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성공회대 교수(45, 사회학)에게는 항상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것은 그가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 여러 가지 사회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소위 '운동권 지식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이론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그가 이렇게 20여년이 넘는 학문 여정 동안 올곧게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깊이 천착해 왔다는 점에서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말은 그에게 딱 맞는다.
김 교수는 외국에서 학위를 받지 않고도 그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은 드문 경우에 속한다. 그는 또 박사 학위를 1993년에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비교적 늦게 '직업적 학자'가 됐다. 그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환경에서 공부를 시작해 유학을 다녀와 쉽게 대학에 자리를 잡은 동료 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학문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농촌 출신인데다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고, 또래들이 유학을 갈 시기에 약 4년에 걸쳐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직업적 학자'가 되기 전까지 그는 사실상 사회운동에 몸담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개인적인 이력은 그의 삶과 학문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그의 학문적 시선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가 서구 이론에 기대 한국 사회를 분석하기보다는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이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뒤에도 보통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규정하는 질서를 찾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관심사가 노동운동, 시민운동, 민족주의, 국가주의, 가족주의, 민간인 학살 문제 등으로 확장된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질서를 밝혀냄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김 교수는 항상 바쁘다. 학교 강의 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운동 단체에서 중요한 직함을 맡고 있는데다 <아웃사이더>, <비평> 등 계간지 편집위원을 통해 '비판적 담론'의 공론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중에도 그는 박사 학위 논문을 보완한 <한국 사회 노동자 연구>(역사비평사 펴냄)를 비롯해 <한국 사회과학의 새로운 모색>(창비 펴냄), <분단과 한국사회>(역사비평사 펴냄), <근대의 그늘>(당대 펴냄),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삼인 펴냄), <전쟁과 사회>(돌베게 펴냄)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연구를 하다온 그는 "이제는 좀 사회운동과 거리를 두고 연구에 전념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다. 사실 한국 사회 현실에 한 발을 딛고 서 있는 그의 위치는 연구자로서는 최악의 위치일지 모른다.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염두에 두면서 현실에 뿌리박은 그의 연구는 엄밀한 학문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소외된 자들을 보듬는 것이어야 하고,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진보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가 "연구에만 전념하는 일"은 당분간 오지 않을 듯싶다.
***하승창 이야기**
"그는 삐쩍 말랐다. 목소리도 크지 않다. 뚝심 있어 보이는 인상이라기보다는 부드럽고 차분하다. 나는 그를 볼 때 도대체 운동할 것처럼 생기지 않은 사람인데 저런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한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의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44)에 대한 평가다. 그는 지난 1992년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여년이 넘게 시민운동에 매진해 왔다. 지난 2002년 CBS 라디오 '시사자키'를 1년여 동안 진행한 게 거의 유일한 외도였다고나 할까.
그는 참여연대 김기식, 박영선 사무처장, 환경연합 서주원 사무총장, 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사무총장 등과 함께 실무 간사에서부터 차곡차곡 성장한 시민단체 리더 중 한 사람이다. 또 지난 2002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 '아시아 차세대 리더' 선정위에서 발표한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한국 측 인사 12명 중에 포함되는 등 '주류 사회'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물론 그는 "WEF의 활동과 시민단체의 활동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이를 거부했지만 말이다.
1990년대 시민운동의 성장과 함께 성장해온 하 처장은 1999년 2월 사표를 쓰고 나올 때까지 오랜 기간 경실련에서 일했다. 당시 경실련 관계자가 언론에 기고한 칼럼의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실련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었다. 경실련으로서는 97년 김현철씨 비리 의혹을 담은 비디오 절취 사건에 이어 터진 두 번째 위기였던 셈이다. 이 사건으로 '경실련 개혁'을 요구하며 상근 간사 25명은 집단 사직서를 냈다. 이후 경실련은 사태 수습에 나서 24명이 사직 의사를 거뒀지만 당시 정책실장이던 하 처장만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집행이 가능한 조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고,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만든 단체가 바로 '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이다. 시민행동은 전적으로 온라인 운동단체는 아니지만, 활동의 대부분을 인터넷상에서 조직·실천한다. 때문에 하 처장은 '디지털형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민행동 활동 중 또 두드러진 것 중 하나가 예산 감시운동이다. 시민행동이 공무원들의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한 '밑빠진 독상'은 하남시의 하남 국제 환경 박람회를 첫 수상자로 선정한 이래 지금까지 29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불명예상인 만큼 선정과 수여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유독 많았던 이 상이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하남시 국제 환경 박람회 중단, 익산시의 보석박물관 및 '새천년의 문' 사업 백지화 등 1천억원 가량의 예산 낭비를 막았을 거라고 시민행동은 자부한다.
