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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우리에게 정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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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이 우리에게 정 떼고 있다”

[박세일 인터뷰]“우리당, 사민주의 정당으로 정립해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총선 20일전인 지난 3월25일 선대위원장 자리에 지난해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을 맡아 정치관계법 마련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서울대 박세일 교수를 임명,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2백50대 50의 의석수는 민주주의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거여견제론을 주창하며 한나라당에 합류, 위기의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1백21석을 얻도록 한 ‘정책통’이자 막후 브레인 역할을 했다.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자 신분이 된 그는 총선이 끝난 직후 당선자 워크숍에선 ‘정치적 재창당’이란 직설적인 화두를 던졌다. 과거로부터 덧씌워진 수구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면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근본적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일단 수면밑으로 잠복했으나, 앞으로 그의 행보가 한나라당에 커다란 영향을 주리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은 25일 한나라당의 향후 진로를 좌우할 대표적인 조타수로 꼽히는 박 당선자를 만나 그가 강조하는 ‘합리적 보수론’을 들어봤다.

***“우리당은 사민주의, 민노당은 사회주의 정당으로 정립돼야”**

박 당선자는 인터뷰에서 정당간의 선명한 정체성 경쟁을 강조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정당이 돼야하고, 열린우리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 정당으로 정립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국민들이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알고 선택하도록 하는 예의”라며 “17대 국회가 크게는 합리적인 보수, 개혁적인 진보로 나뉘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발전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한나라당은 ‘합리적 보수’로 ‘재창당’될 수 있을까. 그는 “영남에서 온 분들도 ‘옛날식은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김용갑-정형근 의원 등 ‘수구’이미지가 강한 인사들의 건재에 대해선 “설혹 어떤 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본다”고 낙관했다. 그는 “‘3개년 개혁 플랜’ 등 당이 제시할 비전은 전당대회를 전후해 드러날 것”이라며 7월 전당대회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대표경선에 출마, 감투를 쓰고 당을 진두지휘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대해선 “나는 정책에 관심이 있지 정치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주위의 요구가 있어도 못하는 것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출마설을 일축했다.

***“미국이 우리에게 정을 떼고 있다”**

한편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해 박 당선자는 “주한미군 철수의 과정과 규모, 절차를 보면 현 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라고 규정했다. 그는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를 우리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활용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미국으로 하여금 우리를 버리게 한 것은 없었느냐”며 “미국이 우리에게 정을 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약속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계약사회”라며 “이 부분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것이 부족했다”며 자이툰부대 파병과의 관련성을 은연중 암시했다.

그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연구하지 않고 아무나 아무 소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야 정치권에서 ‘찬성한다’,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 분들이 얼마나 전문적으로 파악하고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개인적 입장을 묻는 질문에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정도로 심각한지, 부분적으로 수정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구체적인 상황과 정보에 기초해야 한다”고 직답을 피했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국정운영이 대중적 정서에 의해 결정된다”며 “여론조사를 해서 하자는 대로 하면 쉽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수가 잘못된 결론을 낼 수도 있다”고 정치권 파병 재검토 주장에 대한 완곡한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盧, 기업인들에게 경제살리기 가르침 받아야”**

정치권의 개혁의제설정 논란과 관련, 그는 민생경제 해결이 다른 모든 개혁과제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여권에서 추진 의도가 강한 언론개혁, 사법개혁, 국가보안법 개정 등의 문제에 대해선 “경제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에 비해 국가보안법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논리로 반박했다. 그는 거듭 “개원하자마자 신문개혁, 국보법을 들고 나오는 것은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면서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여야 합의를 통해 신뢰를 회복한 뒤에 그러한 사안들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개원 초기에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놓고 내년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정치개혁 분야에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경제정책과 관련, 그의 무게중심은 성장우선론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그는 “분배로 가는 것은 당연한 추세이고 바람직한 면이 있지만 이것이 너무 오버돼서 우리나라 경제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흔들리면 민주화도 실패하고 경제도 실패한다”며 “이럴 때일수록 성장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하는 사람들과 돈번 사람들을 시기하는 생각이 지도층에 많다면 경제가 클 수 없다”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경제하는 사람을 잘 아끼고 격려하고 소중히 생각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규제 문제에 대해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질서적인 개입은 강화해야 하지만, 경제 주체의 판단에 맡겨야 할 과정의 개입은 줄여야 한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경제과정에 개입하는 아주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이어 최근의 경제위기를 의도적으로 확대하는 세력이 있다고 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시각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그런 코멘트는 안하는 것이 좋다”며 “기업인들에게 전화해서 경제살리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가르쳐달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고려에 의한 장관임명 부적절”**

