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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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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23>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해

최근 정부의 강공책으로 강남 아파트의 가격상승세가 꺾였다고 한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이로서 진정되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오늘은 부동산 문제를 음양오행을 통해 알아보았다.

부동산 가격, 특히 아파트 가격은 지난 30년 동안 오르내림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상승세를 지속해왔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에게 부동산이란 ‘으레 오르는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런 인식은 부동산 투기세력에게 절호의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툭하면 오르다 보니 국민들, 특히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주택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하염없이 시달리고 있다.

전세 사는 사람은 집 값 상승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집이 있는 사람은 혹시라도 집을 팔면 금세 가격이 앙등해 버릴까 봐서 감히 집을 팔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아파트와 기타 부동산이 한없이 오른다는 신화가 드디어 종말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이번 가을의 부동산 상승은 지난 수십년에 걸친 상승세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해줄 수 있다. 이제 부동산 시대는 끝났다!

왜 그렇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가? 지금부터의 얘기를 듣다보면 절로 수긍이 갈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 열풍은 지난 1974 년 갑인(甲寅)년에 시작되었다. 서울의 아파트 붐, 그 중에서도 강남 아파트 붐을 가져온 이는 양택식과 구자춘 전 서울시장이었다. 양 시장은 1970년 초반, 서울시 재정이 어려워지자 당시 허허벌판이던 여의도, 입주하려는 사람 하나 없는 벌판에 시범아파트를 지었고, 그것이 성공하자 민간업체들이 뛰어들어 대규모 아파트 군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양 시장은 서울시 재정을 정상으로 돌려놓았고, 여기서 얻은 돈으로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사업수완이 있었던 양 시장은 1970년 11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강남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시에서 수용한 택지였지만, 논밭 밖에 없었던 강남땅은 좀처럼 팔리지 않다가 장차 강남땅이 노른자위가 될 것이라는 홍보 노력을 집요하게 펼친 양 시장에 의해 다음 해인 1971년 중반 경에는 모두 처분되었던 것이다.

뒤를 이은 구자춘 시장은 강남땅에 공무원 아파트와 시영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버스 노선을 만들었으며, 고속버스 터미널을 건설했다. 아울러 강북에 있던 명문 고등학교들을 반 강제로 강남으로 이전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8학군의 시작이다. 그런가 하면 원래 강북으로만 한정되었던 지하철 2호선을 강남땅을 돌아오는 순환선으로 변경시킨 것도 구 시장이었다. 당시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저돌적으로 추진했고, 그 바람에 구 시장에게 붙여진 별명이 ‘황야의 무법자'였다.

드디어 1974년이 되자 강남 집과 땅 값은 천정부지로 앙등하였고, 그 바람에 세수가 늘어나면서 계속적으로 대규모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강남 아파트 신화의 출발점이고 나아가서 우리나라 아파트 불패 신화의 시원(始源)이다.

구 시장은 당시 박 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하고, 강북의 구 도심과 여의도, 그리고 강남을 서울시의 세 군데 핵으로 개발해내는 전략을 택하여 오늘날의 서울을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지하철 2호선은 1978년에 착공되었는데, 착공 전 강북과 강남의 인구 비율은 65 대 35 였던 것이 완공 뒤인 1985년에는 54 대 46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니 당시의 아파트 가격 상승이 얼마나 컸었는지도 능히 상상이 갈 것이다.

그럼 여기서 음양오행이 말해주는 지혜를 잠시 빌리기로 하자. 음양오행에서는 60년을 한 갑자(甲子)라고 부르면서 기본 사이클로 잡는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떤 흐름이나 추세도 60년 사이클의 절반인 30년 지점에 가면 기존의 추세에 반대되는 흐름이 나타나도록 되어있다. 이것을 음양 오행학에서는 충(衝)이라 한다.