그는 지난 2001년 10년간 현장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하승창의 NGO이야기>(역사넷 펴냄)라는 책에서 시민운동에 대해 "꿈꾸는 사람들의 무대"라면서 "위임받은 시민의 대표가 아니므로 그 꿈은 자유롭고 막힘이 없다"고 정의했다. 쌍방간 소통에 익숙하고, 변화를 빠르게 인지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갖춘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꿈'이 필요한 시민운동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김동춘-하승창 이야기**
정당이 정책 정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지난 10여년간 준(准)정당적 역할을 해오면서 정치변화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일종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운동이었던 '90년대식 시민운동'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정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문제의식에서 두 사람의 대담은 시작됐다.
하 처장은 기존의 준정당적 역할을 했던 시민단체들이 권력 감시라는 영역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좀더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감시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이같은 시민운동의 전문화가 장기적 비전 제시라는 더 궁극적인 목표와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를 '집합적 지식인적 기능'이라고 개념 규정하면서 "정당이 아무리 제 기능을 찾더라도 기본적으로 정치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에 종속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을 갖기보다는 단기적 권력 장악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전히 시민사회에 이같은 역할이 부여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나름의 가치를 지향하고 이념적으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정치적 중립성'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이미 "정치적 중립성은 불가능한 요구"라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 했다. "비슷한 이념과 가치 지향을 가지면서 비슷하게 행동하는 보수정당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할 때 시민단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우는 것은 의미도 있었지만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다른 속에서 정치적 중립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곧 특정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점점 시민운동에 뛰어드는 인재가 줄어드는 등 '시민운동 위기' 논란에 대해 김 교수는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변화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인식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힘이 없으면 민주노동당도 무력해지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 처장은 "시민운동과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관성화된 인식"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번 탄핵 사태에서도 보였듯이 개별화되고 분산됐지만,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힘들을 새로운 시민운동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도 함께한 이번 대담은 지난 8일 저녁 성공회대 한 세미나실에서 1시간40분가량 진행됐다.
대담 전문을 2회에 나눠 싣는다.
***"4.15 총선으로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프레시안 : '시민운동의 미래'에 대한 고민의 자리를 마련했다. 16대 대선,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자유주의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했다. 또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을 하면서 정치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시민운동은 지금까지 사실상 정당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 사회 개혁을 이끌어 왔는데, 이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면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이제 교육, 언론 개혁이나 지역 운동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 안에서 시민운동이 해왔고 또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의 미래'에 대한 자유로운 얘기들이 오가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좀 상투적이긴 하지만 시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짚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김동춘 :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는 사실상 지역주의를 동력으로 재편됐다. 그 과정에서 개혁 세력의 일부가 정권에 참여해, 미흡하지만 여러 가지 개혁적인 조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구 세력이 국회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고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런 시기에 시민운동이 일종의 준(准) 정당적 역할을 해왔다. 정치개혁을 위한 부패 척결 등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는 데도 앞장섰다.
1987년 이전의 운동이 '대중 거리 정치'였다면, 시민운동이 제도개혁 운동을 시작하면서 '거리의 정치'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수행했다. 같은 목표에 투쟁 방식을 제도화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1987년 '6월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선연대 활동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진 결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여전히 구태 정치인이 당선되는 것에 대한 하나의 대응이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낙천ㆍ낙선 운동의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지만 시민운동이 역시 큰 역할을 했다. 탄핵 정국과 맞물려 촛불시위 등으로 나타난 대중운동은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아닌 구 정치세력 퇴출을 위한 운동이라고 봐야 할 것이고, 시민운동이 그런 흐름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10여년에 걸쳐 시민운동이 정치 변화를 주도해왔고, 그 변화에 큰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성과에 의해 시민운동의 입지가 상당히 변하게 됐다. 기존 활동이 부분적으로 제도권 정당으로 이전되면서 정치적 시민운동의 입지는 좁아지고 가치 지향의 사회운동, 즉 서구식 신사회 운동적 시민운동이 좀더 활성화되는 국면이 열리게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승창 : 현재 우리나라 시민운동에 대해서 '90년대식 시민운동'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가 그 전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시민단체들은 '대변형 운동'을 수행하면서 준 정당의 기능을 수행했다.
