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느덧 인생의 네 계절도 겨울에 관한 얘기로 접어들었다. 겨울이라 하니 다 살았는데 무슨 할 얘기가 있냐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겨울이 ‘Gone are the good days' 만을 반추하는 계절이라 생각해선 아니 된다. 그 나름으로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겨울은 55세부터 72세에 이르는 기간이다. 겨울이라 했지만, 사람 나름에 따라 그리고 살아온 인생의 노력과 공력에 따라 어쩌면 가장 원만하고 성숙한 계절이 될 수도 있다. 겨울의 삶은 신체 생리적으로는 힘이 없겠지만, 연륜에서 오는 지혜는 가장 빛나는 시기이다.
***초동(初冬)의 계절;**
55세부터 60세에 이르는 기간이며, 계절로 비유하면 11월 8일경의 입동에서 12월 7일의 대설 전까지이다. 11월은 겨울이라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닥쳐오지 않듯이, 이 기간의 사람들은 인생의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미처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육체적인 노쇠는 현저하며, 남자나 여자나 모두 성 기능이 크게 후퇴하게 되는데 이 점이 사람에 따라 꽤나 큰 충격이 되기도 한다. 이는 반드시 성적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한 개체로서 이제 삭아들고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면서 받는 인생의 서글픔이라 할 것이다.
보시 인간의 성욕이란 정신적인 것이어서 육체의 노쇠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는 낡았지만, 정신 작용인 소프트웨어는 녹슬지 않는 법이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겨울이라 했지만,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며 특히 초겨울 무렵에 본격적인 월동 준비를 하듯이 노후의 생을 위해 준비해 둘 것이 많은 시기이다. 필자는 이 무렵의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하나 있다. 인생을 바삐 살다보니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나 기호, 특기 같은 것을 하나 정도 반드시 익히고 가꾸어서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취미는 가꿀 때는 육체의 노쇠를 감안하라는 것이며, 아울러 그다지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취미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축구와 같은 격렬한 운동은 노년의 생활 취미로 할 만한 것이 되질 못할 것이며, 골프 역시 비용이 녹녹하지 않다. 그리고 무릎 부위는 재생 불가능한 탓에 무릎에 충격을 주는 운동은 무리인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운동이다.
정신적인 취미, 가령 그림 그리기라든지 아니면 바둑이나 카드 게임, 사진 촬영, 간단한 악기나 한문 공부 같은 것은 우리가 육체의 노쇠에도 불구하고 정신활동을 건강하고 명랑하게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노인들은 대단히 유복한 사람을 살고 있다. 새를 키운다든지 서예, 태극권, 종이 공예, 댄스 등으로 저마다 즐거운 시간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취미들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익혀야지 가능한 것이지, 나이가 아주 들어버리면 어려우니 반드시 자신만의 취미를 이 나이에는 가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대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 같이 여가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이다.
***중동(仲冬)의 계절;**
61세부터 66세에 이르는 기간이다. 계절로 치면, 12월 7일경의 대설부터 1월 4일경의 소한 전까지의 기간이다. 이제 겨울이 깊었으니, 우리 인생도 66세, 우리 나이로 67세가 되면 체력은 거의 소진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단히 역동적인 사회이지만 반면 사회보장이 대단히 취약한 사회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지닌 돈이 없으면 전혀 대접받지 못하는 무서운 곳이 우리 사회라 할 수 있다. 더러는 이 나이의 사람들 중에 권력과 재산이 많아서 온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기세등등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히 그리고 쓸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체질에 따라 약한 부위에서 연이어 고장이 나서 병원을 들락거리게 된다. 무릎의 연골 부위가 다 상해서 걷기도 어려워지고, 백내장이나 녹내장이 오고, 어깨가 시리고, 계속해서 치아가 말썽을 부리고 이에 따른 소화 불량, 여성의 경우 자궁 근종이나 종양 등등 갖은 질병들이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 시기야말로 살아온 인생의 참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시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육체의 쇠잔에도 불구하고 평생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면 이 시기에 와서 진정한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수확은 가을의 수확이 아닌 만큼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의 수확인 것이다.