한편 개각 문제 등 정치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꼈으나, “정치적인 고려로 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국정운영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고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대권수업용 입각’에 부정적 시각이 확연했다.

그는 “정동영씨가 외교쪽에 관심이 많고 김근태씨가 복지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겠지만, 그 분들이 그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정책적 고민을 했느냐는 것은 잘 모르겠다”며 이같이 일갈했다.

그는 “대권수업용으로 장관이 발탁된다면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밑에서 먹고사는 국민들은 뭐가 되겠느냐”며 “부처가 트레이닝센터냐”고 비꼬았다.

그는 그러나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총리기용 여부에 대해선 당적변경의 이유탓에 ‘무조건 반대’ 주장이 강한 한나라당의 입장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는 “사람이라는 것이 한 당에서 죽을 때까지 있으라는 법은 없다. 생각이 다르거나 사정이 다르면 바꿀 수도 있다”고 당적변경 자체가 총리기용에 부적절한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당적 변경에 대해 본인의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 불만이다”며 “사견으로는 본인이 고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1시간 가량 진행된 박세일 당선자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

***“정부부처가 대권수업 트레이닝 센터냐”**

프레시안 : 개각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노 대통령 집권 2기 시작이 썩 매끄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보고있나.
박세일 : 글쎄, 코멘트하기가 어렵다. 장관은 업무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너무 정치적인 고려로만 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국정운영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편의에 의한 장관의 임명은 국정운영의 전문화라는 측면에서 전문성과 정책 일관성 유지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야를 떠나서 어느 누가 국정을 책임지든 전문성의 존중이 있어야 된다. 정치인 중에서도 전문성 있는 분이 있으면 모시겠지만, 정치적 고려만으로 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국가운영의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 개각이 확정된 부처는 통일부와 복지부 문화관광부라고 한다. 하마평이 나오는 분들이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가.
박세일 : 정동영씨가 외교 쪽에 관심이 많고 김근태씨가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겠는데, 그 분들이 그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정책적 고민을 했느냐는 것은 잘 모른다. 일반 원칙으로 볼 때는 앞으로 정치적 고려보다는 정책의 전문성과 일관성의 유지를 고려한 장관의 임명이 많아져야 한다.

프레시안 : 차기 대권수업용이라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세일 : 장관을 한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수업이 될 수 있나. 그리고 장관이 대권수업용이라면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밑에서 먹고사는 국민들은 뭐가 될까. 실제로 그렇다면 바람직하지는 않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런 식으로 가면 걱정이다. 예컨대 복지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나. 임명권자가 대권수업으로 정치인을 보내고 수업하려 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부처가 트레이닝 센터인가.

프레시안 : 김혁규씨 총리 지명은 강행한다고 보나.
박세일 : 그런 것 까진 모른다. 다만 왜 꼭 그분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야당도 불편해하고 국민 일각에서도 좀 무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임명권자가 설명을 해야 된다. 그 설명이 설득력이 있으면 야당이 끝까지 반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언론도 비판을 하고 야당도 비판을 하는 마당에 그 사람을 쓰는 것이 국가이익에 도움된다는 설명이 먼저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프레시안 : 굳이 따지자면 당적 변경만 빼면 아직까지 큰 하자는 제기되지 않았다.
박세일 : 한나라당의 입장에선 당적 변경이 화나는 일일 수 있다. 게다가 당적변경의 이유도 설명이 안되고 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다. 사람이라는 것이 한 당에서 죽을 때까지 있으라는 법은 없다. 생각이 다르거나 사정이 다르면 바꿀 수 있지만, 좀 더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 불만이다. 본인이 해명하던지, 설명을 해주는 것이 예의이다.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반대한다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다.

