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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ㆍ족벌ㆍ파벌, '벌(閥)'을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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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학벌ㆍ족벌ㆍ파벌, '벌(閥)'을 해체하라"

'대화' <2> 홍세화 vs 고종석, '사회 연대' (하)

사회주의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과 자유주의자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10여 년간 지인(知人)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두 사람의 대담은 정치적 민주화는 확장됐지만 빈부 격차 등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 연대'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찾는 것으로 모아졌다.

앞서 두 사람은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각종 집단주의가 독재정권에 의해 정치 이데올로기로 왜곡되는 과정을 거쳐, 그 결과 '집단 속에 숨어있는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했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로부터 이식된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재벌, 학벌, 족벌, 파벌 등 집단에 기대 있거나 집단에 숨어 있는 '벌(閥)'을 해체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사회 연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이번 4월 총선을 통해 의회 권력이 보수 우익 세력에서 자유주의 정당이라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간 것에 일정 정도 의미를 부여했다. 단 열린우리당이 진정한 자유주의 세력이라면 '벌'을 타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특히 이들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이야말로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데, 정작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서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두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개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됐던 두 사람의 대담 뒷 부분에서는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등 구체적인 개혁 과제와 관련된 얘기가 주로 오갔다.

다음은 대담 뒷 부분.

***"상층 부르주아로 포섭된 기자들"**

프레시안 : 여러 가지 개혁 과제가 있겠지만 가장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언론 개혁일 것이다. 이것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얘기할 '사회 연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언론 개혁이 말해진 지는 굉장히 오래됐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여전히 안 보이는 것 같다. 언론 개혁을 추진하는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이 존재하고.

고종석 :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언론 개혁이) 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별로 기대는 안 갖고 있다. 신기남 의장이 구상하고 있는 상위 몇 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해 현재의 왜곡된 시장 구도에 변화를 가하는 식의 제도적 조치들이 이뤄진다 해도 여론시장을 바꾸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과점 언론들 즉 조중동 논조가 왜 그렇게 보수적이냐. 사주들이 정말 친자본적이고 수구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가 됐다. 그전까지는 기자들 월급이 한국 사회 평균이거나 더 아래였다. 그래서 아래에서 한국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등은 월급쟁이가 받는 최고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미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상층부에 기자들이 들어간 것이다. 편집권 독립을 얘기하는데, 기자들이 편집장을 뽑는다고 좀 다른 논조를 주장하는 편집장이 뽑힐까? 데스크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기사를 쓰라고 하면 기자들의 논조가 바뀔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층 부르주아에 포섭됐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홍세화 : 고 형이 잘 지적했다. 프랑스 <르몽드> 기자들의 평균 봉급은 2만4천프랑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월 5백만원, 연봉 6천만원 정도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거칠게 환산할 때 한 연봉 3천만원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와 비교해볼 때 조중동이나 방송사의 임금 수준은 너무 높다.

고종석 : 이미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화한 현실에서 언론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방송만 해도 그렇다. MBC는 노조가 잘 떠받들어줘서 사장이 바뀌어도 개혁적인 논조다. 개혁적 사장이 간 KBS보다 더 개혁적이다. 하지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우익잡지인 <한국논단>에서 사상 검증할 때 방송 3사가 다 생중계했다. 이게 1996년, 고작 8년 전 일이다. 정치적 성황이 달라지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한겨레>가 창간된 지 16년이 넘었다. 물론 <한겨레>가 사회를 이만큼 바꾸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그 신문사에서 한 때 월급을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시장점유율에서 조중동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자본력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한겨레>에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면 <한겨레>의 성격이나 기자들의 성향이 변할 게 뻔한다. 아무래도 기자는 좀 가난해야 할 것 같다. 너무 가난해서는 안 되지만......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회가 너무 안락해서 '이대로 살아도 괜찮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다. 기자들은 약간 부족한 상태가 좋은데...... 이런 걸 법으로 못 만드나. (웃음)

***'조선일보 품질이 좋다'는 건 '한나라당 품질 좋은 정당' 격**

프레시안 : (웃음)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 논란이 됐다.

고종석 :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강연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일부 언론에서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홍세화 : 노회찬 씨한테 노무현 지지자들이 엉겨 붙어서.......

