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새누리당의 비난은 좀 황당해 보인다. 무상 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고, 이에 대한 중앙 정부 지원 비중을 높이기 위한 법안이 지난해 여야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했다. 올해 1월에는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보육 사업처럼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재확인하였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정부에 예산을 요구하기에 앞서 과다 편성 예산부터 조정해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요구는 틈만 나면 여권이 박 시장을 흔들고 그의 정치 경력에 흠집을 내려 한다는 세간의 의혹을 짙게 한다.
정치 공방이야 어떻든, 이번 박 시장의 어려운 결단으로 당장 발등의 불은 껐다고는 하지만, 이를 계기로 복지 재정을 둘러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역할 분담이 근본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
▲ 김성태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2000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과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
많은 세계적 석학들이 앞으로의 시대는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양적으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과거는 경제 성장, 소비 증가, 수출 증대 등 계량적 지표를 나침반으로 삼는 양적 팽창의 시대였으며, 경제 성장으로 인한 소득 수준의 향상만으로도 국민을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 이런 양적 팽창만으로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 시대가 서서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반세기 선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배 또는 7배나 늘어났음에도 선진국 국민의 행복 지수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른바 '행복의 역설'이 일관되게 관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대의 문턱을 넘어 '20-50클럽'에 가입하였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향후 행복의 역설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징후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돈만 있으면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지속하는 한 굳이 행복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최소한 경제계와 정치권에서는 그랬다. 행복이라는 말은 단지 드라마나 연애소설에서나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시대가 오면 행복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명시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한다. 당장 2012년 대선 때, 행복이라는 말이 우리 정치권을 점령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 성장을 비롯한 양적 팽창에 관한 사항은 기본적으로 중앙 정부의 과업으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중앙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방 정부는 기본적으로 중앙 정부의 손발이 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양적 팽창이 국민의 행복 지수를 높이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행복에 관한 한 중앙 정부의 역할도 한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또한, 세계화로 인해서 경제에 대한 각국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약해지면서 경제 성장도 중앙 정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중앙 정부의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어떻든, 돈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 것인가? 행복 전문가들에 의하면, 좋은 인간 관계, 보람 있는 일거리, 명예, 자존심 등 비금전적인 것들이 우리의 행복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달리 말하면, 양적인 것보다 질적인 것이 우리의 행복에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국민의 행복 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각자가 이런 비금전적인 것들을 더 많이 가지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비금전적이고 질적인 것들의 특징은 정부가 획일적으로 공급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인간 관계와 보람 있는 일이 각자의 행복에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좋아하는 인간 관계와 보람 있는 일의 내용은 성별로, 연령별로, 소득 계층별로, 지역별로 각각 다르다. 예컨대, 어느 지역 사람들은 인간 관계를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반면, 어느 지역 사람들은 유난히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천차만별인 행복의 비금전적, 질적 원천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주민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달리 말해서 비금전적이고 질적인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에는 지방 정부가 중앙정보보다 정보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적인 것보다 질적인 것이 행복에 더 중요해질수록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제1선에서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지방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보자. 돈만으로 국민이 행복해질 수 없는 시대에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각종 지역 공동체를 대폭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 공동체는 좋은 인간 관계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보람 있는 일거리의 공급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 그 많던 자생적 지역 공동체들이 중앙 정부의 시장 활성화 정책에 밀려 사라졌다. 이제 그 사라진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고 새 시대에 맞는 자생적 공동체가 나타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 정부가 해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어떤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중앙 정부보다는 지방 정부가 더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이미 서울시는 이런 시대의 큰 흐름에 부응하여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발 빠르게 앞서 가고 있다. 여권이 진정 국민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지방 정부의 이런 노력을 적극 지원해야 옳다.
국민 각자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진정 인정한다면, 앞으로 지방 정부는 과거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각 지역별로 알맞은 행복의 여건을 찾아내고 조성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고 따라서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자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에는 지방재정이 더욱더 확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중앙 정부 재정에서 더 많은 부분을 덜어서 지방재정에 돌릴 수도 있고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도 있다. 지방자치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지방 정부의 조세징수권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대 의견도 있다. 조세징수의 행정 면에서 중앙 정부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지방 정부를 대신해서 중앙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서 이를 지방에 돌려주는 방법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박 시장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편을 가르고 있다고 새누리당이 비난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앞으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갈등이 점차 증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앞으로의 시대는 초저성장 시대가 된다고 말한다. 지금의 경기 침체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한다는 얘기다. 초저성장 시대에는 세수도 늘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한정된 정부 예산을 둘러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줄다리기도 더욱더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새로운 역할 분담에 관한 연구가 시급한 또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돈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시대에는 중앙 정부보다 지방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시대의 큰 흐름을 잘 읽고 이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책에 힘을 실어줄 만한 정치가가 우리나라에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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