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적 위기상황을 일으킨다고 판단되는 파업과 집단행동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민간의 인력과 장비 징발, 업무복귀 명령 등을 할 수 있는 '국가위기대응특별법' 제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같은 특별법은 지난 47년 미국에서 제정돼 지난해 10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항만 파업을 중단시키는 근거가 됐던 '태프트-하틀리 법안'을 본보기로 삼은 것으로, 미국안에서도 재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법이다.
정부의 이같은 특별법 추진은 "참여정부가 천명했던 노사관계 정책과 배치될 뿐 아니라 노동권 침해 및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며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즉각 반발하고 나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盧 "사회경제적 갈등에 대한 국가적 매뉴얼 마련"**
정부는 20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 집단행동의 원인과 향후 과제' 보고 과정에서 이같은 내용이 논의됐다.
정부 국무조정실이 작성한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 시스템 구축'이라는 보고서에는 국가경제와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중대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가 차원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할 수 있는 특별법을 연내에 제정할 것을 주장했다. 또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에서 파업이 발생할 경우 국가가 '업무복귀명령권'을 강제 발동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안보적 상황 위기, 재해재난관련 비상사태 등에 대해서는 법체계가 잘 이뤄졌으나, 사회경제적 갈등에 대한 국가적 매뉴얼이 없다"며 "이번에는 이런 것을 반드시 만들어야 하고, 단기대응책도 마련해 취합 준비 되는대로 국무회의에서 다시 거론하라"고 지시했다.
***노동계 "전쟁 때나 있을 법한 국민동원령"**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21일 성명을 발표 정부의 특별법이 미국의 '태프트-하틀리법'을 원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부시 대통령과 독대해서 배운 게 이것이냐는 탄식이 나온다"면서 "이 법은 '빨갱이 사냥'으로 유명한 매카시즘의 산물이며,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발동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도 최근 20년간 발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태프트-하틀리법'은 파업으로 국가경제 또는 안보를 위협할 경우 대통령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노동자들의 직장복귀를 명령할 수 있으며 80일간의 냉각기간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서부해안 항만 파업에 대해 이 법에 근거해 노동자들에게 조업재개를 명령했다.
민주노총은 "이미 우리나라에는 미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간산업 파업금지 법규와 노동부 장관에 파업 중지 명령권이 있다"면서 "노동장관에게 파업중지명령권이 있는 마당에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는 법안을 만드는 것은 옥상 옥이요, 법제정의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또 "국가위기관리특별법은 전쟁 때나 있을 법한 국민동원령과 같은 업무복귀명령권을 정부가 갖겠다는 것으로 정부가 노동자에게 강제근로를 시키겠다는 것"이며 "이것은 업무방해죄와 함께 강제근로를 금지하고 있는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에서 '국가의 힘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 같아 유감"이라면서 "화물파업은 물류운송·비정규직과 관련된 역대정권의 실정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끝에 폭발한 것이고, 만약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법의 보호와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줘서 일반 노동자들처럼 정상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면 물류대란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성명을 발표 "국가위기대응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은 '참여정부'를 내걸고 있는 국정이념과도 배치되는 독재적 발상"이라며 "국민과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위헌소지마저 있는 특별법 제정 발상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만약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국가위기관리특별법'제정을 강행할 경우 이의 저지를 위해 노동·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강력한 대정부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盧 과거권력자 통치행위에 빠져드는 거냐"**
노동계뿐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21일 성명을 통해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가 남용돼 왔다며 이를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해왔다"면서 "그간 대통령이 공언해온 원칙의 심각한 후퇴일 뿐아니라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장한 헌법과 관련 노동법을 침해하는 초법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대한민국을 '토론공화국'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해온 노무현 정부가 즉자적이고 편의적으로 공권력을 발동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노 대통령이 너무 빨리 '국가기강', '국가위기', '효율'의 논리를 앞세워 반대와 비판, 갈등을 제압해온 과거 권력자들의 통치행태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