프레시안 : 여권이 먼저 그에 대한 합리적 설명의 기회를 가지면 수용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한나라당의 입장과 다소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박세일 : 문제는 한나라당에 있다고 보지 않고, 당사자들에게 있다고 본다. 솔직히 나는 김혁규 씨를 잘 모른다. 노 대통령이 왜 그렇게 김혁규 씨를 고집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야당이 반대하는데 다른 분을 찾을 수도 있다. 사견으로는 본인이 고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자진해서 "이것은 옳지 않다. 나 말고도 유능한 사람 있지 않냐" 이렇게 하는 것이 예의일 수도 있지 않겠나.

프레시안 :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동반할 총리상으로는 어떤 형이 바람직하겠나.
박세일 : 화합형이 좋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상당히 분열돼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합리적인 사람이 좋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감성이 과다하다. 이념과잉, 감성과잉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이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 통합과 합리로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오시면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다.

프레시안 : 고건 총리 스타일 정도로 보면 되나.
박세일 : 그 분보다는 조금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실례지만 점잖고 다 좋은데 조금 더 통합과 합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오시는 분이 좋지 않을까.

프레시안 : 대통령과의 역할분담에서 총리의 재량권이 강화돼야 한다는 뜻인가.
박세일 : 그것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지금은 대통령에 과부하가 걸려있다. 그것을 좀 덜어주고 대통령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통령이 반드시 나서야 풀어야 될 과제는 대통령이 일하게 하고, 기타 일상적인 부분은 상당 부분 총리와 내각을 넘기는 것이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헌법을 고칠 수 없는 상황이면 본인이 중요한 과제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내각에 맡겨서 한다면 훨씬 더 효율적인 국정운영이 되지 않을까. 행정 문화가 자꾸 대통령에게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본인이 권력을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보다, 문화가 그렇다. 청와대에서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전에 분업이 되는 것이 좋겠다.

프레시안 : 노 대통령의 집권2기를 ‘강력한 대통령’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많다. 당정청에서 노 대통령의 영향력이 훨씬 절대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인데.
박세일 : 강력한 리더쉽은 올바른 데에서는 강력할 필요가 있다. 노대통령이 통합과 화합, 합리와 이성적인 리더쉽을 좀 더 강조한다고 해서 대통령의 힘이 약해진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도리어 힘이 강해질 수 있다. 권력은 나눠줄수록 강해질 수 있다. 통합하고 화합할수록 권력은 강해진다. 강력한 리더쉽은 필요하지만 그 강력함은 통합과 합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강력한 리더쉽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현정부 외교정책의 실패”**

프레시안 : 주한미군 재배치를 어떻게 보나. 한나라당의 인식은 여권과 근본적인 부분에서 시각차가 큰 것 같다.
박세일 : 두 가지를 지적하겠다. 한미동맹은 발전적으로 변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발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불평등한 부분은 고쳐나가야 된다. 두 번째로 주한미군 철수는 현 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다. 주한미군의 철수 과정과 규모, 절차를 보면 한국 외교의 실패다.

프레시안 : 외교정책의 실패라는 단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박세일 :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은 옳다고 본다. 앞으로도 지속되거나 시대에 맞게 변화되는 것이 전제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세계전략의 변화를 갖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우리 국익에 이롭게 만들 것인가가 외교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를 우리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활용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미국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해서 우리를 버리게 하는 것은 없었나. 우리 스스로 우리 국익에 해가 되게 만드는 것은 실패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 변화 속에서 어떻게 국익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증대시켜 나갈 것인가가 국가 외교정책의 기본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에서 미국과의 관계에 불신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었다는 뜻인가.
박세일 : 불신도 중요한 이슈지만 단순히 불신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주냐 동맹이냐 하는 이분법적 발상이 외교 정책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21세기, 상호의존성도 있으면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19세기적인 이분법적 발상은 국익에 해가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관점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우리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훨씬 더 복합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대이다. 일부 신문에서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디가 더 중요한가를 물었는데, 잘못된 문제이다. 지금은 복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시대이다. 단선적이고 양자택일을 하는 시각은 국익에 해가된다.

