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한국인 김선일씨 납치 사건으로 전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21일, 제1야당이라는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무관심’,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초당적 협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로지’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에만 골몰해 사안의 선후완급조차 구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행정수도 문제로 5시간30분 마라톤 의총**
한나라당은 이날 신행정수도 문제에 관한 당론 결정을 위한 의원총회를 무려 5시간30분 동안 진행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의총 직후 “무척이나 진지하게 논의했다”, “무려 27명의 의원들이 발언을 했다”는 등 토론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득의양양하게 전했다.
그러나 신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를 하는냐 마느냐, 당이 사과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반드시 이날 결정해야 했을까? 그것도 현역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통해서? 불과 몇시간 뒤인 22일 새벽이면 김씨의 생사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는데도 5시간30분 동안 “진지하게 논의”할 문제가 과연 이것뿐이었을까?
더욱이 실망스러운 대목은 발언한 27명의 의원 중 김씨 피랍사건을 걱정한 의원은 고진화 의원 1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고 의원은 “김씨의 피랍사건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 생명과 목숨을 지키는 것이 제1의 과제다. 수도 천도보다도 중요한 문제다”고 호소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외교안보 회의는 30분만에 끝**
반면 이날 긴급 소집한 한나라당 외교안보 태스크포스팀 회의는 3시30분부터 4시까지 불과 30분만에 끝났다. 배용수 부대변인에 따르면 당초 이 회의는 2시부터 계획돼 있었으나, 의총이 지연되는 관계로 덩달아 떠밀렸다.
그나마 열린 회의에는 송영선 황진하 의원 2명과 일부 전문위원만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는 이상득 위원장을 비롯, 박진 맹형규 이경재 의원 등이 참석 대상이다. 위원장인 이상득 의원측은 “몸이 아픈 관계로 의원총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회의 관계자는 “박진 맹형규 이경재 의원은 오전에 의견을 충분히 개진했다”고 해명했다.
내용만 알차다면 회의시간이나 참석인원은 부차적 문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피랍 사건과 관련해 내놓은 대책은 가관이다.
▲정부의 사태파악과 만반의 대책 마련 촉구 ▲김씨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 ▲이라크인 안전대책 강화, 현지 방문자 안전교육에 만전을 기할 것을 촉구 ▲이라크 파병과 관련 인질집단의 목적에 악용되지 않도록 노력 ▲정부측의 이라크 파병 관련 파경경로 및 파견 과정의 안전대책과 주둔지 안전대책 등의 보고 요구 ▲정부 여당에 초당적 협조 등 ‘면피성’ 대책 나열에 불과했다.
***박근혜, “여당에서 파병 찬반론이 나와서…”**
박근혜 대표의 태도도 비판을 피해가기 힘들 듯 하다. 박 대표는 오전 상임운영위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오후에 들어서야 기자들의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의 책임자로서 한미동맹과 국익을 고려해 추가 파병을 국회에 요청했고, 국회는 동의했다”는 모호한 전제를 밝힌 뒤, “여당에서 파병 찬성-반대가 계속 나와 나라의 중심이 흔들렸다.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사실상 정부와 여당에 이 문제를 떠넘겼다.
박 대표는 이날 신행정수도이전 특별법이 16대 국회에 한나라당의 당론으로 통과된 것과 관련해선 “타당성이 없는 법안을 내놓은 대통령이 반성해야 하지만, 당시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박 대표가 이날 진정으로 사과해야 했던 것은 지난 2월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이 원내1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당론찬성’ 방침에 힘입어 통과됐다는 ‘원죄’가 아니었을까. 김씨를 생사가 걸린 벼랑 끝으로 내몬 책임에서 과연 한나라당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국정의 책임성이 덜한 야당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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