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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과 한반도,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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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라크 전쟁과 한반도, 우리의 선택은

<전문가 대담> 재미 언론인 김민웅 목사

김민웅 목사는 미국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명확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미국에 의한 소위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 전략이 운위되던 때 ‘그런 전략은 성공한 역사가 없고 파괴적인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고 잘라 말해 더 이상의 사태 진전을 막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미 국방부에 의해 제기됐다는 북폭론에 대해서도 김 목사는 ‘그럴리 없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지 말고 “북폭의 ‘ㅂ’도 못 꺼내게 만들어야 한다”며 유포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라크 전쟁에서도 나타났듯, 미국이 한번 전쟁 논리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사진: 김민웅1>

지난 7일 오전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김 목사는 이번 이라크 전쟁을 “유럽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미국 헤게모니를 고수하기 위한 전쟁”으로 규정, “군사적으로는 일단 성공”이라고 평했다. 그는 그러나 시아파 문제 등 이라크 내부의 역동성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의 장기화, 중동에 뿌리 깊은 반미 감정등이 중동을 불안정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의 불안정은 그곳을 다스려야 하는 미국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온다. 김 목사는 그같은 부담이 미국 내부에서의 불만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의 앞날도 순탄치 않아 ‘제국의 최고 절정기는 곧 쇠락기의 시작’이라는 원리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쟁이 끝났어도 중동의 불안은 계속되고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앞날도 안개속에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김민웅 목사가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다음은 대담 기록 전문. 편집자

***“이라크 전쟁의 보다 깊은 목적은 유럽 동맹 견제”**

프레시안 : 이라크 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이라크-알카에다 연계, 대량살상무기 등 미국이 내세운 전쟁 명분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인이 알고 있다. 이번 전쟁에 대해 세계 체제론자 월러스틴의 경우, ‘새로운 세계 무질서의 시대’라고 말했고, 또 ‘(미국에 의한) 일방적 전쟁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선 미국이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 이라크를 목표로 택한 이유를 무엇으로 봐야 하는가?

김민웅 : 전쟁 발생의 구조적인 필연성과 관련된 질문일 텐데,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적 해석이 유효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동안 미국의 자본주의체제가 신자유주의라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런데 클린턴 말기, 신자유주의는 ‘제한 없는 자본시장 육성’에 몰두한 나머지 내부적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투기성 자본으로 인한 혼란을 야기했고, 외부적으로는 '반세계화 시위' 등세계 전역에서 상당한 저항을 받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전반적으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도전받게 됐고, 미국 경제도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처했었다. 이것을 풀어갈 방법으로 미국은 19세기말 이래부터 연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휘했던 방식 즉, 체제 외적인 해법을 지향하는 “함포 외교(gunboat diplomacy)” 위주의 제국주의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군사경제를 확대하면서 그걸 기반으로 지구적 규모의 헤게모니를 재정비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난감했고, 원하는 결과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불확실성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진행되었던 아프간전쟁을 통해서 이미 연습전을 치른 상태에 도달하게 된 미국은, 이라크 침략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 일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가지면서 상황을 변화시켜 나갔다. 즉, 위기에 처한 헤게모니를 수세적으로가 아니라 공세적으로 풀겠다는 전략이 현실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제공격전략은 2단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이제는 보유 의지와 의도만 있으면 공격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발견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전쟁의 정당성 논리가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량살상 무기 보유 의도와 의지만 있다 하더라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논리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는 전통적인 공수(攻守)개념을 현대적 전략의 개념으로 만들면서 소위 ‘선제 공격론’이 뼈대를 갖추게 된 셈이다.

<사진: 김민웅2>

이라크가 공격대상이 된 중요한 1차적인 이유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분명해진 원유 장악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유럽의 동맹 체제를 미국의 패권체제 하에 장악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는 방식은 유럽을 견제하는 것보다 긴급성이 현재로서는 떨어지는 사안이다.)

프레시안 : 원유 장악은 성취됐고,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통해 동유럽부터 파키스탄까지 미국의 군사력이 확장됐다. 냉전 때와 비교해보면, 당시는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소련을 봉쇄한다는 전략이었는데, 이제는 동유럽과 파키스탄에 군사력을 집중시켰다. 그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나.