가령 학자의 길을 걸어온 자라면 이 시기에 자신이 연구해 온 학문의 최종적인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고, 예술가라면 가장 원숙한 일종의 지혜가 담긴 작품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사업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사업의 도사인 만큼 지혜가 담긴 무엇인가를 보상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무엇을 거두어야 할까?
그것은 당신이 평생 뿌린 그 무엇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가령 가정을 잘 꾸려오는 것이 목표였다면 잘 성장하여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자녀를 보면서 보람을 느낄 것이고, 평생 몸 받쳐 일해 온 직장이 여전히 잘 운영되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몸 건강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잘난 사람은 잘 난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이 시기에 와서 보상을 받는 것이기에 이 시기야말로 그 사람의 크기와 인격을 판가름하는 일종의 심판기인 것이다.
***계동(季冬)의 계절;**
67세부터 72세에 이르는 기간이다. 계절로 치면, 1월 4일경의 소한부터 2월 4일경의 입춘 전까지의 기간이다. 이제 겨울이 가장 깊었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이다. 우리 나이로 73세가 되면 육체적인 의미에서는 다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간단히 말해서 보너스이며, 잘 살아온 사람은 그 보너스도 클 것이다.
몸은 갖은 병증으로 고통이 찾아오고 불편하지만, 이 나이의 분들은 생에 대해 나름의 깊은 통찰과 지혜를 지니게 된다. 우리 사회가 불행한 것은 이 나이의 분들이 지닌 정신적 지혜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원로(元老)가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인 것이다.
원로가 있는 사회가 바로 전략(戰略)을 지닌 사회인 것이다. 원로의 가치는 보수(保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처한 당대가 가장 변화가 심하고, 동시에 개혁해야 할 거리가 가장 많은 시대라고 느끼면서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저번에 얘기했듯이 젊음은 그 자체로서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트이기에 변화를 갈망하는 세대이고, 이 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동일하다. 동시에 가진 사람들은 그런 젊은이들의 변화 요구에 자칫 거부반응을 보이기 쉽다. 이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때 원로들이 있다면 그 원로들은 변화와 수구, 그 모두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들이다. 아울러 그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심원한 지혜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원로의 역할은 큰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같은 원로들의 역할에 대해 금전이나 권력 면에서의 보상이 너무 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원로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봉사와 서비스에 있기 때문이다.
이 것으로서 인생의 네 계절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의도는 젊은 분의 경우, 뒷날에 올 인생에 대해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고, 자신의 나이에 해당되는 분이라면 현재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다소나마 도움이, 그리고 이미 많이 산 분이라면 오래 전 세월에 무엇을 놓고 고민했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 짓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들려주고 있다.
“시는 기쁨에서 시작해서 지혜로 끝난다...(중략)...시는 진행되면서 그것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며 마지막 시구에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지혜로운 동시에 슬픈 어떤 것, 술자리에서 부르는 노래가 주는 어떤 행복과 슬픔의 혼합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서 시를 우리의 인생으로 비유해보면 그 의미가 사뭇 진지하게 가슴에 와서 닿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분들을 위해 그의 시 구절들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앞의 것은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 서서’이고, 후자는 ‘어떤 찬란한 것도 오래가지 못하리’이다.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기에,
잠들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 한다.
잠들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 한다.
Nature's first green is gold,
Her hardest hue to hold.
Her early leaf's a flower;
But only so an hour.
Then leaf subsides to leaf.
So Eden sank to grief,
So dawn goes gown to day.
Nothing gold can stay.
자연의 연초록은 순금이지만,
지탱하기 제일 힘든 색.
그 떡잎은 꽃이지만,
한 시간이나 갈까.
조만간 잎이 잎 위에 내려앉는다.
그러자 에덴은 슬픔에 빠지고,
이윽고 새벽은 한낮이 된다.
어떤 찬란한 것도 머무르지 못하리.
동양에도 그에 못하지 않는 시가 있으니 중국 당대(唐代)의 이상은이 지은 시다.
向晩意不適 (향만의부적)
驅車登古原 (구거등고원)
夕陽無限好 (석양무한호)
只是近黃昏 (지시근황혼)
저물녘 마음이 울적해져서
수레를 몰아 옛 언덕에 올랐네
지는 해가 한없이 좋기만 한데
때는 황혼이 가까웠구나
독자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든지 간에, 생이 저물 무렵에 가서는 아름답고 충만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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