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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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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27>

바둑을 통해 바라본 한일중 동양 삼국의 기질

필자는 한 때 바둑을 꽤나 즐겼다. 기력을 말하라고 하면 예전 급수로는 아마 2급이고, 요즘 기력으로는 아마 2-3단 정도가 되니 약간 둘 줄 아는 편이다. 최근에는 바둑을 둘 기회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케이블 텔레비전의 바둑 채널, 그중에서도 밤 11시에 방영되는 ‘스피드 초점국’은 자주 보는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와 일본, 중국, 이 세 나라의 기사들이 출전하는 국제대회가 끊임없이 개최되고 있으며, 그 시합들은 거의 바둑 채널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역시 그 속에도 한일중 3국의 기질이 여과 없이 투영되고 있어 오늘의 주제로 삼았다.

먼저 이 세 나라의 코드부터 밝혀두기로 한다. 한국은 갑목(甲木), 일본은 을목(乙木), 중국은 무토(戊土)이다. 좀더 정확하게 밝히자면, 한국은 갑진(甲辰)-장차 남북통일이 되면 갑자(甲子)가 될 것이다-이고, 일본은 을축(乙丑), 중국은 무진(戊辰)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장차 좀 더 검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바둑이란 게임을 음양오행에 배속하면 을목(乙木)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직관의 영역에 머물고 있어 이 역시 연구를 필요로 한다. 바둑을 을목으로 생각하는 직관적 사유는 바둑이란 집을 많이 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며, 그렇기에 바둑의 싸움은 상대방 집짓기를 방해하고 내 집은 많이 짓기 위해 지혜를 겨루는 게임이라는 데 있다.

집짓기를 포함해서 무엇인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오행에서 목(木)에 해당되기 때문이며, 그 중에서도 을목이라 보는 이유는 중국이 무토의 나라이므로 만일 바둑이 갑목이라면 상극(相剋)이 되어 애초에 중국에서 발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며, 근대 바둑은 을목의 나라인 일본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이 바둑을 을목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아울러 바둑을 을목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바둑 기사들의 사주를 연구해보면 그런 판단을 얻을 수 있다. 그간 사이트에 공개된 바둑 기사들의 생일을 통해 수십명을 검증해 보았기 때문이다.

바둑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에서 발전되어온 게임이다. 바둑판의 모양은 가로와 세로, 경위(經緯)가 19줄로서 361곳에 돌을 놓을 수 있다. 이는 한 해의 날수 365일을 본뜬 것이다. 보통 일년 열 두달, 360일로 생각하니 말이다. 따라서 바둑은 고대 천문역법과도 관련이 있으며, 또 하나 바둑의 기원과 관련해서 연상되는 것은 고대 중국의 정전(井田)제도이다. (정전제와의 관계란 이전에 마방진에 관해 쓴 글을 참조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골치 아픈 얘기는 각설하고, 바둑에 투영되는 한일중 삼국의 기질에 관해 얘기해보자.

한일중 세 나라 사이에 본격적인 대규모 국제시합이 시작된 것은 1988년 무진(戊辰)년에 대만의 응창기라는 부자가 만든 응창기 배였다. 중국 기사들의 수준이 높아지자, 바둑 애호가였던 응창기 씨가 거금을 내어 시합을 만든 것이다. 특히 섭위평이라고 하는 영웅이 등장하여 일본을 무찌르던 세월이라 실은 섭위평을 믿고 만든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역시 바둑의 종주국으로서 자신만만해 했기에 국제 대회에 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바둑은 그런대로 조훈현 한 사람 정도나 인정을 받았을 뿐이기에, 출전권을 중국괴 일본에 6-7장씩 주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각 나라에 한 장씩 주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우승컵은 한국의 조훈현이 가져가 버리는 이변을 연출되었다. 중국이나 일본, 특히 응창기 씨는 상심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훈현의 우승은 국제대회를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일본은 열을 받았고, 복수의 기회를 노렸으며, 중국 역시 아쉬움을 금하지 못하고 그 이후 국제 대회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4년마다 개최되는 응창기 배는 그러나 1992년에 가서 또 다시 우리나라의 서봉수 가 우승컵을 거머쥐는 이변을 재 연출하게 된다. 그 이후로 응창기배는 한국이 줄곧 우승하면서 우리 기사들에게는 짭짤한 수입거리로 정착하고 만다.

그러자 한일중 3국간의 시합은 불이 붙었고, 저마다 시합을 만들어 무수한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으며, 상금도 대폭 올라갔다. 이제 4년은커녕 거의 달마다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 되었다.

1988년 무진(戊辰)년에 본격 국제 시합이 열렸으니 그와 충이 되는 1994년 갑술(甲戌)년까지 6년간 우리 바둑은 급성장을 거듭했으며, 갑술년과 또 다시 충이 되는 2000년 경진(庚辰)년까지 한일중 시합은 거의 우리 한국기사들의 독무대로 되었다. 이 12년간 한국 바둑은 한일중에서 최고, 사실상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이제 바둑에 관한 한 소림사는 한국이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 중국 기사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단히 재미가 있다. 국민성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근대 바둑의 종주국이다. 일본은 을목의 나라이기에 기본적으로 경금(庚金)과 임수(壬水)를 좋아한다. 을목인 일본에게 경금은 관(官)이 되고 임수는 인수(印綬)가 된다. 관이라 자기 통제력이고 인수란 침착하고 차분함이기에 그들의 바둑은 항상 정돈이 잘 되어있어 깔끔한 모양새를 보인다. 시비가 붙어도 확실한 계산이 설 때까지는 참으면서 모험으로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시기다 싶으면 단칼에 피를 보는 결연함을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 일본류의 바둑이니 이는 일본의 국민성과도 같다.

