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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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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30>

한 해를 보내고 또 맞으면서

이 글이 실리는 날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그 저녁을 제석(除夕)이라 하고 그 밤을 제야(除夜)라고 한다. 제(除)란 한자는 지운다(remove)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운다는 것일까? 바로 한 해 동안에 밀린 빚이 있었다면 이 날 저녁에 청산한다는 뜻이며, 아울러 한 해 동안에 있었던 각종 일들을 정리하고 지운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제야의 시간에 가서 빚만 청산하고 일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점들이 있었다면 반성하고 살펴서 새 해에는 그런 잘못이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저녁인 것이다.

2003, 계미(癸未)의 해는 여러 모로 어려운 해였고, 따라서 우리 전체가 반성할 점도 참으로 많았던 한 해였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2004년 갑신(甲申)년의 상황 역시도 낙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갑신년은 경제가 좋으냐 아니면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를 떠나서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가 큰 해가 될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여러 번에 걸쳐 얘기한 바 있었지만, 갑신의 의미에 대해 오늘 좀 더 자세히 밝혀보고자 한다.

우리 경제가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4년 갑진(甲辰)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되던 시점부터였다.

그 결과 1974년 갑인(甲寅)년에 와서는 우리 사회에도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서울을 비롯하여 아파트 붐이 일고, 중산층의 자녀 교육 열기가 고조되면서 고교 평준화 제도가 실시되었다. 갑인년은 지지(地支)에 인목(寅木)이 와서 우리 경제의 밑둥치가 굵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1984년 갑자(甲子)년이 되자 지지에서 자수(子水)가 들어와 수생목하니 해외 경제여건이 좋아지고 미국과 일본 등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무역이 늘어나 건국 후 처음으로 무역수지에서 흑자가 나는 초유의 경험을 맛보게 된다. 드디어 우리 경제 내부에도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고 잉여가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시 1986-1988년의 경기를 우리는 ‘3저 경기’ 또는 ‘단군 이래 호황’이라는 말로 불렀다. 정말이지 황금의 경제호황이었다.

계속해서 뻗어가던 우리 경제는 1994년 갑술(甲戌)에 가서 최고 정점에 도달하면서 선진경제 멤버인 OECD에 가입하고 1인당 소득 만 불 시대를 열게 된다. 따지자면 1964년 갑진년부터 1994년 갑술년까지 30년간의 경제 발전이었으니 만물이 30년이 지나면 앞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흐름을 만나기에 여기서부터 우리 국력은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외환 위기외 IMF 통치도 그런 역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반대되는 흐름인가?

종전의 국가 주도형 경제 발전이라는 모델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 파이(pie)를 키우고 보자는 흐름에서 이제는 그 파이를 나눠야겠다는 요구, 기존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지나치게 비대해진 기성 권위 세력 -권벌, 재벌, 언벌, 학벌 등등 -에 대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도전, 이런 것들이다.

아울러 고생을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소비층의 등장,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과거의 반공(反共) 일변도에서 민족통일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전향적인 사고의 대두, 경제의 성공으로 이제는 더 이상 꿀릴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대두된 민족자긍의 의식, 이런 것들이 종전의 경제개발과 발전 일변도의 이념에 이어 등장한 새로운 흐름들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과 사고, 이념들이 1994년을 정점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우리 사회에 표출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욕구가 분출된다는 것은 역으로 전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에게는 엄청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누가 책임을 맡아도 욕을 먹기 십상인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지금의 노무현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비판과 질타를 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장과 분배, 친미와 반미, 안보와 통일, 기업과 노조, 세계화와 반 세계화, 시장 개방과 그 반대, 개발과 환경,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이 우리 사회 내에서 갈등과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누구는 지역감정이 망국병이라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있어 지역주의는 이미 한물 간 병이고 내성도 충분히 생겨나 이제는 병도 아니다, 더 큰 문제들이 연신 불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이제 갑신(甲申)년이다. 갑신은 지지(地支)에서 신금(申金)이 와서 나무의 밑뿌리를 치고 흔드는 해라는 뜻이다. 비록 겉은 멀쩡할 지라도 속은 정리해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한 뿌리는 치료하고 썩은 뿌리는 잘라내며, 연한 뿌리는 잘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갑신의 해는 우리에게 있어 우리 자체의 내부로부터 근본적인 혁신과 리엔지니어링의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20년 전에 우리는 섣부른 개혁을 단행했다가 실패했으니 바로 갑신정변(甲申政變)이다. 그러고 나서 30년 뒤에 가서 나라를 일본에게 맡겨야 하는 치욕을 당했다. 이번은 물론 그 때와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하지만, 개혁의 필요성만큼은 조금도 차이가 없다.

