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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한국교류 거울삼아 남북교류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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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한국교류 거울삼아 남북교류 준비해야"

<인터뷰> '코리안드림'의 작가 리혜선씨

"남한과 북한 사이에 감동적인 만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시간이 자나가면 틀림없이 첨예한 체제, 문화의 갈등을 겪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족과 한국인의 교류는 하나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선족-한국의 교류에서 생긴 문제 거울삼아 북한과의 교류 준비해야**

프레시안 연재물 <코리안 드림>의 작가 리혜선씨는 조선족과 한국이 교류를 시작한 10년 남짓 동안 서로 체제와 문화가 다른 데서 오는 갈등이 사회 문제로 나타났지만, 한국과 북한의 체제와 문화의 차이는 훨씬 더 크고 개방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통일을 앞두고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면 조선족-한국인의 갈등보다 훨씬 더 큰 갈등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리씨는 "조선족은 중국이 개혁 개방을 한 다음에 (한국에) 나왔기 때문에 그 점에서 시장화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나왔다"며 "그러나 남한과 북한 사이의 만남은 지금 혈연적인 관계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만나겠지만, 나중에는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학자들이 조선족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1> 리혜선씨

리씨는 2000년 중국 연변에서 출판한 <코리안 드림>의 한국 출판을 앞두고 보충 취재를 위해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다. 2000년 당시에는 한국에 와서 노동을 하는 계층을 주로 취재 했는데, 이번에는 당시 취재하지 못했던 조선족 유학생, 교수 등 조선족 지성인을 취재했다고 한다.

리씨가 한국의 조선족들을 취재해 <코리안 드림>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조선족이 한국과의 교류를 시작하면서 조선족이 겪게 된 '충격적인 시대'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는 작가적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리씨는 조선족 작가로서 조선족이 중국에 뿌리 내리기 시작한 배경과 공산화를 겪고, 문화혁명 시기를 거치는 동안 조선족이 겪은 '수난사' 등을 취재해 왔는데, 한국과의 교류는 조선족의 역사에 또 하나의 전기가 됐다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 전통문화와 언어 지켜온 자랑스러운 조선족**

리씨에 의하면 조선족의 중국이주사는 세가지 시기를 갖는다. 첫 번째는 19세기 중반 함경북도에서 재난과 기근을 피해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조선족 마을을 형성했고, 이후 20세기 초 한일합방이 됨에 따라 독립운동을 위해 병력 양성과 교육 인재 육성을 위해 이주한 구국지사들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일제의 수탈이 강화되던 1937년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로, 이 당시에는 일제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남한 농민들이 연변, 흑룡강, 요녕 쪽으로 많이 이민했다고 한다.

리씨는 자신이 4세대라고 했다. 그러니까 리씨 집안은 첫 번째 시기의 이주세대가 되는 것이다. 리씨는 조선족 자치구의 '충청도마을'을 취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세 번째 시기의 이주세대에 속하는데, 아직 충청도 사투리를 쓰고 자기들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리씨는 이렇게 조선족이 전통문화와 언어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해외민족보다 조선족은 자기 언어를 잘 지켰고, 우리 글을 모든 전통문화면에서 상당한 부분을 고유한 그대로 갖고 있다"며 "이 점에서 고국이 고맙게 생각하고 긍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선족과 한국인의 오해**

리씨는 프레시안에 <코리안 드림>을 연재하다 조선족에 대해 비난하는 댓글에 연재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의 이미지가 나쁜 것에 대해 리씨는 1백년 가량 서로 단절된 역사를 가지면서 생긴 문화적 차이와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와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의 서로 다른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리씨는 또 초기에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들은 중국에서도 저학력이거나 실업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조선족 전반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부분이 있고, 한국에 노동을 하기 위해 입국한 대부분의 조선족들이 '불법체류'라는 불안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비춰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법체류를 하며 힘든 노동과 사기에 시달린 일부 조선족의 눈에도 한국인이 비춰지는 모습은 역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로 오해와 갈등만 증폭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리씨는 지성인들을 통한 '합법적 교류'가 확대되고,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알게 되면 이러한 오해와 갈등은 많이 해소될 것이고, 이를 위해 지성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해외동포를 인적자원으로 활용해야**

