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한국공항공사 앞.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용산 참사 희생자 유족 전재숙(70) 씨 앞으로 축하 화환이 줄지어 들어갔다. 전 씨는 2009년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지휘한 강제 진압으로 남편 이상림 씨를 잃었다. 분홍 리본이 예쁘게 달린 화환을 보니 허거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용산 범대위는 이날 오전 10시에 열릴 것으로 알려졌던 김석기 신임 사장 취임식을 앞두고 이른 아침부터 공항공사 정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비안개 때문에 날씨가 흐린데도, "김석기가 죽였다"라는 손 피켓 문구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전 씨는 "김석기를 따라 공항공사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유족들은 김석기 전 청장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지난해 4월 8일, 19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를 만나기 위해 경주를 찾았을 때가 그를 제 눈으로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김 당시 후보는 오열하는 유족들을 앞에 두고 꿋꿋이 유세를 진행했다.
그랬던 김 전 청장은 7일 공항공사 앞에서 한국공항공사노조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히자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게도 이미 사과를 끝냈다"고 말했다. 전 씨는 "난 그 사람의 사과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며 "그냥 조용히 조용히, 가만히 살지…. 왜 눈앞에 또 나타나느냐고"라고 말했다.
▲ 8일 오전 용산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김석기 신임 사장(전 서울경찰청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이틀째 출근 저지 투쟁이다. ⓒ프레시안(최하얀) |
"더 높은 자리 있으면, 더 많은 죽음 부를 사람"
취임식 시간으로 알려졌던 10시가 지나도 김석기 사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초 공항공사에서 취임식을 한 후 세종시 국토교통부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일정을 바꿔 세종시를 먼저 방문했다는 소식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유족들은 "우리를 만나기 껄끄러운 것"이라며 "어제처럼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이 정문을 통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7일 오후 4시 50분께 공항공사로 첫 출근을 시도했다. 용산 유족들이 종일 그를 기다리다 자리를 뜨고 2시간쯤이 흐른 후였다.
김 사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을 막아서는 노조 조합원들에게 "건물 안에 들어가서 대화하자"고도 말했다. 전 씨는 "기가 막히다"며 "용산 재개발 현장서는 그렇게 대화하자고 해도 강경 진압으로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대화하자고 한다. 말뿐이다"라고 말했다.
전 씨와 마찬가지로 용산 참사에서 남편을 잃은 유영숙(53) 씨는 "(김석기 사장은) 사람 죽이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라며 "더 높은 자리에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사람"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하얀) |
"공항공사 사장, 또 경찰이다!"
유족들 주변엔 한국공항공사 노조 조합원 25명가량이 서 있었다. "또 경찰이다!"란 제목의 선전물을 출근하는 공사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다. 한국공항공사는 7대·8대 사장으로도 서울경찰청장 출신 인사를 맞았었다. 김 사장은 10대 사장으로 임명됐다.
노조는 "아주 보란 듯이 경찰들이 (공사 사장을) 자기 자리라고 떠벌인다"며 "자존심이 상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희생해 일궈낸 성과로 경영평가 S등급을 받았는데, 권력은 우리를 알아주지 않고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시우 노조 위원장은 이날 "이건 말도 안 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장 낙하산 선임은 없으며, 전문성을 우선하겠다고 했던 것은 결국 사기였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석기 전 청장이 어제 이 자리에 와서 '항공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뭘 얼마나 공부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 씨 역시 "김석기보다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문제가 많은 사람을 공공기관장 자리에 앉혀놓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인도네시아로 가버리면 그만이냐"고 말했다.
용산 범대위와 공항공사 노조는 김 사장이 공항공사에 나타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을 작정이다. 이들은 김 사장이 스스로 부적격자임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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