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극 마카로니 웨스턴은 낭만적인 분위기로 선악의 대결구도를 그린 정통 서부극과는 다르다. <황야의 무법자>란 영화로 잘 알려진 마카로니 웨스턴은 서부세계 총잡이들의 격전장을 비정하지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묘사했다.
28일(현지시간) 유럽축구의 한 시즌을 마감하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격돌하는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와 AC 밀란의 대결을 놓고 '마카로니웨스턴(스파게티웨스턴)'이란 이름이 붙었다. 두 팀의 감독 마르첼로 리피와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직을 계속 바꾸며 마치 비정한 '마카로니웨스턴'의 주인공과 같은 대결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리피와 안첼로티의 러시안 룰렛**
마르첼로 리피는 1990년대 중반 유벤투스 전성기를 이끌었다. 리피는 96~98년 팀을 3년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안착시키는 등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97,9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잇달아 준우승에 머무르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유벤투스는 당시 파르마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안첼로티 감독을 영입했다.
유벤투스에 부임한 안첼로티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고전했고 세리에 A에서도 2년동안 2위에 머물렀다. '세계최고의 미드필드사령관' 지단의 본격적인 활약에 한껏 높아졌던 팬들의 큰 기대는 일순간에 무너졌다. 이탈리아 언론은 "안첼로티가 리피보다 못하다"는 가혹한 평가를 내려 안첼로티의 입지를 좁게 했다.
안첼로티는 유벤투스와 결별하고 AC 밀란으로 옮겼다. 아주리군단의 미드필더로서 활약했으며 AC 밀란의 스타로서 밀란팬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안첼로티는 구단주 베를루스코니의 요청에 의해 AC 밀란의 지휘봉을 잡았다.
한편 안첼로티에게 밀려난 리피는 인터밀란에 새둥지를 틀어 철치부심하고 있던 와중에 다시한번 유벤투스의 부름을 받게됐다. 리피는 스타군단 유벤투스를 물샐틈 없는 수비, 터프한 미드필드, 전광석화 같은 역습의 팀으로 조련해 이탈리아 정상에 서게했다.
***선수, 감독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 꿈꾸는 안첼로티**
만년 2인자로 낙인찍힌 카를로 안첼로티(AC 밀란)감독으로서는 유벤투스와의 결승전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89, 90년 '오렌지 삼총사(반 바스텐, 훌리트, 레이카르트)'와 더불어 AC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안첼로티는 28일 경기에서 승리하면 선수와 감독으로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차지하는 네 번째 선수로 기록된다. 지금까지 유럽축구 정상의 자리에 감독과 선수로 섰던 사람은 요한 크루이프, 미구엘 무뇨스, 지오바니 트라파토니 세 명 뿐이다.
이번 시즌 쉐브첸코, 히바우두, 루이 코스타, 필립포 인자기를 축으로 했던 안첼로티의 '新 밀란 프로젝트'는 구단과의 마찰로 삐걱거렸다. '화려한 축구'를 표방하는 베를루스코니 구단주는 하프타임 때 갈리아니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교체선수를 제안할 만큼 월권행위를 서슴지 않았으며 갈리아니 부사장과 안첼로티는 선수기용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구단의 이미지와 품격을 생각하는 갈리아니와 실리추구형인 안첼로티가 정면으로 대립한 것이다. 하지만 안첼로티는 이 위기를 극복했고 AC 밀란은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결승전 장소인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 도착한 안첼로티 감독은 "휴식을 통해 계속되는 경기로 지쳐있던 선수들의 컨디션이 많이 회복됐다. 다만 부상당한 코스타쿠르타와 골키퍼 디다의 출전여부가 관건이다"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안첼로티를 '만년 2인자'로 치부하며 비난하는 가운데 파르마와 유벤투스에서 안첼로티의 지도를 받았던 수비수 릴리앙 튀랑은 "안첼로티 감독을 패배자로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유벤투스 전성기의 도래를 보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로부터 AC 밀란에 비해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유벤투스의 리피 감독은 "내가 유벤투스에 있을 때 두 번이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고배를 마셔 단 한번밖에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리피는 경고누적으로 결승전에 결장하는 미드필더 파벨 네드베드의 공백이 걱정거리다. 하지만 리피는 "축구경기에는 수백가지 옵션이 있지만 나는 내 전술운용에 대한 믿음이 있다"며 결승전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리피의 절친한 친구이자 맨체스터 유타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리피를 '인상좋은 놈'으로 표현했으며 이탈리아 언론은 한 술 더떠 '불임인 여성도 임신시킬 수 있는 정력가'라는 말까지 했다. 그 만큼 리피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하는 자세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항상 미친 듯이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전술을 구상하는 리피는 "유벤투스를 떠난 후 인터밀란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은 많았지만 그때 나는 거만했던 과거를 떨쳐내고 성숙한 감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며 "이번 시즌 유벤투스 전성기의 도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와 죽은 아녤리 FIAT 회장의 대결로도 압축될 수 있는 AC 밀란과 유벤투스의 경기결과는 그동안 악연을 겪었던 안첼로티와 리피 감독의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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