리씨는 "조선족을 포함, 해외동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고국에서의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며 "한국은 해외동포가 많은데, 이들을 상당한 인적자원으로 활용하고 해외동포도 소외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씨는 실제 많은 조선족들이 중국에 대한 이해와 중국어 실력으로 한중 사이의 무역과 교류의 매개로 많이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씨에 의하면 이같은 '지성인'들의 한국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취재 목적도 유학생과 교수 등 조선족 지성인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리씨는 조선족 유학생들이 한국행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언어가 통하니까 편리한 부분이 있고, 교수, 국제재단, 동포재단을 통해 유학을 오기 때문에 한국에 제일 많이 오게 된다"며 "유학생들 대부분은 장학금 등의 지원을 받는데, 자기가 한국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고 있는 것을 상당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리씨에 의하면 이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한국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조선족 사회에 돌아가 기여하길 원하고 있다고 했다.

리씨는 또 "지성인들은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에 대해 매우 냉정한 시각을 바라보고 있다"며 "코리안 드림의 득실을 따지고 앞으로 조선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경제와 조선족 수입 증대, 양쪽 모두 이익**

리씨는 현재 논의 중인 고용허가제에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중외교관계상 재외동포법을 적용받기 어려워 동포로서 소외를 느낀다는 서운함은 있지만, 국가의 사정을 잘 이해한다"며 "다만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 조금 더 문제가 많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 조선족 문제의 대부분이 '불법체류'라는 딱지로 인한 것이고, 실제로 한국의 3D업종 고용현장의 인력부족을 같은 동포인 조선족들이 해결하고 조선족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서로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리씨는 중국 문화혁명 세대라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문화혁명으로 인해 시골에서 4년동안 노동단련을 했고, 문화혁명이 끝난 후 연변대학에서 한어(중국어)를 전공하고 연변일보, 길림일보 등 조선족 신문사에서 7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 그 후 연변작가협회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 조선족 사회에 대한 많은 책들을 저술했다.

현재 조선족 사회는 인구가 줄어들고, 노동인력의 유출로 인해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리씨는 '코리안 드림' 취재에 대해 "조선족은 이런 갈등에 어떤 자세로 직면해야 할 것인가를 사고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리씨에게서 시대적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2>리혜선씨

다음은 리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프레시안: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목적은?
리혜선: 중국에서 <코리안드림>을 2000년에 출판했는데, 이번에 고국에서도 출판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과 그 당시는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고, 출판 당시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보완 취재를 위해 방문했다. 당시에는 노동을 해 돈을 벌기 위해 고국에 온 조선족들이 취재 대상었는데, 이번에는 유학생, 교환교수 등 조선족 지성인들의 코리안드림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왔다.

프레시안: 현장에서 노동하는 조선족들 중 불법체류자들이 많나?
리혜선: 많다. 조선족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는 루트를 보면, 거의가 불법이다. 그 외 유학생들이나 객원 교수, 사업하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신분으로 온다. 그 외에는 불법체류 위주다.

프레시안: <코리안드림>이라는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는?
리혜선: 사실 조선족은 굉장히 큰 격변기를 겪고 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나는 조선족의 이주사부터 '조선민족'이 '조선족'이 되는 과정, 예를 들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된 이후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해 가며 조선족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는 과정과 수난사 등을 취재했었다.

그리고 중국의 개혁 개방이 시작되면서 조선족이 가장 먼저 겪었던 것은 고국과 문이 열리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폐쇄된 중국정치 체제의 공간 속에 있던 조선족이 갑자기 한국으로 많이 밀려들게 됐다. 그 속에는 처음 고국에 대한, 선조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차차 경제에 눈을 뜨게 되며 돈벌러 오게 되고, 가치관이 흔들리게 되는 등 충격적인 시대를 겪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족을 취재함으로써 조선족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는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있었다. 조선족은 이런 갈등에 어떤 자세로 직면해야 할 것인가를 사고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조선족의 얼굴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가장 현실 깊이 들어가 피부로 겪은 이런 체험을 많이 알려줌으로써 조선족들의 흔들리고 있는 가치관을 정립하고, 조선족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고국문화와의 합류 속에서 새로운 조선족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을 시도해봤다.

