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로부터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 불리우는 테러방지법의 입법화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지난 10일 한나라당 홍준표, 민주당 함승희, 열린우리당 김덕규 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한 '테러방지법 수정안'은 14일 만장일치로 국회정보위를 통과, 법사위 논의를 남겨두고 있다.
지난 2001년 11월12일 국가정보위원회(이하 국정원)의 '테러방지법' 입법 예고가 나온 뒤로 시민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를 경고하며 2년여간 끊임없는 입법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그럼에도 지난 8월18일 국회정보위 소속 김덕규 위원장은 문제가 되었던 조항을 삭제하거나 일부 수정해서 연내에 입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원과 국회정보위 소속 의원들은 수정된 법안은 애초의 원안에서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대부분 삭제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조항, 국정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수정법안이 과연 인권침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반전평화단체도 테러단체"**
법안에서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테러'와 '테러단체'라는 개념이다.
법안은 "제2조 1. "테러"라 함은 다음 각 항목의 국제협약에서 범죄로 규정하는 행위로서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2. "테러단체"라 함은 UN에서 테러단체로 지정한 단체 및 이 단체와 연계된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안은 구체적으로 제2조 1항의 '테러'를 '9개의 국제협약에서 규정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기존 국내법상의 범죄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테러'를 특정하지 못한 채, 국제법상에 특별히 규제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테러'라는 개념이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대테러활동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다.
2조 2항의 '테러 단체' 규정도 애매하다. '유엔에서 테러단체로 지정한 단체'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확정될 수 있으나, '연계된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의 규정은 모호하여 악용될 소지가 농후하다.
서울대 조국 교수(법학과)는 "'연계'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반미 이슬람 단체와 연락을 하였거나, 직간접적으로 공조를 맺고 활동하는 국내의 반전평화단체도 이에 해당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될 만한 강령, 규약, 활동이 없으나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하는 일체의 단체가 '테러단체'로 낙인찍힐 위험을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정원 권한 대폭강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법안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국정원의 기능이 대폭 강화될 테러방지 기구설립에 관한 규정이다. 관련 규정은 다음과 같다.
"제3조 1. 대테러정책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대통령소속하에 국가대테러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라 한다)를 둔다.
제4조 1. 대테러활동과 관련하여 다음 각호의 사항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정보원장 소속하에 대테러센터를 둔다.
2. 대테러센터는 국가정보원 직원 및 관계기관의 공무원으로 구성하되 그 조직 및 정원은 대책회의의 의장을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국가정보원장이 정한다. 다만, 파견공무원의 정원에 관하여는 미리 당해 파견공무원이 소속된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
3. 대테러센터의 조직 및 정원을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11조 (특수부대의 출동요청) 대테러센터의 장은 테러사건이 발생한 경우에는 제5조제2항의 규정에 의한 특수부대의 출동을 소속기관의 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제12조 1. 대책회의 의장은 경찰만으로는 국가중요 시설과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 등은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시설의 보호 및 경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안에서 군병력 또는 향토예비군(이하 "군병력 등"이라 한다)의 지원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3.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지원된 군병력 등은 국방부장관의 지휘명령에 따라 시설의 보호 및 경비업무를 수행한다."
법안 제4조에는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에 두고, 그 조직을 국정원장이 정하며 대테러센터의 조직 및 정원을 비공개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대테러센터가 수행하게 될 일은 ▲테러징후의 탐지 및 경보 ▲테러관련 국내외 정보의 수집 및 작성 ▲대테러활동의 기획 및 조정 등이다. 또한 제11조에서는 대테러센터의 장은 테러가 발생한 경우 특수부대의 출동을 소속기관의 장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해 놓았다.