이렇게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사이에 다양한 영역의 운동이 성장했다. 그 이전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가치들이 새로운 운동의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예컨대 장애인 문제만 하더라도, 그 전에는 배려 차원의 문제로만 이해하곤 했는데 이제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존 '90년대식 시민운동'의 성장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한 시민사회의 진보적인 부분이 점점 여러 가지 다양한 영역으로 운동의 폭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90년대식 시민운동'이 다양한 운동으로 분화ㆍ확장되면서 이제 이런 시민운동의 흐름은 마감되고 다른 지형이 열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 같다. 16대 대선과 이번 4ㆍ15 총선은 그 분기점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2000년이 교차점이 됐다. 나는 2000년 총선연대가 '90년대식 시민운동'의 최정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다양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변화들이 있는 것 같다. 기존 시민단체들이 해왔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의 활동 모습이 인터넷 공간에 나타나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해 봐야 할 것이다.
김동춘 : 우리가 '시민'이라고 명명했지만, '90년대식 시민운동'은 일종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운동이었다. 그 안에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면서 우리 사회의 감춰진 모순을 드러내는 활동을 펼쳐나갔던 신사회 운동적 시민운동과 주민운동 등이 같이 '시민운동'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있었던 셈이다. 이제 이런 것들이 분화되는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90년대식 시민운동'이 2000년에 정점이었다는 하 처장의 생각에 나도 동의한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예전에 윤보선 씨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했다는 말,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평소에도 참여연대 방식의 시민운동은 향후 5년 내지 10년 안에 변화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다. 이런 방식의 운동이 지탱될 수 있겠는가라는 고민이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많이 생겼다. 실제로 참여연대, 경실련 등 일종의 '종합적 시민운동 단체'의 활동가들은 새롭게 변화된 지형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참여연대, 경실련 역할은 끝났나"**
하승창 : 상근 운동가들이 고민이 많은 시기다. 물론 지역의 환경운동처럼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면서 의제를 제기해 왔던 분들은 그대로 하면 된다. 오히려 고민은 방금 지적했던 '90년대식 시민운동'의 지형을 앞장서 만든 그런 단체들이 안게 됐다.
'90년대식 시민운동'은 사실 대중과 긴밀하게 밀착된 대중운동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조직된 여론'을 움직이는 운동이었다. 그런 '조직된 여론'의 힘으로 10여년간 사회ㆍ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해 왔고, 2000년 총선연대 활동은 정치권을 뒤흔들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게 안 통한다는 게 2002년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확인됐다. 운동 방식은 2000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는데, 그 때만큼 폭발력이나 대중적 결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폭발력과 대중적 결집은 탄핵정국에서 찾아왔다. 시민단체들이 그것에 결합하긴 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동원하고 자발적인 힘들을 조직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인터넷에 있던 '카페'들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 지지를 표명한 그룹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2002년 대선 때 대선유권자연대를 조직해서 활동했는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움직이는 것과 너무 차이가 났다. 노사모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과 역동성이 대선유권자연대에는 안 나타났다.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팽팽한 긴장을 조성하고 그를 통해서 힘과 역동성을 갖게 된 것인데, 대선유권자연대는 그렇게 될 수 없으니까. 총선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민운동이 이전과 다른 단계에 와있는 것은 분명하다.
프레시안 : 그럼 참여연대나 경실련의 역할은 끝난건가?