프레시안: 그 당시에는 얼마나 체류하셨나?
리혜선: 3개월 체류했다.

프레시안: 중국에서 출판된 <코리안드림>은 독자가 조선족이었기 때문에 한국독자에게 선보이게 될 <코리안드림>에는 빠진 부분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리혜선: 조선족들은 자기 문화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데, 한국 독자들하고 접촉하게 되면서, (한국독자들이) 조선족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인데, 내가 해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글을 읽으면 부분적으로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 부분적으로 이런 오해는 조선족과 고국인들 사이에 현실적으로 가로놓여져 있는 장벽, 갈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을 (프레시안에) 연재하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올라온 의견들을 읽어보고 사고하며, 조선족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봤다. 이런 한국인의 시각에서 조선족을 볼 때는 이런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이런 면에서 갈등을 풀어나감에 있어서 나는 작가로서 작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프레시안: 중국에서 발행된 <코리안 드림>과는 다르게 코리안 드림 연재 부분에는 '오용'에 관한 이야기가 첨부돼있다. '오용' 가족의 이야기가 독자 입장에서는 참 도움이 되는데…….
리혜선: 고국에 대한 감정 부분에 대해서는 조선족 독자들에게는 많이 삭제를 했다. 92년에 '서울바람'이라는 것을 취재해 중국에서 연재를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우리가 가장 감상적으로 '고국과의 혈연적 만남'에 감동해서 정서적으로 그 감동에 많이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혈연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감동이 지나간 다음 우리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갈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 면에서 고국의 독자들에게는 오해가 생기는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고국에 대한 감정이거나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 동안 그리워했던, 광복 이후 반세기 동안 그리워했던 것 속에서 그런 감정들이 속에서 삭제됐기 때문에 감정적인 기초가 부족한 느낌으로 글을 읽게 됐으리라 생각한다.

프레시안: 독자들 중에는 과연 조선족은 중국사람이냐 한국사람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족은 한국에 와서 돈만 벌어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조선족의 정체성이랄까,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리혜선: 이 문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제기됐다 생각한다. 의견들 종합해 보니, 조선족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가 제일 많았고, 조선족은 1세는 동포지만, 2세, 3세는 동포가 아니다라는 등이다. 이런 부분은 오해라기보다는 조선족과 고국인이 만나기 시작한 것이 10년 남짓인데, 조선족 역사에 대한 고국에서의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조선족도 스스로 개개인으로 따져보면 자기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를 계기로 조선족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 작업을 통해 보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취재에 나섰다. 이번 취재에도 조선족 지성인들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봤다.