프레시안 : 미국이 우릴 버린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박세일 : 정을 떼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여권이나 미국에서 얘기하는 미군의 전세계적 재배치 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은 표면이고, 이면에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인가.
박세일 : 미국은 약속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나라다. 믿을 수 없다고 하면 사람취급을 안하는 것이 강력한 정서다. 우리는 그것보다는 정적인 사회이다. 미국은 계약사회이다. 미국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차원에서 훨씬 복합적으로 다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부족했다.

프레시안 : 이 문제는 이라크 파병과도 연관돼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박세일 : 파병은 고도의 군사적, 외교적 전문성에 기초해서 판단할 문제다. 대중적인 정서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전투를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니지만 군인이 가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가는 것인데 명분이 있어야 된다.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분석과 판단위에서 결정해야 될 문제이기 때문에, 깊이 들여다보고 연구하지 않고 아무나 아무 소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느냐 가지 않느냐의 여부보다 이것이 더 걱정이다. 여야정치권에서 '찬성한다', '반대한다'하는데 그 분들이 얼마나 전문적으로 파악하고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정치적 인기를 위한 발언인지 모르겠다.

전문성에서 가장 나은 곳이 대한민국에선 정부이다. 정부는 정보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정부가 판단해서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이 변화가 보내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변화인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할지 기다려야 한다. 정부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반대한다'거나 '고집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지도자들이 인상적으로 판단해서 얘기하는 것은 인기에는 도움될 지 모르지만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교나 군사는 여야간에 나눠질 이유가 없다. 국가 이익이라는 것은 단일한 것이다. 정보가 부족해서 견해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정보를 나눠가지는 정보공유가 중요하다. 정보를 공유하면 인식의 공유로 갈 수 있지 않냐. 정부가 책임졌으면 국방부든 외무부든 책임을 지고 조사하고 전문가 의견을 듣고 국민과 여야를 설득하면 된다. 눈치보고 할 것은 없다.

국민과 정치권은 정부가 먼저 조율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평상시에 너무 제멋대로 얘기한다. 외교 군사문제는 서로 기다려야 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된다.

프레시안 : 그렇더라도 이라크의 객관적 상황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미국 내에서도 부시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회의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박세일 : 걱정하는 것은 좋으나 이라크 상황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주 복합적인 문제다. 중국식 표현으로 '홍전(紅專)'이라는 말이 있다. 홍은 대중성, 전은 전문성을 의미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홍' 중심으로 간다. 전문가가 없어져 버렸다. '홍'과 '전'이 항상 균형을 잡아야 한다. 너무 중요한 국정운영이 '홍'으로 대중적 정서에 의해 결정된다. 그럼 정치가 왜 필요하나. 여론조사해서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여론 조사받는 사람도 정보가 없이 몇 마디 듣고서 결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수가 잘못된 결론을 낼 수 있다. 민주화되고 발전하려면 '홍'과 '전'이 균형을 이루고 발전해야 된다. 모든 국정운영 논의가 편의주의적, 인기영합적, 기회주의적, 무원칙적으로 되는 것이 이 균형을 안잡아서 된 것 아닌가. 중요한 이슈일수록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학자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된다.

프레시안 : 김덕룡 원내대표는 정부가 파병 재검토를 제안하면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박세일 : 교과서적인 얘기 아닌가. 정부가 검토해서 제안하면 당연한 얘기 아닌가.

프레시안 : 파병에 대한 개인적 입장은 무엇인가
박세일 : 솔직하게 잘 모른다.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와 여야가 합의할 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파병 결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상황변화 때문에 당초 보내려는 지역이 아니라 다른 데를 보내려 한 것이다. 어느정도 군사적으로 안정되는지 조사단이 갔다 왔으니 그 사람들 판단을 들어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정도로 심각한지, 부분적으로 수정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구체적인 상황과 정보에 기초한 결정 아니겠나.

