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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나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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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나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한신, 동네 부랑아 가랑이 밑을 기었다" 해명하기도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5·18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아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해 한-미정상회담후 '보수화론'과'호남소외론'을 진화하기 위해 애썼다.

***"내부분열로 시간과 국력 낭비해선 안돼"**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한총련의 저지시위로 20분간 늦게 광주 국립 5.18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참여정부는 5.18 광주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 개혁과 통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며 "참여정부의 국정목표인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실현함으로써 광주 민주화운동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킬 것"이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 우리 앞에는 수많은 개혁과제들이 있어 내부 분열로 시간과 국력을 낭비해서는 희망이 없다"면서 "대립과 투쟁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집중과 통제에서 분권과 자율로, 소외와 차별에서 참여와 공존으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기념식 직후 전남대에서 지역인사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참여정부가 잊지 않고 꼭 해야할 것은 분열과 불신, 대립하고 있는 분열의 잠재를 극복하고 국민이 하나되는 통합"이라며 "광주의 역량이 결실을 보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간담회도 참석자들의 차량이 시위대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노 대통령이 한시간 이상이나 기다리는 일이 벌어졌다. 간담회는 참석 예정자 70명 중 40명만 나온 가운데 진행됐다.

***"노무현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전남대에서 가진 특강에서는 특히 이번 방미기간에 노대통령의 대미관, 대북관이 급격히 변한 게 아니냐는 한 학생의 질문을 받자 적극 해명했다.

노대통령은 "노무현이 변한 것 같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나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면서 "재야 민주화 투쟁시는 오로지 문제를 제기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비판했고 초선의원때도 비슷했다. 그러나 중진 때는 대안을 생각하고 대안을 만들어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려 했고, 대통령이 돼보니 시시각각 결정하는 자리라서 역시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 동등한 한미관계나 소파 개정 등을 얘기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 생각해보니 한미관계가 사사건건 충돌하고 갈등이 생기면 북핵문제를 푸는 데 많은 어려움이 닥치고,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이 올 것 같았다"고 말해 대북노선 변화 과정에 외압이 상당한 작용이 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한미관계가 조정이 안돼 미국이 반한 감정을 갖거나 그와 비슷한 분위기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거론되면 대통령과 국민들사이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미국이 두렵다는 게 아니고, 주한민군 얘기만 나오면 합리적 대화가 어렵고 금방 불안감에 휩쓸려가는 (국내) 분위기와 한국국민이 먼저 두려웠다"고 속내를 털어놓아 국내 보수언론의 압박도 노선변경에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북핵문제와 관련, "미국이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무력수단을 택하지 않도록 막는 게 1차목표여서 그랬던 것이었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해명했다.

***"한신, 동네 부랑아 가랑이 밑을 기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입장변화를 역사적 비유를 들어 해명하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중세 교리가 천동설이었을 때 브루노라는 사람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지동설을 주장하다 화형 당했지만, 갈릴레이는 지동설 신봉론자였지만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했다"면서 "대통령이 되기 전엔 브루노쪽을 좀더 좋아하는 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개 다 의미가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병자호란때 주전.주화논쟁을 거론, "최명길과 김상헌도 우리 역사에서 반복되는 논쟁이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엎드려 세수하지 않았다고 하고, 한신장군은 어렸을 때 동네 부랑아에게 고개 숙이고 가랑이 밑을 기었다고 한다"며 "두개는 모순되면서도 다 삶의 본보기로 되새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비유와 관련,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한신의 예를 들어 '동네 부랑아'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는 표현은 자칫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을 '동네 부랑아'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정상회담후 대통령이 해선 안되는 표현이 아니냐느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해 주목된다.

***호남민심 보듬기에 부심**

노대통령은 또 '호남차별론'을 의식한 듯,"김영삼 정부 때는 대구 경북 민심이 등을 돌려 정치적 입지가 어려웠고, 김대중 정부 때는 영남인들이 마음을 열지 않아 정책 수행이 어려웠다"며 "나도 정부를 인수하고 나서 보니 그때의 문제가 나타나 당혹해하고 있다"면서 호남민심 보듬기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또 "부산에서 구속된 학생들을 변론하면서 처음으로 민주화운동에 한 다리를 걸치게 됐다"며 "이들에게 왜 잡혀왔냐고 물었더니 광주학살의 진상을 부산시민에게 전파하려 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호남에 대한 자신의 친근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부터 광주는 '우리'의 문제가 됏고 우리는 87년 6월항쟁때 '임을 위한 행진곡' '5월의 노래' '광주 출정가' 등을 불렀고 나도 제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나 10여곡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2002년 광주 민주당 경선에서 광주전남의 많은 시민들이 신뢰하면서 1위를 만들어준 마음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또 최근 동교동계에 대한 잇따른 사법처리를 의식한듯, "전 정부에서 일하던 사람을 조사해 잡아넣고, 청와대가 나서서 사정이라고 해서 공직자 기강을 잡느라고 골프 (못치게 하는) 얘기가 나오고 하는데 외국에서 그것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신정권 초기 증후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정치인이 조사받는 것을 저는 바라지 않았다"며 나라종금 사건에 대한 김홍일 의원 소환설 등이 검찰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수사임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다시 지역주의 때문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며 "90년 (3당 합당) 이후 정치적 격변에서 마음에 담아뒀던 화해와 통합, 이 목표는 결코 내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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