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0> 뉴욕 패션 지구의 탄생과 성장

동대문 패션 타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글로벌 패션 도시들의 역사를 우선 살펴보고자 한다. 비교 대상 없이 동대문을 바라볼 때, 동대문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중요한 부분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대상지로 뉴욕을 들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뉴욕 패션 타운은 현재의 동대문처럼 디자인을 모방했던 (특히, 파리의 디자인을 모방했던) 역사가 있음에도, 현재는 혁신의 혁신을 거쳐 세계적인 패션 타운으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미국 패션 산업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뉴욕은 보스턴, 필라델피아와 함께 여러 패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1880년대 대규모 유럽계 이민자들이 뉴욕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뉴욕은 미국 최고의 패션 중심지로 발돋움한다. 저렴한 임금 노동자 집단의 출현이 뉴욕 패션 산업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마치 60, 70년대 지방에서 올라온 나이 어린 청소년과 청년층이 구로공단과 동대문 일대 패션 제조업 노동력의 바탕이 된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초창기 패션 상점과 봉제 공장들은 맨해튼 남부지역에 위치하였으나, 점차 미드타운 주변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패션 상점들이 이주한 후 봉제 공장들이 작업장을 옮기기 시작하였고 1930년대 가먼트 디스트릭트(Garment District)라 불리는 현재의 뉴욕 패션 지구 모습이 갖춰졌다.

▲맨하탄 여성의류산업 공장 위치 변화. (출처: Heig & McCrea, "The Clothing and Textile Industries in New York and Its Environs", 1925; cited in Rantisi, 2004)

1930~50년대 사이 뉴욕 패션 산업은 판매와 제조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디자인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당시 세계의 패션 중심지는 파리였고, 뉴욕은 파리의 디자인을 약간 변형시킨 수준에 불과하였다.

부동산 시장도 뉴욕 패션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40년대 이후의 미드타운 부동산 임대료 상승은 부가가치 창출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패션 업체들로 하여금 미드타운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는 와중, 뉴욕 패션 지구는 럭셔리(고급) 패션 디자이너들과 (그들과 함께 작업하는) 기술력 있는 패션 제조업체들(패턴과 샘플 제조업체들) 위주의 지역으로 변모하였고 이들은 함께 뉴욕 패션 지구의 성장을 이끌었다. 디자이너와 제조업체 공존을 통한 뉴욕 패션 지구의 성장은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제조업체가 패션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였다.

"만약 디자인 회사를 창업했는데 충분한 자본이 없다면, 당신이 디자인한 옷을(큰돈을 들여서) 중국에서 만들고 다시 미국으로 들여올 순 없지요." - 예오리 텡, 패션 디자이너

"제가 패션사업을 시작했을 때, 상당한 시간을 디자인 스튜디오와 봉제공장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디자인한 옷들이 좋은 품질을 보증하면서 제 기획 의도대로 만들어졌는지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앤드루 로젠, 패션업체 Theory CEO

"당신이 의류사업을 시작한다면 의류 봉제 업체(및 종사자)를 파트너로 인식하고 적절한 대우를 해야 합니다." - 셀리 스테피, 패션 디자이너

"의류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예전부터 알던 재봉사들이 저를 다른 의류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소개해줬어요. 사업이 커지면서 더 이상 제 아파트에서 작업을 할 수 없었고, 가먼트 디스트릭트로 옮기기로 결정했죠. 의류 사업을 번창시키려면 사업에 필요한 인프라 스트럭처(체계)가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 안나 수이, 패션 디자이너

세계적 패션 리더들이 주장하는 바는 디자인과 패션 제조업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렇기에 지리적으로 매우 밀접한 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더더욱 패턴과 샘플 제작과 같은 고급 제조 기술 인프라가 존재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뉴욕시 정부도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제조업체들이 뉴욕 패션 지구를 떠나지 않도록 각종 도시 계획 정책을 수립하여 지원하고 있다.

뉴욕 패션 지구는 디자이너와 패션 제조업 간 시너지 효과를 통해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의 임대료 상승은 다시 한번 제조업 퇴출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많은 제조업체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고 파산에 처하거나 뉴욕 인근의 브루클린이나 퀸즈, 브롱 심지어는 바다 건너 아시아로 이주하였다.

패션 제조업 기반의 약화는 패션 중심지로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기에, 뉴욕 패션업계와 뉴욕시 정부는 이를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였다. 정부는 뉴욕 패션 지구의 제조업을 육성하고 패션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구인 '가먼트 산업개발 기구(Garment Industry Development Corporation)'를 1984년 설립하였고, 1987년에는 '가먼트 디스트릭트 특화지구(Special Garment Center District Zone)'를 설정하여 제조업으로 사용할 공간과 상업용 공간을 1대 1 비율로 유지하도록 규제하였다. 1993년에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지역 내 부동산 소유주 26명이 '패션 센터 경제 활성화 지구(Fashion Center Business Improvement District)'를 설립하였다.

ⓒ김경민

경제 활성화 지구(BID, Business Improvement District)는 지역 발전 및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 조직들이 상호 협의로 조직을 결성하고 해당 지역을 관리 운영하는 제도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소유자들이 추가 부담금을 지불하며, 지역 산업 마케팅 및 프로모션, 경제개발 계획, 치안 유지, 공공시설 유지 보수, 직업 훈련, 커뮤니티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부동산 소유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이때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한다.