왜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 국민들은 경제, 교육, 안보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그런 문제에 여야가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된다. 안의 문제를 잘 풀면 바깥 문제는 잘되지 않을까.

***“민생경제 살리기가 모든 개혁과제에 우선”**

프레시안 : 민생경제를 살리자는 면에선 여야가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각론적인 해법에선 차이가 있는 듯 하다.
박세일 : 정치적인 문제를 우선시하면 여야가 또 대립할 가능성이 많다. 민생문제를 같이 논의해서 상호 공동작업을 하는 경험이 쌓이고 상호 신뢰가 쌓이면 그 다음에 정치문제를 합리적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 경제문제는 합리적이 아니면 풀 수가 없다.

프레시안 : 기업 규제 문제 등에선 여야간 차이가 크다.
박세일 : 풀어야 될 규제가 있고, 가만 둬야 되는 규제를 구별해야 한다. 시장 위주로 문제를 푼다고 해도 시장만능주의로는 안된다. 두 가지 질서가 있어야 된다. 공정하고 투명한 자유경제 질서가 있어야 된다. 두 번째는 시장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사회적 안전망과 자유스럽고 공정한 경쟁은 국가가 당연히 개입해야 될 부분이다. 그 나머지는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시장만능주의는 안되지만 시장주의는 옳다고 본다. 시장주의에 기초해서 하되 정부는 이 두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 과정에 개입하는 규제는 풀수록 좋고 질서에 관련된 규제는 지켜야 된다.

프레시안 : 출자총액 제한제도 등은 경제과정에 개입하는 규제로 본다는 것인가.
박세일 : 바람직한 정책은 아니다. 과정의 개입이다. 예를 들어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질서적인 개혁으로 지켜야 한다. 출자총액 제한제도는 과정의 개입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엄청난 역차별도 만들 수 있고 부작용이 많다. 질서적인 개입은 효과적인 규제, 과정의 개입은 탈규제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재벌정책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 같다. 재벌의 나쁜면은 개선하되, 긍정적인 측면은 발전시키자고 주장해왔는데.
박세일 : 재벌의 구체적 경제 행위에 대해 규제 안할수록 좋다. 구체적인 판단은 자기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경제 질서 공정하게 한다든가, 내부거래 같은 부분은 어느 나라나 규제하는 것이다. 내부거래를 투명하게 하는 것, 회계 투명성은 강화할수록 좋다. 질서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살다가 1백%달라질 수 없다면, 정부와 재벌이 계획을 짜도 좋다. 투명하게 하는데 3~5년 걸린다고 해도 한번 짜면 계속 지켜야한다. 어느 장관이 왔다면 밀었다가 어느 장관이 오면 밀렸다가 정치적으로 유리할 땐 규제했다가 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약속을 하고 한번 정하면 5-10년 쭉 가야된다. 정권 초기에 폼 잡는다고 개혁한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유해하다. 질서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재벌정책은 질서정책이라는 차원에서 바꿔야지, 열탕과 온탕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특히 질서정책에서는 굉장히 유해하다. 노사문제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경제위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유가문제나 중국변수 등 외래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측면이 없지 않은데, 우리가 자체적으로 집중해 해결해야 할 것은 어떤 부분이라고보나.
박세일 : 나는 외부요인이 크다고는 안본다. 지금 미국 경제와 일본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 경제의 바깥 부분은 다 좋다. 그런데 한국경제가 어려운 것은 한국 사람들 마음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 지도층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경제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 국가 운영을 비롯해 모든 정책에 있어서 경제를 높은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경제는 아주 마음이 여린 여성과 같다.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 우리 사회 지도층들이 경제 문제의 중요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약한 꽃을 키우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시장은 굉장히 여리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경제하는 사람을 잘 아끼고 격려하고 소중히 생각해야 된다. 경제하는 친구들과 돈번 친구들을 시기하고, 잘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지도층에 많다면 경제가 클 수가 없다. 지도층 인사들이 경제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경제를 하려는 마음이 국민들과 기업 사이에서 일어난다. 기업은 투자하려고 하고 국민은 근면하게 살려고 한다. 투자의 덕과 근면의 덕이 사회에 많을 때 경제가 산다. 이 부분이 과거에 비해 많이 훼손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경제위기를 ‘의도적으로’ 확대하는 세력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박세일 : 대통령으로서 그런 코멘트는 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중요하다, 민생이 중요하니 모두가 힘을 합쳐 살려야 된다. 살리는데, 내가 할 일이 뭔지 가르쳐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 옳다. 기업인들한테 전화해서 경제 살리기 위해 가르쳐 달라고 말해야 한다.

