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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박근혜 대통령도 밀양 사태 '당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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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 박근혜 대통령도 밀양 사태 '당사자'다"

[인터뷰] 서울에서 단식하는 밀양 주민 김정회·박은숙 부부

10여 년 전, 잘 다니던 방위산업체를 그만두고 돌연 귀농한 남자가 있다. 자신이 만든 물건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쓰인다는 사실에 염증을 느껴서다.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살던 중 마을에 765킬로볼트(kv)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산 중턱의 공사현장에서 맨몸으로 공사 저지에 나서게 됐다.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 주민 김정회(42) 씨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 2일 재개된 밀양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아내 박은숙(41) 씨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이며 네 자녀들은 밀양에 있다. 7일 오후, 김 씨와 박 씨를 만났다. 이들은 "한전이 공사를 중단할 때까지 단식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이은 부상소식…"피가 거꾸로 솟아"

이들 부부는 2일 오전 상경했다. 처음에는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 자리 잡았다가 그날 저녁, 유동 인구가 많은 대한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이들과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조성제 신부가 함께하려 했다. 그러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세 명 이상이 모여 있을 수 없다는 경찰의 말에 따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게 됐다.

-어떻게 단식을 결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정회 : 지난 8월에 경·검찰이 송전탑 공사를 방해한다며 업무집행방해 혐의로 나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에서 기각돼 풀려나왔다. 이번에 다시 공사를 재개한다는 소리가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넌 이번에도 공사 방해하면 정말 구속된다"고 하더라. (웃음) 그렇지만 할머니들은 목숨 걸고 그 고생을 하는데 나만 모른척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단식을 생각했다.

박은숙 : 남편 혼자 하는 건 안 된다고 말리다가, 나도 같이 하게 됐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릴 보고 빨리 한전이 공사를 포기하길 바랐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것 같다.

-단식을 하면서도 계속 실시간으로 밀양의 상황을 전달받고 있다고 들었다. 연이어 주민들이 부상당하는 것을 보면 어떤가.

김정회 :피가 거꾸로 솟는다. 할머니들이 왜 다치고 있나. 경찰과 한전이 힘없는 할머니들을 상대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들이 조직폭력배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도 아니지 않나. 주민들을 보호하러 왔다면서 왜 보호는 아니고 자꾸 다치게 하는지….

▲ 김정회 씨. ⓒ프레시안(최형락)

"농사에는 내년이 있지만 송전탑 저지는 올해뿐"

이들은 "아직까진 힘들지 않다"고 하면서도 기력이 달리는지 인터뷰 내내 물을 찾았다. 도시를 떠나 맑은 공기에 반해 터를 잡게 된 밀양. 그간 어떤 시간을 보냈기에 평범한 삶을 살던 부부가 거리에서 단식농성을 하게 된 것일까.

-지난 2001년, 정부가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라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전과 정부는 "신고리 3·4호기의 전력을 송전해야 한다"며 송전탑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박은숙 :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심지어 우리 마을 사람들은, "평양에 전기를 보내려고 우리 마을에 송전탑을 짓는다더라"고 수군댔다. 그 정도로 아무 정보가 없었다. 그러다가 765킬로볼트 송전탑 높이가 100미터고 굉장한 소음도 난다는 것 등을 알게 되면서 반대하게 됐다.

지난 5월에 한전이 공사를 재개했을 때도 무척 힘들었다. 그때도 별일 다 겪었다. 새벽 2시부터 나가 있으면 경찰이 올라와서 할머니들을 이불에 둘둘 말아서 끌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금에 비하면 차라리 그때가 싸울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회 :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이렇게 열성적으로 반대하진 않았고 반대 시위가 있으면 가끔 나가보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공사 자재를 실은 헬리콥터가 우리 밭 위를 지나는데 그 소음에 귀가 먹먹하고 가슴이 벌벌 떨리더라. 송전탑까지 들어오면 정말 못 살지 싶었다. 농사는 올해 망쳐도 내년에 잘 지으면 되지만 송전탑은 지금 못 막으면 영원히 못 막는단 생각이 들었다.

