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교수님, 충고하신 대로 개혁의 말은 타고 가야지 지고 가거나 억지로 끌고 가려해서는 후유증이 더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을 타고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가야할 지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게 맡겨두고 기다려줄 정도의 여유는 주어야 할 것입니다.”
청와대가 최근 잇따라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이자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해온 장 교수의 '개혁 실종' 비판에 대해 “이제 참여정부 출범 50일이 지났다”면서 지나치게 성급한 주장이라는 게 청와대측의 입장이다.
장 교수는 그러나 현정부의 경제개혁이 실종됐다는 종전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어,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개혁의 말을 억지로 끌고 가려 하면 후유증이 더 클 것”**
<청와대브리핑>은 15일 국정홍보 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장하성 교수님께 드리는 글’을 언론보도에 대한 청와대측의 반론을 게재하는 ‘해명.반론’ 꼭지에 실었다.
브리핑은 14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장 교수의 인터뷰에 대해 “비판은 비판대로 존중되고 반성의 재료로 소중하게 활용될 것임을 전제로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오해 또는 잘못된 정보가 있는 것 같아 몇 말씀드리고자 한다”면서 조목조목 따졌다.
브리핑은 우선 “장 교수님은 참여정부가 정치와 경제개혁에 매우 소극적이고 대통령 자신이 개혁을 주장하는 내부 목소리를 거북해 한다고 했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는지 궁금하다”고 문제제기했다.
브리핑은 “노 대통령이 정상적인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한도에서 투명성을 높이고 개혁을 추진하며 검찰을 동원한 몰아치기식 수사와 길들이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지적이라면 지나친 도약”이라고 지적했다. 또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정국과 지역주의의 한계 속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일관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지만, 그것이 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리핑은 “장 교수가 재경부가 한국 경제 전체를 장악했다는 증거로 청와대 정책실 비서관 중 두 명이 재경부에 의해 정해졌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면서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의 정책분야에서 일하면서 선거대책위에 참여했던 이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카드사 대책이 ‘대마불사 신화’를 되살렸다”는 장 교수 주장에 대해 브리핑은 “카드사 부실대책은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다”며 “아무튼 외국 투자은행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 정부의 문제 인식과 조기 정책 구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하성 “개혁은 위기때 하는 법”**
이에 앞서 장하성 교수는 1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개혁을 내걸고 출범했지만 결국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던 김대중 정부 출범 때와 새정부의 지금 모습이 비슷하다”며 “경제팀이 개혁의지가 없는 관료들로 채워지고 신용카드사 부실 대책도 시장원리를 어기며, 죽었던 ‘대마불사’의 신화를 되살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특히 “금융.재벌.노동.공공 등 4대 개혁에 경제부처 개혁을 추가해야 한다”면서 경제팀 개혁을 요구했다. 그는 “경제 위기의 궁극적 책임은 재벌에 있지만 그것을 조장한 것은 정부 책임”이라면서 “옛 경제수석실 등 청와대 자리는 재경부 관료들의 출세코스로 전락했고, 금감위. 금융감독원은 재경부의 여의도 분소라고 불린다. 재경부 고위직에 관료가 아닌 사람을 앉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또 노 대통령의 ‘개혁속도 조절론’에 대해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개혁은 위기때 이뤄졌다. 경제가 나쁠 때 개혁을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장교수는 이에 앞서 9일에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국제심포지엄에서 정부가 내놓은 신용카드대책과 경제정책결정 구조를 강도높게 비판했었다.
장 교수는 신용카드대책에 대해 "그 성격이 97년 한보,기아부도 사태때나 대우사태의 해법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현가능하지 않은 이런 해법을 내놓은 원인은 정책결정구조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1백5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 시점에서 감독당국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금융감독기관은 재경부의 여의도 지점으로 평가되며 다른 경제부처는 물론, 청와대마저 재경부의 관리하에 들어간 상태로 이같은 구조하에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고 새 정부가 출범해도 이런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삼성전자에 삼성카드 증자를 요구한 사례를 들며 신용카드사들의 부실을 대주주가 책임지도록 한 것은 과거 삼성자동차의 실패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재벌의 은행지분 소유상한을 크게 높인 정치권과 관료에 대해 재벌의 돈줄 노릇을 하다 몰락한 종금사사례를 지적하며 재벌의 금융지배차단 필요성을 역설하고 "관료들은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출자총액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공정위의 입장에 대해 김진표 부총리가 반대하고 있다"며 "참여정부가 개혁깃발을 높이 들고 있음에도 이제는 노무현대통령 스스로가 개혁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대통령도 비판에 강한 불만**
청와대가 이번에 이처럼 장하성 교수를 정면 공박하고 나선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현 경제팀에 대한 장교수 등 시민단체들의 비판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14일 오후 가진 문화일보와의 취임후 첫 인터뷰에서 최근의 비판에 대한 불만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 관료들이 왜 개혁 못한단 말입니까. 해나갈 수 있습니다. 재경부 관료가 됐다고 해서 개혁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이번에 카드채 말입니다. 하루아침에 유통이 중지되고 그로 인해 연쇄적인 자금회수가 이뤄지고, 인출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되면 시장이 중단되고 서버릴 텐데 누가 책임질 겁니까. 카드채 개혁 안했다고 비판하는데 계산해보면 압니다. 계수로서 판단됩니다. 뻔하게 보이는 시스템이라고 할까, 시장이 중단되는데 개혁포기 했다고 하면...건강한 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소를 묻어버리자는 것입니다."
김진표 경제팀 발탁과정을 둘러싸고 촉발된 노무현 정부와 참여연대 등 경제시민단체간 갈등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증폭되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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