여러 가지 견해를 들었고, 조선족들이 자기 역사나 민족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는 대답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정체성이다 하는 부분에서 우리집 식구냐 남의 집 식구냐 이런 문제인데, 지금 상황에서 보면 조선족의 현실은 1백년 전에 있고 1백년 후의 현실에 와 있다. 1백년 전에는 조선족이나 고국인나 동질성을 가진 하나였는데, 역사적 시기를 겪으면서 조선족은 중국으로 이주를 했다. 한국은 해외동포가 많은 나라인데, 시각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의 역사는 1백년 역사의 이주사를 갖고 있는데, 상당한 부분은 중국 문화를 받아들였다. 고국 역시도 많이 변화했다. 식민지를 살아오면서 식민지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서구적인 부분도 상당히 많이 돼 있다. 예를 들어 1백년 전의 분들이 살아계시면 우리 고국도 참 낯설은 것이고 조선족들도 참 낯설것이다. 이런 문화는 역사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민족도 어느 나라든지 1백년이란 역사 동안에 문화가 이질화 되거나 다른 문화와 합류하게 된다. 이런 문화상대주의의 시각에서 조선족을 봐야 하지 않나, 역으로 조선족도 고국에 대해 이렇게 봐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당한 부분에서 문화적인 부분, 정치, 경제, 체제,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문화상대주의 시각에서 서로를 봐야만 서로를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는 이념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문명권과 문명권간의 갈등의 시대다. 어느 한 문명권이 다른 문명권을 소멸시키려고 하는 것보다는 피차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존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인정하고 자기도 스스로 자기 나라라 할지라도 스스로 여러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 문화를 살찌우는, 지구화된 이런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조선족에 대한 민족 정체성 부분에서 1백년후의 조선족 현실에서 받아줬으면 좋겠다는 시각을 말하고 싶다. 조선족은 거주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있고, 고국에 대해서도 뜨거운 감정이 있다. 중국인 문화를 받아들였고, 전통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그 면에서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해외 민족보다 조선족은 자기 언어를 잘 지켰고, 우리 글을 모든 전통문화면에서 상당한 부분을 고유한 그대로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무리 미국에 가 있는 동포들이 상당한 부분에서 고국을 도와주고 있다고 하지만, 조선족으로서는 자기 문화를 지켜온 것에 대해서 고국이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긍정해줬으면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경제원리로 조선족은 경제적으로 후진적인 나라에서 살았다 해서 경제원리로 해외동포를 대하는 것은 고국으로서도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조선족이 중국을 사랑하고 고국을 사랑하는 부분을 함께 인정해 줬으면 좋겠고, 중국국민으로서도 뿌리를 고국에 갖고 있고, 고국의 전통문화를 갖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해주고 거주국에 대한 조선족의 공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봤으면 좋겠다. 지금 조선족은 한중관계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코 앞에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돈벌어 간다는 경제적 잣대로만 조선족을 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역사적 부분에서 조선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감정적 요소가 많이 개입돼 조선족을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조선족 중국이주사가 1백년인데, 중국 건국과 개혁·개방을 통해 몇가지 고비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신다면
리혜선: 사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당히 발전한 단계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사회가 우리가 중국에서는 이런 기점에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이만큼 발달한 나라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격변기를 겪게 된 것이다. 이것이 조선족과 고국인 사이의 역사와 사회제도가 만들어 놓은 갈등이 첨예하게 집중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프레시안: 조선족하면 식당이나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것 떠올린다. 그러나 그 외 사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그런 분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충 조선족들이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는 현황은?
리혜선: 내가 취재할 때만해도 조선족에 대한 집계가 16만으로 돼 있었다. 그 속에는 유학생이나 사업하는 사람도 포함돼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공부하는 부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이라는 것이 현장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문화수준도 낮은 분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조선족들은 이것이 한국이구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수 조선족들이 한국에 유학와서 선진적인 부분을 공부하고 여기서 더 많은 것을 배워 조선족 사회에서 큰일을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은 또 다르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조선족을 보는 시각이 다만 불법체류자로 밖에 볼 수 없다. 고국인들이 볼 수 있는 조선족들이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한 부분은 실업당했거나 농민들이거나 문화교육을 적게 받은 분들이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족은 이런 부류구나라는 인식이 서게 됐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갈등이 생겨났을 것이고, 조선족도 한국을 바라보면 자기가 보는 부류를 떠나서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하고, 고국인들도 조선족들을 바라보는데, 단지 불법체류, 위장취업 쪽으로만 시각을 가진다면 그것도 틀린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합법적 경로를 통해서 들어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인가?
리혜선: 지금 공부하러 온 분들을 취재 했는데,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조선족이 유학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한국이다. 언어가 통하니까 편리한 부분이 있고, 여러 루트를 통해 오는데, 교수들, 국제재단, 동포재단 이런 쪽으로 통해 오기 때문에 조선족이기 때문에 훨씬 쉽게 올 수 있는 루트가 형성돼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가기 보다는 한국으로 제일 많이 왔다.