한전과 정부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민에게 765킬로볼트 송전탑과 그 건설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준 적이 없다. 결국 주민들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됐다. 김 씨는 "1평당 10만 원만 나가도 땅 1000평이면 1억 원인데…송전탑으로 다들 재산권을 잃었다"고 말했다.

밀양 주민이 전력난의 주범?…"돈 벌고 싶다고 하라"

-지난 1일 조환익 한전 사장이 발표한 호소문을 보면, 내년 여름 전력수급을 위해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김정회 :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원전 증설 정책을 펴는 것 같은데, 선진국 어느 나라가 지금 원전을 증설하고 있나.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도 왜 원전을 늘리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땅 파고 농사짓는 사람이야 코앞에 닥친 일만 보고 살아도 되지만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10년, 20년을 내다봐야 하지 않나. 이런 사실들만 제대로 알려지면 전 국민이 원전과 원전에서 비롯되는 송전탑에 반대할 텐데….

차라리 한전이 '원전을 지어서 돈을 더 벌고 싶으니 밀양 사람들이 양보하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자꾸 밀양 때문에 전국에 전기가 모자란 것처럼 말하는데, 땅만 일구고 사는 할머니들도 그게 거짓말인 건 다 안다. 이번 여름에 원전 23기 중 10기가 가동 중단됐지만 대규모 정전 사태는 없었다. 전력수급이 어려웠다 해도, 한전의 비리 때문 아닌가? 그런데 왜 자꾸 밀양 주민을 전력난의 주범으로 몰아가나.

사과가 없는데 사과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과 가격을 올리는 게 자본주의 사회다. 그런데 전기가 모자란다면서 한전은 왜 기업들에는 늘 전기를 싸게 공급해주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밀양 주민의 생명을 담보로 전기를 싸게 주겠다고 해라.

실제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우 낮은 편으로, OECD 평균의 62%에 불과하다. 심지어 지난 6월에는 감사원이 나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산업용 전기요금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인상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외부세력? 우리 모두 당사자"

그러면서 김 씨는 "지방에 원전을 만들어서 서울로 보내려니까 송전탑이 필요한 것 아니냐"며 "에너지 정책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송전탑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를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외부 세력이 밀양주민을 세뇌한다'는 식의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김정회 : 밀양 문제에 외부 세력이 어디 있느냐. 한전에서 지은 원전이 일본 후쿠시마처럼 터지면 서울도 파괴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는 안전하겠나? 미국처럼 넓은 땅도 아니고 이 손바닥만 한 나라에서는 우리 모두 당사자다.

박은숙 :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참담하다. 지난 5월에 공사할 때, 할머니들이 몸에 밧줄을 묶고 있으면 경찰이 칼로 그것을 마구 끊었다. 경찰 100명이 주민 서너 명을 둘러싸고 짐승 보듯 쳐다볼 때, 그 기분을 이루 말할 수 없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그걸 대체 누가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이냐. 누가 와서 주민들에게 약이라도 먹인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정회 : 21세기 선진국다운 국책사업을 해달라. 꼭 누구는 죽고 누구는 혜택 봐야 하느냐. 우리는 무지렁이라도 한전은 돈도 있고 전문가도 있으니 밀양 주민을 설득할 논리를 만들 수 있다.

박은숙 :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한전 사장 등의 말만 듣지 말고 고통받는 밀양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국무총리와 한전 사장이 무슨 고통을 받느냐. 고통받는 당사자는 밀양 주민이라는 점을 기억해 달라. 주민들은 지중화(땅에 송전선로를 묻는 방식)와 우회 송전 선로 설치 등 대안을 제시해왔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밀양 주민들의 간절한 외침도 있는데 왜 우리 목소리를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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