법안대로 통과가 된다면 대테러센터는 출입국 규제 요청권이나, 감청권한, 군의 특수부대 요청권 등을 행사하게 된다. 이럴 경우 국내의 반전평화단체의 활동에 대한 제약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과 무슬림, 나아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인권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또 국정원이 다른 행정기관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은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천정배, "국정원을 안기부나 중정으로 회구시키려 하나"**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은 19일 "과거 안기부의 권한도 명목상은 기획, 조정권이었다"이라며,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켜 현 국정원을 인권유린의 대명사였던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안전기획부나, 중앙정보부로 회귀시키려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정원은 엄밀히 말해 헌법에 규정된 기관도 아닌데, 집행권을 주는 것은 헌법질서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행정 각부의 장관에게 행정권을 책임지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학 교수들도 성명을 내고 "테러방지대책회의 의장의 건의를 거쳐 대통령이 군병력을 동원하였지만, 동원된 군병력은 국방부 장관의 지휘명령에 따르고, 군병력이 동원된 국가중요시설에는 청와대도 당연히 포함된다"며 "이 경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시절처럼 30경비단이 청와대를 경호하는 사태가 법적으로 다시 가능하게 된다"고 테러방지법의 반역사성에 대해 경고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최병모 회장은 "대외, 대내 정보를 한손에 쥐고 있는 국정원이 모든 정보를 관할하고 집행까지 하겠다는 것인데 우리가 그동안 국정원에게 얼마나 당했냐"며 법안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국정원은 해외 정보만을 관할해서 관계기관에 배포만 할 수 있게 하고, 수사권과 집행권을 뺏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 체류하거나 입국하는 외국인은 잠재적 범죄자"**
외국인에 대한 감시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제8조 (외국인의 출입국규제 등)
1. 대테러센터의 장은 테러단체의 구성원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정보의 수집을 위하여 그 소재지, 국내 체류동향 및 테러자금 지원여부 등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2. 대테러센터의 장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확인결과 테러를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외국인과 국외에 거주하는 테러단체 구성원에 대하여 법무부장관에게 출입국규제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8조 1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테러단체의 구성원으로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라는 부분은 상당히 모호해 사실상 외국인에 대한 감시 사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안의 수정 이유에서도 '이슬람'을 테러세력으로 명시하고 있어 국내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양산할 소지가 크다.
울산대 이계수 헌법학 교수는 "법안은 국내에 체류 중이거나 입국하려는 외국인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다"며 "법률에 의해 뒷받침 될 때, 이러한 인식이 수사기관은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급격히 확산되는 반인권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이번 테러방지법은 원안의 수정 이유를 "북한, 이슬람 등의 테러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북한을 테러단체로 규정해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국 교수는 "북한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외에 따로 테러방지법상 '테러단체'라는 새로운 규정을 얻게 될 가능성이 많다"며 "이 경우 남북간의 새로운 분란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테러방지법, 테러 방지에 효과 없다"**
테러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측에선 9.11테러와 이라크 파병에 따른 테러의 위험성 때문에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법과 제도로도 테러 방지는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병모 민변 회장은 "현재 경찰도 테러방지를 위한 특수부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방식을 유지하면서 국정원은 해외 정보를 수집해 경찰에게 제공, 협조해야 한다"고 테러 방지 대책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또 "국정원에게 권한이 집중된다면, 유리한 정보만 공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감출 것"이라며 테러방지법이 실질적인 테러 방지에 효과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조국 교수도 "근본적으로 '대테러센터'라는 새로운 기구 없이도 국정원이 대테러업무를 수행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종법안에 규정돼있는 여러 테러방지 활동 역시 다른 여러 법률에 의거하여 수행될 수 있다"며 "국가대테러대책회의는 기존의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대테러센터는 재난관리법상의 각종 기관의 기능과 중복된다"고 지적했다.
***"테러방지법 통과시킨 정보위 12명 기억해 두겠다"**
총 98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테러방지법제정반대공동행동이 결성됐다. 공동행동은 19일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의원이 참여했다. 공동행동은 현재까지 제정 반대 의사를 표명한 의원은 한나라당 김홍신, 우리당 유시민, 무소속 정범구 의원 뿐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동행동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정원 강화법, 테러방지법 심의의 중단을 촉구했다. 공동행동은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 12인의 이름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라며 "제정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반인권, 반민주 의원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보위에는 김덕규(위원장) 천용택(이상 열린우리당) 정형근 박헌기 유흥수 이윤성 홍사덕 홍준표(이상 한나라당) 함승희 김옥두 박상천 정균환 의원 등 12명이 소속돼있다.
***우리당 입장 애매모호**
민변 최병모 회장은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이 법안을 제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며 "열린우리당은 당론으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천정배 의원은 "우리당 차원의 노력을 통해 권력남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당이 당론으로 테러방지법 반대를 채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정책정례회의에서 "테러방지법안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배치될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스템과 연관된 사안"이라고 법안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과 함께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겠다"며 "국민의 공감과 지지속에 법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과정을 거치자"고 말했다.
공동행동은 이날 청와대 면담을 가진 후에, 20일 국회 앞 집회, 21일 국회의장 면담을 이어가며 입법 반대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여론은 국정원의 개혁과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중앙정보부과 안기부를 거쳐 지금의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은 주위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우리 가족들은 많은 날조된 사건으로 간첩이 되고 빨갱이가 되어 피해를 입었다. 가족을 위해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한 법안을 반대한다."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임기란 전 상임의장의 이같은 호소를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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