따라서 서울 아파트 붐이 시작된 것이 1974년 갑인(甲寅)년이니 내년 2004년 갑신(甲申)년은 바로 30년이 되는 지점이다. 우리의 아파트 불패 신화는 지난 30년간의 상승세를 말해주는 것이지만, 이제 그 흐름이 올해 말로서 끝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이 60년의 절반인 30년에 가서 반대되는 흐름을 만나는 것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개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엄밀하게 작용하는 법칙이다.

그래서 지난 30년간에 걸친 아파트 가격의 상승 파동은 올해가 그 정점이 되는 것이고, 하락은 바로 금년 12월 갑자월이 되거나 늦어도 내년 갑신년 10월 갑술월에는 하락세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감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해도 사람들은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 또한 당연하다. 무려 30년간 오르기만 했으니 그로 인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겠는가. 하지만 영원히 이어지는 잔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올해 계미(癸未)년에 부동산이 오른다는 것은 음양 오행상으로 해석할 때 대단히 잘못된 현상이며, 그로 인한 후유증도 몹시 클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금년도 내수경제가 극심한 불황이건만 부동자금이 몰리면서 부동산 시세를 앙등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불패 신화가 생겨난 배경을 찾아보면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만큼 지금부터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경우 1965년 당시 농촌 인구가 55.1%였던 것이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지난 2002년에 와서는 7.5%로 줄어들었다. 비 농촌 인구는 주로 도시에 산다고 가정할 때, 1965년 당시 우리 인구는 2천8백만이었고, 작년 기준으로는 4천8백만이다. 이 자료를 놓고 따져보면 1965년에 도시 인구는 1천3백만이 못 되지만 지금에 와서 도시인구는 4천3백만 가량이 된다.

도시 인구가 무려 3천만명 가량 증가한 셈이고, 그 인구 중에 절반 정도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예전에는 한 가구당 6-7명이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4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서울에서는 그 엄청난 인구 증가와 가구 증가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 그 중에서도 아파트가 줄기차게 지어져 온 셈이다.

이런 엄청난 수요가 바로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만들어낸 근본 동력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인구 증가가 예전처럼 활발한 나라가 아니며,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초입에 있는 나라이다. 가임 여성당 출산이 1.17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려면 남녀가 필요한 법이니, 남녀 두 사람이 만나서 1.17명을 출산하고 있다는 얘기는 한 세대가 지나가면 인구는 60%정도로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이런 낮은 출산율이 두 세대(대략 60년)만 지속될 경우, 우리 인구는 지금의 40% 이하(0.6 X 0.6)로 줄어들고 만다는 심각한 경고가 된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주택 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섰으니, 장차 30년 후, 한 세대만 지나도 주택은 40%가 남아돌게 된다는 계산이 성립된다. 그럴 경우 허무는 노후주택만 있지, 더 이상의 주택 신규 공급은 대단히 미미해질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조만간 더 이상의 주택 수요는 사라져버린다는 얘기다.

그 결과 30년간 주택 가격이 상승해왔다면 이제 적어도 30년간은 주택 공급이 줄고 가격은 내리게 될 것인데, 그 하락의 출발점이 바로 내년 2004년 갑신년-어쩌면 올해 12월 갑자월부터-인 것이다.

장차 당연히 오르내림이 있겠지만, 부동산 시세의 기본 흐름은 하락세로 들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 이제 명백해졌을 것이다.

또 하나 부동산 시세가 하락세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리고 있지만,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신호가 하나 있으니 바로 내년부터 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장기주택 대출제도(모기지 론․mortgage loan)이다. 모기지 론은 20-30년 짜리 초장기 대출제도로서 부동산의 가격 변동이 심하면 시행하기 어려운 제도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방면의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가격 변동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필자는 이에 오히려 그런 제도가 이제 도입되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장차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화될 때가 무르익었다는 하나의 징표가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돌이켜보니 김현옥, 양택식, 구자춘, 이런 양반들이 주야로 서울시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돌아다니던 왕성했던 개발의 시절도 이젠 간 곳이 없고, 더 이상 부동산 가격 앙등이라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날이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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