김민웅 : 과거 구 유럽의 경우, 대륙 정책에 있어 관건적인 전략은 ‘중부유럽을 장악하는 자가 유럽 전체를 장악한다’는 전략개념이었다. 비잔틴과 영국에 이르는 유럽의 동서 구역의 한계 내에서 유용했던 지정학적 관점이었는데, 이것이 지구적 차원으로 발전하면 ‘중동지역을 장악하는 자는 세계를 장악한다’가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세기 말 오스만 터키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유럽 열강의 각축이 점점 치열해진다. 이 각축의 강도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우 높아지게 되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유럽은 중동에 원유가 그만큼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중동지역을 장악하는 것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당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러시아로서는 지정학적 차원에서 보면 중동지역을 주변 근거지로 삼고 다다넬즈 해협 쪽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 절박했다. 제1차 대전의 발발과 관련되는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가는 이슬람권에 대한 방파제로서 중요한 기능을 했는데, 이슬람권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러시아계 슬라브의 움직임에 대한 견제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오스만 터키지역으로 이동하는 경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중부유럽을 포함한 서구의 신경을 민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은 그 예였다. 제국 열강들이 중동지역에 대한 패권을 강화하는 것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 일이었다. 중동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지역을 장악하는 것은 그래서 유럽정치를 좌우하고 유럽의 산업 능력을 장악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1차 걸프전쟁이 발발하던 당시, 소련이 붕괴되면서 나토체제에서 중요한 전략적 개념이 유럽국가들에 의해 제기됐다. ‘신속배치군(rapid deployment forces)’ 개념의 독자적인 유럽 방위군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패권 하에 있지 않는 유럽연합군 창설을 뜻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1기 부시정권은 상당히 당황했고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심한 미국은 걸프전 개전을 통해 독일, 프랑스, 영국을 끌어들이면서 이들을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 하에 잔류시키는 전략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번 전쟁의 성격도 그런 측면을 가지고 있다.

<사진: 시라크와 슈뢰더>

최근 독일, 프랑스에 룩셈브르크까지 가세해서 유럽 독자방위군을 계속 제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10여년전의 유럽 독자 방위군 창설 구상의 재판이다. 이것이 얼마나 관철될 것인가는 두고 봐야겠지만, 유럽연합은 지난 10년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견고해졌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 ‘주니어 파트너’였던 유럽이 대등한 파트너가 되는 과정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서구 동맹체제’란 큰 틀 안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을 좌우할 물질적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중동을 어떤 방식으로 장악하느냐에 따라 세계의 지정학적 판도가 달라진다고 봤다. 따라서 원유 장악이라는 1차적인 목표를 넘어서서 세계 전체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번 이라크 침략전쟁이 영-미 동맹과 프랑스의 전쟁이었다고까지 얘기하는데, 19세기 이후부터 전개됐던 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에서 보면 이는 일면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전쟁은 미국의 내부적인 문제와 세계 패권체제의 동요를 어떻게 정리하고 단속할 것이냐,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유럽 연합을 어떻게 견제할 것이냐에 대한 해법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에 대한 견제는 현재 미국에게 다급하고도 결정적인 목표는 아니다. 중국은 유럽연합처럼 날카로운 방식으로 미국에 도전해오고 있지는 않다. 후진타오 체제로 넘어가면서 중국은 미국과 어느 정도 연대하고 협조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의 지구적 패권에 대놓고 도전하고 있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후자가 더 위협적인 것이다. 사담 후세인 체제가 미국에 도전해왔는가? 그렇지 않다. 도리어 후세인은 유엔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미국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계속 확인해왔다. 알카에다 같은 근본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이슬람권의 자주적 회복을 주장하는 혁명적 세력을 빼놓고는 미국에 도전하겠다는 국가나 집단은 중동에 없다. 이라크를 고리로 중동과 유럽을 동시에 장악하려는 계산이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제국 유지비용’이 미국의 발목 잡을 수도**

프레시안 : 세계경제의 숨통이라고 할수 있는 원유가 물론 중요하지만, 중동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동유럽에 있는 군사력으로 유럽을 견제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과연 중동 지역을 미국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고 안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김민웅 : 바로 그 점이 문제다. 군사적으로는 일단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러시아, 중국, 독일, 프랑스 등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미국이) 낙관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일단 독일과 프랑스 등이 유럽 독자방위군을 계속 제안하고 있고,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함께 소위 ‘반전반미전선’을 형성했다. 미국에 대한 도전 요인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미국은 반격 당할 수 있는 형세다.

