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정부가 반군과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해 대량살상을 자행했다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군사적 개입을 본격적으로 저울질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의 외교전문잡지인 <포린폴리시>가 중앙정보국(CIA)의 문서를 입수해 위와 같이 보도하면서 또 하나의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이 후세인의 화학무기 사용에 공모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지만, 미국 문서들과 당시 핵심 관료의 증언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시리아 사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케리 장관은 시리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됐으며, 아사드 정권이 증거를 없애고 있다고 비난했다. ⓒAP=연합뉴스 |
화학무기 사용 공모한 미국
당시 미국이 이라크에 제공한 군사정보에는 이란군의 이동 상황뿐만 아니라 병참 시설과 공군 및 방공망 등 상세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제공받은 후세인은 총공세에 앞서 겨자가스와 사린가스를 비롯한 화학무기를 대거 동원해 이란군을 공격했고, 이를 기점으로 전세는 이라크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화학무기 사용을 부인했었고, 이를 근거로 미국 역시 이라크의 화학무기를 방조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당시 주이라크 미국대사관의 무관으로 있었던 릭 프랑코나(Rick Francona) 전 공군 대령은 "이라크가 우리에게 신경가스를 사용할 계획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1984년 주요르단 미국대사관의 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부터 이라크가 이란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포린폴리시>가 입수한 CIA의 비밀해제문서에도 이와 같은 진술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전쟁 초기인 1983년부터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일례로 레이건 대통령의 최측근인 윌리엄 케이시(William J. Casey) CIA 국장은 이라크의 화학무기 제조공장의 위치, 이라크의 화학무기 장비 수입 등 이라크의 화학무기 대량 생산뿐만 아니라 이라크가 이란의 군인과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CIA 문서에는 이러한 내용도 있다. "만약 이라크가 대량의 겨자가스를 생산하거나 확보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이란군과 국경 인근에 있는 마을을 상대로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은 "이란의 인해전술에 중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고 이로 인해 이란은 인해전술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포린폴리시>는 "레이건 행정부는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화학무기 공격이 계속되는 것이 더 났다고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이란 전쟁에서 이라크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었다.
더구나 CIA는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이 발각되더라도 국제적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이란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 자체가 논쟁의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에도 국제적 파장은 크지 않았다는 전례에 따른 분석이었다.
CIA 문서에 따르면, 이란 역시 이를 알아채고 이라크와 미국을 유엔에 회부하기 위한 외교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983년 11월 CIA의 1급 비밀문서는 "이라크의 (화학무기) 공격이 계속되고 이란군이 이라크의 화학탄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계속됨에 따라, 이란 정부는 그러한 증거를 유엔에 제출하고 미국이 (이라크의) 국제법 위반에 공모하고 있다는 혐의를 부과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참고로 화학무기 사용은 1925년 제네바 협약에 따라 금지되었고, 1997년 화학무기금지협정(CWC)에서는 이들 무기의 사용뿐만 아니라 생산과 보유 자체를 금지시켰다.
레이건 "이란의 승리는 용납할 수 없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미국이 화학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후세인에게 군사지원을 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1986년 국방부가 이라크와의 군사정보 공유 프로그램을 제안하자, CIA와 국무부의 일부 관료들은 후세인을 "저주스러운 인물", 그의 측근들을 "폭력배"라고 부르면서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나 1987년 들어 전세가 이란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레이건 행정부는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이라크에 본격적으로 군사정보를 제공했다.
레이건 행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87년 말에 작성된 일급비밀 보고서 <바스라의 관문에서(At The Gates of Basrah)>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보고서는 이란이 88년 춘계 대공세를 통해 군사적 요충지인 바스라를 점령할 가능성이 높다며, 바스라가 이란의 수중에 들어가면 이라크군은 괴멸되고 이란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를 읽은 레이건은 프랑크 카를루치(Frank C. Carlucci) 국방장관에게 "이란의 승리는 용납할 수 없다"며 이라크를 적극 도우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미국의 상세한 군사정보 제공을 등에 업고 이라크는 대량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CIA 문서에 따르면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1980-88)에서 사용한 화학무기 가운데 3분의 2는 전쟁 막바지 18개월 동안 집중되었다. 이라크가 대규모의 공습과 지상군 투입에 앞서 대량의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전세를 지켜보던 미국 정부는 이란의 반격 가능성을 제거했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프랑코나는 밝혔다.
이라크가 격전지였던 파오 반도를 점령한 직후 프랑코나는 이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사린가스 해독제 주사기를 곳곳에서 발견하고는 이를 수거해 바그다드 미국대사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이라크가 대량의 사린가스와 이를 은폐하기 위한 연막탄을 사용했고, 이러한 공격은 성공적이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본국에 보고했다.
이란은 핵으로, 후세인은 죽음을
미국이 후세인의 화학무기 사용을 도운 것은 미국-이란 관계에도 두 가지 중대한 영향을 야기했다. 하나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핵무기가 있었다면 후세인이 미국을 등에 업고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또 하나는 이란의 반미 감정이 더욱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미 감정이 강한 이란의 핵문제는 오늘날 미국의 최대 딜레마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후세인의 운명이다. 사실상 미국과의 공모 하에 화학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했던 후세인은 결국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다'는 미국의 거짓 정보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동원해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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