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식령 스키장과 동해안 광역 관광특구
금강산 관광 재개를 둘러싼 프레임은 두 개다. 하나는 관광객 총격사건에 대한 출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신변안전 등 관광 재개의 선결 조건들은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관광 재개 의지가 있으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광 재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5년 전에 비해 훨씬 복잡해졌다는 뜻이다.
▲ 지난 6월 촬영된 북한 마식령 스키장 슬로프 공사 모습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 |
다른 프레임으로 관광 재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생겼다. 세월이 흐르면서 관광 사업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다. 우선적인 변화는 북한의 동해안 광역 관광특구 계획이다. 크게 보면, 마식령 스키장, 금강산 관광의 국제화, 그리고 배후 도시인 원산의 현대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 체제의 가장 중요한 상징사업이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분산 개최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식령 스키장의 용도가 꼭 올림픽을 겨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산 갈마 비행장과 원산~금강산 사이 철도 현대화, 원산~금강산 도로의 보수와 전력 보장 등은 이미 북한 당국이 발표한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달라진 구상은 이미 금강산 국제관광 특구법의 제정(2011년 5월)으로 표현되었다. 이 법을 남북경제협력 법제가 아니라, 외국인 투자법제 내지 대외경제 법제로 분류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남쪽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현대의 관광사업 독점권 효력을 취소했다. 금강산 특구관리의 운영주체를 관광지구 관리 기관에서 국제관광 특구관리위원회로 변경했다. 개발업자에 관련된 모든 규정들을 수정했다. 관광사업 운영을 이제 개발업자가 아니라, 북한 당국이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북측 지역을 통한 관광은 북측이 맡되 해외사업자에게 위임하고, 남측 지역을 통한 관광은 현대가 계속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6월부터 연길~금강산 배편 관광이 시작되었고, 7월부터는 연결~금강산 항공관광이, 그리고 2013년 5월부터 싱가포르 관광선 황성호에 의한 라선~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남북 관광협력이 중단된 상황에서 과연 북한이 금강산을 국제적 관광지로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까지의 성과로 보면 난망하다. 금강산 관광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다. 정주영 회장이 1989년 북한과 금강산 사업을 처음 합의했을 때, 경제성을 보고 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쪽을 제외하고, 경제성 있는 관광특구를 만들기 어렵다.
3차 방정식이 되어버린 금강산 관광 재개
금강산 관광의 국제화는 남쪽 관광객 중단 이후의 대안이었다. 그러면 금강산 관광 재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과연 특구법을 없던 일로 하고, 현대의 독점권을 다시 인정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것이 금강산 관광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다. 남북당국의 관광 재개를 위한 선결 조건이 2차 방정식이라면, 남북한 당국과 현대아산이라는 세 주체간의 관계는 3차 방정식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북한과 현대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가 과연 북한이 구상하고 있는 동해안 광역 관광특구에 대한 투자 여력이 있는가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구상이 있기 때문에 현대의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국내 혹은 국제적인 자본유입의 근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독점권을 허용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관광 대가 지급과 관련된 과거의 복잡한 문제가 작용한다.
물론 현대 또한 변화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리고 정몽헌 회장이 그려왔던 구상을 지금 와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의 사업자로 금강산 관광 사업에 참여할지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현대 입장에서 명분과 능력을 고려한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 ⓒ연합뉴스 |
금강산 관광 재개를 둘러싼 남북협의도 복잡하다. 당연히 관광 재개의 선결 조건을 둘러싼 협의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검토하기 전에,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결정할지는 의문이다. 사실 금강산 관광은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해당되지 않는다. 관광 사업은 제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5.24 조치와의 관계는 더 복잡하다. 금강산은 이미 2008년 관광객 총격사망 사건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일반 민간인의 방북을 포함하는 금강산 관광의 재개 유무는 5.24 조치의 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금강산 관광을 허용하면서, 민간교류와 경제협력 사업을 제재할 명분을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대안이 필요
대안은 무엇일까? 이산가족 상봉을 지속하려면 당연히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한다. 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라는 요구는 다시 말해,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안 해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1971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회담이 바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산가족의 현주소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이 고령이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대로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되면, 과연 얼마나 살아계실까? 헤어진 가족을 만나겠다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원만큼 소중한 인도적 문제가 있을까? 가볍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금강산 관광을 전면적으로 재개하기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시범관광부터 실시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2008년에 완공이 되었으나 사용하지 않아 먼지만 쌓였을 이산가족 면회소를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시범관광을 우선적으로 실시하면서, 다른 시설들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개성공단과 마찬가지로 전면 재개를 위해, 남북한과 현대 3자가 만나 구체적인 협의를 할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의 조건과 환경이 복잡하고 정부가 우선순위를 낮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 재개 이후의 남북관계 관리방안이다. 금강산 관광을 우회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그림이다. 개성공단 재개 과정을 보면 북한의 일방적 양보로 여기까지 왔다. 정부는 이것을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의 성공으로 자평한다. 그러나 국내 정치적인 접근은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현안은 서로의 필요와 서로의 의지가 결합되어야 굴러간다. 일방의 양보로 해결될 수 있는 현안은 제한적이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부터는 대부분의 현안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남북관계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북핵문제를 비롯한 복잡한 환경을 고려했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추후로 미루어야 할 일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대북정책의 목표와 전략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륙횡단철도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이나, 또는 DMZ의 평화공원 구상, 모두 중요하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이런 구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변화된 환경을 고려하여,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라, 얼마든지 금강산 관광을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다. 창의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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