<사진: 시아파 집회>

반격에서 가장 중요한 힘은 이라크 내부와 중동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동 지역 전체에 걸쳐 심화된 반미 감정과 행동이 이라크 점령 과정에서 보다 첨예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쟁의 중요국면이 완료되는 과정에서 미국이 당황하게 된 것은, 미국 언론조차 인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미군의 해방군적 이미지에 대한 이라크 민중들의 정치적 수용이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간인에 대한 발포사건이 도처에서 빈발의 정도가 높아져가고 있고 이 사건들의 파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 원하고 있는 질서를 이라크에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는 상당히 미지수이고, 혹시 만든다 할지라도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에도 카불지역을 제외하고는 도처에서 군벌 세력과의 교전이 계속 되고 있지 않은가. 군벌 세력들은 19세기 이후부터 나타는 소위 ‘종족주의(tribalism)’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미국이 완전히 진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에 대강 2개월로 잡았던 미군 주둔 기간이 점차 늘어 이제는 ‘언제까지일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이라크의 정치적 관리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래도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라크에 대한 정치적 관리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소위 제국을 유지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중동지역의 패권 유지가 초기의 예상과 전혀 다른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제국의 힘이 절정기일 때 도리어 해체기가 시작된다고 하는 역사의 법칙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번 전쟁을 통해 세계적으로 정리가 된 것은, ‘미국이 군사적으로는 매우 강하다. 하지만 대단히 야만적인 국가다. 미국이 이끄는 세계는 암담하다. 이대로 갈 수는 없다. 거대한 미국에 대항한다는 것은 현재는 매우 어렵지만,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 나라들이 손을 잡고 함께 나간다면 사태가 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지구적으로 퍼지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제국 유지비용이 엄청나게 높아짐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현실을 보고 미국 내부에서 그에 대한 동조와 연대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될 경우 제국을 유지하는 동력이 점차적으로 소멸되지 않을까한다. 미국이 정해놓은 원칙과 기준이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대한 저항적 반발이 훨씬 더 강도 높게 전개될 것임을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중동 지역의 안정화는 가능한가**

프레시안 : 이라크를 중동지역의 확고한 군사 거점으로 만들고 에너지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안정적 친미정권’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신망을 얻는 ‘안정’에 무게를 두자면, 예를 들면 시아파나 원리주의 세력이 이끌어갈 수 있고, 찰라비 같은 망명인사를 내세울 경우 친미이기는 하되 미국이 원하는 안정은 기대하기 어럽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부시 행정부는 중동 전체의 친미화라는 큰 그림에 따라 팔레스타인을 2005년도에 독립국가로 만들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는데, 팔레스타인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김민웅 : 그게 딜레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발포어 선언과 오슬로협정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맥락이 있다. 발포어 선언은 영국의 1차대전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를 동시에 약속한 모순 때문에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오슬로협정은 발포어선언 이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정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단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싸움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태의 본질은 점령정책, 점령지의 문제다. 이스라엘은 점령국이고, 팔레스타인은 점령당하고 있는 피지배체제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의 점령과 식민정책을 포기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식민정책, 지배정책, 점령정책을 해체하고 팔레스타인을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나라로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점령상태를 종식시킬 의사가 전혀 없고, 점령상태를 종식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종식되더라도 유태인 정착촌을 확대해 기득권을 만들어놓고 있다. 정착촌 확대에 숨겨진 전략적 의도는 ‘정착촌의 안전을 위해 이스라엘의 군대가 주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점령정책이 종식된다 하더라도 유태인 정착촌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다면 군사적 지배를 끝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끊임없는 갈등과 폭력 사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대한 세계적인 합의라 할 수 있는 오슬로협정을 지키고 있지 않은 이스라엘의 책임을 명확히 거론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오슬로협정을 지키지 못하는 책임은 팔레스타인 내부에 있는 폭력집단에 있다. 이것이 폭력의 하부구조고 폭력의 상부구조는 아라파트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아라파트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내부에는 현재 미묘한 정치적 분열이 생겼다. 이스라엘의 지배정책에 다소 타협적인 세력일 경우에는 상대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팔레스타인 문제가 얼마나 제대로 풀릴지는 미지수다.

