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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핵문제, 이제는 한국이 나서야”

의원과 시민 사이에 격론 오간 북핵ㆍ파병 토론회

"미국은 한국의 파병 여부를 한미동맹 유지의 바로미터로 생각한다."
"한국이 아무리 부시 행정부를 지지한다고 해도 북미관계는 나아지지 않는다."
"한미정상회담이 북핵 해결의 분수령이 되기 위해 파병이라는 보따리를 미리 줘야 한다."
"한미정상회담때도 북폭하지 말라고 애원하지 말고 단호히 'No' 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의 진단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해 프레시안과 시민단체인 전쟁반대긴급행동, 평화생명공부모임이 서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공동개최한 22일 오후 토론회. 이라크전쟁이 사흘째에 접어들고 정부의 파병안이 의회에 제출된 시점인 탓에 토론은 중심 주제인 북핵을 넘어 한미관계와 파병문제로까지 번져나갔다.

<사진: 국회 국방위원회 >

파병 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놓고 있는 정치권을 대표해 참가한 여야 의원들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고, 학계와 시민단체 대표들은 국민적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파병, "현실 인정하자" vs "토론 먼저 하자"**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군의 이라크전 파병문제였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장영달 민주당 의원은 "파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미국은 한국의 파병 여부를 한미동맹 지속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바로미터로 생각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파기하면 우리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해 파병하는 것이다"고 털어놨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에 "한국이 파병하지 않으면 동맹관계를 깨겠다는 미국측의 구체적인 압력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한다"며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북핵이 이라크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논리를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도 "파병반대는 정의로운 주장이긴 하나 군사·경제적 현실은 미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론을 폈다. 그는 "상호 모순된 행동방향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병자호란때의 주전론-주화론 갈등처럼 어느 파병 찬반측 어느 한쪽만 옳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파병안을 옹호했다.

<사진: 정욱식>

정치권의 한결같은 목소리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를 준비하고 있는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구동존이(求同存異)자세를 가지지 못하고 정부와 국회가 파병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며 "평화를 '국익'이라는 손익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평화를 계산의 대상으로 보는 파병 현실론은 사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정욱식 대표는 "이길 게 뻔한 검사와의 대화는 추진하면서 파병문제는 왜 여론검증을 하지 않냐"며 참여정부가 '토론 권위주의'에 빠졌다고 규정, 지금이라도 파병안 표결을 연기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미 갈등은 신뢰의 문제인가, 이해관계의 갈등인가**

파병안과 북핵 위기와 관련, 한미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격론이 오갔는데 여기서도 의원들과 시민단체·학자들의 견해가 뚜렷이 갈렸다.

장영달 의원은 현재 한미간에는 수많은 오해가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속히 파병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파병이 한미간 신뢰를 회복케 해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한미공조를 유리하게 한다는 주장인데, 이부영 의원은 신뢰 회복과 북핵문제 해결의 결정적 계기로 4~5월경 있을 한미정상회담을 꼽았다. 이 의원은 "정상회담이 2001년 김대중-부시의 첫 회담때처럼 실패로 끝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라며 "한미정상회담이 '담판'이 되기 위해 파병동의라는 보따리를 미국에 미리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장영달, 이부영(붙여서)>

의원들의 이같은 주장에 시민단체는 한국 정부가 부시 미 행정부를 지지하는 것과 북미관계의 회복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단호한 모습을 미국에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욱식 대표는 부시 집권후 첫 한미정상회담을 회고하며 "김대중은 당시 부시를 지지한다고 강하게 말했으나 한반도에 돌아온 것은 '악의 축'이었다. 이처럼 남한이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는 것과 북미관계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한미간 갈등은 오해나 불신 때문이 아니라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진단, "아무리 많은 병력을 파병해도 부시의 생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박순성 교수는 "한국인들이 어려운 상대라는 것을 미국 강경론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국민의 비판을 받으며 어렵게 파병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오히려 대미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도 "미국의 협박을 들어주면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인상을 남기게 된다"며 "한미정상회담이 열려도 미국에게 북폭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교류 극대화, 북·미 설득 나서야"**

토론회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북핵문제와 관련한 최신 움직임을 전해줘 눈길을 끌었다.

최근 노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던 장영달 의원은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파월 미 국무장관이 '유엔 결의안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봉쇄가 아닌 NPT 복귀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채울 것'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최근 방한한 제임스 레이니 전 미국대사를 만난 이부영 의원은 "지금은 클린턴 시대가 아니라 부시 시대다. 부시는 평화적 북핵 해결의 의사와 대책이 전혀 없는 정권이다. 카터 같은 원로 정치인도 부시를 돕지 않는다"는 레이니 전 대사의 걱정을 전해줬다.

<사진: 전체사진>

두 의원들의 이같은 전언에, 파병문제와 한미관계에 뚜렷한 인식차를 보였던 토론 참가자들은 북핵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하고 이제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한번 시작된 군사행동은 그 자체의 논리 때문에 걷잡을 수 없어 북폭계획이 실제 단계로 들어가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박순성 교수는 한국이 북에 전력 제공을 서두르는 등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더 주도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영달 의원도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할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인 대책은 민간교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통합을 이뤄 대미·대북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민병석 전 체코대사는 "보수세력은 미국을 설득하고 진보세력은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부영 의원도 동의를 표하며 "북중관계는 한미관계보다 더 악화돼 중국을 지렛대로 쓸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나서 미국이 북한에 공격적으로 자세를 전환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혁범 대전대 정외과 교수는 북한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북한이 외교의 문을 열고 모든 문제를 먼저 타결하는 제안을 미국에 해서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핵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마련된 이날 토론회에서 파병문제와 한미관계에 대한 주제가 더 열띠게 토론된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 불가피했다.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있는 파병안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처음으로 공개토론을 벌였다는 의미를 지닌 이날 토론회에서 확인된 인식의 차는 컸다. 파병반대를 명분론으로, 찬성을 현실론으로 나눠서는 안된다는 한 토론자의 말대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바람직한 합의를 위해 국민적 역량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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