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어제의 세계: 지구화, 인수 합병, 신자유주의 **
***① 준비 운동 2: 30분에 읽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역사**
저번 글에서 우리는 국내와 국제,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개의 이분법을 넘어서 우리의 미시적인 일상에서 구조 변형과 자본 축적 같은 거시적 현상까지를 하나의 틀에서 보는 “지구 정치 경제”라는 방법을 30분 만에 읽은 바 있다. 이번엔 좀 더 어처구니 없는 짓 즉, 19세기 이래 나타난 지구적 자본주의 정치 경제의 역사를 30분만에 훑어보는 일에 도전해보자.
***1.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지구 정치 경제**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 영국의 지도하에 전 세계는 19세기 초 이래 드디어 지구적 정치 경제 체제라는 미증유의 모험에 도전한다. 이 고전적인 자유주의 그 대략적인 메카니즘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인간 노동력과 토지 및 자연 환경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존재들은 정치적 존재 형태와 경제적 존재 형태 사이에 “인격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 먼저, 경제적으로 보자면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상품”으로 간주되어 화폐를 통해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반면 정치적 존재로서의 이들은 일정한 국가에 귀속된 공민(citizen)이거나 그 국가의 법적 권력이 적용되는 영토로 간주된다. 따라서 국내와 국제의 구별은 원칙적으로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라는 정치적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국적이란 공민과 영토에나 적용되는 것이지, “상품”으로서의 인간과 자연 환경에 적용될 성격이 아닌 것이다. 이 “상품”들은 자유 무역이 지배하는 세계 시장에서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이렇게 정치와 경제의 확연한 구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필요했다. 먼저, “상품”들끼리의 수요 공급으로 스스로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장 경제에 정치 영역을 대표하는 국가 기관이 개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시장 경제에서 불리한 위치를 점한 자들이 선거에서 의회나 국가 기관을 점거하여, 노동조합의 허용이나 토지 사용 제약과 같은 각종 규제 조치를 입법하는 경우. 둘째, 국가가 자의적인 재정 팽창을 시행하여 시장 경제의 물자를 마구 징발하는 경우. 셋째, 시장 경제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가지게 된 화폐의 공급을 국가 기관이 마구 좌우하는 경우. 따라서 이 세 가지를 먼저 철저히 금지하는 형태의 국가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19세기 형의 국가 형태가 바로 흔히 말하는 “입헌주의 국가(constitutionalist state)”였다. 먼저 시장 경제에 대해 각종 규제 입법을 강제할 위험이 있는 노동자 농민 등은 기본적으로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거나 크게 제한당한다. 또 그들이 국가를 장악한다고 하더라도, 헌법(constitution)이 보장한 사유 재산 보호의 틀거리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크게 제약 당한다. 또 군주의 임의대로 세수와 재정 규모가 결정되지 않고 의회의 동의하에 다음 해의 정부 예산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균형 재정을 지향하도록 한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세수로 최소한의 활동만을 하는 최소한의 정부를 지향하는 셈이다.
각국의 국내에 이러한 입헌주의 국가가 형성되도록 강제하는 국제 경제의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국제 금본위제였다. 모든 나라의 화폐는 일정량의 금과 항상 태환되도록 규정한 이 통화제도는 국제적인 통화 가치의 안정을 가져와 자유 무역을 촉진하고 인플레를 억제하는 한편, 국가가 재정 정책이나 금융 정책으로 시장 경제에 개입할 여지를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수출을 통한 금 준비(gold reserve)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화를 증발하였다가는 당장 금태환의 압력을 받을 것이다. 또 정부의 재정 팽창은 외환 가치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쳐서 또한 금태환의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이렇게 금본위제에 기반한 19세기의 자유주의적 세계 경제는 또한 국제적인 평화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였는데, 이를 보장할 국제 정치 체제는 바로 소위 세력 균형 체제(balance of power)로 상정되었다. 이는 사실 체제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우스운 적나라한 폭력의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A, B, C라는 세 개의 주권 국가가 있다고 하자. 이 세 나라 중 어나 하나의 힘이 너무 커지게 되면 나머지 두 나라는 자신들의 존재에 위협을 느껴 스스로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저절로 동맹을 맺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국 각자의 주권을 지키려 애쓰는 이 주권 국가들이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이합집산을 거듭함으로서 큰 전쟁이나 체제 변동이 방지된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원리를 천재적으로 활용하여 독일의 독립을 이룬 이가 바로 비스마르크라고 한다.
