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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북핵 해결, 이젠 北이 적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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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세현 "북핵 해결, 이젠 北이 적극 나서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박근혜정부, 전작권 연기하려다 MD 외통수에 빠져

지난 2일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반환 연기에 사실상 합의했다. 이어 일본에서 열린 미·일 간 2+2 회담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미, 미일 간 안보 협력이 강화되면서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고 잇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학교 총장)은 정부의 전작권 환수 연기 요구를 '자충수'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가 북핵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방어망(MD) 참여를 요구했고 이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MD는 북한의 군사 위협보다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한국이 MD에 참여하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전작권 환수 연기를 위해 제 돈 내가면서 미국의 대중, 대러 방위망의 하위 파트너로 들어가게 됐고, 한중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 전 장관은 이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전작권 환수 연기를 추진하는 이유로 보수세력의 결집과 같은 국내정치적 이유를 꼽았다. 그는 현 정부가 전작권 문제를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 여러 공약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기존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 것 같다"면서 "기존 지지층의 지지를 유지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MD를 살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한국의 전작권 환수 연기 요구를 역이용해 한국을 MD에 참여시키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면서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대중국 군사 포위망에 동원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이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한국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됐고, 일본이 미국의 군사적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최근 들어 시리아나 이란 등 중동 문제에서는 군사적 해법 대신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앞세워 군사적 견제를 강화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미국 자체의 돈이 없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중국 견제에 상당한 힘을 쏟아야 하는데 국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면서 "일단 중동지역 문제는 외교적 해법으로 풀고 중국에 대해서는 군사적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미국은 지난 7월 시퀘스터(sequester), 즉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 조치로 인해 향후 10년간 국방비를 비롯한 안보 예산을 1조 달러(약 1070조 원) 이상 대폭 삭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중동지역과 중국 모두를 미국이 직접 군사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이런 처지다 보니 (미국은) 자신의 돈이 아닌 한국과 일본의 자금, 그리고 이들의 군사력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모멘텀을 찾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베이징, 베를린, 런던 등을 오가며 북·미 간 1.5트랙 접촉을 진행하고 있고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불가침조약'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최근 미국 측 인사들과의 연쇄적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래서 미국을 여기까지 끌어낸 것이라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지난 5일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의 가능성이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9.19공동성명 8주년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열린 반관반민(1.5트랙) 회의가 별 성과 없이 끝난 데다 이산가족 상봉마저 연기되면서 남북관계도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반면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전작권 환수 연기가 사실상 합의됐고, 이어 도쿄에서 열린 미·일 2+2회의(외교+국방장관) 직후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한미, 미일 간 안보 협력 강화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반면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은 약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제기했던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가 4개월 후인 이번 한미 연례 안보회의에서 연기 쪽으로 사실상 가닥이 잡혔습니다. 기존 반환 시점인 2015년 12월 1일에서 얼마나 더 연기할 것인지를 내년 말까지 결정하기로 했는데, 기존 시점에서 짧으면 3년, 길면 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에 와서 전작권 반환 연기에 사실상 합의한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미·일 간 2+2 회의(외교·국방장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공식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평화헌법 9조를 고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미국을 돕는다는 구실로 군사적 공격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보통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은 평화헌법 9조 때문에 먼저 군사행동을 할 수 없었고, 공격을 받으면 비로소 방어하는 차원에서의 대응, 즉 전수방위(專守防衛)만 가능했는데 이제 선제적인 공격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은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야 하는 이유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한국군의 자체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굳이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 달라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못 이긴 척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언젠가는 한국이 전작권을 환수해 가야 할텐데, 한국이 전작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해도 될 만한 역량을 갖춰나가기 위해서는 미국 주도하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자고 한 겁니다. 즉 한국 정부가 북핵 대응 능력 부족을 이유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자고 하니까, 미국은 그것을 역이용해서 슬그머니 MD판매 계약서를 꺼내 놓은 겁니다. 한국은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다 미국이 오랫동안 노려왔던 MD 참여를 이제는 거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정부의 자충수라고 할 수 있지요.

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또 연기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핑계를 대지만, 이보다는 국내 정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부터 북한이 대남 위협적인 발언과 도발을 계속했고 남북관계도 꽉 막혀있었기 때문에 보수정권 입장에서는 대책 차원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전작권 환수 연기 카드를 꺼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전작권 환수 연기는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 여러 공약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기존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삼은 거지요.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절묘하게 잡아채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한 겁니다. 미국은 "너희들이 북핵 대응에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MD라도 갖춰놔야 언젠가 전작권을 찾아갈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죠. 현 정부가 기존 지지층의 지지를 유지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MD를 살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에 참여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MD는 북한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처럼 좁은 땅덩어리에서 과연 MD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심이 듭니다. 결국 한국은 전작권 환수 연기를 위해 제 돈 내고 미국의 대중, 대러 방위망 또는 공격망의 하위 파트너로 들어간 셈이죠.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미국의 MD에 참여하게 되면 최대 경제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지금보다 훨씬 밀접한 관계를 유지 내지 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MD 체제에 참여하면 한중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니까요.