반면에 우리 바둑은 대단히 도발적이고 직선적이다. 이는 우리가 양의 나무인 갑목(甲木)이라, 목표가 보이면 바로 추구하며, 여유를 두지 않는다. 허점이 보인다 싶으면 바로 찔러 들어가는 신랄함이 장기이며 투지와 기세가 강맹하다. 초반에 신중함을 보이는 것이 일본이나 중국 스타일인데, 우리는 초반이든 중반이든 기회다 싶으면 바로 끝장을 보겠다는 덤벼드는 호쾌함이 있다.

다시 말해 한국 바둑의 강점은 기세가 강하고 실전적이다. 일본 기사가 우리에게 약한 것은 고비를 만났을 때, 일본은 강경책보다는 온건책을 택하지만, 우리는 전선을 더 확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거기서 일본 기사들은 약간의 양보를 보이는데 그것이 우리 기사들에게는 리드로 이어지고 그냥 골인 점 까지 끌고 가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실전 스타일을 완성한 이는 조훈현과 서봉수 라는 두 명의 걸물인데, 조훈현은 유리할 때 고비를 늦추지 말라는 것이 승부 철학이고, 서봉수는 전투하기에 유리한 곳을 찾아내는 감각과 바둑은 예술이 아니라 승부라는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강인한 승부사이다. 모두 병법의 대가들인 것이다.

거기에 우리 바둑을 한 차원 끌어올린 후배들, 바로 이창호와 유창혁 이라는 신진 고수들이 등장하면서 우리 바둑은 종주국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이창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제1인자로서 사주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년 을묘(乙卯)
월 계미(癸未)
일 병자(丙子)
시 --

바둑 기사의 사주라 하기에는 특이한 구석이 많다. 태어난 생시를 몰라 결정적인 단언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간의 성적이나 운세 흐름을 볼 때, 충분히 판단이 가능하다.

사주의 특징은 외유내강한 성격임을 알 수 있으며, 월에 계수가 있어 냉정침착하고 바둑-앞서 바둑은 乙木이라 했다-을 뜻하는 을목이 년간(年干)에 자리하고 있다. 일견 관인상생(官印相生)형이라 살벌한 승부를 겨루는 일과는 인연이 멀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여름 미(未)월에 출생했으니 상관격이라 숨은 재주가 비상하고 출중함을 알 수 있다.

이창호의 스승 조훈현은 이창호에 대해 “무엇이 장기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했는데 맞는 말이다. 재주가 숨어있기에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바둑 기사의 사주를 그간 많이 살펴보았지만, 이창호는 그 중 대단히 특이한 경우라 하겠다. 현재 이창호는 다소 슬럼프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오는 2006년에 가면 자신만의 독특한 바둑 세계를 구축하면서 가일층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것이다.

돌아가서 일본 바둑에 대해 좀 더 얘기하면, 바둑을 두어나가다가 정 불리할 것 같으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구석이 있다. 이는 벚꽃이 피었다가 일시에 져 내리듯이 일본인들은 승부, 특히 패배에 있어서도 독특한 미학(美學)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우리 바둑은 그런 화려함도 없고, 바둑에서 예(藝)를 추구하는 일본인들과 달리 대단히 전투적이며, 실전적이다.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과 힘이지 그 이상의 것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정직함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 바둑의 미학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중국 바둑은 어떤가?

중국 기사들의 특징은 큰 나라라서 스케일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며, 일본적인 미학이나 한국적인 실전성도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사고와 사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바둑은 단숨에 상대를 제압하려는 한국적 패기라든가 일본의 산뜻 깔끔함은 없지만, 끊임없이 흥정하면서 조금씩 이익을 취하려는 유장(悠長)함이 있다.

중국인들이 인생을 길고 긴 길, 만만장로(漫漫長路)로 보듯이 중국 바둑에는 더 길고 유연한 승부호흡으로 끌고 가려는 특성이 있다. 두어나가다 실수를 하면 열을 받기 마련인데, 중국기사들은 그런 면이 없다.

길고 긴 인생길, 비가 올 때도 있고 눈 내릴 때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잘 두려고 하지도 않고, 작품을 대하는 장인(匠人)적인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에 내가 실수하면 상대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바둑이 불리해도 좀처럼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결국 중국적 특성은 큰 스케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탁(淸濁)을 너무 가리지 않는 현실적인 인생관에 있다 하겠다.

이는 만물을 받아들이고 만물을 길러내는 무토(戊土)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이며, 때로는 유연하게 때로는 급하게, 그리하여 일정한 정형이 없는 것이 중국인들의 특성이며, 바둑 역시 그러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년과 후년의 운세를 놓고 세 나라 바둑의 형세를 살펴보면서 글을 끝맺기로 한다.

내년은 갑신(甲申)년이고 후년은 을유(乙酉)년이니, 중국 바둑은 시련기를 맞이하지만 그 시련 속에서 꾸준히 성장해 올것이다. 일본은 그간의 나약함을 떨치고 좀 더 실전적인 자세를 한국 바둑으로부터 받아들여 가일층 강해지는 계기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는 가운데, 여전히 최강자의 위치를 고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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