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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오판에 '항명' 좀 하면 안 되나?

[편집국에서]<14> 당·정·청의 '진영 배신자 낙인찍기'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친박'인지 '월박'인지 '탈박'인지 따위는 관심 없다. 그의 사표 제출과 업무 거부가 가출인지 출가인지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의를 표명한 절차가 적절치 않았고 사퇴 이유가 다소 오락가락했더라도, '실세 장관' 감투를 쓴 고위공직자의 "양심과 소신"에 서푼도 못 되는 값을 매겨 내친 성마른 정권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진 장관의 사표가 수리된 30일 박근혜 대통령과 정홍원 국무총리, 새누리당이 일제히 쏟아낸 그에 대한 비난은 품위도 예의도 상실한 '배신자 낙인찍기'였다.

박 대통령은 "비판을 피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진 장관을 면박했다. "정부와 국무위원, 수석들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군기도 잡았다. 곧 이어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제 와서 소신과 달랐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게 소신이었다면 장관직을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이렇게 무책임하게 집어던지고 그만둔다는 게 도대체 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아주 못된 행동, 못된 양반"이라고 했다. 당·정·청이 각본이라도 짠 듯 복지 공약 후퇴 논란의 모든 책임을 진 장관에게 덤터기 씌운 본말전도다.

진 장관은 자신의 사표가 수리된 지 한 시간 만에 쫓기듯 이임식을 가졌다. 그는 "복지는 국방만큼 중요하다. 국방은 외부의 적을 막는 일을 하고 복지는 내부의 적을 만들지 않는 일을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복지 철학으로까지 승격한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안'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마지막까지 피력했다. 그러나 진 장관의 '항명 파동'은 불과 5분짜리 이임식으로 막을 내렸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내각의 불순분자를 정리하고 기초연금 후폭풍을 자기 방식대로 돌파해 나갈 계기를 마련했다.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이견이 허락되지 않는 당정청의 절망적인 삼위일체는 제동장치가 망가진 박 대통령의 '나 홀로 리더십'만 부각시켰다. 새누리당의 벌떼 같은 '진영 때리기'도 집권당이 정부 운영의 책임 있는 주체가 되기를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의 핵심적인 공약이 후퇴했는데도 권력을 배출한 집권당에서 어떠한 경고음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 정상인가?

ⓒ연합뉴스

"소리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2004년 총선 공약이던 분양원가 공개에 난색을 표하자 김근태 의원이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며 한 말이다. 덧붙여 김 의원은 "(공약을) 바꾸려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을 밟아서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그 약속을 파기한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약속한 대전제다.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일 뿐이다'라는 비아냥과 상실감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했다.

진영 장관의 소심한 항명에 빗대보면 김 의원의 '계급장' 발언은 대통령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불과 보름 뒤 김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입각 이후에도 김근태 장관은 경기부양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려 한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구상에 제동을 거는 등 소신을 꺾지 않았다.

물론 노 대통령 임기 내내 정부는 시끄러웠고 집권당과도 대립했다. 김 의원을 입각시킨 배경엔 임기 반환점을 찍은 노 대통령이 차기 대선주자를 배려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컸다. 그러나 김근태 때문에 성공한 정부가 되지 못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비록 본래 의미의 '정당 정부'와는 거리가 있을지언정, 김근태의 계급장 파동이 민주적으로 진화해가는 정치체제의 이정표가 된 것은 분명했다.

이에 반해 '윗분' 아래 '왕실장', 왕실장 아래 청와대, 청와대 아래 당과 내각으로 짜인 박근혜 정부의 수직구조는 '좋은 말로' 효율성을 추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축했던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흡사하다. 그렇다보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진 장관마저 '양심'에 대못이 박혀 내각에서 방출된 것이다. 이번 일로 박정희 정권 시절의 '10.2 항명 파동'까지 연상하는 건 과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까지도 장관들의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대통령, 영혼 없는 정치인들의 집합소 같은 새누리당의 부화뇌동은 40년 전 권위주의 통치의 복사판 같아 자꾸만 '그 시절'이 떠오른다.


10.2 항명 파동

1971년 10월,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이 국회에서 가결된다. 집권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 23명이 박정희 대통령의 부결 지시를 거슬러 야당이 낸 해임안에 동조한 결과였다. 백남억, 김성곤, 김진만, 길재호 등 이른바 공화당의 실세 4인방이 항명 주도세력으로 지목됐다. 해임안에 찬성한 현역의원들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각목 세례를 받았다. 김성곤 의원은 콧수염을 뜯기고 발가벗겨진 채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김성곤, 길재호 의원 등은 정계에서 퇴출됐다. 10.2 항명 파동은 측근들마저 제거하고 유신 집권으로 가려던 박 전 대통령의 냉혹함을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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