네 가지 영역이 이러한 제도와 원리로 결합되어 있었던 것이 19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 세계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2. 제국주의, 파시즘, 세계 대전**
겉으로 보면 이 네 가지 영역이 깔끔하게 분리되어 잘 정돈된 것 같은 이 세계는 실제로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이 사방에서 스멀거리고 있는 체제이기도 했다. 먼저, 이러한 식의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것은 사실상 사회라는 건축물의 가장 기본적인 뼈대 구성 요소가 되는 인간과 토지 마저도 시장의 횡포에 대책없이 노출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신문에서 간혹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 정리해고등을 가능케 하여 노동 시장의 탄력성을 강화하자”라는 식자들의 목소리를 접한다. 그러한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이것이 실제 인간의 삶에서 의미하는 바를 음미해보자. 정리 해고에 반대하여 지하철, 은행 기타 등등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면 우리는 “집단 이기주의 철밥통” 등등의 언사로 갖은 욕을 퍼붓는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정리 해고될 상황이 왔을 적에 “시장의 위대한 자기 운동을 위해 이 한몸 희생하리라”고 묵묵히 사라질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과연 그러한 주장을 하는 대학의 정치학과 경제학과 교수들은 묵묵히 사라져줄까. 혹시 머리띠라도 두르고서 “고용안정 보장하라”고 농성을 벌이지 않을까.
인간에게 있어 직장과 수입이란 노동 시장 수요 공급 곡선의 데이타이기 이전에 그의 “삶”이요 “존재” 자체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19세기 자유주의적 경제라는 것은 그러한 측면이 완전히 무시되고 철저히 시장의 운동에 그 모든 것들이 종속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시장이라고 용가리 통뼈인가. 그것도 결국 인간들이 만든 제도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니 위기에 몰린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수법을 동원하여 시장의 횡포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든다. 이때 그들이 주로 애용하는 수법은, 결국은 국가 기구를 통한 경제에의 개입일 수 밖에 없다. 이리하여 입헌주의 국가라는 원칙은 19세기 말이 되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금본위제라는 압박이 뚜렷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국가 기구와 활동의 팽창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결국 금본위제를 지키면서 그러한 사회적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식민지의 수탈을 지향하는 제국주의적인 경쟁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리하여 세력 균형 체제는 이미 유럽 대륙 내부에서의 국가들간의 문제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식민지 분할 재분할의 규모로 발전하게 된다. 이리하여 세력 균형 체제는 위협받고 세계 대전의 위협이 자라나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의 요소를 생각해보자. 인간과 토지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존재가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된다는 말은 사실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화폐야말로 이제 세상 만물을 지배하고 동원할 수 있는 궁극적 권력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즉 일정량의 화폐라는 것은 그것이 동원할 수 있는 만큼의 사회적 관계를 그대로 대표하는(represent), 그야말로 사회 그 자체이다. 이리하여 엄청난 양의 화폐를 축적하는 자본가들 특히 금융 자본가들이 이제 사회의 실질적인 권력의 소유자로서 대두되게 된다. 시장의 횡포에 이리저리 시달리는 대중들은 이 금융 자본가들에 대한 증오를 키우게 된다.
즉 이 깔끔해보이는 국내 국제 정치 경제의 분리에 근간한 19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사실상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권력의 분배와 재분배를 가져오는 체제였음이 20세기 초가 되었을 때에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게 보였다. 이러한 권력의 분배와 재분배 과정에서 또 그에 맞서는 저항의 과정에서 20세기 전반기의 지구 정치 경제는 제국주의, 사회주의 혁명, 파시즘 발호, 세계 대전이라는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대변형(great transformation)”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된다.
