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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법, 무덤 파놓은 밀양 주민들 설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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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법, 무덤 파놓은 밀양 주민들 설득할 수 있을까?

[토론회] '일촉즉발' 밀양 송전탑 갈등, 진정한 대안은…

지난 5월 29일 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중단된 밀양 765킬로볼트(kv) 송전탑 공사가 곧 재개될 예정이다. 한국전력이 다음 달 초에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히면서 주민들은 벌써 공사 현장에 무덤과 움막을 만드는 등 저항하고 있다. 한전과 정부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한전은 3000여 명의 경찰력을 공사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한 경찰청장까지 나서 "밀양 송전탑 현장의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반대 주민의 저항을 강경 진압 하겠다는 것.

한전과 정부는 이른바 '밀양법'('송·변전시설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송전탑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주장해왔다. 정작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밀양법'보다는 '송주법'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한다. 반대 주민들은 보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아예 송전탑을 짓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주법은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양측의 평가가 이토록 다른 송주법, 무엇이 문제일까?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송주법, 송전탑 갈등의 대안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송주법이 송전탑 건설 지역 주민의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송주법도 故이치우 어르신 분신 못 막아

'밀양 인권 침해 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신훈민 변호사는 "송주법은 송전탑 주변 주민의 피해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 법안이 있었다면 이치우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실까'라고 되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1월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 이치우 씨는 송전탑 건설 반대를 호소하며 분신자살했다.

신 변호사는 △재산권 보상 지역을 넓힐 것 △주택매수 청구지역 설정 시 건강권과 조망권을 고려할 것 △영농손실 등에 관한 규정을 둘 것 등을 요구했다.

현재 송주법이 정한 재산권 보상 지역은 송전선로 양측 최외선(가장 바깥선)으로부터 33미터(765킬로볼트 송전탑 기준)다. 그러나 이치우 씨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송주법의 보상 범위는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이 씨 3형제의 논은 시가 6억9000만 원이 넘었지만 한전 측이 제시한 보상금은 8700만 원이었다.

건강권과 조망권도 송주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송주법은 주택매수 청구지역으로 "지상 송전선로 연결로 인해 주거·경관상의 영향을 받는 지역"을 지정했다. 송전선로 양측 최외선으로부터 180미터(765킬로볼트 송전탑 기준) 내의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100미터 높이인 765킬로볼트 송전탑은 1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해 보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강권 침해와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자파다. 송전탑이 방출하는 전자파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은 매우 높다. 이정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환경위원장)는, 유해 인자의 환경적 무해성이 최종 증명될 때까지 예방조치를 시행하도록 규정한 사전배려원칙(환경보건법 제4조 제1호)을 근거로 전자파 피해의 실태조사를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전자파가 백혈병, 종양, 두통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지속해서 보고됐고 2011년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전자파를 2B그룹('인체에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으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전은 IARC가 권고한 833밀리가우스를 기준치로 고수하고 있으나 이는 단기 노출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송전탑 주민들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영농손실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밀양에서 영농손실 보상은 재산권과 직결된다. 신 변호사는 "농기계 이용 제한이나 항공 방제 제한으로 영농손실이 분명히 발생할 것인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피해 지역의 주민은 어떤 보상안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24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반대 주민들이 움막 앞에 파놓은 '무덤'에 들어가 밧줄 등으로 서로 몸을 묶은 채 처절하게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보상안보다 '전원개발촉진법' 먼저 개정해야"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송주법 이전에 '전원개발촉진법'을 폐지하거나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한전 등 전원 개발 사업자가 필요한 토지를 수용·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한 법이다.

하 변호사는 "전원개발촉진법은 한전 등 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가 2009년에야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도록 개정됐다"며 "그러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법 5조 2항은 "청취한 주민 등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실시 계획에 반영하도록 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표현이 애매해 주민과 사업자 간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는 "전력 분야는 민주주의나 투명성 같은 기본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밀양 송전탑 역시 졸속인 주민 설명회를 거쳐 사업을 강행했다가 현재와 같은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미국의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와 주 정부별 공공사업규제위원회(PCU, PSC)를 역할 모델로 제시했다. 이들 단체는 송·변전 시설을 건설하기에 앞서 전력 수요 관리 등으로 전력 수급이 가능한지 고려한다. 송·변전 시설이 반드시 필요한지 꼼꼼히 따지는 것이다.

또 버지니아주 기업규제위원회는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준사법기관으로 기능하며 송·변전 시설 건설과 관련한 모든 시민의 분쟁 조정을 돕는다. 그 결과 지난해에 미국에서 765킬로볼트 송전탑 건설 사업인 'PATH'가 취소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하 변호사는 밀양 사태와 같은 갈등을 해결하려면 전력수급 시스템의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송·변전 시설 건설에 따른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려면 천문학적인 보상비가 든다"며 "애초에 송·변전 설비 건설을 강행하지 말고 송·변전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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