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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정당'의 비애…손학규 불출마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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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정당'의 비애…손학규 불출마 이유 있다

[편집국에서]<18> 민주당은 또 졌다

설마했다. 김기춘에 이어 서청원까지? 정치가 맑은 물에서 멱 감는 신선놀음이 아니라지만, 서청원 사천(私薦)은 급수 측정이 불가한 박근혜 정치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공직자 윤리의식을 들이댄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와 '차떼기'로 한 번, 공천 헌금으로 또 한 번 구속된 비리전력자 낙점을 동시간대에 밀어붙인 박 대통령의 의식구조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등장했다. '손학규로 서청원을 잡아 박근혜 정권 조기 심판론에 불을 댕긴다.' 하지만 민주당의 순진한 가설도 일주일 만에 무위로 돌아갔다. 김한길 대표의 두 차례에 걸친 설득도, "민주당을 위한 호소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요청"이라고 한 초선의원 35명의 간청도 소용 없었다. 이로써 비리의 상징과도 같은 올드보이에게 보은 공천을 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오만이 선거로 심판 받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손학규 고문의 불출마 입장이 확인된 뒤 민주당에선 뒷말이 나왔다. 출마할 듯이 여지를 열어두고 당선 가능성을 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서청원 전 대표에게 손 고문이 약 8%포인트 차로 뒤진다는 민주당 자체 조사 결과가 그 근거처럼 함께 나왔다. 왜 출마 문제에 오락가락해 당을 혼선에 빠트렸냐는 원망도 들렸다. 박지원 의원은 손 고문의 불출마에 "충격적"이라며 "당이 다시 어려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허탈함을 넘어 멘붕에 빠졌다. 손 고문의 입만 쳐다보며 기대와 낙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 민주당, 이 정도면 '냄비 정당'이다.

손 고문이 당선 가능성이 낮아 출마를 포기했다는 의심은 설득력이 낮다. 그는 2011년 분당을 재보선에선 여당의 강재섭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 20%포인트 차이의 초반 열세를 뒤집는 역전극을 선보인 전력이 있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서청원 전 대표의 공천을 비판하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럼, 대선 주자로서 몸 사리느라고? 모든 기대가 자신에게 모아진 상황에선 불출마가 오히려 결심이다.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두고두고 원성을 사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을 수 있었다.

당 사정에 밝은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손 고문의 의중에도 출마 의사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그는 "예술인은 예술로 말하고 정당과 정치인은 선거로 말한다"며 "선거를 회피하거나 선거를 왜곡하는 일은 당당한 정당과 민주주의의 길이 아니다"고 했다. "과연 지금이 그때인지는 의문이 많다"고 단서를 달았으나, 당이 진정성을 갖고 요청하면 나설 수도 있다는 메시지였다. 측근들이 한결 같이 출마를 만류한 것과는 결이 다른 고심의 흔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럼에도 손 고문이 결국 출마 의사를 접었다면, 제1야당이 선거를 사실상 포기할 지경에 이르게 된 일차적 책임은 민주당 지도부가 져야 온당하다. 우선, 손학규 효과에 기대 민주당이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정권 심판론'은 과연 현실의 민심에 정확히 부합하는 전략이었을까? 박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적 국정운영이 문제인 건 맞지만, 임기 7개월을 갓 지난 지지율 60% 대의 대통령의 힘을 과소평가한 만용이다. 박근혜 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졌다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에 동의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지난 7개월 간 강렬하게 부딪힌 대여 투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좀체 오르지 않는 이유도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줄기로 이리저리 가지를 뻗은 정치 갈등은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가 원인 제공을 했더라도 국민들 눈엔 그저 '대선 연장전'으로 비쳐지는 게 현실이다. 지난 대선의 패장인 문재인 의원은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자는 패착을 두어 민주당을 곤경에 몰아넣기까지 했다. 아직까지 문 의원으로부터 회의록 공개를 주도한데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나 사과는 나오지 않았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모르는 친노 세력의 활개에 당 혁신은 줄줄이 밀렸거나 없던 일이 됐다. 자기들만의 정치에 갇힌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된 '손학규 구원 투수' 카드는 개인의 명망에 기대 민주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회피하려는 꼼수였다. 그저 선거에 나와 서청원을 이겨달라는 하소연 외에 당의 위기를 드러내 치유하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손 고문으로선 친노 세력 생명 연장의 불쏘시개가 아닌 이상, 출마의 명분이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여의도의 김기춘'이라는 서청원 대표마저 컴백시키려는 박 대통령의 시도는 악착같다. 욕을 먹을지언정 노림수가 분명하다. 잠재적인 새누리당의 분란을 무마할 적임자로 서 전 대표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난 눈으로 보자. 어느 쪽이 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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