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이래 일관되게 유지돼온 남북관계에서의 '정경분리'는 우리의 전략적 원칙이다. 북핵 협상과 남북 교류의 병행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과정에서 한국의 교량자적 역할과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 열쇠다. 남북교류를 북핵 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협상력과 발언권을 완전히 상실했던 94년 문민정부의 경험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혹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좋다는 뜻인가."
민주당 김근태 김영환 심재권 김성호 김경천 정범구 이창복(위임), 한나라당 서상섭 안영근 의원 등 '반전평화의원 모임' 소속 의원 9명은 19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활동과 관련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과 국민의 정부 이후 일관되게 추진돼왔던 대북 포용정책으로부터 후퇴한 정부의 입장 변화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미정상회담, 베이징회담 의미 부정한 것"**
이들은 이날 여의도 모 호텔에서 오찬간담회를 가진 뒤 성명을 발표, "북한 핵문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대화와 협상이라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해결돼야 한다"며 "그러나 한미 정상은 북한에 추가적 조치를 검토한다는데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북한에 대한 봉쇄 또는 군사적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고, 더욱이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배제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충격과 혼란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미 정상의 합의내용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베이징 회담의 의미를 사실상 부정한 것이며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치부하는 일방주의 논리에 동조하고 만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외교적 노력은 베이징 회담을 통해 확인된 북한의 포괄적 관계개선 제의에 대해 미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이 긍정적이고 전향적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남북관계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균형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면서 "'북한을 믿을 만한 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건설적인 한미관계와는 상관없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부담만을 안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근태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찬숙입니다>에 출연, "국민의 정부에서 서해교전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금강산 관광은 지속됐다. 당시 국민적 감정은 반대했으나, 금강산 관광의 지속으로 남북교류협력이 지속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북한과 미국이 대화가 없었을 때, 상호간 의견을 전달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었고, 이게 남북간 믿음이었다"며 '추가적 조치' 합의에 대해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우리가 미국의 의견을 존중하고 고려한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 문제는 미국 부시 행정부 또한 우리 의견을 주요하게 고려해야한다. 그래야 동맹이다. 동맹이 파탄난다면 우리도 어려움에 처하겠지만, 미국도 세계인과 미국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대표 "추가 조치 합의는 당연"**
반면에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이날 당사에서 열린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한미관계의 중요성과 북한 핵문제의 새로운 전개 양상 등을 감안한 적절한 합의"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북한이 핵 보유를 시인했고 폐연료봉 재처리 의사를 내보냈는 데도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반응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추가적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는 합의는 당연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반전평화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우리의 입장**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국민의 정부 이후 일관되게 추진되어 왔던 대북 포용정책으로부터 후퇴한 우리 정부의 입장변화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의 뜻을 표한다.
우리는 먼저 남북이 한반도에서 어떠한 핵무기도 개발되거나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합의했던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지지하며,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에 단연코 반대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는 자위의 수단이 되기보다는 한국민을 비롯한 세계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주변국의 군비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킬 뿐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 중단 및 폐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가시적인 조처를 취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군사적 해결시도는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민의 생존은 물론 동북아와 세계 경제에 재앙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대화와 협상이라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미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북한에 대한 '봉쇄' 또는 '군사적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 되고 말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배제를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혼란을 주고 있다.
한미 정상이 지목한 '한반도에서의 위협 증대'란 북한의 핵 보유 또는 핵재처리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베이징 3자회담을 '유용한'(useful) 것으로 평가한 이유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베이징 회담을 통해 북한이 요구한 것은 아직은 '핵 보유' 자체가 아니라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포괄적인 협상의 지렛대로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민들은 이러한 점에서 베이징 회담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한미 정상의 합의내용은 결국 베이징 회담의 의미를 사실상 부정하는 것이며,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치부하는 일방주의 논리에 동조하고 만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만약 이러한 결정이 북한으로 하여금 모험주의의 '벼랑끝'에 더 깊이 매달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북핵 문제와 연계시키는 데 동의한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에 심각한 우려를 느낀다. 국민의 정부이래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남북관계에서의 '정경분리'는 우리의 전략적 원칙이다. 남북교류를 정치·군사적 현안과 분리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안정과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차례의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은 지속되었다. 그럼으로써 남북관계가 결정적으로 손상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핵협상과 남북교류의 병행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정에서 한국의 교량자적 역할과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 열쇠이다. 남북교류를 북핵 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협상력과 발언권을 완전히 상실했던 94년 문민정부의 경험이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혹시 그 때로 되돌아가도 좋다는 뜻인가.
우리는 남북관계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균형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북대화는 북한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개혁과 개방의 길을 갈 수밖에 없고, 또 어느 정도 그것을 모색하고 있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종국적으로는 북한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만드는 과정이 지금 우리의 과제이다. '북한을 믿을만한 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발언은 건설적인 한미관계와는 상관없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부담만을 안길 수 있다.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예정대로 평양에서 개최되는 것을 환영한다. 대화와 교류를 통한 남북사이의 신뢰와 협력은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거나 포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전쟁 이후 부시 행정부내의 강경한 세력들이 일방주의를 더욱 밀고 나가고 있는 사실에 우려를 표한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표적공격 검토, 이른바 불량국가들을 겨냥한 소형 핵무기 개발 등 외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위험천만한 소식들은 한국민의 생존은 물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무모한 시도로서 결코 동의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가능한 외교적 노력을 다 소진한 다음에나 군사적 옵션은 검토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우리는 외교적·평화적 노력을 혼신을 다해 추진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외교적 노력은 베이징 회담을 통해 확인된 북한의 포괄적 관계개선 제의에 대해 미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이 긍정적이고 전향적으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평화번영정책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고 촉구한다.
2003년 5월 19일
반전·평화 의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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