고종석 :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조가 초청해서 간 게 무슨 잘못이냐', 이런 식의 해명은 사태를 잘못 보고 있거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노조 가입자라고 생각이 다를까. 너무 계급 환원적인가? 물론 나는 지식인이고 계급을 초월해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걸 감안한다면 노 총장이 '<조선일보> 노조 초청' 핑계를 대는 것은 찝찝하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노회찬 총장을 비판하기 전에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조선일보> 인터뷰 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열린우리당 인사들에게는 그런 기준을 적용 못 하나?

홍세화 :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아쉬운 게 바로 그런 부족한 균형 감각이다. '안티조선'이란 대의에서 출발했다면 그런 부분을 짚어줘야 한다.

나는 노회찬 총장 사건과 관련해서 딱 한 마디만 하겠다. 나는 '<조선일보>가 품질이 좋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한겨레>에 몸을 담고 있어서 때문은 아니다. 그런 노회찬 씨의 말은 내가 민주노동당에 있는 노회찬 씨에게 '한나라당이 품질 좋은 정당'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얘기다.

고종석 : 노회찬 씨가 잠을 못 이루겠다. (웃음)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신문사에서도 <조선일보>는 안 본다. 그래서 품질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다. 내 경험 공간에 <조선일보>가 없기 때문에 관심 끄고 산다.

***"언론 개혁, 결국 국민 의식 문제다"**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없나?

홍세화 : 고 형은 주로 기자들의 부르주아화에 주안점을 뒀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조중동은 철저한 사익추구 집단이다. 그들이 가진 자본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를 위해 언론 권력도 활용하는 것이다. 신문을 아주 성실하고 철저하게 자본의 극대화를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 그런 게 '편집이 좋다', 이런 걸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제도화를 통해서 뭐가 가능할까? 그 폭은 아주 좁디좁다. 물론 좁은 폭이라도 제도적 개선은 꼭 필요하다.

결국은 국민들 의식의 문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프랑스에서 '국민의 신문' <한겨레신문>이 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 정말 소통이 되고 올바른 여론이 만들어지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신문이나 언론이 (국민 의식을) 따라오는 것이지 언론만으로 변화가 가능한 게 아니다. 조중동은 특히 더욱더 그렇다. 언론 개혁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 : 신문 자체의 영향력이야 점점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신문에서 인터넷 매체로 간다고 해서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거대 자본이 인터넷 매체에 뛰어들지 않고 있지만, <조선일보> 자체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 자본이 인터넷 매체와 방송에 진입할 수도 있다.

어려운 얘긴지만 언론 개혁은 작고 날렵한 게릴라 언론, 풀뿌리 언론, 이런 것들이 아주 많이 만들어질 때, 결국 인터넷 매체 형태가 되겠지만, 이런 매체가 여러 가지 분야에 포진해서 각개 약진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희망은 인터넷 매체에 있다.

한 가지, 과점 신문에 바라는 건 악의적인 오보를 안 하는 것이다. '기자적 양심'에서 거짓말을 쓰지 않는 것 정도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약자의 시각에서 봐라', '네 계급을 버리고 존재 이전을 해라', 이건 어려운 얘기이다. 미디어가 사회를 선도하는 건 여론 투쟁인데, 연대가 독립적 개인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이듯 작은 언론들, 자본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언론들이 많이 생겨서 덩치는 안 되니까 수로 에워싸면서 싸우는 게 필요하다.

홍세화 : 그런 면에서 독립 언론, 인터넷 신문, 비주류 신문, 공영방송의 노조가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참 힘들다. 경쟁대상끼리는 극복대상 앞에서 서로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를 해야 한다. 이게 바로 기본 원칙이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

고종석 : 생물체로서 감각 기관에 한계가 있으니까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는 법이다. 탄핵 정국에 수만명이 모여 광화문 촛불 시위하는 등 대처를 잘 했다. 요새 며칠 사이에 이라크 전쟁 반대 촛불시위를 했다. 오늘도 촛불 시위를 하는데 얼마나 모일지 걱정이다.

전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별거 아니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얘기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라고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대의 감수성이 인류 바깥으로 못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난 철저한 '휴머니스트'이다. 그런 면에서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에 얼른 동감이 안 간다. 인간들 사이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데....... (웃음) 소말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에 억압받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그들에게 연민과 연대를 하기 위해 자기 감각을 열어놓으려고 애를 썼으면 좋겠다. 이라크도 문제지만 팔레스타인도 심각한 문제이다. 일제 시대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팔레스타인이 처해 있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미국 아닌가? 이스라엘, 영국, 일본은 사실 미국의 한 주나 다름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언론에 불만이 많을 것 같다.

