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은 투표로 정치인을 심판한다. 불법 대선자금, 방탄국회, 탄핵 등으로 이어진 16대 국회에 대한 4.15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물갈이 의지가 강력히 관철된 '역사적 총선'으로 기록될 것이다. 탄핵을 주도한 야당 전현직 지도부가 탄핵 역풍에 낙엽처럼 줄줄이 낙마했다. 또한 김종필(JP)과 DJ 친위부대인 동교동계의 몰락은 '3김시대의 완전 종언'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수구''색깔론'으로 유명한 김용갑, '폭로정치'의 대명사인 정형근 홍준표, 지역주의의 상징인 김기춘 의원 등은 살아남았다. 이인제 의원도 숱한 철새, 경선불복 행각에도 살아남았다. 이번 총선에서 크게 쇠퇴하기는 했으나, 일부 지역에서 살아남은 지역주의의 산물이다.
***최병렬-서청원-홍사덕 : 한나라당 전지도부 퇴출**
16대 국회의 야당 지도자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정계에서 사라졌다. 정쟁과 반목, 국정발목잡기 등 '네거티브'로 일관했던 16대 거대야권에 대한 심판이다.
탄핵안 처리 이전부터 당안팎에서 퇴진 압력에 시달린 한나라당 최병렬 전대표는 탄핵 역풍이 일자, 17대 총선 불출마와 대표직을 사퇴하고 17대 원내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대표취임 일성으로 밝힌 "거듭나는 보수"는 끝내 구호뿐이었다. 그가 남긴 탄핵이라는 마지막 결정도 결과적으로 당에 치명타를 입혔을 뿐이다.
최 대표와 함께 탄핵안을 진두지휘한 홍사덕 의원도 낙마했다. 그는 탄핵 이전에도 방탄국회, 서청원 석방결의안 등 무리수를 추진하며 한나라당을 나락으로 이끌었다. 그는 일산갑에서 열린우리당 한명숙 전 장관과 맞붙자, "전 지역구인 강남 대치동에서처럼 일산을 전국 최고 교육중심지로 키워내겠다"는 세칭 '제2의 강남' 공약을 내걸고 탄핵역풍을 비켜가려 했으나 별무소득이었다.
한나라당 민주계 좌장이었던 서청원 전대표도 더이상 17대 국회에서 볼 수 없게 됐다.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됐던 서 전대표는 '서청원 석방 결의안'이 통과된 뒤,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면서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 서 전대표는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17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조순형-박상천-정균환-유용태-추미애 : 민주당 전현직 지도부 모조리 고배**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의 운명은 더 참담했다. 한화갑 전 대표 한명을 제외하고, 민주당 전-현 지도부 모두가 전멸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며 대구행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조순형 대표는 큰 반향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집에 빠진 대통령 탄핵 주도와, 탄핵후 대역풍 도래했음에도 당내 기득권에 집착해 사퇴 및 공천개혁 요구를 끝내 거부하면서 그는 자멸의 길을 택했다. 조대표는 총선참패후 16일 새벽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공천 당시부터 추미애 의원을 비롯한 소장파 의원들의 거센 '용퇴' 요구를 받으면서도 "설마 호남 유권자가 나를 버리겠냐"는 시대착오로 버티던 민주당 박상천 전대표와 정균환 전총무는 결국 유권자들의 손으로 '강퇴' 당했다.
박 전대표는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개혁공천' 칼을 휘두를 때, '밥 그릇'을 놓치지 않으려 소장파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덧입혀진 부정적인 이미지로 읺새, 결국 옥중출마한 무소속 박주선 의원보다도 적은 지지를 받으며 자멸했다.
부안핵폐기장 사태에 따른 지역의 강한 반(反)정부 정서를 업고 어부지리를 얻으려한 정균환 전총무도 박 전대표와 함께 낙마해, 두 맹주가 이끌던 구정통모임은 명맥이 끊겼다. 이들 당권파는 50년 역사의 민주당을 몰락시킨 주역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서청원석방결의안, 정치개혁법 개정, 탄핵안 가결 등 원내 굵직굵직한 사안마다 한-민 공조를 주도했던 민주당 유용태 원내대표 역시 가차 없는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는 한나라당과 여러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 민주당 몰락의 근원이 된 '한-민 공조'를 주도한 당사자다.