프레시안 : 분배문제에 대해선 어떤가. 그동안 분배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강해진 것도 사실인데, 제대로 충족되지는 못하지 않았나.
박세일 : 민주화가 되면 정책의 중심이 분배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성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나라 민주화 과정이든 다 따르는 것이다. 정치의 민주화는 경제의 분배 중시 정책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그렇게 가는 것은 틀림없지만, 지속적으로 분배로만 가버리면 민주화를 경제가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 기술 격차, 기업가 정신, 교육수준 등이 그렇게 탄탄하지 못한 나라다. 어떤 의미에서 과거 30-40년간 기적적으로 큰 성장을 해온 것이다. 분배로 가는 것은 당연한 추세고 바람직한 면이 있지만 이것이 너무 오버돼서 우리나라 경제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흔들리면 민주화도 실패하고 경제도 실패한다. 적절한 수준에서 조정돼야 한다. 이럴 때 일수록 성장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민주화는 이미 분배로 가지만 성장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그 사람들을 욕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조화를 이룬다.

프레시안 : 민생경제에 대한 우선순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회적 개혁과제를 동시에 추진할 수는 없는것인가.
박세일 : 할 수 있다. 다만 시작은 민생경제에 대해 여야가 충분히 합의를 하고, 추진이 된 뒤 그 다음 이슈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그런데 개원하자마자 신문개혁, 국보법을 들고 나오는 것은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고쳐야 될 부분이 있지만,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나는 이천하관천하(以天下觀天下)라는 말을 좋아한다. 천하의 마음은 백성의 마음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면 국민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사회개혁, 교육개혁, 사법개혁 해야 된다. 순서를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프레시안 : 언론개혁과 관련해서 한나라당이 들고나선 방송개혁 주장도 자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봐도 되나.
박세일 : 당 내부적으로 팀을 만들어 준비하는 것은 좋지만 여야가 협상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KBS가 문제가 됐고, 또 문제가 사실이다. 공영방송이라는 매체가 중요한데, 중립적 보도하는가, 효율적으로 관리되느냐는 것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 나름대로 안을 만들고 준비하는 것은 좋다고 보지만 이를 갖고 여야가 협상할 때는 아니다.

프레시안 : 여당의 의장과 원내대표는 언론개혁 등을 1년 내에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세일 : 순서가 민생-교육 순이다. 교육이 제일 큰 문제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안보불안이 있다. 확실하게 안보 불안 줄여주는 정책과 입장의 정리가 돼야 된다. 교육개혁을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교육이민, 교실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이 것에 대해 여야가 힙을 합치고, 합리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그 다음 문제는 풀기가 쉽다. 다른 문제를 먼저 들고 나오면 풀기가 어렵고 민생 문제는 흘러가 버린다.

프레시안 : 정치개혁에 대해선 박 당선자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박세일 : 지난번에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원내대표하고 만났을 때, “개원초기에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교감이 있었다. 그런점에서 김 전 대표가 입각한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원 초기에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놓고 내년 초나 봄쯤부터 본격적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번 가을엔 민생경제를 이슈로 다뤄야 한다.