패션센터 BID에는 부동산 소유자 조직뿐 아니라 상가 세입자, 주거 세입자, 커뮤니티 이사회, 패션협회 그리고 시 정부 등 여러 이해관계자 그룹들이 함께 지역 현안에 대해 토의하고 의견을 절충한다. BID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도시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2013년 현재 뉴욕시 전체는 67개, 맨해튼 내부에는 22개의 BID가 존재한다.

패션센터 BID는 가먼트 디스트릭트 특화지구보다 약간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데, 지역의 공공 공간과 공공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지역 활성화에 기여한다. 지역의 아트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뉴욕 패션 지구의 대표적 랜드마크(명소)인 버튼 모양 조형물도 패션센터 BID에서 제작한 것이다.

패션센터 BID가 추진하는 가장 인상적인 정책은 구역 내 패션 제조업 용도로 사용되는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부동산 소유주가 패션 제조업 용도의 공간을 오피스(사무공간)나 상업시설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면적의 패션 제조업 공간을 지역 내 다른 곳에 제공해야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뉴욕 패션 지구에 존재하는 패션 제조업 공간을 동일하게 유지하도록 만들고 있다.

부동산 소유주 입장에서는 더 많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오피스나 상업시설로 변환하는 것이 유리하기에 반발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보상의 일환으로 지역 내 미개발 공간에 대한 개발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공영 주차장처럼 지역의 용적률보다 낮게 이용되는 곳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패션 제조업체의 공간을 꾸준히 확보하면서 부동산 소유주의 반발을 약화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공간을 주거와 상업 용지로 개발함으로써 복합용도개발(Mixed-Use Development)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의 정책으로 다양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이때 개발권을 추가로 확보한 부동산 소유주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에 더 많은 BID 부담금을 지불하고, 이는 지역에 환원되어 더 많은 지역사업을 펼칠 수 있는 종잣돈이 된다. 이러한 지역 사업에는 뉴욕 패션 지구를 위한 프로모션과 마케팅뿐 아니라, 제조업 공장주에 대한 임대료 보조금 등이 포함된다.

패션 제조업의 중요성

비단 뉴욕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패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디자인과 더불어 제조업에 대한 보호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패션 산업의 본질이 창조 산업이라는 특성을 꿰뚫고 있다.

창조 산업은 기본적으로 창의력(creativity)과 지적 자산을 활용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산업으로, 영국 정부의 정의를 따르자면 창조문화산업 (Creative and Cultural Industry)이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창조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패션산업은 창조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창조 산업은 기본적으로 창의력과 지적 자산을 활용하기에, 농촌보다는 도시, 특히 대도시와 같이 양질의 고급 노동력이 밀집한 곳에서 성장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장소가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인 역시 당연히 도시에 집중적으로 위치하며, 도시 내에서도 특정 공간에 위치하는 특성이 있다.

창조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창조 산업의 연관 산업이 같은 도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패션 디자인의 연관 산업인 패턴과 재단, 샘플 제작과 같은 제조업이 도시에 공존해야 한다.

숙련된 패션 제조업의 중요성에 대해 영국이 주는 교훈은 매우 크다. 영국은 패션 산업의 부흥을 위해 패션 디자인을 육성하는 정책을 많이 펼쳤다. 하지만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견하였다. 영국에서 육성하고자 했던 패션 디자이너들이 런던을 떠나 파리와 밀라노로 본거지를 옮긴 것이었다. 영국 정부가 파악한 바로는 패션 디자이너와 패션 제조업 간의 관계는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숙련된 패션 제조업체가 상당히 많을 뿐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제조업의 가치를 이해하고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우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패션 디자인 자체도 패션 산업 육성에 중요 요소이지만, 디자이너들이 믿을 수 있는 숙련된 패션 제조업의 존재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영국의 정책은 디자이너와 제조업체를 연결시키는 인프라 스트럭처를 구축하기 위해 제조산업 인력 양성에 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해외 패션 산업의 가치 사슬을 한국에 접목해 보면, 동대문은 디자인-제조-유통이란 과정 중 가장 끝단인 유통 구조가 지배적인 지역이다. 거대한 유통 시장인 동대문 시장이 갑의 위치에서 디자인의 가치와 제조업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글로벌 패션도시들은 디자인의 가치는 당연히 인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디자인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야 하는 패션 제조업의 가치를 높이 보고 패션 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패션 도시들과 동대문의 경쟁력의 차이를 만들고 있다.

□ 주석

① Made In Midtown, www.madeinmidtown.org
② Andrew Bernheimer, Colin Cathcart, Kei Hayashi, Rob Lane(2012), "Making Midtown: a New Vision for a 21st Century Garment District in New York City", Design Trust for Public Space: New York.
③ 뉴욕시 정부 웹사이트 (☞바로 가기)
④ Design Trust for Public Space (2012), "Making Midtown: a new vision for a 21st century garment district in New York city"
⑤ DCMS, 2001
⑥ d'Ovidio, Marianna, 2010, Fashion and the city-Social interaction and creativity in London and Milan. In Serena Vicari Haddock, <>, Firenze University Press, Florence, pp. 113-136.
⑦ Department of culture, Media & Sport, U.K, 《Creative Industries Mapping Document: Designer Fashion》, 2001, p. 8.; Centre for Fashion Enterprise, 《High-end fashion manufacturing in the UK - product, process and vision》, 2009, p. 4. ; Centre for Fashion Enterprise, 《The UK Designer Fashion Economy》, 2008, p. 40.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