고종석 : 프랑스 <르몽드>를 보면 바깥 문제, 특히 제3세계를 다룬 기사가 1면에 실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우리 신문은 국제 소식이 크게 다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 포로 학대'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잘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처음 보고, <르몽드> 등을 들어가 봤더니 다들 난리더라. 근데 한국은 조용했다. 한국 신문이 그 문제를 도배할 때까지 한 2~3일이 걸렸다. 우리는 다 그리스인이고 이라크 인이다. 인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물론 자연에도 관심을 가지면 더 좋겠지만......

홍세화 : 휴머니스트이니까 더욱더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형도 말로는 그렇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 형 지적대로 한국 언론, 특히 공영 방송이 내놓는 외국 뉴스는 전부 토픽이다. 그걸 보고 참담했다.

방금 '우린 모두 그리스인이다, 이라크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국 사람은 그 부분에 있어서 한 가지는 돼 있다. 바로 '우리는 모두 미국인' 이런 식으로. 이라크인이나 그리스인은 못 될지언정 미국인은 다 돼 있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미국의 홍수, 정전 사태도 마치 한국의 일처럼 크게 다룬다.

고종석 : 내 표현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다. 주를 붙여야겠다. '그리스를 미국으로 대치할 수는 없다' 이렇게. (웃음)

홍세화 : 지난 9.11 테러 당시 장 마리 콜롱바니 <르몽드> 사장이 '우리는 바로 미국인이다'라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칼럼에서 '우리는 뉴욕 사람일 수는 있지만 미국인이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고종석 : 한국 사람들은 미국인 한 사람의 무게와 제3세계 한 사람의 무게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은 아주 정확하게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다. 나이지리아 한 사람이 미국 사람 한 사람의 150분의 1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나이지리아 사람 1백50명과 미국 한 명이 동일한 비중, 심지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서울대 개혁, 우선 정원이라도 줄였으면"**

홍세화 : 아까 결국 의식이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교육 개혁이다.

고종석 : 홍 선배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오라면 기꺼이 가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홍 선배 전략은 그람시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헤게모니를 쟁취하자.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더 많은 동의를 얻어내자.'

최근 서울대 폐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가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현실적 권력이 온존하는 한 이런 논의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변화를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완전히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가든가. 학부를 유지하더라도 순수 인문학, 자연과학 등 소수의 학생들만 뽑아 엘리트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대학은 평준화하는 등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박정희 정권 시절에 고교 평준화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기고 출신들이 얼마나 저항을 많이 했는데. 지금 서울대 출신들이 전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서울대에 변화를 주기란 어렵다. 서울대 출신이 아닌 상층부 사람들도 자기 자식들이 서울대에 갈 가능성이 높으니 더욱더 그렇다.

나는 우선 서울대 학생수라도 지금보다 확 줄였으면 한다. 서울대가 규모도 크니까 점점 엄청난 권력 집단이 된다. 아주 뛰어난 사람들인데 수가 작다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작을 텐데...... 최소한 지금보다 정원이라도 줄이라고 요구해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서울대 개혁의 한 축이 돼야할 교수들도 너무나 기득권에 익숙해, 외부에서 서울대를 어떻게 보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홍세화 : 나는 한국에서 교육자본이란 측면에서는 특혜자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인식 못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인 내 자식들이 교육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단호하게 서울대 문제를 바라보게 됐다.

정원을 줄이는 수준에서는 문제해결이 전혀 안 된다. 권력학교라는 게 무너져야 한다. 서울대는 지식과 부와 지위, 이 모든 걸 독점하는 거대한 기득권 집단이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준다. 서울대의 권력독점 문제로 일어나는 사회악이 너무 심각하다.

고종석 :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의 저항도 엄청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홍세화 : 그러니 싸워야 한다. 교육혁신위에서 공동학위제 얘기가 나오는 등 과거에 비해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이 기회에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판갈이가 있어야 한다.

대학서열화로 고등학교 교육이 완전히 왜곡돼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에서 제기했듯 교육과정 자체가 인권침해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권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또 아주 심한 경쟁체제라서 연대 의식을 가질 수도 없고.

