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정책을 총괄하는 제2기 방송위원회 구성이 여야간의 이견으로 두달이상 표류하고 있어 주요 방송정책 결정이 지연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제1기 방송위원회의 법정임기가 끝난 것은 지난 2월 11일. 새정부 출범과 함께 후임인선이 이루어지리라는 방송계의 기대와는 달리, 정당간의 방송위원 국회추천 몫 배분을 놓고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방송법 규정에 따라 현 위원들의 임기가 자동 연장되기는 했지만 새 위원회가 구성되면 떠나야 할 처지여서 현재의 방송위원들은 프로그램 심의 등 일상적 업무처리만 하고 있다.
그 결과 디지털TV 전송방식,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사업자 선정, 위성방송의 지상파 방송 재송신 문제, 방송ㆍ통신 융합에 따른 관련법제 정비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들도 표류하고 있다. 또 방송위원회에서 추천 또는 임명해야하는 방송문화진흥이사와 곧있을 KBS 이사선임, EBS 사장선임 문제들도 차질이 예상된다.
현행 방송법상 방송위원 9명중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6명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및 문화관광위원회와 협의ㆍ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토록 돼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위원 선임을 미루고 있고 국회도 여야간 몫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느라 인선작업도 미룬 채 내정설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토록 돼있는 방송법에 따라 교섭단체가 아닌 자민련을 배제하고 의석 비율에 따라 한나라당이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한 4명,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자민련도 포함시켜 소수의견도 대변해야 한다며 한나라당 3명, 민주당 2명, 자민련 1명 추천을 고집하며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계속 협상을 거부할 경우 방송위원을 7명으로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제출된 방송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럴 경우 2기 방송위원회 구성을 하반기로 늦춰질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야간 나눠먹기 싸움으로 공정하고 공개적인 검증 절차에 의하여 이번만큼은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방송계 안팎의 요구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줄대기 밀실인사가 지난 정권때처럼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이번에도 팽배하다. 방송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방송위원을 임명할 때 3인은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단체 대표위원과 협의하여 추천한 자를 임명하고, 3인은 방송관련 전문성과 시청자 대표성을 고려하여 국회 문화광광위원회의 추천의뢰를 받아 국회의장이 추천한 자를 임명하게 돼있다. 그러나 지난 정권에서 보았듯이 방송위원이 마치 대통령 선거의 전리품으로 이용되는 듯한 경우로 임명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방송위원회가 표류하는 사이에 공동주택의 위성 공시청 안테나를 통한 전송방식(SMATV)이 케이블TV 업계와 스카이라이프 사이에 새로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스카이라이프는 각 가구마다 따로 접시안테나를 설치할 필요없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공동주택 가입자 확보를 위해 SMATV 이용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케이블TV 업계는 위성방송의 SMATV 이용이 케이블TV 방송 영역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SMATV는 유선방송 설비를 이용해 제공하는 유선방송서비스이므로 케이블TV 방송영역에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케이블TV 방송협회는 스카이라이프를 상대로 방송법ㆍ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협의로 소송까지 제기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스카이라이프는 SMATV를 이용한 공동수신 방식은 방송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약관에 명시된 적법한 수신방식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출혈경쟁 양상을 빚던 위성방송이 일부 케이블 지역방송 SO(System Operator, 시스템사업자, 케이블 TV국을 소유, 운영하는 사업자)와 협업을 선언하면서 유료방송시장의 경쟁구도는 다시 새국면으로 접어들었다. 5월부터는 성남지역 케이블SO인 아름방송네트워크와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이 ‘위성ㆍ케이블’ 연합서비스를 하게 됐다.
SCN(Satellite Cable Network)이라 불리는 이 서비스는 SO가 방송안테나로 위성방송을 수신한 뒤 매설된 케이블라인을 통해 각 가정에 프로그램을 보내는 방식이다. 적대적이었던 SO와 ‘동침’을 선언한 이번 조치는 일단 위성방송이 공동주택 가입자를 늘리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역별로 ‘협업’과 ‘경쟁’이 공종하게 된 유료방송시장은 당분간 난맥상이 예상된다.
또 지난해부터 시작된 지상파 TV의 케이블ㆍ위성 PP(Program Provider, 프로그램 공급자)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콘텐츠시장에서의 지상파방송의 독과점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14개에 이르는 지상파 PP 업체들이 자사 프로와 재방송으로 방송시간을 채워 케이블TV가 지상파방송의 부속 내지는 재탕방송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속에 영화ㆍ드라마ㆍ스포츠 등 인기 PP들을 지상파방송이 싹쓸이 해 중소 PP업체들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방송계에 난마처럼 얽히고 급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정치권은 입으로만 방송개혁을 외치고 있다. 정치권이 치졸한 밥그릇 싸움만 계속할 경우엔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하루속히 개혁성과 전문성을 갖춘 방송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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