하승창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종합적 시민운동 단체'나 준 정당의 역할을 했던 단체들의 역할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 위상과 영향력이 과거와 같지 않고, 운동 방식에서 차이가 생기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방향을 말한다면 이제 의회 감시가 좀더 구체화되고 정치화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의회 정치가 정상화되는 만큼, 의회 감시 역시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정치 과정 자체가 행정과 밀접하게 연결된 만큼 기존에 관심을 가져왔던 큰 주제에 대해 다양한 작은 주제들까지도 포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그 모델을 좇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미국의 '커먼 코즈(Common cause, 1970년 8월 설립된 후 의정감시 활동을 펴온 미국의 대표적 시민단체)' 같은 단체가 바로 그런 단체이다. 이렇게 정상화된 의회를 매개로 자기 영역을 좀더 심화시키고 구체화하는 속에서 '종합적 시민운동 단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나 의회 감시 단체로서 자기 역할을 더 분명히 하는 게 어쩌면 지금까지 활동보다 더 어렵고 중요할 수도 있다.
***"시민단체, 집합적 지식인적 기능해야"**
김동춘 : 정당이 점점 더 제 기능을 찾아 가면서 향후 5~10년이 일종의 과도기가 될 것이다. 지금은 바깥에서 시민단체들이 법안을 만들어 국회의원들 만나는 식인데, 이런 비정상이 어디 있나.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을 시민단체들이 해온 셈이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법을 만들 정도로 그들의 수준이 올라갈 때 시민단체의 역할이 많이 축소될 것이다. 현재는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도 자체 정책 역량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정당이 당분간은 시민단체들과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혁법안을 입안할 수밖에 없을 테고, 시민단체도 정당에게 압력을 가하고 시민사회에서 여론화하는 역할을 당분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그 기간이 지나면 그때야 말로 '감시운동의 전문화'가 시민단체의 역할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을 '집합적 지식인적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조세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지금까지는 세금이 새나가는 것에 대한 감시가 주였다. 이제 세금이 어떻게 지출되는가, 즉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 이건 곧 국가 정책의 방향과 관련된 부분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에 시민단체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조만간 올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전문적 의회 감시나 행정부 감시를 하면서 각 부처들이 어느 정도 예산을 배정받아 어떻게 쓰고 있느냐, 국방이냐 교육이냐, 복지 증진이냐 기업 지원이냐, 과연 어느 곳에 국민의 세금을 지출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민단체가 의제 설정을 하고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운동의 전문화 과정은 우리사회 전체의 비전을 만드는 과정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정당이 아무리 제 기능을 찾더라도 기본적으로 정치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에 종속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을 갖기보다는 단기적 권력 장악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정당 외의 시민사회에 '집합적 지식인적 기능'이 요구될 것이다.
프레시안 : 두 분 말씀 들으니 어느 정도 만들어진 절차적 민주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데 시민단체가 할 역할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제를 설정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대안적인 가치를 만들고 제시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이 되는데, 그 부분을 더 얘기해보자.
하승창 : 그 전에는 정치과정에서 부패와 같은 시스템이 불투명한 것에 대한 공격에 활동의 초점을 뒀다. 우선 정당이 자기 정체성에 기초해 경쟁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선시됐단 얘기다. 이제는 거꾸로 의원이 입안을 하면 '저 의원이 저 법안을 왜 추진하는가', 이런 부분으로 감시의 초점이 이동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해서 이런 법을 만드나,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인가, 공익을 위한 것인가, 이렇게 판단하는 단계로 말이다.
예산 문제도 지금까지는 정부가 세금을 낭비하고 공무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지 여부에 관심의 초점을 뒀다면, 이젠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예산을 쓰려고 하는지 예산 편성의 문제로 관심의 초점이 옮아가게 될 것이다. 그 때부터는 가치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 시민운동이 어떤 가치를 자기 정체성으로 가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1990년대와 다른 자기 정체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프레시안 : 김 교수께서 아까 지적했던 신사회 운동적 시민운동에서 이미 그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김동춘 : 대개 신사회 운동적 시민운동은 특정한 가치에 기반을 두고 분야별로 전문화된 측면이 있다. 물론 가각각 신사회 운동이 지속가능한 사회, 인권이 보장하는 사회 등 자기가 지향하는 가치를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말이다.