이스라엘 우파정권의 논리는 미국의 국가적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부시의 논리를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내부에 이스라엘을 겨냥하는 테러리스트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스라엘은 선제공격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도 이스라엘을 설득 못하고 또 설득 의지도 강하지 않다. 오히려 유태인들의 정치적 로비와 영향력이 미 정치권을 쥐고 흔든다. 즉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협적으로 푼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구조다.

독립국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제한을 둘 가능성이 높다. 오슬로협정 이후 아라파트 중심의 자치정부가 세워졌으나 이 자치정부란 것이 외교권, 독자적 군대, 징세권이 없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왕래도 어렵다. 자치정부는 재정을 이스라엘이 쥐고 있는 상태에서 구조적으로 빈혈이다. 이런 현실에서 타협적인 노선이 팔레스타인 내부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임 압바스 총리가 아주 조금씩 그렇게 유도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독자적인 주권국가 만들어진다 할지라도 친이스라엘적인 위성국, 보호령, 아니면 이스라엘의 요구인 ‘완충지대’밖에 될 수 없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그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여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모든 문제가 풀린다 할지라도 동 예루살렘 문제는 거의 풀기 어려울 것이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강온을 떠나 동 예루살람을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도를 만들겠다고 합의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또 강온을 떠나 대체로 불가 입장이다. 예루살렘의 동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갈등요인이다. 한편, 중동 지역에 퍼져있는 팔레스타인 소위 ‘난민’-이슬람권에서는 난민(refuge)으로 표현하지 않고, 유랑자나 망명자의 개념인 ‘exile'로 표현하고 있는데-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을 때 유태인 정착촌과 빚어질 마찰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복잡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장고한 세월과 복잡한 정치적 합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중동지역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준다면 미국에 대한 입장도 재고하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지만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다.

***미국의 소위 ‘복지 제국주의 정책’**

프레시안 : 이라크에 안정적 친미정권을 세운다거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푸는 등 정치적 안정을 만들어내는 게 어렵다면 미국으로서는 또 한번 군사모험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구전쟁’ 비슷하게 이란, 시리아 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노암 촘스키는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들 들기도 한다. 그렇게 볼 때 내년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이 아주 손쉬운 대상을 골라서 군사모험을 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김민웅 : 그렇다. 한국의 경우 세계정세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97년 이후 굉장히 높아졌다. 그전에는 우리 내부에 문제에 집중해 있다가 금융위기를 겪고 5~6년이 흐르면서 일어난 변화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의 정책, 세계의 흐름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전쟁행위에 대한 관심의 깊이와 폭이 매우 달라졌다.

