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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 말하는 사람들이 재구성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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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 말하는 사람들이 재구성 대상"

[인터뷰]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대안적 정치운동 전개해야"

사적인 연이 깊지는 않았지만 그 냉철한 진보 이론가의 첫마디가 "눈물이 난다" 일 줄은 몰랐다. 지난해 고인이 된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의장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전성기를 견인했던 이론과 정책의 쌍두마차,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얘기다. 지금은 민주당 최재천 의원의 겸임 보좌관으로 '당적 없이' 표류하며 진보의 대안을 모색하는 그다.

민노당 초기부터 극렬 자주파 진영의 사상과 행태를 보고 겪은 송 처장에게 이번 '이석기 사태'가 그리 새삼스런 충격은 아니었을 터. 그럼에도 왜 그는 눈물이 난다고까지 했을까.

"옛날 기억이 많이 나서"라고 했다. "민노당을 주도한 세력의 이념적으로 고착화된 신념은 대단히 퇴행적 사회를 전망하는 절대적 모순에 빠져 언젠가는 당을 말아먹을 수 있다고 늘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본 민노당의 역사다. 그에게 2008년 민노당의 분당은 급진적 모험주의 노선을 견제할 수 있었던 절묘한 '힘의 균형'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민노당의 성장은 자주파나 평등파의 이념이 이끌지 않았어요. 실업 운동이나 경제민주화 운동 같은 전혀 새로운 운동이 당의 활로를 뚫었던 겁니다. 정파들 간의 힘의 균형도 이념적 지향들을 최소화시킨 요인입니다. (...) 2008년 당 대회가 있던 그날은 와이프 생일이기도 했어요. 그날 당 대회 결정으로 당이 깨져버린 것이고, 힘의 균형도 깨져버린 거죠. (분당 이후의 민노당이) 자주파가 주도하는 정당으로 남게 된 겁니다."

이후 지난해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사태를 겪으며 또 한 번 분당, 극렬 자주파만 살아남은 현재의 통합진보당은 "근원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운동적 풍토만 지속되는 정당"으로 퇴화해갔다.

"그들은 북한 사회주의를 모범적 이상사회로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의 성숙한 가치나 문화, 법률로 평가하고 단죄하는 것은 그 사람들 입장에선 탄압이 되는 겁니다. 공론화가 불가능한 정서이다 보니 전쟁 대비 시나리오까지 갈 수 있었던 거죠. 자주파만의 해방구에서 언제든 할 수 있는 논의를 한 거예요. 그 논의는 실제적 위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품성론을 강조하는 자주파의 상당수는 자신의 적이라고 판단되는 대상에 대해선 대단히 경멸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거든요. 극단적인 가정입니다만, 1000명 정도가 무장을 하고 게릴라전을 전개한다면 아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송 처장은 국가정보원에 의한 '적출'을 온당하게 보지는 않는 듯 했다. 그는 "설령 말이나 표현이 사회적 위협이 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감내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서적으로 그 정도까지 용인해야하냐고 불만이 터지더라도 어쩔 수 없이 용인해야만 한다"고 했다. 아울러 "자주파 그룹의 경우 현재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고립화시키고 소수화시키는 게 전부겠지만 그들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북한사회 자체가 전도된 사회라는 것을 이해시키든지, 아니면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준이나 토대가 주어지지 않는 한 사고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이제, 문제는 이석기 사태 '이후'로 넘어간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진보 정치의 재구성'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릴 수 있는 것일까.

"문제는 진보정치를 재구성하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재구성의 대상이라는 겁니다. 평등파라고 해서 민노당 운영을 제대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던 평등파들은 노동자들이 소유와 경영에 참여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적 사안들에 대해서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운동을 할 때는 소부르주아지 운동을 한다고 들고 일어났었죠. 오히려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는 국민정서를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자주파가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저 '진보'라는 깃발만 부여쥔 진보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불만만 높았을 뿐,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게을렀단 얘기다.

"민영화 문제도 그래요. 강력하게 민영화 저지만 얘기하지 다른 대안을 얘기하지 않아요. 그럼 골치 아픈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면 대우조선에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국공유기업 형태로 하자고 주장하려니 사회적 설득력이 없고, 민영화시키자니 다른 대안이 없는 겁니다. 요즘 전월세 대란이라고 난리인데, 이런 건 진보정당이 주도해야 할 운동인거죠."

"세계 모든 진보정당의 성장사는 대안적 정치운동을 동력으로 포괄합니다. 노동자와 서민들의 참여를 끌어낼 운동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이슈화시키지 않는 한 누가 미쳤다고 진보라고 지지해줍니까. 그걸 포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당히 연합하고 합종연횡한다면 단기적 이벤트는 될 수 있지만 성장 동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세력은 무너집니다. 내가 진보니까 지지해달라는 건 보수의 프레임에 갇히는 겁니다. 사상이나 철학, 행동양식은 어느정도 합리적으로 바뀌어 가는데 대안적 정치운동을 전개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간 사회를 살려는 사람들이 바람직한 사회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송 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자본론' 연구자다. 노동, 실업 정책, 임대차보호법 등 그의 손길이 닿은 정책들은 자본론의 통찰로부터 나왔다. 지난 2008년부터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를 꾸려 불법금융업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법률지원을 해왔다. 아직도 그 일을 한다. '대출천국의 비밀'이란 책으로 서민들을 옥죄는 대부업 문제를 고발하기도 했다. 요즘엔 최대의 민생현안으로 부각된 전월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그의 활동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최재천 의원은 '의정활동을 돕지 않는 보좌관'으로 그를 채용하기까지 했다.

현실의 정당, 눈에 보이는 세력으로서의 진보는 나락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송 처장의 표현처럼, 구체적인 성과를 내보였던 "소수정예" 정책 실천파들의 표류가 더 큰 위기의 예고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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