프레시안 : 전작권 환수 연기를 추진하다 보니 미국의 MD 체제에 포섭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렇게 될 경우 한중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미동맹에 올인했던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한미, 한중간 외교의 균형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또 중국과 관계를 중시한다는 의미로 칭화대에서 중국어 연설(극히 짤막한 부분이지만)까지 하면서 중국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죠. 그런데 이런 노력이 이번 전작권 환수 연기로 다 물거품이 돼버린 겁니다.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자극이 되고 그래서 한중관계가 어려워지는 길로 들어가지 말고 전작권 환수 연기만 하는 식으로 협상하는 지혜를 발휘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전작권 환수 연기가 잘 된 일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그렇더라도 한중관계를 망치는 길을 비켜가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이달 초 한미 SCM까지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미국은 전작권 환수 연기라는 한국의 요구를 거꾸로 자기네들의 협상카드로 만들어서 MD를 팔았고 동시에 한국을 내세워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미·일 간 2+2 회담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일본이 미국을 대신해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의 군사적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지난 3일 일본에서 열린 미일 2+2 회담. 왼쪽부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AP=연합뉴스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한일 간 군사협력도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미, 미일 군사협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한일 간 군사협력 강화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미국 쪽에서 강력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작년 6월에 비밀리에 처리하려다 들통 났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결국은 맺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미관계가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전 방면에서 긴밀하게 연결돼있기 때문에 미국이 "잔소리 말고 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현 정부의 안보정책결정 축 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성향으로 보아 거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 간에 독도문제, 과거사문제 등으로 지금은 관계가 불편하지만, 사실 국제정치 현실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미국이 요구하면 한국은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 전작권 환수 연기로 보수층을 결집시켜 놓으면 이 세력이 한일 간 군사협력은 한미 동맹강화를 위한 것으로, 또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중관계는 정말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국회가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데, 현재 야당의 식견과 능력으로는 감당을 못할 것 같아요. 더구나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다른 국내정치 사안이 동시에 터지면서 전선(戰線)이 확대되면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보다 더 큰 군사적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

프레시안 : 미국이 한국을 MD에 참여시키려 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 것은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대신해 이제까지보다 더 큰 군사적 역할을 해달라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세현 : 미국 내에서 유대계의 힘 때문에, 그리고 석유 때문에 그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중동문제가 차지하고 있던 우선순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G2 반열까지 올라오면서 2009년경부터 미국이 중국을 어떤 식으로 견제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봅니다. 미국의 대외정책 속에서 중국 문제의 우선순위가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이른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정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신형 대국관계'를 수립하자고 미국 측에 제안했습니다. 자신들도 G2 반열에 올랐으니 맞먹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죠. 이건 경제력 측면에서 곧 미국을 능가할 수 있다는 중국의 자신감의 발로였다고 봅니다. 또 중국은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이 나눠 써도 충분할 만큼 넓다"는 말로 미·중 군사력 경쟁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에 상당한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정작 미국의 국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시리아, 이란 등 중동지역의 문제는 군사력이 아닌 외교적 해법으로 풀고 중국에 대해서는 군사적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중 군사견제에 한국과 일본을 적극 참여시킨다는 게 미국의 복안인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지난 7월 발효된 시퀘스터(sequester), 즉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 조치로 인해 향후 10년간 국방비를 비롯한 안보 예산을 1조 달러(약 1070조 원) 이상 대폭 삭감해야 합니다. 따라서 중동지역과 중국 모두를 미국이 직접 군사적으로 장악하거나 견제하기가 힘들어졌고, 그러다보니 자신의 돈이 아닌 한국과 일본의 자금과 군사력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입니다.

미국은 김대중 정부 때도 한국에 MD 참여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대중 정부는 미국에 "우리는 남북화해협력정책을 통해 북한이 우리에게 핵이나 미사일을 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MD는 필요 없다"고 말했어요. 남북 화해를 통해 MD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논리였습니다. 그 뒤 노무현 정부 때는 전작권 환수를 결정했고,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이 MD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죠.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우리 힘으로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 전작권 반환(한국측에서 볼 때는 환수, 미국측에서 볼 때는 반환)에 동의했던 시점은 북한의 1차 핵실험(2006. 10. 9)이 성공했다고 미국도 평가한 뒤였고, 당시의 미 국방장관은 북한에 대해 가장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도널드 럼스펠드였습니다. 네오콘의 수장으로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에 가장 앞장섰던 럼스펠드가 전작권 반환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한국이 전작권을 가져가도 북한의 도발을 충분히 격퇴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한국군의 전작권을 내주고 주한미군은 유사시 세계 어느 곳에라도 파견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후 북한이 2009년, 2013년에 핵실험을 두 번이나 더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경량화 소형화하지는 못한 것으로 미국 정보기관도 판단하고 있죠. 그렇다면 아직 협상을 통해서 북핵을 동결하거나 폐기시킬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멍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한마동맹, 한미공조라는 명분으로 북한의 선조치니 진정성이니, "회담을 위한 회담은 안 한다"느니 하면서 6자회담을 5년씩이나 미루고 미루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와서는 북핵능력은 이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수준으로 강화됐다는 전제하에 전작권 환수 연기, MD체제 구축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북핵 해결, 이제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라

프레시안 : 북한은 4일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MD 체제 편입도 기정사실화 돼가고 있고,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하고 나섰구요. 중국은 특히 미·일 간 군사협력 강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 즉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모멘텀은 사실상 없어진 것 아닌가요?