***"한국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생동안 두 번만 긴장"**

고종석 : 끔찍한 계급투쟁의 연속이다. 입시는 계급투쟁이다. 궁극적으로어느 대학이든 들어가기는 쉽고 졸업하기는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경쟁력하고도 부합한다.

홍세화 : 동의한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경쟁의식만 가득 차고 비판의식은 갖지 못한다. 기득권 세력들은 엘리트 교육과 교육 경쟁력을 얘기하곤 하는데, 한국의 엘리트가 엘리트냐. 엘리트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엘리트는 능력도 부족하고 사회적 책임 의식도 없다. 극심한 경쟁 과정을 통해서 선택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상 심리만 있다. 이게 서울대 출신 기득권자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경쟁력은 경쟁력을 외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단적으로 서울대가 학문 경쟁력이 있는가?

고종석 : 입학만 하면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 : 대학이 서열화 돼 있기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경쟁이 이완된다. 졸업장만 받으면 되니까 자기 성숙은 절대 모색 하지 않는다.

한국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생에 걸쳐 딱 두 번밖에 긴장하지 않는다. 대학 입시와 취업. 경쟁력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성숙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계발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런 게 없으니 한국은 애초 석학이나 뛰어난 과학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경쟁력을 위해서도 권력 학교인 서울대는 퇴출돼야 한다. 아니면 권력과 관계없는 인문학, 기초과학 이런 부분에서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남든지. 그것도 자신 없으면 국ㆍ공립대 평준화를 통해 걸러진 아이들이 학문 공동체 속에서 연마되는 식으로 가야 한다.

고종석 : 학벌 사회와 학벌 없는 사회는 사회 전체 행복의 총량이 큰 차이가 날 것이다.

홍세화 : 프랑스는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간다. 대개 고교 졸업자의 70%가 시험을 봐서 70% 정도가 합격한다. 이 중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바로 올라가는 학생이 28%에 불과하다. 2년 과정을 3년 안에 마치지 못하면 대학을 떠나야 한다. 유급은 한번만 인정한다. 결국 56%가 하지 못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이력서에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보고 몇 년 만에 수료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기재한다. 그러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ㆍ고등학교 때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미리부터 직업학교를 선택한다.

물론 프랑스도 엘리트 교육 한다. 프랑스는 아주 소규모로 일종의 직업 전문학교를 운영해 엘리트 교육을 한다. 그게 서울대와 같은 학교는 절대 아니다. 그들이 패거리를 지어봐야 아주 작은 규모도, 또 그들끼리 좌ㆍ우 이념에 따라 경쟁을 한다.

고종석 : 권력과 학위가 유착돼 있는 것도 문제다.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학교라 할 수 있는 고등사범학교에서는 박사 학위를 못 받는다. 여기 출신은 무조건 국립 중ㆍ고등학교 선생을 일정 기간 해야 한다. 그것을 안 하면 그간 받은 돈을 물어내야 한다. 그리고 학위를 받고 싶으면 일반 대학으로 가야 한다.

홍세화 : 일부에서는 서울대가 없어지면 금방 연ㆍ고대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서울대 없앤다고 해서 서울대 졸업생이 없어지나? 서울대 졸업생이 '연ㆍ고대가 제2의 서울대가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또 서울대를 없애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싸움이고, 만약 우리가 그것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면 연ㆍ고대 중심으로 학벌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공교육 획일성, 평준화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의가 문제"**

프레시안 : 우리나라는 평준화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평준화를 옹호하는 전교조와 평준화 해체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나 수구 기득권 세력이 대립해왔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평준화를 근간으로 하는 공교육이 자율성이나 창조성과는 배치돼 평균적인 국민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고종석 : 나는 당연히 평준화에 동의한다. 평준화가 아니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입시전쟁에 내몰게 된다.

평준화라기보다는 공교육이 국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중체제가 되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사립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사학에는 국가에서 일체 지원을 안 하는 식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교육은 철저히 평준화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홍세화 : 사회 구성원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다. 교육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소양을 갖춘다는 점에서 시민 의식이 기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사립학교도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약속은 지켜줘야 할 것이다.

지금 공교육이 창의성, 개성을 죽이는 이유는 평준화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국가주의 때문이다. 주입식 또는 의식화 교육, 과거에는 반공 의식화를 계속하지 않았나.

