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NBA 코트를 영원히 떠났다.
미국 언론은 마이클 조던의 은퇴를 마치 영화배우 존 웨인이 석양을 뒤로 한 채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에 비유하며 대서특필했다. 시카고 불스와 함께 NBA 타이틀을 여섯 번, 정규시즌 MVP를 다섯 번이나 차지했던 조던은 16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와의 원정경기를 끝으로 농구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다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뿐"**
마이클 조던은 코트를 떠나며"이 순간 갑자기 드는 생각은 '이제는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서 뛸 수 없겠지'라는 것이다. 그다지 기분은 나쁘지 않다. 다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뿐이다"라는 짤막한 은퇴사를 남겼다.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농구인들의 감회는 남달라 보인다.
필라델피아의 래리 브라운 감독은 경기후 "앞으로 모든 NBA 경기장에서 23번이 아로 새겨진 유니폼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의 간판스타 앨런 아이버슨은 "지구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조던은 거기에 가깝다"라며 대선배의 은퇴를 아쉬워 했다.
필라델피아의 전설적 농구영웅이자 마이클 조던 이전 가장 화려한 '에어 쇼'를 펼쳤던 줄리어스 어빙은 마이클 조던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23번, 모든 구단 영구결번"**
조던의 은퇴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조던은 92~93시즌 후 잠깐 동안 야구 외도를 선언했고 시카고 불스에서 마지막 우승을 거머 쥔 97~98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했다. 이후 워싱턴 위저즈의 파트 오너가 된 조던은 2001~2002시즌에 다시 코트에 복귀했었다. 하지만 이번 은퇴는 그의 나이 등을 고려할 때 '진짜 은퇴'라는 게 중론이다.
조던이 97~98시즌 직후 은퇴를 선언했을 때 한 농구팬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에 "NBA가 진정으로 조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으면 24초 공격제한 시간을 23초로 바꾸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공격제한 시간의 23초 변경은 다소 어려운 점이 있지만, 조던의 등번호 23번의 전구단 영구결번은 가능성이 있다.
'NBA의 국제화'를 추진했던 커미셔너 데이빗 스턴과 'NBA의 얼굴마담' 마이클 조던의 관계를 생각하면 전구단 영구결번 가능성은 그 설득력을 더 한다.
현재까지 리그전체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선수는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과 '빙판의 제왕' 웨인 그레츠키가 있다.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과 웨인 그레츠키의 등번호 99번은 메이저리그(MLB)와 북미하키리그(NHL)로 부터 각각 1997, 1999년에 영구결번 된 바 있다.
***조던 전에 조던 없고 조던 이후에도 조던 없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가수 엔리코 카루소의 은퇴를 놓고 음악비평가들은 "카루소 이전에 카루소 없고 카루소 이후에도 카루소 없다"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이런 평가는 조던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NBA 선수들이 포스트 조던 자리를 노리며 그의 아성에 도전했다. 최근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가 '포스트 조던'의 후계자로 가장 앞서가고 있지만, NBA와 미국사회에 미친 조던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아직 모자란다.
마이클 조던을 위대한 선수로 평가하는 이유는 매우 많다. 벼랑 끝에서도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엄청난 기술과 카리스마. 10번의 NBA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의 득점력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농구전문가들은 조던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그의 '수비력'에 초점을 맞춘다.
마이클 조던의 초창기 경기장면을 보면 개인기 위주의 화려한 농구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농구의 핵심은 수비'라는 측면을 인식하기 시작한 조던은 반쪽짜리 선수가 되지 않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 포지션별로 NBA 최고의 수비수들을 뽑는 올 NBA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여덟 번이나 선발됐다. 중요한 순간마다 터지는 가로채기와 상대선수를 꽁꽁 묶는 찰거머리 수비는 조던을 더욱 위대하게 만든 보증수표였다.
또한 조던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경제적 효과'였다. NBA의 중계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상품, 광고 등으로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했던 조던은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였다. NBA는 마이클 조던이란 꼬리표를 달고 국제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최근 '야오밍 신드롬'을 통해 NBA 붐이 가열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마오 쩌뚱 다음가는 위인으로 조사된 바 있다.
조던이 비록 코트를 떠났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는 각종 상품에서 그의 얼굴을 볼 게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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