***3. 전후의 지구 정치 경제**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19세기식의 자유주의적 정치 경제 체제와는 이제 완전히 그 가능성이 소진된 것으로 보였다. 세계 곳곳에 사회주의와 민족 해방 사회 혁명의 물결이 뒤덮고 이었고 그렇지 않은 곳 – 이를테면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 – 에서도 금본위제에 기반한 세계적 자유 무역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이러한 냉전 상황에서 “자유 진영”을 재건할 임무를 떠맡은 미국은 그러한 실정에 맞추어서 개방된 자유주의적 지구 정치 경제 질서를 최대한 일구어 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결코 국제 정치나 국제 경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공산화되지 않은 세계의 전 지역을 국내 국제 또 정치 경제 가릴 것 없이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그야말로 “지구적 차원의 변형(global transformation)”이었다.
먼저 “자유 진영”의 각국의 국내 경제는 더 이상 고전적인 자유 방임 시장 경제가 아닌, 노사정 합의에 기반한 국가 계획과 포드주의적 대량 생산에 근거하는 혼합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도록 권고 되었다. 이에 따라 통화체제도 금본위제가 아닌 각국 중앙 은행의 재량에 따르는 관리 통화체제로 바뀌었고, 케인즈주의에 바탕을 둔 국가의 경제 개입이 정당화되었다. 국가의 성격도 대폭 변화한다. 선거권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노동 계급 정당이 자본 계급과 함께 참여하는 조합주의적 국가가 나타나서, 다방면에서의 사회 복지 정책과 재정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내의 정치 및 경제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제 경제 체제의 재편에도 착수해야 했다. 전후 자유 무역을 장려하기 위한 장치인 GATT는 사실상 세계 시장의 횡포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농업이나 개발 도상국의 유치 산업 등에 대한 보호 관세를 허락하는 각종의 장치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특히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체제는 각국에게 그러한 방향으로 국내 정치 경제 체제가 변형되는 데에 필수적인 “통화 주권”을 보장해주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달러를 금의 가치에 고정한 후 각국의 통화를 다시 달러에 고정시킨 고정 환율제이므로 19세기 식의 금본위제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제도의 핵심은 첫째 IMF나 세계 은행 등을 통해 단기적 및 구조적인 국제 수지 적자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게 달러를 대부하여 금본위제 식의 심각한 유동성 압박을 겪지 않는 것이었고 둘째 각국의 금융 재정 정책의 재량을 위협할만한 국제적인 자본 이동을 규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제 정치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19세기 유럽 국가 간에 남아 있었던 세력 균형 체제는 양차 대전과 식민지의 해방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그 대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군사적으로나 정치 경제적으로나 비교할 수 없는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미국이 등장하게 된다. 이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생 국가들 모두가 ‘주권 국가’로 인정을 받아 각종 국제 기구와 회의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대접받게 된다. 즉, 압도적인 권력의 우위를 점한 미국은 냉전이라는 현실에서 자본주의 진영의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주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면서 최대한 자유주의 질서를 가미하는 방식으로 전후 지구 정치 경제 질서를 짜나갔던 셈이다.
***4.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
이렇게 나름대로의 “수정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다시 깔끔하게 국내 국제 정치 경제 질서가 구획되었던 시대는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의 소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에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는, 그 네 가지 영역의 관계가 다시 근본적으로 재구조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각국의 국내 경제는 국가의 각종 개입에서 풀려나와 “지구화”라는 이름 아래에 세계 시장으로 더욱 강력하게 통합되는, 어찌보면 19세기의 세계 경제를 모델로 삼는 듯한 방향으로 바꾸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대처와 레이건의 보수주의적 정책을 효시로 하여 이러한 방향으로의 “자유화”를 선도한 영국과 미국 세력은 이후 80년대 외채 위기의 덫에 걸린 제 3세계 국가 그리고 공산주의 몰락 후의 동유럽 지역에 똑같은 형태의 국내 경제 개조를 강제하여왔다.
경제가 이렇게 ‘탈정치화’ 됨에 따라 국가의 성격도 다시 19세기의 자유주의적 입헌주의 국가와 비슷한 방향으로 바뀌도록 압력을 받는다. 즉 사회 민주주의, 케인즈적 재정 금융 정책, 조합주의 등의 경향은 모두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웬만한 경제 영역은 다 “사유화”의 방법으로 푸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주장이 풍미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19세기 입헌주의 국가처럼 다시 경제 주권이 무력화하게 되면서 소위 “주권 국가의 종말”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게 된다.
