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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프로세스 즉 정체성외교 (identitypolitik)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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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프로세스 즉 정체성외교 (identitypolitik)가 필요하다

[이근 칼럼] 격동의 동북아,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

이달 초, 한국은 2015년으로 예정됐던 미국으로부터의 전시작전권 환수를 다시 한번 연기하는 대신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망(MD) 참여에 사실상 합의했다. 한편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 동북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한일, 중일 간의 과거사 문제가 청산되지 않은 가운데, 한국이 MD에 참여하고 일본의 군사 활동 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본의 안보 강화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한국에는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게 이근 교수의 진단이다.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보다는 갈등과 대결을 부추길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중국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일본으로서는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중국의 군사 공격에 대비해 MD를 강화하고 자체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MD 참여는 우리의 최대 경제파트너이자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 당사자인,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협력해야 할 중국을 적으로 돌려세우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근 교수는 동북아의 실질적 주인은 한중일 3개국이며, 미국은 언제든 동북아를 떠날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와 중국, 일본 간의 신뢰와 화해 조성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0월초의 전작권 연기와 MD 참여가 향후 수십년 동북아의 행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오판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 볼 때이다. 이근 교수의 글을 세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요동치는 동북아시아 정리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남북한을 둘러싼 전개 과정을 고려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몇 개의 중요한 고려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국력 추이를 볼 때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최소한으로 주고 최대한으로 가져가려는 군사전략, 특히 파병병력은 줄이고 군수산업과의 협력 하에 개발되는 기술력에 의존하면서 이 지역의 안보부담을 동맹국에게 상당부분 떠넘기려는 군사전략을 택할 것이다. 미국의 전략 속에 일본과 한국을 더욱 깊숙이 끼워 넣으려는 의도가 거기에 있다. 미국의 국력 추이와 최근의 전쟁 경험을 볼 때 어쩔 수 없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뒤집어지기 어려운 전략이다.

둘째,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 진화를 이용하여 일본은 자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중국과의 힘의 역전, 과거 침략에 대한 중국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최악의 경우 미국이 동북아를 떠날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의 동북아시아 군사전략은 일본의 국익과 상보적인 관계이다.

셋째,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은 미국의 확장억지에 대한 동맹국의 의구심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으며 북한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미사일에 대해서도 방어망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인 불완전성, 그리고 중국 북한에 대한 위협 증대, 군비경쟁의 촉발 등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넷째,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특히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방어망에 한국이 들어가는 것은, 일본의 경우와 달리 한국의 안보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보 상황을 악화시킨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중국과 군사적으로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 그런데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한국이 참여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중국에 대한 공격망 속에 한국이 포함되게 되어 이전보다 안보상황이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북한문제를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참여로 풀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진정한 상수는 한중일이고 미국은 변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지역에 전쟁이 날 경우 인명, 재산 피해를 가장 많이 입게 되는 것은 결국 한중일이다.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본토 방어는 한중일보다 유리하다. 그리고 경제문제와 국내정치적 문제로 동북아시아에서 점차 발을 빼면서 필요한 이익만을 최대한 가져가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동북아시아는 한중일 공동운명체라는 것이다.

▲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미군 해군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갑판 모습. 조지워싱턴 호는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남해에서 실시된 한미일 해상훈련에 참여했다. 일본 역시 항모급 대형 함정 '이세'를 파견했다. ⓒ연합뉴스

한국의 단기적 선택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외교적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독자적 군사 능력을 강화하는 일이고 그리고, 미국의 지구적 미사일 방어망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전작권 전환을 늦추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들어가면 우리는 일본과 달리 독자적 국방력에서 멀어지게 되고, 미국과 일본에만 좋은 일을 해 주는 미일동맹의 하위체계로 들어가 버린다. 전작권 전환을 늦추지 말아야 하며, 대중국 공격망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중국은 한국이 중국 시장에서 돈만 벌어가더니 이제는 중국에 총부리를 들이댄다고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한국의 MD 참여에 대해 가만히 있을 중국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미 전작권 연기를 대가로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참여를 받았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우리의 두 번째 선택은, 한국의 군사적 역할과 미일동맹 간의 역할 구분을 명확히 하고, 한국의 국익을 해치는 일본의 군사적 활동을 확실히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전작권 환수는 필수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일 고위급 관계자가 자주 만나서 협의하고 논의하며, 필요시에는 고성이 오갈 정도로 강하게 협상하여야 한다. 일본 우익이 과거사 반성 없이 군사력을 팽창시키는 등 불안감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점을 이용하여 협상 포지션을 높일 수 있다. 즉 일본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의도가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켜 협상을 하여야 한다. 일본의 우익이 공교롭게도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카드를 늘려주는 아이러니다.

우리의 세 번째 선택은 보다 중장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중일 및 남북한 신뢰프로세스를 심도 있게 가동시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한중일은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언제까지나 군사적 경쟁만을 고수해서 천문학적인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전쟁으로 동북아 국가들이 치달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과 전략은 무엇인가?