그러나 사실 미국의 현재 모습은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고 부시정권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전쟁행위는 끝없이 반복돼 왔고 그 패턴도 유사했다. 지난 1세기동안 꾸준히 이어져온 것이다. 차이는 과거와는 달리 전 지구적인 제국의 위상을 갖고 있는 미국이 영향력이 모두에게 강하게 미친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쟁정책은 19세기 말부터 부단히 확대됐다. 일례로, 미국은 1898년 쿠바의 반 스페인 항쟁세력을 지원하면서 스페인과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을 하기 전, 미국이 파견한 전함 메인호가 아바나에서 원인 모를 폭발사고로 미 해군 약 250여명이 전몰했다. 미국은 누가 메인호를 침몰시켰는가, 범인을 찾아내면 5만 달러를 주겠다면서 결국 스페인의 어뢰에 의해 폭발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위한 여론몰이였는데 이는 9.11과 아주 유사한 패턴이었다. 실제 전쟁 과정에서도 미국은 애초 지원을 약속했던 쿠바의 반 스페인 세력들의 정치적 발언권을 철저하게 봉쇄한다. 미국은 쿠바를 독립적인 주권국가를 만드는 데에 적극 돕겠다고 말했으나 전쟁 과정에서 말이 바뀌게 된다. 유명한 '텔러 수정안(Teller amendment)’이 그것인데, 쿠바에 독립국가를 세우되 먼저 쿠바 내부의 안정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 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독립적인 주권국가를 인정하긴 했으나 여러 가지 꼬리를 달아 미국의 식민지적 보호령으로 삼는 <플랫 수정안(Platt amendments)>을 통해 제국주의적 지배질서를 관철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비판적인 연구가들은 소위 ‘복지 제국주의(welfare imperialism)’라는 개념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갈파했다. ‘다 너희들을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책임을 지고 하는 일이다’라는 식의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플랫 수정안에 따르면 쿠바는 독립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외교, 경제교류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미국과 상의해야하고 헌법을 만들 때에도 미국이 개입 한다’는 사슬에 묶였다. 이런 방식으로 친미정권을 세우는 모델은 이후 반복된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해 정권을 바꿀 때는 기존의 세력들에 대항하는 해방자를 자처하고, 다음에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안정화를 꾀하면서 내부의 정치적 관할을 확정하고, 제한이 붙은 주권국가를 만드는 순서다. 이 과정이 1세기 동안 반복됐다.

<사진: 김민웅3>

***한반도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야**

프레시안 : 한반도 얘기로 와보자. 월러스틴은 최근 미국의 목표를 중동지역의 재편과 동북아 현상유지, ‘애국법(patriot act)’을 영구화시키는 등 미국 내부를 단결시키는 것, 유럽 분열 조장 등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3자회담을 하긴 했지만, 미국이 진지하게 협상할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많고, 핵 개발 ‘방지’에서 한발 물러나 핵 수출을 막는 것으로 소위 ‘금지선(red line)’도 이동한 것 같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김민웅 : 베이징 3자회담과 관련한 설왕설래가 많다. 일단 ‘현재 나오는 얘기는 어느 것 하나도 믿기 어렵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상황 진전을 유의하면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보다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한 사건을 두고 미국 내에서의 이해관계도 너무 복잡하다. 어디서 나오는 얘기냐에 따라 정황에 대한 이해도 다르고, 정치적으로 선택되기까지도 우여곡절도 많다. 베이징회담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세력도 있고, 별거 없으니 과거 방식으로 밀어 붙어야 한다는 세력도 있다. 일단 미국이 동북아에서 북한 문제를 긴급상황으로 다룰 만큼은 현재 아니라는 점이야 분명하다. 중동지역에서 감당해야 될 문제가 적잖고, 다급한 것은 북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시정권의 기본적인 대북정책은 ‘압박, 붕괴 정책’인데 북한이 미국의 이라크침략전쟁 이후의 ‘대담한 제안’이란 형태로, 최고 수준의 물리적 억제력까지도 포기할 의사를 내비쳐, 어떻게 보면 미국은 시간을 끌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우선 그리 급할 것 없고, 북한의 행동반경을 최소화하고 북한의 선택지를 하나씩 뺏어오는 방식으로 가려 할 것 같다. 베이징회담 이후 나온 반응은 여러 가지였지만 미국은 테러리스트 국가 명단에 북한을 다시 올렸고, 핵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겠다고 밀고나가고 있고, 소위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형태로 전쟁을 할 근거가 될 수 있는 인권문제도 유엔에 상정했다. 이는 북한의 국제적 행동반경을 좁혀 들어가는 것이다.