프레시안: 한국에서 조선족 유학생들에게 장학금 같은 지원이 있나?
리혜선: 장학금으로 공부한 분들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학생들 만났을 때, 거의 다 자기가 한국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고 있다며 상당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성인들이기 때문에 상당히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고, 지성인들은 비교적 냉정한 시각을 갖고 있다. 조선족에게 코리안드림의 문제가 무엇이고, 또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코리안드림의 조선족이 어떤 방향을 제시할 것인가 쪽에도 상당히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레시안: 불법체류 문제 나름대로 방안이 있을 수 있나?
리혜선: 한국의 시민단체, 종교단체에서도 상당히 조선족의 불법체류문제에 대한 대안을 여러모로 제시하고 있고, 조선족 지성인들도 이런 것을 통해서 고국과의 교류에서 자기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편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고, 노동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 조금 더 문제가 많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동포다라는 감정적 요소가 들어갔기 때문에 피차 갈등을 겪고 아픔을 겪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이 아직까지도 저임금으로 살아간다고 할 때, 한동안 계속 불법체류문제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여기 와서 공부하는 분들은 공부가 끝나면 여기 남는 경우와 중국으로 돌아가는 경우 어떤 것이 많나?
리혜선: 취재한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돌아가 유익한 일을 하겠다고 했다.

프레시안: 최근에 고학력 외국인들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한국에서 취직하거나 활동하시는 분은 없나?
리혜선: 한중 관계 특수한 역할 하는 부문에 취직한 경우가 있고,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하는 일은 거의 한중관계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어 강사, 중국과 한국간 무역의 번역 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확실한 자기 직업을 갖는다고 하면 거의 중국쪽으로 직업을 가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지금상황에서 한국에서도 경쟁이 심하고 조선족으로서 한중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조선족 지성인이기 때문에 조선족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선택하고 있다.

프레시안: 코리안드림 연길에서 발행됐을 때의 반응은?
리혜선: 조선족들은 한국으로 나오기 전에 많이 읽는다. 참고서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제점을 많이 제시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와 제도,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고, 다만 한국이라는 노다지가 나오는 곳으로 생각한다. 내가 이를 악물고 버티면 돈 벌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돼 있다. 아주 막연한 생각을 갖고 들어온다. 그러다 생소한 문화 속에 노출되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움을 겪거나 여러 가지 열등감에 시달리는 부분이 있다.

프레시안: <코리안드림>이 한국에서 출간되게 되면 양측간 이해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
리혜선: 남한과 북한 사이에 감동적인 만남이 시작되고 있다. 이런 감동의 시간이 지나가면 틀림없이 체제 문화의 갈등을 첨예하게 겪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조선족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선족은 중국이 개혁 개방을 한 다음에 나왔기 때문에 그 점에서 시장화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나왔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사이의 만남은 지금 혈연적인 관계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만나겠지만, 나중에는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학자들이 조선족 문제를 많이 연구하고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진3> 대담장면

프레시안: 조선족과 한국이 교류한지 15년 정도 됐는데, 그 사이에 조선족들의 한국에 대한 환상 등이 많이 교정이 됐나?
리혜선: 현실적으로 돼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 나오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도 지금 경제적으로 격변기에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 상품화된 체제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조선족도 경제적으로 큰 곤혹을 겪고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 코리안드림이 지속되고 있다고 봐야겠다.

프레시안: 중국 내 조선족들의 이주사는 잘 교육되고 있나?
리혜선: 조선족이 광복 때까지도 이주민이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조선족으로 됐다. 비록 명칭은 조선 민족에서 민자가 빠지고 족자로 중국의 56개 민족과 구분되는 명칭을 갖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역시 조선족이 조선 이주민으로부터 조선족으로 바뀌에 된 과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나도 연재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보면서 우리가 조선족 역사에 대한 아무런 사전 교대가 없었고, 고국의 입장은 또 공부가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문제는 이해를 담은 경제적 원리에 의해 이해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감안할 수 있고, 이번에 유학생들 취재하면서 한국에 있는 상당한 대학생들도 조선족 유학생에게 역사적 질문을 많이 하고, 프레시안에 제기된 문제들이 사실상 보편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라는 것을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갈등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원래 조선족 역사에 대한 교대가 있었으면, 글이 쉽게 읽히고 공감도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안돼 아쉽다.('교대'라는 말은 '솔직히 털어 놓는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상대방의 역사에 대한 사전지식을 말한다 : 편집자)