한국의 중장기적 선택

신뢰는 미래의 배신, 보복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주기 때문에 동북아시아 운명공동체, 즉 한중일 삼국 간에 반드시 있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신뢰가 있으면 상대방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지 않게 된다. 즉 이 시리즈 처음에 언급한 '능력'이 아닌 '의도'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신뢰프로세스인 것이다. 의도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능력이 아무리 성장하게 되도, 즉 자체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해 능력이 급속도로 커져도 크게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중국 일본 간에 힘의 역전이 발생해도, 또 미래에 미국과 중국 간에 힘의 역전이 발생해도 크게 불안해 할 필요가 없어진다. 캐나다가 미국의 의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고, 이탈리아가 프랑스의 의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신뢰는 어떻게 쌓여지는가? 우선 상호간에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면 신뢰는 처음부터 쌓을 수가 없다. 적대적 세력 간에는 신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항복 혹은 소멸이 필요하다. 적에게 신뢰를 준다고 무작정 무장해제를 하는 순간 나의 생명이 끝난다. 따라서 신뢰를 쌓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적대적 관계의 청산이다. 즉 적이라는 정체성을 친구라는 정체성으로 바꾸어 나가는 화해 프로세스, 혹은 정체성 전환외교 (identitypolitik)가 있어야 한다. 적대적 관계의 청산이 있지 않으면 신뢰프로세스가 처음부터 시작할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동북아시아에서는 정체성을 전환하는 화해프로세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한중일 간에 수교가 이루어지고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적대관계가 어느 정도 청산되었지만 몇 가지 점에서 남아있는 문제가 있다.

첫째, 한국과 일본과의 화해프로세스는 냉전이라는 매우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인위적으로 급하게 이루어졌다. 과거사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적절한 절차를 건너뛰고 이루어진 표정만의 화해였기 때문에 아직도 양국 간에, 특히 한국 쪽에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이 불완전한 화해 과정의 역사적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간에 남아있는 화해프로세스를 종결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남아있는 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 특히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한반도에서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중일 간에도 화해프로세스가 제대로 종결되지 않았다. 중일 간 화해프로세스 종결을 위해서는 두 개의 정체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과거 침략자와 피침략자의 정체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냉전기간의 적대적 정체성이다. 전자는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반성과 그 시절로의 회귀불가능성(irreversibility)을 일본 국내정치에서 제도화시키는 것이고 (이는 한일관계에도 해당한다), 후자는 중국의 체제전환을 인정하는 것, 즉 중국을 사실 상 자본주의 체제로 인식하는 일이다. 냉전은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 간의 싸움이었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한국이 권위주의였지만 미국과는 굳건한 동맹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싱가포르도 권위주의 국가이지만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 그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싱가포르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의 체제전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체제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체제적 화해프로세스는 중일 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중간에도, 또 양안 간에도, 미중 간에도 필요한 과정이다.

셋째, 남북한 간에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신뢰프로세스는 진전될 수 없다. 이는 북일 간에도, 북미 간에도 해당된다. 따라서 남한이 주도하여 남북한 화해프로세스를 궤도에 진입시키고, 이를 시작으로 북일, 북미 간에도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물론 화해프로세스라는 것이 조건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북한 역시 적대적 관계의 청산을 원한다는 것을 확인해야 화해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화해프로세스와 신뢰프로세스는 두발로 함께 걸어가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프로세스이다.

넷째, 화해프로세스, 즉 정체성을 바꾸는 identitypolitik와 신뢰프로세스(trustpolitik)는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세스다. 두 과정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말인데, 두 개가 동시에 작동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각국의 정상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거의 상시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자꾸 만나고 대화하여야 한다. 미소 간 냉전 종식에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소 정상과 고위급의 빈번한 만남, 회의, 협상이라는 연구가 있듯이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정상과 고위급 인사들이 자주 만나서 서로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교환하고, 누가 진정성이 없는 지도자인지가 계속 확인되는(verification) 절차를 상시화 해야 한다. 화해는 자주 만나면서 거부감을 없애야 이루어지고 신뢰는 확인(verification)의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결론: 신뢰프로세스 (trustpolitik) + 화해프로세스 (identitypolitik)를 통한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축

물론 신뢰프로세스와 화해프로세스가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이고 만일에 대비해서 강력한 군사력과 뛰어난 전략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 운명공동체가 비극의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평화와 행복의 운명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를 최소한 유럽과 같은 화해와 신뢰가 기초한 공동체로 재탄생 시켜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trustpolitik)라는 정책 방향은 중장기적으로 맥을 잘 짚은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설명했듯이 신뢰프로세스를 화해프로세스(identitypolitik)와 조화하여 하부 정책들을 개발하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집행하여 나간다면 보다 평화로운 동북아시아 운명공동체로 향하는 여정을 열어줄 것으로 믿는다. 그 여정을 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보 상황을 더욱 유동적으로 만들 수 있는 MD 참여,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대해서 보다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전작권 전환을 자꾸 미루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싱크탱크 '미래지(www.mirezi.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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