<사진: 영변 핵시설>

베이징회담에서 북한은 내놓을 것은 다 내놓은 상태가 되었다. 미국에 항복한다거나 일사불퇴의 전쟁을 선언하는 양극단의 말이 나오지 않는 한 나올 얘기는 다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타협하고 회담할 건가 아니면 밀어붙일 건가를 놓고 저울질할 텐데, 대선 일정과 연결시켜서 끊임없이 새로운 선택을 유동성을 가지고 만들어갈 것이다. 즉, 향후 일년 정도 우리는 끊임없이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될 수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렇게 전쟁 이전의 상태, 혹은 평화가 확실치 않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우리의 미래가 희생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북폭론’이 나왔을 때에도, 우리는 북폭이 가능할 것인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폭론이 만들어낸 현실이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런 발상을 거부하고 그런 현실을 소멸시키는 노력, 그래서 전쟁의 조건이 축적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북폭의 ‘ㅂ’도 못 꺼내게 만들어야 한다. 군사주의자들은 북폭론을 흘리면서 북한을 위협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지배를 원하는 세력들은 북폭을 고리로 우리의 선택가능성을 좁혀나갈 수 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북폭론의 유포 자체를 거부하는, 북폭은 아예 선택지로 전혀 존재할 수 없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이냐 아니냐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전쟁이 조건이 꾸준히 충족되면 어느 시점에 가서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전쟁으로 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조건이 축적되지 않는 방향으로, 그때그때마다 아주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야 한다. 북한 정권교체론이나 북폭론이 미국에서 나왔을 때 한국은 미국이 ‘공식적인 정책이 아니다’는 말에 그만 입다물고 마는 식으로 대응하지 말고, 어디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시정과 조사를 요구하고 다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압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서 북폭론이나 정권교체론이 힘을 얻어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이라크 문제에 있어 미국에서는 굉장히 많은 논쟁과 자료와 반전평화운동 측의 지원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를 반대했던 힘과 노력이 상당 정도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북한 문제는 다르다. 북한에 대해 나름대로 우호적인 사람들은 극소수다. 철저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똘똘 뭉쳤다. 이라크전쟁을 반대했던 반전평화운동권 조차도 ‘북한이 더 문제인데 왜 이라크를 치냐’고 나올 정도였다. 워싱턴의 반전시위에서 그런 얘기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을 경우, 일반 미국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반전평화운동의 전쟁 통제력도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다. 미국 내의 전쟁통제력이 강화되고, 미국의 전쟁의지를 수용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역량과 권력의 성격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강화돼야 하는데,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좀더 정리된 자세가 필요하다. 북핵문제가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이전까지 북한은 동북아 경제 주체의 하나로 등장하려는 시도를 했고 동북아 이웃 나라들도 이에 호응했었다. 미국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차단 봉쇄하기 위해 이른바 북핵문제를 제기하면서 상황을 동결(凍結)시키려 했다. 따라서 이런 흐름의 성격을 세계여론에 계속 알려주고, 그 흐름을 어떤 고리를 잡아서라도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북한도 자기 체제를 극단적인 군사적 방법으로 지키려고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북한의 자체적인 생존능력이 커지면 북한 체제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도 변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북한이 그런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방어할 수밖에 없도록 북한을 몰아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핵무장을 할 이유가 없는 환경의 확보, 이를 위한 미국의 인식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다.