국제 경제의 룰은 이러한 변화를 강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미 70년대 초에 브레튼 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난 후 폭발적으로 팽창한 국제적인 자본 이동은 각국 정부로 하여금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개조 이외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게 되었고, IMF와 세계 은행은 엉뚱하게도 외채 위기 국가에 파견되어 국제 금융 자본의 자금 회수를 보장하는 집달리(執達吏)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노동, 자본, 자연 환경 모든 것의 완전한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WTO를 필두로 한 각종 국제 기구가 생겨나왔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80년대 이후의 국제 정치에서 나타난 미국 권력의 비대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레이건 시대 한편으로는 외채 위기와 군사적 개입을 무기로 하여 제 3세계 지역 전반에 걸친 미국의 지배력이 강화된 것은 물론, 일본의 자본 투자를 흡수하여 군비 지출을 폭발적으로 늘임으로서 소련과의 소위 ‘제 2 냉전(The Second Cold War)’를 시작하여 마침내 붕괴시키는 것에 성공하고 말았다. 그 이후 최근의 이라크 전쟁에 이르도록 우리가 목도해왔던 것은 미국이라는 일개 국가가 이제 거의 ‘제국(empire)’이 되도록 힘을 늘려온 상황이다.
***5. 자본의 축적과 지구 정치 경제의 변형**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네 가지 영역에서의 틀과 제도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한덩어리이어서 서로 떼어낼 경우 그 하나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게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 정치 경제의 구조가 이렇게 몇 번의 굵직한 변형을 겪게되는 메카니즘은 무엇일까?
질문의 규모가 이렇게 커지게 되면 사회 과학 이론보다는 역사 철학적인 관점이 그 답을 메우게 되기 쉽다. 자유주의적인 역사 철학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시장과 자유주의 정치 질서가 모든 무지와 방해를 극복하고 전 세계적으로 실현되어가는, 프란시스 푸꾸야마(Francis Fukuyama) 식으로 “역사의 종말”을 향해가는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또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들이 다 자본의 증식이 진행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소멸해가는 역사의 섭리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천학비재의 필자는 그러한 거시적 담론들을 비판하고 해체할 능력도 없지만, 욕구도 별로 느끼지를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초월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그야말로 신의 섭리(Providence)쯤 되는 차원을 알아보아야 나의 생활에도 또 내 이웃들의 생활에도 별로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을 것 같지가 않아서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재구조화의 과정을 주도하고 또 거기에 가장 큰 이해를 갖는다고 보이는 “구체적인” 인간 집단들의 행태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훨씬 더 영양가 있는 일이 아닐까? 이 엄청난 규모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또 엄청난 규모의 권력의 재분배와 자본의 축적이 벌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냥 추상적인 “총자본”이라는 개념말고 그 구체적인 “지배적 자본” 집단의 행태에 대해 연구해보고, 거기에서 이 지구적 정치 경제의 구조 변화의 역동성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닛잔/비클러의 관점이기도 하다. 다음 회부터는 그러면 그 집단의 구체적인 행동 원칙과 그로 인해 90년대의 지구 정치 경제에 벌어진 주요 경향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보도록 하자.
***추기**
이 연재에서 훌륭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죠나단 닛잔(Jonathan Nitzan) 교수와 심숀 비클러(Shimshon Bichler)의 연구 성과로 돌려야 한다. 필자는 단지 그들의 연구를 소개하는 역할만 하고 있으며, 본문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와 분석은 모두 그 두 사람의 성과물이다. 물론 소개하는 과정에서의 실수와 착오는 모두 필자의 몫이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다음의 아카이브에서 원문으로 구해볼 수 있다.
http://www.bnarchives.net
참고할만한 닛잔, 비클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Bringing capital accumulation back in: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military contractors, oil companies and Middle East ‘energy conflicts’",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2(3), 1995.
Ch. 5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 in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Israel, (London: Pluto, 2002)
* 필자 홍기빈씨는 정치토론 사이트 '시대소리(www.sidaesori.com)'의 고정 필진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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