘어섰다. 시민단체도 이런 데 대해 공감대를 확장해 조금씩 힘을 더해야 한다. 교육단체들만 맡기기에는 너무 시급하다.

하승창 : 대부분 교육에 직접 관계된 분들이 교육단체에 속해 있고, 그 분들이 교육 개혁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시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교수 말씀처럼 시민단체들이 교육 문제에 좀더 적극적일 필요는 있다. 문제를 푸는 키를 찾아야 할 텐데, 현재는 그게 어려운 것 같다. 나는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분들이 말하는 교육의 가치나 새로운 지향점 등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제도 개혁과 별개로 과연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이미 대안교육 운동이나 문화운동 쪽에서 그것을 공론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한 것 같다. <프레시안>도 앞으로 이런 부분에 좀더 집중을 해주면 좋겠다.

***"사회 권력 바뀌어야 '역전 불가능한 개혁' 가능"**

프레시안 : 지적 고맙다. 우리도 그런 쪽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언론 개혁, 교육 개혁과 함께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지역에서는 여전히 토호들의 권력이 막강한 것 같다. 그것과 관련해 오늘(8일) 오전에 '시민사회단체 보조금' 얘기도 나왔는데.

하승창 :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게 1995년부터다. 그 때 지역에서 시민단체가 아주 많이 생겼다. 당시 경실련 조직부장이었는데, 경실련 지역 조직을 아주 많이 만들었다. 지방자치가 지역의 시민사회 공간을 연 것은 확실하다.

프레시안 : 하 처장이 관여해서 그런지 지금도 경실련 지역 조직이 활동력이 높고, 건강하다는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

하승창 : (웃음) 괜한 칭찬인 것 같은데, 당시 경실련 지역 조직을 공들여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지역 조직들은 지금도 굳건하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1995년에 갑작스럽게 만든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단체들은 대개 지역의 토호와 연결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앙의 기득권 세력들은 대선, 총선을 거치면서 균열이 생겼지만 지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인구 규모가 작은 지역에서 시민단체가 어떤 사안을 놓고 싸우려면 당장 몇 촌 아저씨, 몇 년 선배가 와서 막는 일이 생긴다. 지역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런 강고한 기득권의 저항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프레시아 : 지역에서는 관ㆍ언ㆍ지역 자본이 다 연결돼 있다.

하승창 : 맞다. '사회단체 보조금' 논란은 이런 현실과 연관돼 있는 문제이다. 바로 그 연결 고리의 핵심에 '사회단체 보조금'이 있다. 사회단체에서 지역의 토호들이 얽혀 좌지우지하고, 관에서 나온 돈을 보조금이란 명목으로 차지하고 있다.

최근의 '사회단체 보조금' 논란은 지역의 시민ㆍ사회단체들이 그런 기득권 세력과 싸워보겠다는 움직임이다. '사회단체 보조금'을 토호들과 그들의 단체가 계속 독차지하게 만드는 현실을 인정하다보면 시민ㆍ사회단체의 진지를 지역에서 만드는 것은 요원해진다. 절망 속에서 마지막 가능성을 타진해보려는 움직임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지역 사회 운동이 중앙의 운동을 단순히 옮겨온 것이었다면 이제 정치가 정상화되고 자치가 심화되면서, 지역에서도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갖는 운동이 태동하고 있다. '사회단체 보조금'을 둘러싼 싸움은 이런 과정에서 나온 운동이고, 이 싸움에서 이겨야 지역 사회에서 건강한 시민사회 영역이 독자적이고 자율적으로 형성돼 지역 사회를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는 지금 시작인 셈이다. 이런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힘이 바로 90년대식 운동에 기반을 둔 것일 테고.