최근 나오고 있는 핵보유설 등을 볼 때, 오히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자아내게 한다. 북한이 핵보유를 하면 동북아가 경색될 것이고, 그걸 근거로 동북아에 뭔가 다른 시나리오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북한의 판단이 ‘그것도 없으면 완전히 죽겠구나’가 된다면 북한의 핵무장 선택을 우리가 얼마나 막아낼 것이냐는 참 어려운 문제다. 다시 강조하건데, 결국 북한이 핵무장을 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한다. 끊임없이 미국을 설득하고, 현재와 같이 한반도 정책을 펴면 파괴적인 결과밖에 낳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 남쪽에서조차 우호적 지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인식을 하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 명확해야”**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이 곧 미국에 간다. 북한문제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모든 것을 미국에 맡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UCLA 대학의 찰머스 존슨 교수는 미국을 믿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에 의존해서는 위험만 자초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노 대통령 방식으로 모든 것을 맡기려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김민웅 : 상당히 우려스럽다. 찰머스 존슨의 주장에는 근거가 충분하다고 본다. 미국은 전쟁상태가 아니더라도 리비아, 수단, 이라크 등을 폭격했다. 이라크와는 사실상 ‘13년 전쟁’을 치렀다. 마음만 먹으면 폭격에 지상전까지 했던 미국이 역사였기 때문에 북한에도 그럴 개연성이 언제나 있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서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확한 평화 프로그램이 없다고 느껴진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발상자체가 빈곤하거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진: 김대중과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운 햇볕정책의 기본 성격은 사실상 일정하게 포장된 민족공조였다. 햇볕정책의 결정판은 6.15 선언이었는데, 이는 민족공조를 명확히 지향하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미국의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외교적 고려를 하면서 행동반경을 넓혀갈 고민을 했을 것이다. 미국이 소위 맞춤형 봉쇄정책(tailored containment)을 내놓으며 한쪽으로는 언론에 흘리고, 한쪽으로는 부인하기도 하는 묘한 수를 썼는데, 미국의 공식적 입장이 무엇이냐를 떠나 김대중 대통령이 아주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천명했다. ‘그런 정책은 성공한 적이 없고, 우리는 반대한다. 그 파괴적 결과가 뭘 의미하는지 안다’고.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는 평화가 우선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체체융합의 과정을 가기 위한 공조관계가 더욱 강화되는 것이 긴요하다. 미국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지 간섭하고 개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친미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는 대단히 독자적인 입장을 나름대로 지켜왔다. 구호적으로는 햇볕정책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평화공존과 민족공조라고 하는,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그 틀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한 기본 복안이 명백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햇볕정책을 수용하면서도 절차상의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점에 대해선 논란될 것이 많다. 절차상의 문제를 극복한다고 해서 과연 내용이 그만큼 충실하게 채워질 것인가? 그것이 입증되려면 남북관계에 대한 노 대통령의 복안과 정책을 취임이후 일반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알리고 설득하며 그에 따른 참여의 열기가 높아지는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없었다. 과거 정권의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이지, 현 정부가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별로 제시하고 있지 않거나 못하다. 노정권이 내세운 동북아 중심국가론, 평화번영정책의 주체가 누구인가? 남북일 수밖에 없다. 그럼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절차상의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이게 나오고 있지 않다. 미국에 대안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다. 이것을 풀기 위해 당신들의 역할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가야 반론도 가능하고 부시정권의 압박정책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없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다.

노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도 그렇게 급할 것이 없다는 얘기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정상회담 이전에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위해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하고 있느냐, 어떤 내용을 담아서 하려고 하느냐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말의 앞뒤가 맞게 된다. 정상회담 전과 후에 ‘이러이러한 현실을 만들겠다’는 그림을 가지고 그에 맞춰 국민적인 여론도 집결할 수 있고 그 힘으로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나타나는 딜레마와 고민을 해결하는 내부의 힘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외교역량의 강화를 우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도 이와 관련한 문제를 전반적으로 그리고 깊이 제기해야한다. 한반도의 안전과 생존은 어떤 것보다도 최우선의 문제다. 미국이 우리 입장과 달랐을 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명료한 입장정리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발언의 방식은 애매하지 말아야 한다. 명백해야 한다. 죽고 사는 문제에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방미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명확히 말하고 싶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졌던 자세가 취임 전과 후에 크게 달라졌는데, 이해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이나 영향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고 그걸 극복할 우리의 카드가 상당히 적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대부분도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나마 있는 카드라도 극대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했었다. 미국을 상대할 때 나름대로 우리가 발휘할 힘이 뭔가, 촛불시위나 미국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을 어떻게 우리의 대외역량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한다. 미국과의 적대감을 조성한다는 부정적인 측면만으로 볼 것이 아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계속 보일 경우 우리 사회 내부에서의 반발의 강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임을 상대에게 인식시키는 노력이 협상의 힘으로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향후에 끊임없이 우리의 발언권을 강화시키고 요구를 분명히 정리해나갈 수 있으며, 미국도 한국의 요구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게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래야 우리의 외교적 입장이 넓어지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방미가 그런 외교적 성과를 가져오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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