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 공무원들의 급여를 달러화(貨)로 지급키로 결정하고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시중에서도 달러가 유통되도록 유도하면서 이라크에 달러 경제를 구축하려는 첫발을 내딛었다. 이같은 조처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석유 장악 외에도 달러 헤게모니를 고수하고 유로화 석유 거래를 저지하려는 데에 있다는 주장이 차츰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게 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6일(현지시간) 쿠웨이트에 머물고 있는 미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혼란에 빠진 이라크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수십만명에 달하는 이라크 공무원들의 급여를 ‘디나르’화 대신 달러로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사진: 달러 마크>
***미, “재원은 이라크 자산에서 마련”**
미 관리들은 달러화 급여 지급이 이라크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이는 이라크 경제를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리들은 이라크인들이 달러 외에도 다른 서구 국가들의 화폐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의 첫째 목표는 가능한 빨리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공무원들에게 20달러의 급여를 지급할 계획인데 이 돈은 이라크에서 큰 돈이라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는 이라크 남부 움 카스르 항만 복구 사업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에게 달러로 품삯을 주기로 한 후에 나온 결정이다.
미국은 재원을 몰수한 미국내 자산 17억달러에서 마련하고 이 돈은 외환 보유고 유지를 위해서도 쓰일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새정권이 들어서면 이라크인들에 의해 화폐를 결정하게 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영국 관리들은 과도정부가 언제 들어설지 불확실하며 선거에 의한 정부가 세워지는 데에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미 관리들은 새정부가 새로운 화폐를 결정하는 데에도 3개월에서 6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이렇게 볼 때 이라크에 새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화폐가 통용되기까지는 최대 1년 6개월이 소요되는데 미국은 그때까지 달러 중심의 경제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인플레 사태도 우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같은 결정이 이라크에서 대규모의 인플레이션 사태를 몰고 올 수 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후세인 정권은 과거 임금과 가격을 엄격히 통제해왔기 때문에 미국이 초기 단계에서 임금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 현재 연 70%선에 이르는 이라크의 인플레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적이다.
세계은행(WB) 관료를 지낸 칼리드 아이크람은 화폐 개혁 없이 달러화가 통용되면서도 상품 공급이 빠르게 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더 많은 달러가 공급되고 유로화 등 다른 화폐들이 사용된다면 구 이라크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도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 관리는 “주머니에 있는 돈이 달러라면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종류의 화폐를 혼용하는 나라는 매우 잘 돌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속셈은?**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도 달러 사용을 강력히 유도하는 것은 미국에게 다른 속셈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라크 경제를 ‘달러화’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2001년부터 석유 수출에 유로화만을 사용케 했다. 이는 국제 석유 거래를 달러화로 한다는 45년 이후의 질서를 무너뜨려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를 위협했다. 이라크의 ‘거역’은 이란, 베네수엘라 등지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고 급기야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유로화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석유 수출국가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군사력으로라도 위협하려 한다는 것이 전쟁 전 일각에서 나온 분석이었다. 따라서 이번 달러화(貨) 급여 지급 결정은 이라크 내부의 경제를 먼저 달러화(化)해 결국 석유 거래까지 달러화로 환원시키기 위한 첫단계 조치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최대 1년 6개월 걸리는 새 화폐 통용 시간은 이라크 경제를 달러화하기 충분한 시간이며 이라크가 달러화로 환원하면 석유 수출국가들의 유로화 사용 움직임을 둔화시킬 수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16일 유엔의 이라크 경제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촉구 하고 나선 것 역시 석유 수출에 씌운 족쇄를 하루빨리 풀어 달러화 거래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슬람 국가와 유럽의 최근 움직임은 미국의 의도를 반증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시적으로나마 달러화가 사실상 이라크 공식통화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면 아랍세계 내에서 논란이 있을 것이라며, 종전 후 유로화를 결제통화로 쓰자는 ‘달러 보이콧’ 운동이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화가 이라크의 경제 회복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게제, “유로화(化)가 정치적 이득을 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약탈 사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석유 관련 시설물은 철저히 보호해 ‘석유를 위한 전쟁’이라는 ‘음모론’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가운데, 달러화 경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움직임도 ‘이라크 전쟁은 통화전쟁’이라는 또하나의 ‘음모론’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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