이젠 이런 것들을 모아 도대체 21세기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목표는 무엇이냐, 도대체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이냐 이런 것들을 제시하고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켜야 한다. 장기적인 비전에 입각해서 어디에 중점을 둬 예산 배정과 인력을 배치할 것인가? 어떤 부서는 줄이고, 어떤 부서는 키우는 식으로 행정부처 통ㆍ폐합과 같은 행정개혁 문제도 장기적인 비전에 입각해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현재 조세 부담률 27%를 40% 정도까지는 올려야 하는데, 그 세금을 누구에게 어떻게 거둘 것인가, 이제 이런 문제를 자기 가치에 기반을 두고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가치와 장기적인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부패 문제와 같은 시스템의 불투명성만 지적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하승창 : 이미 정당부터 말이라도 그런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계속해서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겠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예전에 한나라당은 특별한 자기 정체성 없이도 권력에 기생해 존속해왔던 그룹들이 기득권을 계속 재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물론 내부에서 계속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렇겠지만, 대선과 총선의 연속된 패배로 확실히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겠다'는 표현 속에는 그런 위기의식이 표출돼 있다. 특히 특정한 가치를 비교적 또렷하게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이런 노력을 피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기계적 중립 극복이 곧 특정 정당 지지는 아니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민주화가 1단계였다면,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민단체가 나름의 가치를 지향하고 이념적으로 분화되는 경향은 선거 때마다 논란이 되는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시민단체가 어떤 정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이제 더 이상 시민단체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한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은 대개 시민단체를 특정한 정치 지형 속에서 판단하게 될 것이다.
하승창 : 이미 시민단체가 더 이상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으로 확인이 됐고, 새삼스런 논란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비슷한 이념과 가치 지향을 가지면서 비슷하게 행동하는 보수정당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할 때 시민단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우는 것은 의미도 있었고 가능했다. 누가 더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지키는가'를 기준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다른 데, 그런 속에서 정치적 중립은 있을 수가 없다. 어느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이때 시민단체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기존의 정치 세력과 동일한가? 그 점은 아직 확답하기는 이른 것 같다. 지향하는 가치가 같은 단체도 생길 테고, 다른 단체도 있을 것이다. 환경단체들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생태적 가치에 기반을 둔 비전을 제시하면서 싸워 나갈 때 과연 기존 정당들 중 어느 정당과 한편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모습으로는 그럴 만한 정당이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시민운동과 정당은 다르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 같은 경우 납세자 운동을 하는 여러 개의 시민단체들이 있는데 어떤 단체는 공화당의 지향에 더 가깝고, 어떤 단체는 민주당의 지향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그 단체들이 우리가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선언하지도 않고, 시민들도 그 단체와 공화당을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시민단체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시민운동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 이 부분은 다양한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다양한 모습들이 관찰되고 있다. 생태, 평화, 인권 등 이미 부분적으로 형성돼 사회에 의미있는 화두를 던지는 것도 있고. 앞에서 김 교수께서 지적했듯이 이것이 어떤 내적 연관을 갖고 하나의 패러다임이 될 것인가, 이 문제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동춘 : 하 처장의 얘기에 공감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곧 특정 정당을 지지해야한다는 말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앞에서 시민단체의 앞으로 해나가야 할 역할이 '집합적 지식인적 기능'이라고 했다. 시민단체가 당원처럼 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단체는 당의 하부 기관은 될 수 없다. 단 사안별로 그 단체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방향이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 특정 정당과 같이 행동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중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승창 : 앞으로도 사안별로 같이 가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관계가 시민단체 활동과 정당의 활동 또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일 테고. 더 이상 이것을 논란으로 삼는 것 자체가 시민운동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파적 이해관계만 놓고 시민운동을 보는 것이다.