정세현 :
10월 3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간 2+2 회담의 핵심은 물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입니다. 그런데 부차적으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이 비핵화를 확실하게 한다면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갖고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즉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중국 정부가 9.19 공동성명 8주년을 기념해 6자 1.5트랙(반관반민) 토론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북한은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주장했습니다. 그 후 9월 하순까지 베를린과 런던에서 북·미 간 1.5트랙 접촉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리용호 6자회담 수석대표와 최선희 차석대표 등이 나왔고 미국에서는 전임 대북정책 특별대표였던 스티븐 보즈워스 등이 참여했는데요. 미국 현 정부에 정책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북한과의 만남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미 정부에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과 보고를 접했기 때문에 케리 국무장관이 10월 3일, 도쿄에서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케리 국무장관을 포함해서 미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해왔습니다. 설사 본심이 비확산에 있다고 해도 비핵화 회담을 안 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는 처지죠. 다만 비핵화 회담을 빨리 진행시키지 않기 위해서 전술적으로 북한의 선제적 조치, 비핵화의 진정성을 요구해온 것입니다. 한편 최근 북한은 베이징, 베를린, 런던 등을 옮겨 다니면서 미국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보즈워스의 이야기를 들어본 이후 케리 장관이 '잘하면 북한이 2.29합의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불가침조약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4일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만 철회하면 얼마든지 협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9월에 부지런히 움직여서 케리 국무장관의 '불가침조약' 발언까지 나오게 만든 것이라면 이는 큰 진전이라고 봅니다. 단순한 용어의 변화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김영남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상투적으로 볼 일은 아닙니다. 시간상으로 볼 때 인과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케리 장관의 불가침조약 발언은 2009년 2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이야기했던 평화협정과 같은 내용이라고 봅니다. 9.19 공동성명에서는 1항에 북한이 핵을 폐기하기로 했다는 것을 명시하고 미국도 핵무기 또는 재래식 전력을 이용해 북한을 공격할 의지가 없다는 약속은 했습니다. 다만 북한 비핵화가 상당 부분 진전되고 나면 한반도 평화와 직접 관련 있는 당사국들의 별도 포럼을 통해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내용이 9.19공동성명 4항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한다고 했지, 평화협정 체결이나 불가침조약 체결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습니다.

2009년 2월 당시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 연설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첫째 미·북 수교, 둘째 평화협정 체결, 셋째 경제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케리 장관의 불가침조약 발언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평화체제, 평화협정이라는 말은 썼지만 불가침조약이라는 용어는 쓴 적이 없거든요. 요컨대 힐러리가 이야기한 평화협정보다 케리가 이야기 한 불가침협정이 훨씬 더 강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북한이 최근 미국 측 인사들과의 연쇄적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래서 미국을 여기까지 끌어낸 것이라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 이른바 '2.29+알파'를 확실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왕 미국을 여기까지 끌고 온 북한이 좀 더 화끈하게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딴소리를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한국 정부가 6자회담 재개의 주도권을 갖고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상황이 아니라면 차라리 북한이 스스로 6자회담 재개의 주도권을 행사하라는 것입니다.

중국도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비핵화를 위한 선조치만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강력한 선행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이 6자회담에 나올 수밖에 없도록 움직일 수는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판단이랄까 전망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케리 장관이 불가침조약 수준의 이야기를 한 다음 날 김영남 위원장이 4일 협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은 경제건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경제건설을 할 수 없다면서 미국과 관계 개선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지난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을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현실적으로 경제건설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3대세습을 정당화하고 지지를 받기 위해서도 경제건설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김영남 위원장이 미국과 관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건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북 관계 개선은 핵 문제에 있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가능하다는 것은 북한도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먼저 취해야 할 진정성 있는 조치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최근 재가동에 들어간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가동 중지, IAEA 사찰단 복귀 허용, 핵·미사일 모라토리움 선언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왕 북한이 베이징, 베를린, 런던 등으로 다니면서 미국에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결과 케리가 그렇게까지 나왔고, 김영남이 경제건설이 중요한데 미국과 관계개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북한도 이제 이 정도 조치를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남한 정부는 스스로 주도권을 행사하기에는 이미 시기가 지났기 때문에 미·북 양자회담 또는 6자회담이 열릴 기미가 보일 때 미국의 발목만 잡지만 않았으면 합니다. 국내정치를 좀 더 장악하기 위해 보수결집을 기대하는 정부 내의 안보론자들 입장에서는 조금 못마땅하겠지만, 그렇게 가야 우리 외교가 어려워지지 않을 수 있고 특히 한중관계를 살려낼 수 있다고 봅니다.

한중관계 망치면 수출의존도, 특히 대중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어려워집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안보도 못합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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