김동춘 : 언론 개혁이나 교육 개혁을 말하면서 얘기했듯이, 중앙 권력만 바뀌었지 그 권력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권력과 지역 권력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영역이 바뀔 때 그 동안 일군 개혁의 성과들이 허사가 되지 않는 '역전 불가능한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이 영역이 바뀌지 않은 채 공중에 붕 떠 있는 중앙권력만으로는 50년 길게 보면 1백년의 역사를 갖는 기득권 세력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권이 제도적으로 지역 사회의 공공영역을 강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권 초기에 동사무소를 주민복지관으로 만드는 공약이 있었다. 물론 중간에 없어졌지만 아주 중요한 공약이었다. 지역에서 공공영역의 거점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우선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간에서 바로 주민들의 교육이 이뤄지고, 주민들 사이에 소통이 활성화된다. 예전에는 그런 공간이 행정 권력에 의해 다 장악되었다면 지금은 자본에 의해 다 장악돼 있는 상태다. 행정 권력이나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의 거점이 만들어져야 한다. 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만들고 각종 복지관, 문화센터, 평생교육원 같은 공간의 운영에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개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정부가 개입해서 제도적으로 시민단체가 운영할 근거를 마련해주고, 점차 시민들에게 그 권리를 이양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지역 주민들이 새로운 씨앗이 돼, 지역 사회에서 자본과 행정 권력에 의해 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계속 넓혀야 한다. 그 공간은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청소년, 애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공간을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더욱더 좋을 테고. 그런 공간이 넓혀져야 자본의 지배로부터 지역 사회가 벗어날 수 있고, 결과적으로 50여년 이상 이어온 지역의 각종 구태의연한 네트워크들이 서서히 공적 네트워크로 바뀔 수 있다. 또 그 공적 네트워크의 힘이 지역 정치를 좀더 건강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해서 지역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만 맡길 문제가 아닌데, 노무현 정부가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1970년대 '새마을'이 21세기에도 살아있나"**

하승창 : 김 교수께서 공간을 말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서울에 사는 우리들이 느끼는 것은 실제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그래 지역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해'하고 생각하지만, 지역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은 절실한 문제로 여긴다.

김 교수와 똑같이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를 지역에서 실천하는 사람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은 '사회단체 보조금'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데, 지역의 토호들이 복지단체를 만들어 관으로부터 복지시설을 위탁받는 현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렇게 그들에게 복지시설이 넘어가면 이제 지역의 시민ㆍ사회단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 '사회단체 보조금'을 놓고 싸우는 것은 이렇게 공간을 되찾아오는 싸움이기도 한 것 같다. 공공영역의 거점으로서 공간이 그만큼 중요하다. 현실이 얼마나 참담하냐면 김대중 정권이 지역의 공간을 새마을운동 쪽에 줬다.

김동춘 : (웃음) '새마을'이 아직까지 살아 있나? 1970년대 '새마을'이 21세기에도......

하승창 : 그렇다. 이제 그런 단체들이 독자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희박해지니까 점점 더 그런 식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공간을 관으로부터 받아서 임대사업을 해 생존하는 식으로 말이다.

프레시안 : 그렇게 공공영역의 거점 역할을 하는 공간을 찾는 싸움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고려해야 할 다른 점들은 없는가?

김동춘 : 부분적으로 시민ㆍ사회단체나 개혁적인 사람들이 지역의 복지관 등을 인수받는 경우가 꽤 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그 안에 채울 내용일 것이다. 공간도 있고, 예산도 확보됐는데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이냐,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 이런 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주민 교육이 경험도 없고, 내용도 빈곤하고, 공유할 네트워크도 없으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간, 예산 확보만큼 큰 방향을 제시하고, 그 안에 담을 내용을 제공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승창 : 그것은 서울에 있는 단체들이 좀더 신경 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런 경향은 많이 없어졌지만 서울에 있는 단체들이 지역에 지부를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지역에다 지부를 만들면 결국 또 지역에 있는 이런저런 단체 사람들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다 그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런 식은 지역 시민사회의 힘을 분산하고 그 안에 쓸데없는 갈등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서울에 있는 단체들은 지역에서 가장 잘 하고 있는 단체와 네트워크를 하면 된다. 거꾸로 지역에 있는 단체들은 서울에 있는 단체들을 내가 콘텐츠를 가져올 단체로 생각하면 된다. 교통 문제는 녹색교통운동, 물 문제는 환경운동연합이나 환경정의와, 군부대 기름 유출 오염 문제는 녹색연합, 이런 식으로 이슈에 따라서 네트워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서로 그렇게 열어야 하고.

프레시안 : 아직은 그런 네트워크가 없다.