***“우리당은 사민주의, 민노당은 사회주의 정당돼야”**

프레시안 : 총선이 끝난 후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얼마나 변했다고 보나.
박세일 : 첫째로 사람이 바뀌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많이 들어 왔는데, 새로운 사람들은 대부분 젊고 정책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많이 들어왔다. 과거에 여러번 국회의원 하던 분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분들이 대부분 성공했다. 당선자 대회를 보니 TV에서 보던 분들이 거의 없다. 구성이 바뀌었다. 이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희망은 우선 사람이 바뀌었다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얘기를 해보니 한나라당이 크게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컨센서스가 있다. 이 부분도 희망이다.

프레시안 : 정치적 재창당 프로그램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나.
박세일 : 당명부터 당헌당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고, 3개년 개혁 플랜을 짜고 있다. 당이 제시할 비젼 등에 대해 작업하고 있다.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드러날 것이다. 그 쪽으로 가고 있다.

프레시안 : 아무래도 전당대회를 거쳐서 새 지도부가 탄생해야 탄력이 받을 것 같다. 새 대표 경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입장을 밝힐 수 있나.
박세일 : 나는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정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국가가 풍요롭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냐는 부분을 끊임없이 관심 갖고 공부한 것이 사실이다. 외국의 정책 연구 비교연구는 열심히 했지만, 정치는 정말 문외한이다. 알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는 일은 감히 손대도 안된다.
프레시안 : 상황의 요구나 주변의 강권이 있어도 절대 출마하지 않을 것인가.
박세일 : 주위요구가 있어도 못하는 걸 하는 것은 안맞지 않겠나. 잘하는 것도 하기 바빠 충분히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의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낙관했다. 그럼에도 영남당의 한계는 4년동안 짊어지고 갈 한계로 보인다.
박세일 : 그런 면도 있다. 그런데 영남쪽에 온 사람들이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분들도 변화하려는 것을 느꼈다. '옛날식은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기본적으로 변화와 개혁으로 가고 있다는 면에서 낙관적이다. 속도나 강도는 금방 국민들이 만족할 수준이 안될 지는 모르지만,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강하게 느낀다.

프레시안 : 당내 수구세력이 위축됐다고까지 보기는 어렵지 않나.
박세일 : 거의 남아있지도 않고, 설혹 어떤 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본다.

프레시안 : 17대 총선을 지난지도 상당 시간이 지났는데도, 각 당의 정체성은 여전히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과 차별되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나.
박세일 : 이념논쟁을 해야 한다거나 이념논쟁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자가 믿는 자기의 원칙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된다.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정당이 돼야 된다고 본다. 열린우리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 정당이 합리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이론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모두 상대적인 가치가 있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의미가 있는 노선이다. 그 노선을 갖고 한국이 미래를 그려내야 되고, 그럴 때 그런 사회를 하기 위해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국민들이 보게 만들면 국민들이 무엇을 선택하는 지 알 수 있다. 어느 한 선택으로 몇 년 하다가 어는 노선이든 장단점 있으니, 장점이 줄고 단점이 생기면 바꿀 수 있다. 이것이 하나하나 축적이 된다. 이게 혼란스럽고 정치인 스스로가 혼란스럽게 만들면 국민에 대해 굉장히 잘못하는 것이고 역사 발전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당과의 차별성도 중요하지만 한나라당 구성원 스스로의 자기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 지난 당선자 대회에서 한나라당이 이익집단이냐 가치집단이냐고 물었다. 국회의원을 하려고 모인 집단인지, 우리 스스로의 공통된 신념과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인지 물었다. 나는 후자가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체 내에서 자기 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다른 당은 더 노력할 수 있지 않나. 그것을 정책으로 제시하면 국민이 판단하고 선택할 것이다.

