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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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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딜레마

미, 바그다드 진격 시기 놓고 목하 고민중

‘당장 진격이냐 병력 증강 후냐’

바그다드 진격 시기를 놓고 미국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위시로 이라크 공격 전략을 세운 이들은 ‘단시일내 바그다드 함락’이라는 당초의 전략을 고수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지금 구체적인 진격 시기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중남부 선(先) 장악 후 진격’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분석이 나온 지 오래고 그들 스스로도 “전쟁이 오래 갈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진격 연기를 공식화하는 것은 초기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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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진격 결정 어려운 이유**

그렇다고 무작정 치고 들어가는 것은 만만찮은 부담을 넘어 모험에 가까운 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이라크군의 거센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라크 공화국수비대는 6개 사단, 6만~7만 병력으로 바그다드 외곽을 둘러싸며 배치돼있고 이와는 별도로 4개 여단, 2만~3만여명으로 구성된 특수공화국수비대(SRG)가 바그다드 시내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 정규군보다 월등한 화력으로 소유하고 있고 바그다드 시내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고 있다.

1차 걸프전의 반도 안 되는 미군 병력수가 너무 적다는 사실도 진격을 망설이게 한다. 현재 바그다드 80~100km남쪽에 포진하고 있는 미군의 선발 전투병력은 제3보병사단과 해병대 등 3만여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바그다드를 공격하면 제101공중강습사단과 해병 제1원정사단 등 6만여명의 병력이 협공을 펼칠 예정이지만 이라크 정예부대와 대적하기에는 적은 숫자라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미군이 소유한 첨단 무기도 예상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치게 확장된 보급선 때문에 배후 공격을 받기 쉽다는 것은 바그다드 진격시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미군이 바그다드드 깊숙이 파고들었을 때 외곽에 배치된 공화국수비대와 민병대에 전면 포위당할 수 있다. 미-영군을 뱀에 곧잘 비유해온 모하메드 사이드 알 사하프 이라크 공보장관은 지난 24일 “뱀은 길수록 자르기도 쉽다”고 보급선 공격을 암시했다. 선발 미군들은 포위에 대한 공포와 피로 때문에 이제 노골적으로 휴식을 요구하고 있다.

사하프 공보장관은 27일(현지시간)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바그다드가 미-영군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바그다드 시가전이 벌어지면 미군 병사 1명당 이라크군 사망비율이 1대1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28일 보도했다. 술탄 하심 아흐메드 이라크 국방장관은 “미군이 바그다드를 포위하려면 최소 5일이 걸린다”며 “포위하더라도 난공불락의 요새인 바그다드를 점령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고 짐짓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 미군이 애초의 계획대로 바그다드를 곧바로 진격하겠다고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미군의 선택은?**

병력 증강때까지 진격을 멈추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27일(현지시간) 파견키로 한 제4보병사단 2만 병력이 전열을 완전히 갖추는 것은 빨라야 다음달 10일 경이다. 증파하기로 한 12만여의 병력이 다 도착하는 데에는 한달여가 걸린다. 더워지는 날씨와 이라크군의 계속되는 유격전, 길어진 보급로 등으로 그때까지 공략을 늦출 수 없다. 곧바로 진격할 수 없는 이유가 무작정 미루기만 할 수 없는 이유도 되는 것이다.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후세인 정권의 핵심을 하루빨리 제거하는 것이 조기 종전의 첩경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중남부와 북부의 주요 거점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들어가는 것은 미-영군을 자칫 끝없는 소모전의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미 군부는 지금 당장 진격이냐, 완전 증가후 진격이냐 하는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 중간 지점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미 뉴욕타임스는 28일 바그다드 진격이 결국 절충적인 상황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일부 지원병력이 도착할 때까지만 조정기를 갖고 적당한 공략시기가 오면 총집중 공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도 미군 당국이 숨을 고르며 공략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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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왜 이 지경 됐나**

미-영군이 이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뉴욕타임스는 미-영군의 다음 작전이 불확실하게 되고 선택을 강요받게 된 몇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의 전략을 잘못 파악했다. 전쟁 전 미 국방부는 후세인이 남부의 국가 기반시설을 파괴하면서 바그다드 방어 중심의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남부의 기반시설을 파괴하기는커녕 각 도시들을 저항의 거점으로 삼았다. 식량도 든든히 비축해두고 페다인 부대 등을 내려보내 바스라, 나자프, 나자리야 등 각 전략요충 지역에서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유격전을 통한 후방 공격 전술도 예기치 못한 사태다.

둘째, 터키를 설득하지 못해 이라크 북부를 통한 미 지상군 투입이 무산되면서 작전은 더욱 꼬이게 됐다. 적을 공격적이고 전면적으로 압박하는 전통적인 미국의 전쟁 전략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주도권을 중시하는 미군에게 낯선 상황이 된 것이다.

병력의 수를 중시하지 않는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지론도 사태의 악화를 불러왔다. 럼즈펠드는 평소 ‘소수의 핵심병력을 이용한 날카로운(light and sharp) 공격’ ‘작고 기동성 있으나 효과적인(small, mobile but potent) 공격’이 미래의 전쟁 전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발달된 명령통제체계와 정찰능력, 정밀유도폭탄 같은 첨단 무기가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번 전쟁에 이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모래폭풍과 같은 악천후와 예상치 못했던 남부 지역에서의 유격전, 이라크군의 과거와 다른 소규모 단위 편제 등은 럼즈펠드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어렵게 했다.

***럼즈펠드에 비난의 화살**

럼즈펠드는 터키 영토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북부로의 침투를 위해 지중해에 진주시켜두었던 제4보병사단의 보급선을 미국으로 돌려보낼 계획이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4보병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보급선도 다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사단 병력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군부 스스로 실수를 인정한 꼴이 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지론을 고집하며 이라크의 상황마저 제대로 파악치 못한 럼즈펠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미 군부 내에서 높아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럼즈펠드는 전쟁 계획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여러 고위 사령관들과의 숙고를 통해 승인되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며 비난의 화살을 피해갔다.

아흐메드 이라크 국방장관은 27일 “시민들이 살아있는 한 바그다드는 점령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는 결국 ‘우리를 다 죽여야 당신들이 이긴다’는 사즉생의 결의를 천명한 것인데 바그다드의 저항이 얼마나 거셀지 암시하고 있다.

완강한 저항과 불리한 여건, 전략적 오류에 따른 사기 저하에 처한 미 군부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7백년간 외세의 침략을 저지했다는 그들만의 고도(古都) 바그다드는 이번에도 수성될 것인가. 이라크인들의 주장대로 미-영군 전몰장병들의 무덤이 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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