프레시안: 북한과의 교류 지적이 돋보인다. 조선족 작가 중에 한국문제 관심 있는 분들 많이 있나?
리혜선: 유학생 취재 했는데, 유학생들도 고국에 와 갈등을 겪으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고국에 나온 유학생들은 자기와 고국의 역사를 잘 공부하고 왔으면 좋겠다.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개혁 개방과 코리안드림 겪으며 연해주로 이동하는 붐이 불고 있기 때문에 조선족의 앞날 등을 조명하기 위한 학자들의 세미나나 토론회 등이 많이 열리고 있다. 조선족 역사는 고국역사와 갈라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연해주(70년대 말 이후 개혁·개방이 진행되어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중국의 해안지역을 말함 : 편집자)로 이동하고 고국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논문이나 책들도 많이 쓰고 있다.

프: 고용허가제 논의와 재외동포로서의 지위 인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리혜선: 이 문제는 해외동포라고 하지만, 거소국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잣대로 하기엔 한국정부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재외동포법에서 제외한다는 것보다 동포에서 제외한다고 들려 감정이 상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거소국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외교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분명히 할 것은 조선족이 불법체류 상황으로 인해 부정적 결과를 많이 가져오고 있다. 불법체류하기 때문에 여기서 장기체류하면서 아이들 교육문제, 부부관계가 어려워지고 여러 가지 부정적 문제가 생기고 있다. 돈은 벌어도 교육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또,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으로 많이 결혼 해 오기 때문에 중국에서 조선족 총각들이 결혼하기 힘들어지고 조선족 인구가 하강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법체류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3D업종의 인력수급문제를 볼 때 문제가 있다. 인력 필요 부분을 보충하면서 조선족이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D업종에는 조선족이 상당히 기여를 하지만 불법체류로 인해 불안해해야 하고 강제송환당할지 모른다. 조선족이 한국에서 기여를 하면서도 불법체류자가 돼 감정을 상하고 돌아가는 비극적 결과를 끝나는 것이 인자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로, 정부측에서 지혜롭게 이 문제를 풀어, 3D업종 외국인 노동자들 많이 고용하고 있는데, 조선족이 같은 동포로서 이 업종에 기여도 하고 돈도 벌고 하면 좋겠다. 조선족의 수많은 후유증을 여기에서 제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레시안: 질문 내용 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리혜선: 해외동포의 역사에 대한 고국에서의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한국은 해외동포가 많은데, 이들을 상당한 인적자원으로 활용하고 해외동포도 소외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법이라는 잣대로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구체적인 분석과 이해를 위한 작업들이 필요하다. 또한, 조선족들이 코리안드림 냉정하게 분석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조선족 동포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리혜선: 처음 함경북도에서 먼저 이사를 했다. 1869년 수재, 한재 등 재해가 많아 중국으로 많이 이민했다. 두 번째는 한일합방 뒤에 나라를 구하겠다는 구국지사들이 많이 이동했다. 일제 통치가 심화돼 중국에서 병력을 키우고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에 터전을 잡았다. 그 때는 계획적으로 이민 온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사재를 팔아가며 학교를 꾸리거나 교육을 체계적으로 하고 용정 대성중학교, 무간학교 등이 생기며 병력도 키우고 지식도 체계적으로 전수했다. 세 번째 이민은 1937년부터 40년대 초반까지 일제의 강제이민 정책에 의해 남한 농민들이 연변, 흑룡강, 요녕 쪽으로 많이 이민했다. 나는 4세대고 자식은 5세대다. 조선족 중에는 함경도 출신이 80%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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