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들어 호남이 인사 및 지역정책에서 역(逆)차별을 받고 있다는 이른바'호남소외론'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찬용, "광주 2~3명 의원이 집중적으로 거론"**
호남소외론은 11일 한 사건으로 극적 표출됐다.
조영동 국정홍보처장은 11일 광주를 찾아 광주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11명과 간담회를 가지려 했으나 국장단의 거부로 무산됐다. 국장단은 지난 10일 모임을 갖고 참석 여부를 논의한 끝에 "지역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조 처장과의 간담회에 불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란 판단을 내리고 불참을 통보했다.
민주당 광주지역 국회의원 6명은 이에 앞서 지난 9일 고건 총리에게 '호남소외론'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이어 10일 국회의 대정부질문에서도 강운태, 김경재, 전갑길 의원 등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을 상대로 인사 차별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이처럼 호남소외론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자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은 12일 오전 SBS 라디오에 출연, "지금까지 지역감정을 조장한 것은 주로 영남 정치인이었는데, 거꾸로 호남지역의 일부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악용하고 있다"며 "선정적인 내용이므로 언론이 이를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보좌관은 특히 '일부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광주에서 2~3명의 의원이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러나 "민주당 구주류가 중심이지만 구주류가 다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광주를 직접 다녀온 결과 기본적인 소외감이나 행정자치부 인사에 대한 속상함은 있었으나 바닥 민심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5, 6단계의 토론과정을 거치므로 정무직 인사에서는 그다지 편중이 없었다고 자부한다"면서 "다만 고위 간부, 특히 행정자치부 인사에서는 약간의 편중인사가 있었다고 본다"고 시인했다. 그는 그러나 "행자부 내 여러가지 이유로 호남지역 승진 자원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편중인사가 사실이라면 시정, 보완할 것이고 전달이 잘못됐다면 오해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호남인 84%가 盧 인사정책 긍정적 평가"**
호남 바닥 민심이 심각하지 않다는 실질적인 근거로 청와대는 11일 호남지역 거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청와대는 지난 9일 여론조사기관인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만20세 이상 호남 거주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정부 참여인사 중 호남출신 인사의 비중과 관련, 9.1%가 '상당히 많은 편' 58.2%가 '국민의 정부보다 줄었으나 적지 않게 있다'고 응답했다. 67.3%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반면 25.7%와 7.0%는 '별로 없다'와 '모르겠다(무응답 포함)'고 대답했다.
새정부 참여인사의 지역적 분포에 대한 인식과 관련, '고르게 분포돼 있다'는 응답이 72.7%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는 대답은 24.1%였다.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는 응답자 중 81.0%는 '국민의 정부보다 줄었지만 이해할 만한 수준', 18.3%는 '편중이 심하다'고 답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정책에 대한 질문에 '매우 잘 하고 있다' 10.5%, '대체로 잘 하는 편이다' 74.3%로 84.8%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반면 '대체로 잘못하는 편이다' 11.7%, '매우 잘못하고 있다' 1.1%, '모르겠다(무응답 포함)' 2.4% 등 응답비를 보였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균형성에 대해선 '지역적으로 균등하게 운영하고 있다'가 84.4%인 반면 '특정지역을 의식해 운영한다'는 12.8%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시 부정적인 답변보다 긍정적인 답변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호남민심이 심각하게 돌아서고 있다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 힘들다고 보여진다는 게 청와대 주장이다.
***"고위공직자, DJ 초기보다 영.호남 모두 늘어"**
문화일보도 '호남소외론'의 근거인 인사 역(逆)차별을 검증하기 위해 현재 새정부 출범이후 청와대와 정부부처·청 등 36개 주요 정부기관의 1급이상 고위공직자(검찰은 검사장급, 경찰은 치안정감 이상) 2백34명의 출신지역을 조사, 11일 보도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새정부 고위공직자 2백34명 중 영남출신은 93명(39.7%), 호남출신은 62명(26.5%)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기·인천은 각각 38명(16.2%), 충청은 30명(12.8%), 강원은 7명(3%)인 것으로 분석됐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영호남 인구비율은 약 2.45대 1이다.
이같은 출신지별 분포는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인 98년 4월 당시와 비교할 때 영·호남 모두 늘어난 반면, 김영삼 정부 정권 말기인 98년 2월 당시와 비교하면 영남은 줄고 호남은 대폭 늘어난 수치다.
DJ 정권 초기인 98년 4월 당시 1급이상 공직자(청와대 비서관급.경찰 경무관급 이상) 3백46명 중 호남은 22.8%(79명), 영남은 33.5%(1백16명)였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98년 2월에는 1급 이상 공직자 3백94명 중 호남출신은 14.5%(57명), 영남출신은 42.6%(1백68명)이었다.