하승창 : 그렇다. 부분적으로 실험은 있었지만......

김동춘 : 지역의 90년대식 운동 단체들이 연대 활동을 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본격적으로 지역의 풀뿌리 시민단체들의 연합체 운동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 연합체 운동이 본격화되고,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서울에 있는 단체들과 연계가 되면 한국의 시민사회의 진보적 영역이 훨씬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지난 연말에 <한겨레>에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1백인을 선정했었다. 시민운동은 후보자가 너무 많아서 가려내는 데 진통을 겪었다는데,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은 추천자가 없어서 민주노총과 전농에서 한 명씩 추천을 받아서 올렸다고 하더라.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 대한 지식인이나 시민들의 관심이 시민운동보다 훨씬 덜한 게 사실이다. 이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은 그 중요성에 비해서 인기 없는 운동이 되어 버렸다.

사실 절차적 민주화는 공고화되는 데도, 사회 전체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등 일반 시민들은 생존권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농민운동이 서로 연대하면서 나아가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하승창 :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은 1980년대 우리 사회를 뒤바꾸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지금도 만만찮은 힘을 가진 동력인 것은 확실하고.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다. 그 운동의 전개 양상에 큰 변화가 있었나? 물론 이슈의 변화는 있었다. 상황이 요구하는 것에 따라서 말이다. 하지만 운동의 양상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프랑스의 농민운동가 조지 보베가 세계적인 농민 운동가이자 반세계화 활동가로 변하는 순간이 있었다. 맥도널드로 트랙터를 몰고 들어간 때부터 그렇게 된 것인데, 그 일의 배후에는 프랑스 농민운동이 성장해온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냥 즉흥적으로 트랙터를 몰고 돌진한 게 아닌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도 그런 순간, 즉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전체 운동을 이끄는 것에 대해서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것을 준비하는 모습이 안 보이는 점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 87년 관성에서 못 벗어나"**

프레시안 : 김동춘 교수는 1990년대부터 계속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주장해왔다.

김동춘 : 혼자서 떠들었다. 10여 년 전부터 그런 답답함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90년대 초부터 그런 고민을 했었으니까. 방금 하 처장이 얘기한 것처럼 노동운동은 자신의 과제를 사회적 정치적 과제로 못 만들었다. 물론 그렇게 된 1차적 원인은 공권력의 탄압일 것이다. 계속 공권력이 탄압을 하고 부정적 여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존에 급급하면서 지금까지 온것이다.

좀더 내부의 원인을 짚어보자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1980년대에는 그런 방식이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속 그 관성에 메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가장 큰 것은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운동의 대열에서 빠져 나간 것이다. 결국 노동운동이 스스로의 입지를 계속 좁혀온 셈이다.

물론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을 한 것처럼 의미 있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노동운동 기반은 계속 좁혀져 왔다. 역설적이지만 빈부격차가 큰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것과 같이 지금처럼 계급 문제가 첨예하게 부각된 적이 없는데, 노동운동은 그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는 데 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60%에 달하는 비정규직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가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정규직ㆍ비정규직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있지 못한 것도 노동운동 탓이다. 나는 노동운동의 패턴이 이미 변화했어야 한다고 본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관성은 1990년대 초, 1995년 민주노총이 만들어질 때까지만 유효했다고 본다. 그 이후엔 변신을 했어야 했는데, 산별 노조 논의 같은 데만 너무 고지식하게 매달려 온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하승창 : 그 논의에 너무 오래 매달려 온 감이 있다.

김동춘 : 맞다. 노동운동이 좀더 과감하게 노동사회의 변화된 현실, 즉 비정규직화, 서비스 산업의 팽창, 노동자들의 개인화 등을 고려해 노동조합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시민사회의 노동문제나 복지문제 이런 쪽으로 과감하게 치고 나가야 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이런 것을 제기하기 굉장히 좋은 상황이었다. 조직 노동자가 11%가 안 되는 상황에서 89%의 노동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 임금교섭이 아닌 인권, 복지의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나는 1987 과 같은 대투쟁이 다시 한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은 큰 싸움을 통해 그 패턴이 달라지곤 했다. 뭔가 새로운 계기를 통해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그간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에게, 민중운동은 시민운동에게 서로 소원했던 게 사실이다. 일부 영역에서는 대립하는 모습도 보인 것 같고.

