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아리고니 미 국방정보국(DIA) 동아시아국장은 12일 “주한미군 2사단은 ‘타격 부대’ 개념으로 매우 근본적으로 개편되고 어쩔 수 없이 미군 숫자의 축소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미관계협의회(공동의장 유재건, 제임스 릴리) 창립총회 비공개 토론회 발표문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의 변화가 이같은 재편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단체의 행사였고 사견을 전제한 것이긴 하지만, 미 행정부의 책임있는 당국자 중 한 사람인 그의 발언은 미국의 입장을 상당부분 방영하고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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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부대 개념으로 재편, 80년대 말 동아시아전략구상 모태”**
아리고니 국장은 “아직까지 한미 양국 간에 구체적인 감축 숫자가 논의되진 않았지만 주한미군의 감축은 군인의 수는 줄이면서도 억제능력은 더욱 증대되는 방향이 될 것” 이라며 “주한미군 2사단은 ‘타격 부대(striker brigade)’ 개념으로 눈에 띨 정도로 매우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한미군사동맹을 한반도 상황에 따라 만들어진 ‘특수한 경우’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의 종합적인 국방 태세에 맞게 재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미국의 계획은 한반도의 방위만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지역적.지구적 긴급상황에서 한반도에 있는 부대를 원활하게 이동.배치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리고니 국장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축소, 한반도 통일, 동북아 주변국과의 안보협력 필요성 등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를 특히 강조했다. 그가 주한미군 감축계획의 뿌리로 꼽은 것은 지난 80년대말 수립되고 90년 미 의회에 제출된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이었다.
EASI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 당시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현 국방부 부장관)에 의해 설명된 구상으로 한반도 방위는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역할을 주도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3단계에 걸쳐 최종적으로 1만~1만5천명 감축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미국은 92년 공군 2천명과 지상군 5천명을 감축했으나 93년 북한 핵문제가 터지면서 한국의 적극적인 반대로 감축을 중단한 바 있다. 그는 “현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감축이 이뤄질지 알 수 없다”면서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최근 제안은 EASI를 연상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은 독자적인 방위 능력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 있지만 미국이 제공한 군사력을 없애는 것이 가까운 시일 내에는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있다. 미국의 정보력이나 미사일 방어, 정밀유도무기에 대한 한국의 의존은 상당하다”면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리고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안보의 가치를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아니고 한미관계에서 보다 많은 결정권을 미국쪽에서 한국쪽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고 공언했었다”며 “이는 노대통령이 선거운동에서 외교와 안보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을 보여주지 않았고 한국의 국가이익을 강조했던 파퓰리스트였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그러나 노 대통령이 취임후 조각에서 안보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네티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전을 지지한 것은 선거운동때의 말을 재검토해 상당한 조정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권 행태’ 교체 추구”**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또한명의 미 행정부 인사인 존 메릴 미 국무부 정보국 동북아실장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메릴 실장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원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인식이며 미국은 북한 정권의 행태를 변화시켜 국제사회의 협조적인 일원이 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베이징 3자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했다는 ‘대담한 제안'의 내용도 확인해 줬다. 그는 “대담한 제안이란 대량살상무기, 미사일, 재래식 무기의 배치, 북한의 테러 지원국 포함, 인권, 인도주의적 문제 등 모든 분야의 우려사항에 대해 포괄적인 논의를 하자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종결한다면 미국은 소위 ‘대담한 제안’을 다시 한번 화제로 채택(taking up)할 것을 고려할 것이다. 북한은 핵프로그램을 포기한 후에야 그같은 이슈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고 말해 현 상황에서는 북한의 제안을 고려치 않고 있다는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에 대한 다음 단계의 조치에 대해 우방국, 동맹국들과 최고위급 수준에서 긴밀히 논의중이다”면서 “북핵문제의 완벽한 해결을 위해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는 남북간 상호 이슈를 다루는 수단으로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종결시키기 위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말해 한국이 남북대화를 대북 압력수단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했다.
메릴은 그러나 미국이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과 남북교류는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은 정치적 문제와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지 않는다”며 “핵개발 포기에 대한 보상은 없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이미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6만톤의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핵문제의 해결은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의 회원국 자격을 얻는 과정을 시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사스’ 치료하듯 해야”**
윌리엄 브라운 미 상무부 동아시아담당관은 “내부적으로 시스템이 병든 북한과 같은 나라와 상대하려면 사스(SARS) 같은 전염병을 치료하듯 해야 한다”며 “사스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려다 치료하는 사람도 사스에 걸릴 수 있는데 현재 한국은 북한때문에 감염 가능성이 극히 높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재 한국 정부는 북한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 “한국정부가 사기업과 함께 북한 김정일에게 수억달러를 건네줬다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때문에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불안해졌고 한국경제의 개혁의지까지 의심받게 됐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감군’과 ‘북한 정권의 행태 교체’를 언급한 이날 회의의 결과는 13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전달될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향후 정책 결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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