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여러 대학들과 초.중.고등학교가 내달 7일까지 2주간 사스(SARS, 급성호흡기증후군) 감염우려로 인한 휴교 조치가 취해져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하고 중국 주재원들의 가족들이 대거 귀국함에 따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사스 예방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정부가 보여주는 사스 대응방식은 구멍투성이다.
***사스 신고자 41명으로 증가**
국립보건원의 발표에 의하면 아직 국내에는 사스 발병환자가 없다. 지난 23일 발표에 의하면 41명의 신고자 중 의심환자만 7명이고, 9명이 현재 조사중이며, 그 중 5명이 PCR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중 40대의 남성 한 명만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중국 입국자이다.
하지만 이같은 국립보건원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사스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헛점투성이인 정부대책을 볼 때 신뢰가 안간다는 주장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어학연수 중 휴교와 부모님의 종용에 인해 귀국했다는 대학생 오모(24, 남)씨는 22일 입국한 뒤 23일 바로 병원을 찾았다. 입국과정에는 검역신고서만 작성해서 제출하고 간단한 체온 검사만 받았다고 전했다. 오씨는 "아무런 증세가 없지만, 가족들이 '혹시 모르니까' 검진을 받아보라고 강요해서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22일 귀국하자마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친구들이 시험기간이라며 잘 안 만나 주는데 핑계인 것 같다"며 "베이징보다 한국이 더 (사스에) 민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나 오씨는 "솔직히 베이징에서 거리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어 걱정이 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기가 꺼려졌던 것이 사실"이라며 "빨리 사스가 사라져 중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스 공포감, 국내에서도 빠르게 확산중**
중국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중국인과의 접촉이 많은 업계 종사자들도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중국인이 많이 찾는 신촌의 한 홍삼 판매점 직원 김모(36, 여)씨는 "최근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마스크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며 최근 사스로 인한 심란함을 토로했다.
주로 중국인 여행객 대상으로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서광섭(54, 남)씨는 최근 고열 증세가 있어 국립보건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보건원의 안내에 따라 병원을 찾았으나 단순한 몸살기운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서씨는 주사 한 대 맞고 지금은 완쾌됐지만, 당분간 일을 쉴 계획이라고 했다.
세브란스 병원의 한 내과 전문의는 "최근 사스 관련 문의가 다소 늘었는데, 대부분은 중국을 여행했거나, 중국 여행객과의 접촉만 있을 뿐, 아무런 증세가 없는 '염려증' 환자들이 태반"이라며 "그러나 바이러스 보균의 가능성은 있으니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지난 3월 상하이를 다녀온 한 은행 임원도 "다녀온지 꽤 시간이 지나 지금은 괜찮지 않냐 싶으나, 당시 사스 발생 사실을 안 알려준 중국 금융인들이 원망스럽고 지금도 기분 한편은 찜찜하다"고 말했다. 한 금융연구기관의 수석연구원도 얼마전 홍콩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한 뒤 상당 기간 '사스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중국, 동남아 등지로 골프여행을 즐기던 이들도 바짝 긴장한 상태다. 영종도 국제공항에 따르면, 사스 확산전에는 하루 1천명에 달하던 골프여행객들이 최근 들어서는 하루 1백명 안쪽으로 격감했다. 그대신 국내 골프장은 이들의 쇄도로 평일에도 2~3주전에 부킹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정부부처내에서도 사스 공포감이 읽힌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23일 사스 발생지역에 출장을 갔다왔다는 이유로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진흥확대회의와 이명박 서울시장 주최 오찬간담회에 참석치 못했다. 우 지사는 이날 무역진흥확대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사스 발생지역인 인도네시아에 갔다오셨는데 회의에 참석하시겠습니까"라는 전화를 받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우 지사는 지난 13~1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 총회에 참석하고 귀임했다.
***일본과 너무 대조적인 우리의 대응 자세**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중국과 홍콩은 23일 사망자 숫자가 각각 1백명을 돌파했다. 세계 11개국이 중국인의 입국 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북한도 중국인의 입국을 차단했다. 사스에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대책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구멍투성이다. 한 예로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일본정부는 사스가 베이징 등으로 확산되자, 매일같이 베이징의 주중 일본대사관을 중심으로 상황을 체크하며 사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국 학생과 주재원 가족들을 상대로 예방활동을 펴고 있다. 22일의 경우 일본대사관은 유학생과 주재원, 그들의 가족 등 3백명을 대상으로 베이징시내 호텔에서 사스 설명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23일에는 베이징의 일본인학교가 이사회를 열어 2주간 임시휴교를 결정했다. 또 베이징에 있는 3천명의 유학생에 대한 점검활동도 매일같이 펼쳐, 23일 현재 1백2명의 유학생이 귀국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보다 5배나 많은 유학생이 베이징에 나가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의 대응은 주먹구구식이다.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사스 신고건수도 대폭 늘어, 하루에 한 건 꼴로 접수되던 사스 의심 신고가 22일 하루 동안 5건이 접수됐고 앞으로 이 비율은 늘어날 것으로 보이나 정부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몇명의 유학생이 귀국했는지조차 제대로 집계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검역인력 절대부족, 예산집행도 게걸음**
구멍뚫린 공항의 방역대책도 문제다. 2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4천여명의 중국 여행객들 대부분이 검역신고서만 제출하는 입국과정을 거쳤고, 뒤늦게 실시된 체온 측정 등도 발병환자가 아닌 바이러스 보균자를 밝혀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국 이외의 사스 위험 지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마저도 시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관계당국의 무관심이라기보다는 검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과 검역인력의 절대부족이 구조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립보건원은 총 인원이 1백75명에 불과하고 특히, 정원 12명의 방역과는 사스 등 신종 전염병, 에이즈, 결핵, 생물테러, 전국민 예방접종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사스 관련 예산을 2백억원 신청하기는 하나, 이 또한 집행되기까지에는 앞으로 한 달 이상 걸릴 전망이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인성 전염병인 세균성 이질까지 전국적으로 확대 돼, 현재 60여명이 격리 치료중이다. 방역당국이 모두 사스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역, 예방의학 사회적으로 홀대 받아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교수(역학전공)는 "감염병에 대한 대처가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홀대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사스 경고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방역체제와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국립보건원은 "8천5백명의 인력을 보유한 미국의 CDC(질병관리청)가 현재 3백여명의 인력을 중심으로 긴급대응팀을 구성해 24시간 대응하고 있다"며 CDC를 모델로 정원 6백90명의 질병관리청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보건복지부와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통해 서울 시내 D병원을 사스 발생시 격리 병동으로 지정했고, 현재 4군으로 강제격리 근거가 없는 사스에 대해서 페스트와 같은 1급 전염병에 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공항에는 군의료인력 1백여명을 추가 투입해 중국, 홍콩 등지의 입국자에 대해서 체온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사스 환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역 전문가들은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교류가 많은 데다가 인구밀집도가 높고 문화적으로 아파트 등에서의 공동생활이 많기 때문에 사스가 한번 들어오면 무섭게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며, "위험지역 입국자들을 체계적으로 추적 관리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 '발병후 격리'가 아닌, '발병전 전염차단'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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