사실 정치가들은 개혁이란 말을 좋아하지만, 정치가들의 개혁이란 대중의 입맛에 맞는 개혁이기 쉬워서 이미 개혁의 본질과는 차이가 나기 쉬운 법이다. 참된 개혁은 고통스런 법이고 대중들이 싫어하는 것도 손을 대야 하기에 지난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개혁의 필요성이 내부로부터 울어 나오고 있으니 그것이 내년의 의미인 것이다.

갑신의 해가 그런 것을 말해준다 해도 더러 못 본 체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내년에 그것을 도외시한다면 갑신과 충이 되는 경인(庚寅)년에 가서 그야말로 한꺼번에 싫든 좋든 어마어마한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 하기에 미리부터 준비하고 손을 대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려드리고픈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이 제야(除夜)의 날이다. 반성할 것이 있을 것이니 감히 몇 가지 들춰보고자 한다.

먼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미 우리 체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자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시대를 지나 대화와 타협으로밖에 해결할 수없는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작 만나서 얘기해보면 나와 다르다고 여겨지던 사람이 사실은 큰 차이가 없음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상호 타협과 통합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논리에 앞서 감정의 골을 메워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각자 스스로가 지나치고 잘못된 것은 없었는가를 반성해보는 일이다. 세상일이란 어느 일방이 무조건 잘 하고 어느 일방은 무조건 잘못 하는 법은 없다. 그러니 서로 생각이 달라 논쟁을 하고 우기다 보면 억지가 들어가고 억지로 인해 나중에 태도를 유화하게 바꾸는 것도 계면쩍고 민망해지는 법이니, 우기다가도 때로는 이거 스스로 너무 ‘오버’한다 싶을 때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아지 꼬리를 곧추 세우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꼬리를 내리라는 얘기가 아니라 곧추 세운 꼬리를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면서 눈가에 미소를 흘리라는 것이다.

어느 날 우리의 대통령이 ‘못해 먹겠다’고 했다. 앞뒤 말은 거두절미하고 그 말만 옮기면 그야말로 대통령으로서 경망스러운 말이 된다. 하지만 원래 그 말은 경상도식 애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내, 이라면 못해 묵는다. 그라니 좀 봐주소, 여러분들이 봐 주야지, 내도 무얼 해도 잘 하지 않겠능교.’하는 애교와 타협의 제스처인 것을 주요 신문들은 큰일이라도 난 양 마구 난타해 버렸다.

대통령은 속으로 부아가 마구 치밀었을 것이고 무지무지 섭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능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왜 저 주요 언론들이 나를 씹어대지 하고 반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섭섭한 나머지 주요 신문은 적으로 돌리고 몇몇 방송은 아군으로 만들어서 대항 논리를 개발해 맞서는 것보다는, 그에 앞서 주요 언론들을 불러서 신문기자들의 취재를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촌지 관행이나 언론의 도마위에만 오르면 장관을 자르는 등 문책 인사가 뒤따라야 하는 구태는 이제 벗어야 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여러분과 내가 함께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새 대통령을 마구 흔들어대면 결국 나라가 어려워지고 그러면 우리 전체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겠느냐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나를 다루려 한다면 나 역시 결코 고분고분 하지 않겠지만, 당신들과 내가 협조해서 일을 하자는 것이라면 24 시간 언제라도 내 집무실은 열려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의연함과 기개를 대통령에게 바란다면 너무 무리한 요구가 되는 것일까?

또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다. 어쨌든 우리의 대통령이니 마땅히 애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비판을 하더라도 그에 앞서 애정과 존경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대통령이든 일단은 인정하고 잘한다고 추어주어야 결국은 잘 하는 법이다. 내년 갑신(甲申)의 해, 소모적인 논쟁으로 일관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제발 부탁인데, 노빠, 뇌무현, 이회충, 땡삼이, 딴나라당, 잔민당, 홍위병, 이런 유치하고 살벌한 말들이 새해에는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총선이 있다고 그런 말들이 더욱 치성을 부린다면 결과로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 우리 전체는 치유하기 힘든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것이 아닌가! 말에 깃든 독(毒)은 칼끝에 깃든 독보다 무섭기 때문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만 우리가 아니라 전체가 우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독한 말로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증오로서 파괴는 가능해도 건설과 창조는 불가능한 법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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