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전 후원회장 이기명씨의 경기 용인시 땅을 지난해 8월 매입하기로 계약한 1차 매수인으로 밝혀진 부산 섬유업체 창신섬유 강금원(53) 회장이 문재인 민정수석과 송기인 신부 등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면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 여권 고위인사가 강금원 회장의 이같은 돌출행동의 이면에 노대통령 비서출신인 안희정씨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언론에 제기하면서, 자칫 '청와대내 권력투쟁'으로 비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가운데, 정권 출범 1백일째 되는 날 터져나온 청와대의 최대 악재다.
***"강씨는 노대통령의 숨은 스폰서"**
강씨는 이날 오후 부산의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작년 8월 노 대통령이 직접 도움을 청하며 매수를 권했다"면서 "당시 노 대통령이 '생수회사 장수천의 보증을 선 이기명씨의 땅이 경매로 헐값에 넘어가게 돼 이 땅을 사주면 이씨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제의해 사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의 이같은 기자회견은 전날 부산일보가 이같은 사실을 독점보도한 데 따른 해명 차원의 기자회견이었다.
강씨는 이날 지난해 8월 이씨와의 부동산 매매계약서와 같은해 9월 이씨에게 중도금으로 10억원을 보낸 송금표 등 관련 자료도 공개했다. 또 지난달 30일 용인땅 매매계약과 관련해 작성한 A4 용지 3장 분량의 해명서도 공개했다.
강씨 주장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8월29일 이씨의 경기 용인시 구성읍 청덕리 임야 2만여평을 28억5천만원에 사기로 계약을 한 뒤 5억원(계약금) 10억원(9월17일, 중도금) 4억원(잔금 13억5천만원 중 일부, 올 2월4일) 등 모두 19억원을 지급한 뒤 계약을 파기했다. 그는 "노 대통령 당선 뒤 그의 부탁으로 구입한 땅을 갖고 있으면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 같아 파기했다"고 해명했다. 또 땅을 산 대금에 대해서는 "부산 은행에서 대출받아 5억원을 수표로 보내주고 나머지 15억원은 이기명씨에게 계좌로 송금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부산 사하구에 종업원1백30명 규모의 공장을 가진 섬유업체인 창신섬유 회장이며, 2년전 충북 충주시에 있는 시그너스 골프장은 인수하고 중국 선양 염색 합작공장에 투자하는 등 부산지역의 유력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강씨는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7년전 당시 광안동에 있는 노 대통령집을 사기 위해 그의 집에 들렀다가 처음 만났고 그 뒤 친하게 지내게 됐다. (대통령) 취임 전엔 자주 만나고 수시로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부산 지역 정가에서는 "강씨가 노 대통령의 숨은 스폰서"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강씨는 이날 배포한 '존경하는 의원, 그리고 기자분들'이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부동산 계약 당시 및 중도금지급과 부채상환시 누가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리라 예상했느냐"면서 "모든 것은 인간적으로 아름답게 처리된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강금원씨, 문재인·송기인 원색적 비난**
문제는 강씨가 이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느닷없이"능력없는 사람이 정치에 참여해 대통령 일을 방해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문재인 수석은 물러나야 한다"고, 문수석에게 직격탄을 날리면서 비롯된다.
그는 문수석에 멈추지 않고, 노 대통령의 정신적 사부로까지 불리는 부산지역의 송기인 신부에 대해서도 "종교인이 무슨 정치에 관여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기명 전 후원회장에 대해서도 "평소 신뢰하고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왜 말썽의 소지가 있는 땅을 팔려고 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문 수석은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 강씨를 만나거나 전화한 적도 없는데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며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청와대가 처음부터 해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일이 커졌다는 데 대한 불만이 아니겠느냐"고 일축했다.
***"안희정씨 강씨 통해 청와대에 대한 섭섭함 표출"**
문제는 그러나 5일 중앙일보가 강금원씨의 문수석 비판의 배후에 노대통령 비서출신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더 커졌다.
5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강씨가 문 수석 등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여권 핵심관계자는 "강금원씨가 문재인 민정수석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문수석에 대한 안희정씨의 정치적 반격의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씨는 자신이 나라종금 사건수사에서 곤욕을 치룬 것이 문수석이 원칙을 고수한 결과라고 보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나라종금 수사 과정에서 안희정씨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조차 허탈감과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며 "안씨가 이제 와서 현정부가 공격받고 있는 용인땅 거래행위까지 파워게임으로 활용하려는 것같은 기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또 지난해 8월을 전후해 지난 2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기명씨의 용인 땅 거래 과정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가 개입했다는 주장도 보도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안희정, 이기명씨와 소명산업개발의 윤동혁 회장은 노대통령의 ㈜장수천 빚을 갚기 위해 이씨의 땅을 사줄 '호의적 거래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자주 만나 논의했으며 용인 땅의 1, 2차 거래에 안씨가 개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산의 섬유업체인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이 1차로 매매계약을 했고, 이 계약이 파기된 뒤 소명산업개발과 2차로 매매계약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윤동혁씨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나는 이기명씨와 안 지 17년이나 됐지만' 안희정씨는 신문을 통해 알았을 정도로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고 중앙일보는 보도했다.
***'명백한 진상규명' 불가피**
이같은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안희정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과 강금원씨의 설명이 앞뒤가 맞는데 왜 나를 끌어들여 싸움을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파워게임' 보도와 관련해서는 "도대체 그렇게 말했다는 여권 핵심관계자가 누구냐. 나한테 알려달라. 이런 보도는 나는 물론이고 내가 존경하는 선배인 문 수석에 대한 중대한 명예훼손이다"며 "언론중재위를 통해 정정보도를 청구하고 해당 신문사로부터 보상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희정씨가 강력부인함에 따라 이제 상황은 누가 언론에 파워게임설을 흘렸는지, 왜 강금원씨는 문재인-송기인 신부 등을 비난하고 나섰는지에 대한 '명백한 진상규명'이 불가피해졌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가뜩이나 어수선한 정국은 더없는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상이 어떻든간에 노대통령의 스폰서역을 맡았던 강금원씨가 문재인 수석-송기인 신부 등을 기자회견에서 공개비난하고, 이같은 기자회견의 배경을 둘러싸고 암투설이 나도는 상황은 가뜩이나 혼란스런 시국을 한층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개탄스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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