***"왜 '민주노동당 홍위병'이라고는 안 하나"**
프레시안 : 두 분 말씀에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김대중 정부가 시민운동이 그 때까지 주장해 왔던 개혁의 지향점을 상당 부분 공유한 데다, 시민운동에 대한 금전적 지원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홍위병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고. 앞으로 이런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여전히 정부 지원금을 받는 시민단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승창 : 아니다. 지금은 참여연대, 경실련, 함께하는 시민행동 모두 안 받는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정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행정자치부에서 시민단체가 수행하는 특정 프로젝트에 지원비를 주는 것은 김대중 정부 때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집권하던 때 즉 김영삼 정부 때 만들어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지원 액수를 좀 늘리기는 했지만 그 때 시작한 것은 아니다. 또 처음 이 제도가 시행될 때부터 시민단체들은 '혹시 돈 주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품었었다. 더구나 이번에 한나라당이 다시 줄여 놓았고. (웃음)
또 행자부의 프로젝트 지원비는 시민단체의 운영비나 경상비로 가지도 않고, 사실 남는 것도 없다. 한나라당이 일부 수구 보수 인사들이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에 서 있는 단체들이 정부 돈을 가져간다고 하니까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홍위병 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단,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시민단체에 정파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김대중 정부가 내세웠던 정책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세웠던 정책은 시민단체의 주장과 분명히 유사성이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하고는 정책적으로 훨씬 더 가까운데 왜 '민주노동당 홍위병'이라고는 안 그런지 모르겠다. (웃음) 아마 현실적으로 집권 가능성이 없기 때문일 텐데...... 시민운동이 아까 지적했던 그런 다른 활동을 통해 극복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김동춘 : 시민운동을 하다 개인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하면 대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시민사회가 커지고 분화될수록, 시민단체에 있는 사람이 정치권으로 갈 수 있고, 정당에 있는 사람도 시민단체로 올 수 있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시민운동 하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가더라도 자기 소신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인식되면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더 이상 논란이 안 될 것이다. 물론 당분간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좀더 중심을 잡는 게 필요할 것이다.
하승창 :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선택을 막을 수는 없다. 정치적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시민운동 열심히 해보자고 결의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가버리니까 황당하긴 하지만 그것을 법으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정치하던 사람들이 시민단체를 훌륭하게 키운 예도 있다. 이런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사이에는 시민사회의 역량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시민단체에만 특별히 도덕성을 요구하는 형평성도 문제가 있다. 당장 언론계에서도 일간지 정치부장을 하다가 정당에 입당하는 모습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욕구를 '정치 환장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웃음) 너무 심한 것 같다.
***"시민운동에 뛰어드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프레시안 : 향후 5~10년이 '시민운동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일 텐데, 시민단체 내부 역량이 소진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것 같다. 10여년 전 처음 경실련이나 참여연대를 고민했던 분들이 이제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이들이 됐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온 활동가들이 시민단체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재의 모습이다. 그런데 처음의 문제의식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지 않은데다, 더 큰 문제는 역량이나 경험이 계속 축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큰 문제다.
하승창 : 시민단체 수도 늘고 있고, 상근자 수가 줄고 있는 게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데...... (웃음)
프레시안 : 이미 지방의 시민단체들은 몇 년 전부터 활동할 사람이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한다.
하승창 : 그렇다. 지적한 게 문제가 되고 있다. 꼭 상근자 수에 국한할 얘기는 아니겠지만, 1990년대 중ㆍ후반과 비교했을 때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한 때 "참여연대나 경실련에서 신입 간사를 뽑는데 어떤 사람들이 몰려 왔다더라", 이런 게 뉴스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박사 학위자들이 상근자로 근무하기도 했고. 언제부터 사람들이 잘 오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왜 시민운동, 더구나 잘 나간다는 참여연대나 경실련 활동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없어질까? 결국 그 운동에 더 이상 매력이 없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이런 분위기 변화가 시작된 게 대략 2000년 이후인 것 같다. 운동이 변화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시기에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시민운동이 더 이상 매력이 없어졌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내는 게 시민운동의 새로운 숙제라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시민운동이 그간 많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참여 기반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회원의 수도 적고, 아직 시민사회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그 폭도 협소하다.
김동춘 :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이어서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웃음) 또 하나는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 시민사회가 바뀌어야 하는데, 정치적이면서도 정작 이 점을 자각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노조에 가입했거나, 혹은 사회 운동에 한번이라도 참여해 봤거나, 자기 주변에서 의식적으로 각성할 만한 어떤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거의 이런 걸 자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회운동에 노출된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현실 정치에 쉽게 흡수되고, 모든 것을 현실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한다.
프레시안 : 그런 면이 아주 많은데, 특히 사회가 변해야 정치가 변한다는 인식이 모자란 것 같다.