하승창 : (웃음) 소원한 모습은 분명히 있었지만 대립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던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민중운동, 시민운동 이렇게 사회운동을 봤던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눠서 보지 말고 다르게 볼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자꾸 나눠서 보면 소원해 보인다. (웃음)

김 교수께서 말한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라고 했을 때 그 '사회운동적'이라는 데 들어있는 가치나 방향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서 서로 같이 고민하고 활동하면 된다. 앞으로 더 많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할 테고.

단순히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야 한다', 이런 식의 얘기는 이미 정치적 구도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같이 하기가 어렵다. 서로가 각각의 정치적 프로그램에 대해 판단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만나기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사안별 연대 이런 걸 의미하는 건가?

하승창 : 그렇다. 방금 얘기했듯이 노동운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특별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앞에서 길게 얘기했듯이 시민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로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상황에서, 사안별로 만나서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은 그대로 확인하고 같은 것은 또 같은 것대로 확인하고. 이런 과정이 쌓인 후에야 비로소 서로 같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지금은 서로가 어떤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 전인미답의 길 가고 있다"**

김동춘 : 동감한다. 단순히 무매개적으로 연대할 수 없다. 연대의 매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노동운동이 이젠 작업장에서, 생산의 영역에서 재생산의 영역으로 한발을 내딛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임금이 올라가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어지면 그만인데, 사교육비가 올라가면 임금이 올라간 것만큼 다 깎이는데...... 이렇게 재생산의 영역으로 의제를 확장하다보면, 결국 시민의 영역이 되고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 동안 지나치게 작업장의 문제에 매몰돼 왔다.

하승창 : 이런 점도 있다. 생산의 영역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환경, 소비자 안전, 보건의료의 문제가 다 들어갈 수 있다. 또 그런 생산의 영역에 대해서 시민운동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지금과는 다른 지형 속에서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농민운동을 아우를 수 있는 큰 틀, 큰 얼개가 필요하다는 얘기에 동감한다. 마지막으로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미래에 대한 단상을 본인의 전망과 함께 공유하면서 끝냈으면 한다.

하승창 : 개인의 전망이라니...... 할 줄 아는 게 시민운동밖에 없어서 계속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웃음) 나는 이제 시민운동이 변화해야 할 지점, 또 시민운동을 다르게 봐야 할 지점에 우리가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시민운동이 더 이상 매력 없게 보이는가? 이것을 시민들에게 묻기 전에 시민운동을 해왔던 나와 동료들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어느 순간에 나부터 시민운동의 전부를 몇 개 단체의 모습으로 재단했던 측면이 알게 모르게 있을 테고, 특정한 프리즘으로 우리를 봐 왔을 것이다.

시민운동은 풍성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졌다. 그것은 분명히 지난 10년 동안 시민운동이 쌓아왔던 경험들 속에서 나타난 것이고. 이제 나부터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그 다양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데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운동방식에서도 변화를 고민해보고, 지역사회의 단체와의 관계도 좀더 상호 도움이 될 수 있는 모습을 고민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 안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 또 개인의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겠다.

김동춘 : 글쎄...... 나는 지금 국면이 굉장히 중대국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있다. 별로 참고할 게 없다. 지금이야말로 더욱더 창의적인 사고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적으로 외국의 사례나 모델도 많이 공부하고, 무너진 지식사회를 재건해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좋은 대안을 만드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여기저기 활동에 몸을 담고 있으니 고민의 진척도 안 되고......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에서 나를 빨리 퇴출시켜 주면 좋은 대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웃음)

프레시안 : (웃음) 전인미답이라고 하니까 생각이 미국의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의 얘기가 생각한다. 존슨은 "아시아에서 자기 힘으로 민주화를 이룬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다. 인도는 영국, 일본은 미국이 해줬는데, 한국만 유일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창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김 교수께서 현장에서 발을 빼는 일은 안 올 것 같다. (웃음) 앞으로도 두 분이 자주 만나서 전인미답의 길, 다른 나라로 수출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소설가 오수연 씨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이라크, 미국, 한반도'를 주제로 한 네 번째 '대화'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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