그 다음에 중요한 부분이 국가의 재정 지원이다. 이는 무상교육 문제와 결부되는데, 공화주의 관점, 시민의식이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고종석 : 이게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바깥에서 국가주의가 척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가 국가주의, 애국심의 함양기관이 되기 쉽다. 학교 바깥의 시민의식이 충만해 있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국가주의가 학교를 통해 쉽게 주입되지 않나.

홍세화 : 교장 임용 제도 등 각종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가 권력 요구를 충실하게 따를수록 교장, 교감이 되고 학교를 반(反)민주주의적이면서 권위적인 구조로 온존시키고 있다. 교장이 국가주의 교육의 충실한 마름이면서 단위학교의 제왕이 돼 있는 구조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고리다. 이를 제도 속에서 분쇄해내는 게 개혁정권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병영구조다. 실제 이 땅에 근대학교를 세운 게 군국주의 일본인데, 일본이 뭘 본 따서 만들었겠냐. 바로 군대이다. 정말 나쁜 의미의 국가주의 교육이다. 반세기동안 축적돼 있는 이런 부분에 대한 반전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육 과잉상태, 무상교육하고도 남아"**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은 아까 무상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홍세화 : 내가 연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상교육 문제다. 정말 한국의 교육계가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경제력이 커가는 것과 비례해서 무상교육이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무상교육 제도는 흔히 말하는 '사회 연대'의 구체적 실현의 모습이다. 서민들의 고통의 주요 내용이 교육비 문제다. 또 사교육비 문제에 있어서도 궁극적으로 공교육을 무상으로 하는 게 그 해결의 중요한 열쇠다.

지금 50여년간 공교육 제도를 하면서 얼마나 물적 토대가 늘어났나. 그 과정에서 법적으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의무 교육화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대학교육까지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교육까지 받지 않고는 사회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강제하고 있는 사회다. 그런데 그 비용의 대부분을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있어야 된다.

이미 한국의 교육은 과잉상태다. 왜곡돼 있기 때문에 과잉이 된 거다.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그 얘기는 뭐냐면 무상교육을 하고도 남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육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상태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은 가능한 일이고 해야 되는 일이다.

프레시안 : '사회 연대'의 측면에 더 주목해서 얘기해보자.

홍세화 : 무상교육을 통해 '사회 연대'라는 중요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무상교육은 계층 간 '사회 연대'이고, 세대 간 '사회 연대'의 실현이다. 교육자본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개입할 가능성이 열린다. 지금은 각자 획득한 교육자본이 사유화 돼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로부터 또 국가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성원들이 쌓은 교육 자본은 자기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다.

지금처럼 자기 자본을 들여, 자기가 잘나서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책임 의식을 기대하는 것도, '사회 연대'도 불가능하다. 무상교육 제도를 갖추는 것은 그 사회의 책임 의식과 '사회 연대'의 가능성을 연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고종석 : 앞에서 얘기한 레옹 부르주아도 무상교육을 '사회 연대'의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홍 선배 말대로 교육과 관련해 우리사회 개혁 과제 중 중요한 두 가지는 학벌 카르텔을 타파하기 위한 서울대 폐지와 교육 자본의 고스란한 재생산을 막을 수 있는 대학 교육까지의 무상화일 것이다.

***"계층 고착화로 '개천에서 용 난다' 불가능"**

홍세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요새는 불가능하다. 계층의 고착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도 나왔다. 그러나 계층의 고착화가 돼 가는 과정에서 강남 얘들이 점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가 상층 계급이 경제적 자본에 의해 상징 자본도 같이 점유해나가는 문제를 지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사회도 불평등 구조가 더 심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서울대 혁파와 무상교육 문제는 더욱더 중요하다. '사회 연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고종석 : 교육 자본을 포함해 상징 자본과 경제적 자본 사이에 파열을 내야 한다. 다 고스란히 독점하는 게 아니라.

좀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김영삼 정부에서 권력과 부를 같이 갖지 못하도록 하겠다면서 고위 공직자들 재산 신고를 하도록 제도화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한꺼번에 그것들을 다 갖는 게 아니라, 이런 자본이 있으면 저런 자본은 좀 덜 갖도록 하는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좀 모자르게 하는 그런 제도 말이다. 이것 참,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데...... (웃음)

홍세화 : 그러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라니까. (웃음)

***"경제적 민주화 진전하기 전에 '2004년 체제' 말할 수 없어"**

프레시안 : 오늘 대담 내용만 놓고 보면 고종석 선생은 자유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겠다.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많이 진전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적 격차가 심해지면서 개인이 이 사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권리가 제약받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고종석 : 최근 <한겨레21>에서 탄핵 정국의 결과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현 상황에 대해 '2004년 체제'라는 말을 썼다. '1987년 체제'가 끝나고 '2004년 체제'라는 얘기인데, 전혀 말이 안 된다.