민주당을 가장 충격에 몰아넣은 것은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낙선이었다. 전국적 지명도와 개혁적 이미지, 여성정치인으로서 희소성을 바탕으로 낙승을 기대했으나 탄핵안 가결 과정에서 막판에 입장을 급선회해 대중적 신뢰를 상실했다. 민주당의 유일한 구심이던 그의 낙마는 당 해체를 관측하는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밖에 동교동계 상징인 김옥두 의원도 낙마했다. 오랜 시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좌우에서 온몸으로 보좌해 온 동교동계의 몰락도 시대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와 함께 동교동계로 꼽히는 정균환 최재승 윤철상 조재환 전갑길 의원 등도 줄줄이 낙마, DJ 퇴임 후 1년만에 동교동계는 정치적으로 확실한 종언을 고했다. 개혁 흐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당 쇄신파 발목잡기에 급급했던 동교동계의 운명은 스스로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만이 비례대표 4번으로 가까스로 입성에 성공했다.
***노욕의 김종필, 10선 등정 실패**
3김의 마지막 인물인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낙마는 현실 정치적 의미보다는 시대적 상징성이 크다. 3김정치의 마지막 화신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당 안팎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자민련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 초유의 국회의원 10선에 도전하는 노욕을 보였으나, 자민련 정당투표 득표율이 3%를 넘기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JP는 물러날 때를 몰라 최악의 퇴장을 한 정치인으로 한국정치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이밖에 YS의 후광이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착각아래 총선에 출마했다가 지지율이 계속 4위에 머무르자, 중도하차한 YS차남 김현철씨의 퇴장도 3김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한 사건이었다.
***김경재 함승희 김민석 등도 낙선**
김경재 함승희 등 민주당 저격수들도 당의 몰락과 함께 줄줄이 낙마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특등공신에서 분당과정후 저격수로 돌변한 김경재 의원. 기존 지역구인 전남 순천을 떠나 조순형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을 물려받았으나 3선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김 의원은 여권에 대한 잦은 독설과 무책임한 폭로가 연일 계속되면서 구태정치인 이미지가 고착됐고, 그것이 유권자의 혹독한 심판을 초래한 원인이 됐다. 한때 <김형욱 회고록>의 저자 박사월로 필명을 남겼던 해외파의 초라한 퇴장이다.
2003년 중반 고 정몽헌 회장 사인에 대해 검찰의 가혹행위를 주장하며 '검찰 저격수'로 떠오른 민주당 함승희 의원도 재선을 이루지 못했고, 재야출신으로 원내에서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민주당 김영환 의원도 낙마했다.
또한 당내 소장파들의 반발로, 선거전에 임박해서야 복당허가를 받고 옆 지역구로 옮겨서야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민주당 김민석 전의원의 정계복귀 시도도 좌절됐다. 2002년 대선 당시 단독으로 탈당했던 김 전의원은 당시 붙은 '철새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를 끝내 떼내지 못했다.
***한나라당 저격수 3인방 건재**
하지만 이같은 민주당 저격수들의 대거 몰락과는 대조적으로, 정형근 홍준표 김문수 등 한나라당 '저격수 3인방'은 이번 총선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다.
'폭로전문가', '고문 기술자' 이미지의 정형근 의원은 탄탄한 지역기반과 영남권에 불어닥친 박근혜바람의 최대수혜자가 돼 17대 총선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 이철 후보를 상대로 맞아 '가짜 사형수' 등의 네거티브 공세와 함께 색깔론을 덧씌우기도 했다.
'썬앤문 사건', '하나은행 CD사건' 등 여권의 각종 의혹을 폭로하며 대여 '저격수' 이미지가 고착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동대문을에 출마한 홍 의원은 16대 보궐선거에서 3천6백여 표 차이로 따돌린 열린우리당 허인회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또다시 승리, 17대 국회에서 또다시 그의 활약(?)을 지켜보게 됐다.
김문수 의원도 3선고지 등정에 성공, 명실상부한 당의 중진으로 활약하게 됐다. 노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 주변 의혹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저격수 대열에 합류한 그는 총선 때는 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저승사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색깔론자' 김용갑 의원도 살아남았다. 당내 소장파들로부터 '구태 정치의 표본'으로 몰리며 용퇴 압박을 받았음에도 지역주의에 힘입어 17대 총선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원조보수를 자처하나 그에 대한 수식어에는 '수구'가 늘 따라붙는다. 김 의원의 국회 입성으로 17대에도 색깔공방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우리가 남이가"라는 부산 초원복집의 지역주의 발언으로 유명한 김기춘 의원도 살아남았다.
모두가 영남을 강타한 지역주의풍의 수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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