이같은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일보는 "민주당 구주류와 호남지역 일부 언론들이 주장하는 특정지역 인사 역차별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일보는 "그러나 이른바 권력기관인 청와대·검찰·경찰·국세청의 1급이상 고위공직자(검찰은 검사장급, 경찰은 치안정감 이상)는 75명중 영남 출신은 31명(41.3%), 호남출신 17명(22.6%), 충청은 10명(13.3%), 서울은 9명(12%), 경기는 4명(5.3%), 기타 4명(5.3%) 의 순으로 집계돼 특정지역 편중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 행자부 인사가 결정적 계기**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호남소외론'이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달 11일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와, 지난달 14일 노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전격 수용하면서부터다.
게다가 지난달 26일 이창동 장관은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하겠다는 공약과 관련,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하는 것에 대해 아직 이야기해 본 적이 없으며, 정부 차원의 문화수도 육성 계획안은 없다"고 말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지역언론 등을 통해 '호남소외론'이 언급되기 시작하자 청와대는 정찬용 인사보좌관을 지난달 27일 광주로 내려보내 민심 동향을 살피게 했다. 정 보좌관은 광주를 방문해 민심을 살핀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호남대중들은 서운해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다만 이쪽 잘난 놈들은 서운해 하며 친구, 선배, 후배가 날라갔다고 하는데 이 차제에 한번 바꿔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즈음 조선일보가 "봄은 왔건만 광주엔 봄이 없었다"로 시작되는 광주지역 르포를 게재(3월23일자)하는 등 일부 중앙일간지들이 호남 민심이 심각하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러던 차에 광주일보 등 지역 언론이 지난 1일 단행된 행정자치부 인사와 관련, "1·2급 20명의 승진 및 전보 인사에서 광주·전남 출신 공무원들이 전원 배제돼 행자부내의 호남 인맥이 끊기게 됐다"고 문제 삼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역정치인들도 가세**
이후 지역 국회의원 등 민주당의 지역정치인들도 공개리에 '호남소외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광주시의회 의원 19명은 지난 7일 성명서를 발표 "정부 지역개발 정책에서 선택과 집중 논리가 기계적으로 적용될 경우 기간시설 등 인프라 기반이 취약한 호남권은 낙후가 심화될 수 밖에 없다"며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문화수도 육성' 사업 등 대통령 공약사항을 철저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광주지역 국회의원들도 9일 긴급간담회를 갖고 '호남소외론'에 대해 고건 총리에게 서면질의서를 발송했다. 서면질의서는 강운태 의원(광주 남구)이 김경천, 정동채, 김상현, 김태홍, 전갑길 의원 등 광주지역 의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 고 총리에게 전달됐다.
의원들은 고 총리에게 보낸 서면질의서에서 "총리께서는 호남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받은 적이 있느냐"며 "보고를 받았다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답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의원들은 특히 "새 정부 개각과 고위직 인사 등에서 광주·전남지역 출신들이 눈에 띄게 줄어 지역에서는 '이제는 전화 걸만한 사람도 없다''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의원들은 또 ▲해수부 업무보고에서의 광양항 관련 사항 배제 ▲호남 고속철도 완공 연기 가능성 ▲문화수도 육성공약 후속조치 미흡 등 지역 개발 정책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지난 10일 국회의 대정부질문에서 강운태, 전갑길(광주 광산구)의원이 김두관 행자부 장관을 상대로 '호남 인사 홀대'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기도 했다.
이처럼 '호남소외론'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지역편중이 있는지 현황과 원인을 조사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노대통령은 이날 "총체적으로 검토해 (호남)소외가 있다면 보완하고 사실이 아니라면 적극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 신주류ㆍ구주류간 정치적 이해가 걸린 문제**
이제까지 '호남소외론'이 확산돼온 것을 살펴보면 인사에서 밀려난 공무원들의 불만을 언론이 보도하고 일반 여론으로 증폭되는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 가세해 정치권은 '호남소외론'을 중앙 정치무대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에 청와대가 자체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하고 정찬용 인사보좌관이 민주당 구주류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고 나섰으나, '호남소외론'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호남소외론'은 구체적 근거를 가진 것이라기 보단 지난 대선 당시 90% 이상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는 등 새정부 출범의 '1등 공신'으로 자부하는 호남 사람들이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운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특히 정치적으로 민주당 구주류-신주류간 세력 다툼이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광주지역 한 언론인은 "민주당 구주류에겐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을 공격한다는 정치적 부담이 있지만, 동시에 지난 대선때 노무현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도피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해석될 수도 있다"면서 "'호남소외론'을 통해 노 대통령과 호남 유권자과의 괴리감을 극대화해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주류 입장에선 내년 총선에서 호남 지역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호남소외론'을 진화하기 위해 구주류를 겨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민주당 내 신.구주류간 갈등이 이 문제로 인해 한층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이 여전히 정치의 볼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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