1987년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항쟁을 통해 6월29일 노태우 씨가 6ㆍ29선언을 했고 그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틀이 만들어졌다.

또 그해 7, 8월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어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1987년 체제'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 두 개의 큰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6ㆍ10으로 시작한 정치적 민주화의 흐름과 7ㆍ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시작하는 사회ㆍ경제적 민주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은 '1987년 체제'가 꽤 진화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이 있지만... 녹음기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욕을 노골적으로 할 수도 있으니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게 아닌가? (웃음)

그러나 또 하나의 축인 7ㆍ8월 노동자 투쟁이 던진 과제는 진전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유행처럼 들어오면서 또 국내 경제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노동의 유연화'니 이런 것들이 한국사회를 점령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되는데 빈부격차는 더 거치는 과정에 서 있다. '1987년 체제'의 기둥이 나란히 가는 게 아니라 기울어서 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을 '1987년 체제'를 극복한 '2004년 체제'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987년 체제'에서 그 다음 체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고종석 : 맞다.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강조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시위 이상의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가 있어야 한다. 또 우리나라에 와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옹호하는 시위가 그 정도 열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의식과 감각을 다 쏟아 부어 '1987년 체제'를 완성시켜 나가야한다. 그게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이게 단순히 남한 민중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기에 더욱더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이라크 인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웃음)

홍세화 : 지금 애기하는 걸 들어보면 민주노동당에 왜 안 들어오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웃음)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그것을 지향하는 당은 버겁다고 그러는지.

프레시안 : (웃음) 고종석 선생을 옹호해야겠다. 고 선생은 책에서 "집단화되지 않는 불우한 개인들"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사회 연대'는 측은지심의 일반화"**

홍세화 : 결국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가시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민권 차원의 문제다. 호주제, 국가보안법, 언론 개혁, 공무원들의 정치적 자유 등은 어느 정도 티격태격하는 중에 진전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권리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또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외 의존도 등을 감안할 때 참 한계가 많다. 거기다 이라크 파병 반대 목소리도 아주 작고. 참 어려운 과제이다.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가 어렵다.

고종석 : '사회 연대'는 결국 자기가 있는 처지에서 사회ㆍ정치적, 상징적 자본이 모자란 사람들과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걸 연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나는 '연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 못났는데 못난 사람들끼리 한번 통해보자, 이렇게 말이다. 맹자가 얘기한 어짐의 끝머리는 측은지심이다. '사회 연대'가 측은지심의 일반화가 아닐까?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펴냄)이라는 책에서 지적한 열림도 연대의 태도고 측은지심의 일반화가 아닌가 싶다.

홍세화 : 그런 '열림'을 '열린'우리당에 요구해야 하는데 말야. (웃음)

고종석 : 내가 열린우리당 당원도 아니고,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라서 요구하기가 참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야겠다. (웃음)

홍세화 :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왜 연대 의식과 멀어졌나. 인권과 관련해 부채 의식이 있다고 본다.

바로 한국전쟁기에 있었던 학살 문제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모르지만 민간인에 대한 엄청난 학살이 있었다. 왜 죽었는가. '공산당'의 '공'자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게 일제 부역세력을 정리하지 못한 것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하나는 가해자들에게 공격성을 더 줬다. 피해자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채 의식을 줬고. 어떻게든 누명을 벗겨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사회 연대'보다는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추한 자본주의 신봉자들로 몰고 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6ㆍ25 특별법 제정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고종석 :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다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백 하나 해야겠다. 나는 사실 '추빠(추미애 전의원 지지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나는 아주 호감을 갖고 있다. 최근의 행보는 안타깝지만 또 연민이 가기도 한다. '추빠'로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추미애 씨가 적극적으로 그 제정에 관여했던 '4.3 특별법'도 방금 홍 선배가 지적한 그런 치유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웃음)

프레시안 : 앞으로 한번 더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웃음)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하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와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이 '시민운동의 미래'를 주제로 세 번째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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