프레시안 : 열린우리당을 사민주의, 민주노동당을 사회주의로 본 것은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눈금을 한단계씩 왼쪽으로 옮긴 것 같다. 열린우리당을 사민주의 정당으로 볼만한 요소를 구체적으로 지적해달라.
박세일 : 열린우리당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공통적으로 모으면 사민주의 정도가 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다. 열린우리당은 조금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있는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도면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느낀 것이다. 한나라당도 개혁보수, 개혁적 중도, 21세기 신보수라는 개념을 자유주의라고 풀어버렸는데, 한나라당도 내부적으로 견해가 다르지만 종합적으로 하면 이 정도면 공통 분모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당 내에선 개별적으로 불만 있는 사람은 있겠다. 민노당도 스스로 사회주의 정당이라고 정리하라는 것은 국민을 위해 정리하라는 것이다. 편의상 나눈 것이다. 어떻게 하든 다 좋은 이론이라고 본다. 그렇게 정리하는 것이 국민들이 선택할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알고 선택하도록 하는 예의가 된다. 그렇지 않고 그때그때 편의주의적으로 옮겨가는 것은 옳지 않다.

한나라당이 자유주의 정당이라면 FTA는 반드시 추진해야 된다. FTA는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되니 추진해야 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소수 농민에게 고통이 집중되면 모든 사람에게 얻는 이익을 떼어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 그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보수 노선이다. 이것도 못 만들고 추진도 못하면 올바른 보수 노선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이런 부분도 한나라당이 잘못된 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은 잘못된 정책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눈치를 보다가 반쯤은 수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자유주의 정당이라면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보수와 진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가진 시각이 많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스스로를 진보로 규정하는데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같다.
박세일 : 열린우리당이 내부 사정이 복잡한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진보라고 본다. 보다 진보적인 사람이 전반적으로 평균하면 더 많지 않겠나. 17대 국회가 크게는 합리적인 보수, 개혁적인 진보로 나뉘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발전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최근 인터뷰에서 '진보 내에도 수구세력이 있다'고 했다.
박세일 : 당연하다. 냉전수구세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냉전수구세력이 뭔가 하니 분단상태를 악용해서 특권체제와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냉전수구 세력이다. 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남한에서도 그랬고 북한에서도 그랬다. 남북한에 냉전수구세력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진보세력 속에 북한의 김정일 체제를 용인하거나 마음속으로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엄연한 냉전수구 세력이다. 냉전수구는 분단을 이용해 자기들의 제도개혁을 안하고 기득권을 강화하는 세력이다. 보수가 이런 것과 인연을 끊고 합리적인 보수로 가야하고, 진보 속에도 만일 이런 그룹이 있다면, 정말 진보적인 아젠다를 들고 나와서 같이 토론하면 된다. 보수가 발전하려면 진보가 있어야 되고 보수가 제대로 되려면 옆에 진보가 있어야 된다.

***“盧, 정책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프레시안 : 집권2기를 시작하는 노무현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박세일 : 국민들이 흩어져 있다. 분열되고 파편화 돼 있다. 젊은 사람들은 경제적 미래를 불안해하고 노인들은 안보에 대한 걱정이 많다. 걱정을 많이 하면서 옛날보다 낙관론이 줄어들고 사회가 분열된 것 같다. 첫째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면 통합해야 된다. 감성의 시대에서 합리의 정치로 나아가는데 앞장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상생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한나라당의 새로운 사람 만나보니 합리적인 사람들이 많아져서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람이 없다. 정책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여야를 넘나들면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와대가 정책실장이 국회를 맡도록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설명하며 설득해 가는 과정은 아주 잘된 일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박세일 :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이번에 알게 됐다. 상당히 합리적인 분이다. 합리적, 개혁적이고 투명하려고 노력한다. 합리적으로 여권이 국정운영을 하고 고집을 억지로 부리려 하지 않으면 무리하지 않을 사람이고 여야관계는 굉장히 좋아지리라고 생각한다. 박 대표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냐. 싸움위한 싸움은 안할 것이고 무리한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와 반대 이유도 확실히 밝힐 것이다. 옛날식 여야간 불필요한 밀고 당기기, 뒤통수 때리는 시대는 지나간 것 아니냐. 네거티브 캠페인 안하겠다는 것은 일거에 합의할 수도 있다. 야당 쪽의 분위기는 충분히 협력할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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