***"민주노동당 10석이 어디서 왔는가"**
김동춘 : 맞다. 지금 정도로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변화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 10석이 어디서 왔는가?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의 다양한 사회운동이 꾸준히 요구해온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확대에 따른 것이다. 여러 가지 반부패 법안, 기초생활보장 제도 등 각종 복지 법안들은 결국 민주노총, 시민단체 등 사회운동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고 거기에 시민사회가 호응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런 데 대해 인식 수준이 낮다. 모든 것을 정치가들이 다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문제를 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운동을 통해 정치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정치인에게 직접 줄을 대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민원성 문제 해결'을 하려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이건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동당이 이 정도까지 온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한국 노동운동이 성장한 탓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더 강화되지 않고서는 민주노동당도 앞으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좀 뜨니까 이제 민주노동당이 모든 노동 사안의 중심인 것처럼 인식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힘이 없으면 민주노동당도 무력해지는데...... 민주노동당이 뜨니까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민주노동당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게 우리나라의 수준이다.
프레시안 : 시민운동이 그런 면에 대해서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승창 :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시민들이나 우리나 일종의 관성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 동안 '시민 없는 시민운동', '정파적 시민운동', 이런 논란 위에 덧씌워 진 게 있다고 본다. 시민들도 그렇고, 시민운동을 하는 우리 스스로도 그렇고, 언론 역시 지금의 시민운동을 바라보는데 특정한 프리즘에 갇혀 있다. 바로 '90년대식 시민운동' 즉 경실련, 참여연대로 각인된 시민운동의 전형을 놓고 그것을 통해서 시민운동 전체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시민들한테 시민단체 아는 것을 얘기해보라고 하면 딱 5개 나온다. 다 짐작하실 거다. (웃음) 경실련, 참여연대,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그다음에 YMCA 가 나오거나 여성단체가 하나 나오거나. 이 단체들은 어떤 단체들인가? 바로 TV와 신문에 매일 나오는 단체다. 언론을 통해 보면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이것 5개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는 중에 우리가 시민운동과 시민단체를 보는 틀도 관성화돼 있었다.
이들 단체들이 사회ㆍ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면서 우리 사회 여러 문제에 개입해 여론을 형성하는 그 뒤편에는 그들의 활동을 받쳐주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존재하고 성장해 왔다. 이런 단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인터넷 속의 수많은 까페들도 마찬가지고. 경실련, 참여연대 등은 이들 다양한 단체들의 활동을 대표해서 전선에 서 있었던 셈이다.
***"새로운 시민운동 자산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시민운동의 큰 힘을 이해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탄핵무효 범국민행동'의 집회에 20만여명이 단숨에 몰려나오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세상에 한 걸음 딛고 바로 열 걸음을 가는 일은 없다. 아홉 걸음을 가야 비로소 열 걸음이라는 비약이 생긴다. 그런 점을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 했던 것이다. 또 안 봤던 거고.
이런 다양한 힘들이 바로 새로운 시민운동의 자산으로 인식돼야 한다. 언론도 그냥 시민의 움직임이라고만 보지 말고, 이것을 새로운 운동으로 주목해서 사회적으로 의미부여를 해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새로운 시민들의 움직임과 시민운동의 기존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활동가들 사이에 거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승창 : 그 점도 고민이다. 이제 활동가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소비자 운동 단체들이 있다. 물론 그 단체들은 기존 단체와 다르게 영속적이지 않다. 일정 기간만 존재하다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상근자나 회비를 내는 회원도 없다. 단지 해당 사이트를 찾아오는 방문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기업이 바로 그 사이트에 항복한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일이 너무 많아지니까 뉴스가 안 될 뿐이고. 이렇게 시민운동의 변화와 함께 활동가의 개념도 좀더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시민운동의 미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얘기들이 많았다. 이제 '시민운동의 미래'를 우리 사회의 개혁과 연결해 고민해보자. 우리 사회 전체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 개혁을 넘어서 교육, 언론 개혁 또 지역 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단 그 순서나 방법을 놓고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많다.
먼저 언론 개혁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한다. 김 교수도 언론 개혁을 사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해 왔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와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의 '시민운동의 미래'를 주제로 한 '대화'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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